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병이 가져다주는 삶의 질 향상
소니 노이즈 캔슬링 최신형 헤드셋을 약 45만 원에 구매했다. 3만 원짜리 바지도 비싸다고 생각하는 나인지라, 결제하는 순간까지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 번 사용하는 순간 환불도 어려워지는 고가의 헤드셋을 정말 나는 살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무거운 마음을 갖고 카페에서 시착용을 해봤고, 그렇게 나는 2022년 최고로 잘 산 제품 리스트에 소니 헤드셋을 추가했다.
음악 산업 종사자도 아닌 이상, 값비싼 헤드셋이 왜 필요하냐 물을 수 있다. 혹자는 드디어 프리랜서 허세가 장비병으로 악화되었다 생각할 수도 있다. 일부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뭐 어떤가? 장비병 덕분에 나의 업무 및 일상생활의 삶의 질이 엄청나게 향상되었으니 말이다.
나처럼 원룸에서 재택근무하는 이들에겐 업무 공간과 일상 공간을 나누기 힘들다. 그 좁은 집에서 어떻게 칸막이를 세우고 커튼을 설치하겠는가? 결국은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을 통해 스스로를 속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은 아주 나만의 공유 오피스 빌딩 그 자체이다. 덕분에 실제 오피스를 구하면 내야 하는 월세 및 기타 비용도 아끼게 되었다.
카페서 소니 헤드셋을 낀 채 희희낙락하면서 생각했다. 어찌 보면 이것도 업무를 위한 투자이며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선택인데, 왜 그렇게 부정적 감정이 몰려왔는지 말이다. 말 그대로 '돈 낭비야!'라는 생각이 머리와 마음을 떠나지 않았었다.
하루가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헤드셋에 투자한 돈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을지, 좋은 미래를 이끌 수 있을지를 신뢰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리 패배감과 실망감에 휩싸였었다. 스스로에게 과분한 기대와 불신을 동시에 줄 수 있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장비병은 이런 나 자신을 이겨낼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주었다. 물론 가끔가다 과도하게 힘을 써서 날 넘어지게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알아서 적당히 조절하면 훌륭한 조력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만약 장비병을 갖고 있는데 심한 죄책감과 자괴감을 갖고 있다면, 그래도 괜찮다. 어떨 때는 장비병이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