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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Oct 24. 2022

사실 난 타투를 극도로 혐오하던 사람이었다

타투 이야기

오늘은 내 몸에 새겨진 타투에 대한 이야기다. 올해 4월 초까지만 해도 타투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평소 나는 치를 떨며 혐오했다.

표현의 자유라고? 하다 하다 표현의 자유를 몸에 새기나? 변명도 가지가지군.. 타투를 하는 사람도, 타투를 해주는 사람도, 타투에 대해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나에겐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눈썹 타투마저 극도로 혐오했다.


그만큼 타투에 대해 극도로 폐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타투를 하게 됐냐고?


2021년 우연히 보게 된 장기 기증 관련 게시물을 보게 되면서 물꼬를 틀게 됐다. 매일 우울과 불안을 달고 살면서 나는 죽음과 관련이 높다고 생각했다. 만약 죽게 된다면 자살로 죽게 될 가능성이 높고 내가 아파서 죽거나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몸속에서 나의 한 일부로 새로운 삶을 맞이하면서 살기를 바랐다. 그렇게 은연중 생각했던 것들이 장기 기증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대해 담긴 인스타 게시물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이 아무리 이래도 나의 법적 가족들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장기 기증은 어려울 수 있다는 말도 언제 들은 적이 있어서 차라리 몸에 새겨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게 나의 첫 시작이었지만, 혐오하는 내 생각을 깨부수긴 어려웠다. 양립의 감정 대립을 겪으며 혼란스러웠고, 원하는 일임에도 쉽게 결정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타투를 하게 된 건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등기를 받고 무작정 장례 연락을 기다리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였다. 아빠가 오랜 시간 동안 방치돼 사망일자도, 사망사유도 알 수 없었다는 것이 나의 숨통을 끊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당시에 지금보다 아무것도 몰랐다.


아빠가 혼자 살게 된 이유도, 나는 아빠에 대해 서류로만 알 수 있었는지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였는데 처참히 돌아가시는 동안 빛을 잃었을 아빠에게 빛을 선물하고 싶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혼자 아빠에게 쓴 편지들 내용을 보면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다짐과 약속만 가득했는데 그걸 잊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잊지 않을 수 있을까 수 천 번을 고민했는데 타투 말곤 떠오르지 않았다. 타투를 하겠다고 고민하고 결정하는 시간까지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내가 어색하고 이상했다. 살아온 모든 시간 동안 타투를 혐오했는데 사이즈를 정하고 위치를 정하고 하는데 고작 하루 안에 다 생각해내고 결정했다니 웃기지만 진지했다.


위치는 왼쪽, 안 쪽 그러니까 심장 근처였다. 가슴에 생기고 싶었지만 가슴이 아닌 심장이 닿을 위치였을까? 심장에 새길 수는 없고

비혼 주의를 외치고 다녔어도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 비혼 주의를 철회할 만큼 나에게 멋진 상대가 나타난다면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결혼식 입장할 때 아빠에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잘 커서 이제 결혼도 하고,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면서 열심히 서로를 위해 살고 존중하며 살게.


근데 현실은 아빠는 세상을 떠났다. 떠난 아빠에게 어떻게 말하고 보여줄 수 있을까.

결혼식 입장하고 식이 진행될 때 신랑은 신부의 손을 잡고, 팔짱을 끼는데 신부일 나한테는 왼쪽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아빠를 새겨둔 타투와 겹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왼쪽, 심장과 가까운 위치에 새겼던 이유는 아빠를 세상에선 떠나보냈지만 내 마음엔 여전히 살고 있다는 의미였다.


몸은 보냈지만, 마음은 나에게 남았으니까…, 그러니 심장 가까운 위치에 두고 매일 잊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새겨둔 아빠에게 내 미래를 약속한 상대를 보여주기도, 다짐하기도 좋다. 잊을 만하면 보이는 내 팔을 보면서 아빠를 생각하며 힘내기로 했다.


타투의 위치, 크기를 정하는 것까진 쉬웠는데 대체 뭘 새겨야 할까 문제였다. 운명의 장난일까 개명하고 보니 아빠와 이니셜이 정말 같았고 이걸 잘 살려보고 싶었다.

S, Y 이니셜이 들어가는 단어를 찾는 일이 너무 어려웠고 적절한 문구를 찾기가 보통 난이도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I wish to set you free’ 내 소원은 네가 자유로워지면 좋겠어 의미의 문구를 알게 되고 타투까지 새길 수 있었을까?


누군가 시즈니 항구를 이야기하면서 항구? 모아나? 생각하게 됐고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긴 했으나 와닿지 않았다. 그럼 분명 디즈니 안에서 와닿는 문구가 있을 거라고 모든 작품을 찾아봤고 알라딘에서 지니에게 마지막으로 소원 썼던 문구였던 이걸 발견한 후에 바로 타투 예약했다.


타투 문구로 하게 된 나만의 이유는 삶으로 지쳐버린 아빠에게 이젠 짐을 내려놓고 살라는 의미였고, 아빠가 나의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사는 이야기를 알았다면 혹은 내 상처를 알았다면 해줄 이야기로 느껴졌다. 타투를 하면서 이 수많은 이야기가 남겨 있다. 아빠에게 했던 앞으로 살아갈 내 삶에 대한 내 태도와 약속을 담았고 아빠의 이야기를 담았고 아빠에 대한 내 마음도 담았고 내 미래도 담았다. 빛도 넣고 가로등 뒤에 사망신고에 적힌 작게 사망일자도 넣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최근에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고 괴로워하면서 몸이 아파 3일을 연락 보기 힘들 정도 아프다 아빠에 대한 마음이 터져버린 날, 불현듯 생각난 말이 있다. “타투가 너무 귀여워요. 이런 타투면 너무 좋지.” 내 타투를 보면 다들 했던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이런 의미도 모르고…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다 설명할 수 없었던 상황도 답답했는데 브런치에서라도 이야기해보자 싶었다. 그럼 아팠던 나에게 또 다른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아빠의 나 그리고 학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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