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정신질환 기록
나는 20대초반에 거식증에 걸려 대학을 휴학하고 입원과 통원치료를 병행하며 4년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았었다.
키 170에 몸무게 37키로가 그 때의 내 몸 상태였다. 거식증의 원인과 증상은 다양하고 꽤 복잡한데 나같은 경우는 오랜시간 받아온 가정 학대에 의해 거식증이 왔었다. 내가 기억하는 5살 때부터 매일 물리적 폭력에 시달렸던 나는 짓밟히고 억압당한 자기통제력이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된 후 삐뚤어진 방향으로 표출이 된 것이다. 나는 내 몸을 나 스스로 통제할 수있다는 쾌감에 사로잡혀 음식을 조각조각 내 칼로리를 계산하며 살을 빼는행위를 멈출 수가 없었다. 곧 죽을듯이 좀비처럼 말라가면서 기괴하게도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내가 음식을 통제하는 행위 이면에는 "엄마처럼 되고 싶지않다" 는 '성장하고 늙어가기를 거부하는' 무의식적인 방어가 있었다. 여자아이가 음식을 먹고 살이찌고 성장을 해 어른여자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 세상의 보통사람들이 겪는 그 일련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아빠의 학대를 방임하고 겉으로는 내 편이면서 실제로는 나를 보호하지않았던 엄마. 수영이는 엄마 사랑하지 않니?부모를 사랑해야한다는 내 죄의식을 자꾸만 건드리면서 용서를 강요했던 엄마. 내가 거실에서 멍투성이로 울고있어도 안방에서 아빠와 잠자리를하며 끝내 소리를 듣게했던 엄마. 그런 엄마가 되기를 거부하고픈 마음이 거식증으로 드러난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다. 그거 식욕없는 병아니냐고. 그래서 조금만 식욕이 떨어지거나 밥이 안넘어가면 나 거식증인 가봐 하며 징징대거나, 아 나도 거식증이나 걸리고싶다 살빼게- 같은 말을 한다. 정말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절대 아닌데. 거식증에 걸리면 식욕이 넘치다 못해 식욕에 지배당한다. 그당시 나는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길거리에서든 하루종일 음식생각, 칼로리생각만 했다. 살고싶은 욕구와 죽고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수십번 부딪혔다. 조리퐁을 뜯어 낱개 하나의 그램수와 칼로리를 계산하고 김치에 묻은 고춧가루 하나, 김한장, 간장 한스푼의 칼로리까지 계산했다. 아무리 아파도 저녁에는 감기약도 먹지않았다. 약도 살찔까봐. 미친년이었다. 그래도 멈출 수가없었다. 나는 숫자로, 수치화된 눈으로 확인가능한 통제를 해야만했다. 내의지로 내 행동으로 조작하면 내몸이 정확히 반응했다. 끔찍하게도 기뻤다. 그리고 죽고싶었다. 음식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머리에 안들어오고 성적은 바닥을 치고 생리는 6개월 넘게 끊기고 머리털은 빠지고 반대로 온몸에 솜털은 돋아나고 엉덩이뼈가 배겨서 똑바로 누워자지도 못하고 골반뼈가 가방에 쓸려 반창고를 덧대고 다녀야했다. 길을 지나다니면 "어머 저 여자봐 징그러워" 하는 소리와 혐오스러운 시선들을 마주치면서 나는 미친년답게 "아 나를 봐주고 있어. 나는 살아있어" 하고 나의 존재를 확인받았고 그런 찰나의 관심에 희열을 느끼다가 그 순간이 지나면 누구라도 붙잡고 나 좀 멈춰 달라고 죽여달라도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자존감이 끝도 없이 내려가고 공허해졌다. 결국엔 엄마 앞에서 무릎꿇고 나 정신병원 에 좀 데려달라고 빌어서 동네 병원에 가게 됐고 그 동네병원의 나이많은 의사는 내 상태를 보더니 여기서는 고칠 수 가 없다며, 진단서를 써줄테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렇게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은지 며칠만에 나는 입원을 하게 됐다. 혹시 이래도 다이어트를 위해 거식증에 걸리고싶은가? 거식증이 단순히 살빼고싶어서 다이어트하다 생긴 멍청하고 우스운병같은가? 정신질환에 관한 사람들의 무지는 무섭다. 아, 나도 격리되어야하는가. 나도 위험한 사람인가.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 역시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다고 생각했다. 약을 안먹어도 일주일이면 낫는다는 감기에 비유를 하다니 . 그러니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시간 지나면 다 낫는 감기같은 것에 나약하게 징징댄다고 모욕당하는 기분이 든다.
현재는 거식증 증상은 전혀 없다. 어느정도 몸매에 대한 강박은 있지만 일상에 불편을 겪을 정도는 아니고 내 또래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대해 흔히 가지는 예민함정도다. 심신을 이 정도로 되돌리기까지 정말 많이 고통스러웠고 힘겨웠는데 20대 초중반 한창 빛나고건강하고 예쁠 시절을 정신병원과 함께하면서 언젠가는 이런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이해 받을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소망을 10년 넘게 가지고 있었다. 이제 이쯤이면 풀어내도 되지 않을까. 혹시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뭐냐고 누군가는 물을 지도 모르겠다. 너를 불쌍하게 봐주길 바라냐고. 아니다 절대 불쌍하게 보지 말고 똑바로 알아주길 바라고 쓴다. 똑바로 보라고. 당신 바로옆에, 당신 주위에 아픈 채로 방치당해 죽어가는사람이 있으니까 함부로 얘기하지말라고. 그리고 함께 태어난 이상 우린 서로 이해하고 이해 받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