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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Apr 26. 2021

우리들의 아버지

그 날의 기억

"수영아 반점아재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단다" 갑작스런엄마의 카톡. 반점아재. 천천히 얼굴을 떠올리고  분이 어떤 분이셨더라, 어디가 편찮으셨더라까지 기억해낸다음 30분에 걸쳐 "이런.."하고 두글자를 입력했다. 이런, 이런이라니.



친척아저씨. 몇촌인지도 확실히 모르는 친척아저씨.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중국집을 운영해오던 아저씨. 엄마도 내게 그냥 반점아저씨라고 부르게 했던 친척이지만 성함도 촌수도 모르는 아저씨.


우리집은 종갓집이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만해도 제사를 일년에 열두번도 더지냈고 친척들도 당연히 많아서 누가누군지, 누가 누구아들이고 누가누구 남편인지도 헷갈렸다. 게다가 나는 친척들과 살갑게 지내지도 않았고 전혀 관심도 없었기에 명절에 무더기로 들이닥치는 '친척덩어리' 정도로만 인식했었고 반점아재는  덩어리중 최고의 골칫덩어리였다.



알콜중독자였다. 명절에 오시면 상을  오기도전에 혼자 소주3병을 먼저 까고 계시던 분이셨다. 친척오빠들은 제아버지라도 부끄러워했다. "아빠 술마시지 말라니까. 죄송해요. 대신 사과드릴게요"

술은 아저씨가 마시고 사과는 오빠들이 했다.

그리고  무언가 하나를 깨뜨리거나, 싸움을 붙이거나, 인사불성이 되거나해서 친척오빠들이 벌개진 얼굴로 부축해서 데려나가고는 했다.  날은 "엄마, 러는 거 자식한테 너무 민폐아니야?" 하고 물었더니 엄마는 '그래도  쓰러져가는 중국집하면서  아들 대학까지 다보내셨다' 했다. 그런데 그놈의 술을 못끊어서. 쯧쯧. 저고생을 하고도 아빠대접을 못받잖니.. 명절날 혼자 술취해 얼굴이 시뻘개진채로 고함을 지르시는 아저씨를 두고 부엌에서 엄마랑 작은엄마가 속삭이듯 흉을 보면 나는  아저씨 뒤에서  오빠들  가장 멀끔히 차려입고 우리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하는 큰오빠를 보며 속으로 외쳤다. 도망쳐요. 여기서 도망치세요얼른.

어느날 저녁식사자리에서 지금처럼 엄마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반점아재 위암이란다. 라고했다. 이 나물 간이 좀 쎄지?하는 톤으로. 술을 그만큼 부어댔으니 어디 멀쩡할리가 있어. 나도 그랬다. 그 아저씨 이제 술 못드시겠네.. 그러게 작작 좀 드시지..



아저씨는  후로도 술을 못끊으셨다.    연휴. 그만  마시라니까! 아빠가 소리를  지르고  명의 사촌오빠들이 굳은 표정으로 아저씨를 끌고나간  내가  그들의 마지막모습이었다.  , 항상 멀끔한 모습으로 고개숙여 인사하던 첫째오빠는 죄송하다고 하지않았다. 다만 우리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 많이 힘드신가봐요." .

.

엄마는 지금 상가집에 가있다. 서울에 있는 동생내외는 내일 오기로했단다. 하필 내가 지금 제주도에 나와있어서 가보지도 못하는구나.하고 있는데



"수영아. 성훈이가(첫째 사촌오빠)오열하는데 내가 너무 슬프더라..성훈이가. .성훈이가 그렇게 울더라"



하는 엄마의 메세지에 그만,  심장에 박힌 무언가가 와르르 쏟아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둑이 터지듯 . 겉잡을 수없이 와르르 와르르.



몇촌인지, 성함도, 나이도모르는 반점아재. 시뻘개진얼굴에 앞니가 나간채로 실없이 웃으시며 수영아 내가 돈이 없다. 하고  때마다 오천원씩 쥐어주던 아재. 몇십년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켰을 반점이  아저씨 이름자체가 되어버린 아재. 많이 아프고, 많이 버티고, 많은 것들을 지켜냈을 텐데  외롭게 고단했을 인생이 우리들 기억에 술과 반점으로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고 죄송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겐 가난하고 냄새나는 보잘것없는 술주정뱅이라도 누군가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였다는 것도.



제주도는 많이 덥다. 대구도 많이 더울텐데. 아저씨의 붉은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서 눈물이 난다. 나한테 쥐어주던 오천원이 아주 큰 마음이었다는것도 이제서야 깨닫는다. 모든 중요한의미는 꼭 잃고나서야 알게되나보다. 죄송했습니다. 한 번을 웃으며 인사해드리지못해서. 부디 용서하시길. 편히 쉬세요. 아저씨, 반점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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