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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Nov 26. 2019

별거 아니야 그치?

별거 아닌 마음


사탕을 떨어트린 아이에게

별거 아니야,라고 말해준다.

나는 20대의 나에게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아이가 사탕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빨간 막대 사탕은 아이의 마음도 모른 채, 새까만 흙 이불을 덮고 뒹굴거리고 있다. 아이가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운다. 다시는 사탕을 먹지 못할 것 같은지 바닥에 떨어진 사탕 옆에 양손을 짚고 목놓아 운다.


그런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말한다. "별거 아니야, 봐봐." 주머니에 하나 더 있던 초록색 사탕을 꺼내어 아이 손에 쥐어준다. 아이는 사탕을 들고 잠시 울음이 멈추더니, 그래도 이 빨간 사탕이 먹고 싶었다며 흐느낀다. 아이에게 말한다. "빨간 사탕이랑 초록 사탕 맛이 똑같아. 오히려 초록 사탕은 더 오래 먹을 수 있잖아. 울지 마렴." 그제야 새 사탕을 든 아이가 웃어 보인다. 그래, 별일 아니잖아.


눈이 촉촉한 채로 사탕을 물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닌다. 초겨울이라 바람이 차다. 매년 초겨울이 다가오면 나의 20대가 떠오른다. 춥고 추웠던 나의 20대. 무슨 일을 해도 풀리지 않던 시절. 늦은 새벽에 잠들려고 누워도 잠이 안왔다. 어두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나의 내면을 후벼 판다. 상처를 손가락 하나하나로 확인하며 눈물을 흘렸다.


과연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내 미래는 괜찮을까? 내일은 또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할까? 신이라는 게 존재하긴 한 걸까?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속은 매우 괴로웠다. 이 밤이 지나면 맞이 하고 싶지 않은 아침이 오겠지. 괴로움은 끈은 어디서 끊을 수 있을까.


불안했던 시기가 지나가고 서른 살이 되었다. 서른이 되던 해,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 <딸기를 으깨며>의 노리코처럼 '행복해서 눈앞이 깜깜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20대보단 마음이 편했다. 내가 힘겹게 싸웠던 세상은 생각보다 넓었고 나를 받아주는 곳은 있었다. 그저 '나'라는 이유로 사랑해주는 사람도 만났다. 그래도 완전한 행복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31살이 되던 해, 아이를 낳았다. '눈 앞이 깜깜한' 행복을 느꼈다. 아기 냄새를 맡고 있으니 시간이 멈췄다. 지금까지 앓고 왔던 모든 고통과 시름이 잊혀졌다. 이 아이가 건강하다면, 행복하다면 내가 뭘 더 바랄까. 내가 뭘 이루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그저  아이의 엄마라는 자체로 내가 완성되었음을 느꼈다.


주변 상황은 여전했다.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했고, 원하지 않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났다.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아이와, 이 아이의 아빠와 행복하고 평온하게 사는 것. 그것만이 내가 바라는 전부가 되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도 가족의 건강과 관련된 게 아니라면 "별거 아니야, 괜찮아."라는 말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20대의 나는, 사탕을 떨어트리고 울었던 아이처럼 작은 사탕을 보고 절망했을 수도 있다. 손에 들고 조심조심 아껴먹던 사탕을 눈 앞에서 떨어뜨리니 얼마나 당황스럽고 슬펐을지. 조금만 기다리면 '새 사탕'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새로 받을 사탕은 침이 닳지 않아 영롱하고, 심지어 크기도 더 클 텐데. 왜 그걸 알지 못하고 흙 밭에 굴러다니는 사탕에만 집착했는지.

  


연구결과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해진다고 한다. 이유는 나이  사람과 젊은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기 때문에. 20대가 사는 세상은 아직 탄생한  30년도 지나지 않은 세상이다. 지속 시간이 짧으니 삶에는 인과보다는 우연이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60세가 사는 세계는 벌써 70 가까이 지속된 세계다. 시간이  정도 지속되면 결과를 통해서 원인을 따져볼  있다. 젊은이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담배를 피운다고 폐암에 걸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늙은이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수두룩하다.

그러니  세계가 다를 수밖에. 노인들의 행복은 거기서 비롯한다고 한다. 그들은 예측 가능한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내가 온전히 불행했던 20대는, 인과보다는 우연이 작용하던 시기였다. 1000대 1의 시험에서 탈락했다는 이유로,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렇게 불행했다.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을 앞둔 지금, 확실히 말할 수있다. 그때보단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는 .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상이 예측이 된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은 생각보다 유기적이어서, 사탕이 없어지면 다른 사탕을 사면 되고, 사탕이 없어지면 새로운 간식을 찾으면 된다. 인생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예상 못한 사건이 터지면 주변 사람들이나 전문가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이런 곳에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다.


"별거 아니야, 괜찮을 거야."  

아이의 손을 잡고 한번 더 되뇌인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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