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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Oct 22. 2022

 탈 가정한 나는 지금

나를 때리고 죽일 듯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었던 엄마와 계부 사이에서 물리적인 거리 그리고 5개월 동안 지속되는 단절된 연락 속에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나 불행하다.


가족과 분리되었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가족과 멀어졌고 행복할 일만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지금 너무나 불행하다.


내 글을 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젠 행복할 거라고, 꽃길만 걸을 거라고 응원해주셨고 그 응원이 행복했다. 어떤 날보다 어떤 말보다 감사했다. 나 역시 이제는 행복할 일만 남았으니 행복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현실은


트라우마 속에서 여전히 나의 상처는 진행 중이다.


26년의 학대로 망쳐진 내 몸과 정신은 말도 못 하게 피폐하다. 그래, 원가족에서 멀어져서 보이는 안정감이 있겠지. 나 스스로도 거리를 두면서 직접적인 아픔은 사라졌겠지. 말 하나에, 표정 하나로 괴로움에 미쳤던 나는 이제 없어졌지만 인생이 100년 동안 진행된다면 내가 여태 아픔으로 살아온 시간은 1/4이다. 3/4의 인생이 남았어도 죽음과 같았던 1/4 때문에 나에게 남은 3/4는 고통이 될 수도 있고 어려움이 되기도 하는데


나는 원가족에서 탈 가정했으나

여전히 불행함을 인정해야 할 때마다, 글로 자꾸만 나에 고통을 행복으로 포장하려고 하고 보면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내가 보는 나는 행복하지도 좋지도, 무감각하지도 않다. 4년 가까이 먹어온 수면제가 서서히 몸에 맞지 않는다. 먹고 약효가 돌면 심박이 140까지 올라가 빈맥으로 무서움에 떨었으면서 애써 몸이 좋아져서 약이 안 맞는 것 같아도 이야기하고 웃었다.


학대가 이젠 없다고 말하면서 덧붙여 행복하다고 말하는 나, 스스로를 속여놓고 그렇게 글로 쓸 때마다 숨통의 창구였던 글과 더욱 멀어지고 써지지 않는 글에 답답하고..


그러나 나는 행복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행복에 대해 모르면서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내가 화나고 속상하고 답답하다. 또한 불쌍하기도 하다.


학대에서 내가 벗어났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살기 위해 벗어나야 했다. 상황을 보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선택한 일처럼 보이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죽음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이별과 수많은 진실, 고통의 끝에서.. 난 자의적인 선택이 아닌 것 같다.


’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던’ 이 단어를 빼놓고 어떻게 내 그 상황을 말할 수 있을까. 나의 글을 봐주시는 분들과 가깝게 지낸다고 하는 나의 남은 가족에게도 “이제 다 잊고 행복하게 살자” 그 말에 행복한 모습을 하는 나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나의 생각을 통제했다.


나는 여전히 아픈 사람이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사실 행복을 위해 누구보다 발버둥 치고 있지만 나는 트라우마로, 엄마의 거칠었던 말로 도망쳐지지 않는다. 다 괜찮아졌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남겨진 상처를 꺼내기 전부터 난 방어적으로 말하고 숨고 싶어 하고 방어적으로 맴돌지만 애써 괜찮다고 했다. 그 방어적인 태도에서 진짜 상처를 들어냈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지만, 들어내고 나면 아이처럼 울고 또 울다가 울음으로 말문이 막혀도 탈 가정했으니 안 아프다. 학대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제는 행복하다고 말해야 하는 분위기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


그냥 지금은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다.

당장 내 글만 봐도 혼란 속에 있는 것만 같다.


아프지만 죽을 각오로 매 순간을 임하고 치열하게 나를 찾으려 애쓰고 터진 상처를 혼자 봉합하고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하거나 괜찮다고 하거나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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