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라고 쓰고 점심이라고 읽는다
아침이라고 쓰고, 점심이라고 읽는 아침도 아닌 점심도 아닌 주말의 아침 집밥입니다. 정신없이 회사로 달려가는 평일의 아침보다는 훨씬, 푸짐하고 손도 많이 쓰는 주말의 식탁. 그 중에서도 한 그릇으로 즐긴 메뉴들이에요.
집에 커리 귀신이 있는데, 이 커리 귀신이 또 닭고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고객 맞춤으로 치킨을 오레가노와 커리, 마늘 등에 재워서 굽고 커리 가루로 밥을 지어 덮밥으로 만들었습니다. 덮밥은 또 한 그릇에 먹는 맛이니까요, 샐러드도 함께 요거트 드레싱을 휘휘 뿌려 푸짐하게 담았습니다. 아마도 남편은 결혼을 잘한 것 같습니다. 한 그릇 안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3가지를 모두 차려주는 아내가 있으니까요.
햄버거 패티를 만들 때 함박 스테이크로도 즐기려고, 미리 떼어놓았던 패티가 있습니다. 이런 비상용 식량은 잊고 있을 때쯤, 냉동실에서 발견되면 어찌나 고마운지요. 패티는 한 종류로 똑같이 만들어도 좋고, 함박 스케이크용에는 약간의 채소를 더해 주어도 좋습니다. 함박 스테이크에는 숙주가 금상첨화입니다. 적당히 아삭아삭함을 가진, 아직 숨을 거두지 않은 숙주여야합니다. 캬라멜 라이징 된 양파에 위에 소스를 더한 후 지글지글한 롯지 팬 위에 부어주면, 이곳이 바로 함박스테이크 맛집입니다.
차리고도 별 것 없는, 안심을 곁들인 볶음밥입니다. 냉동실에 안심 5조각이 남아있어 자칫하면 심심해보일 수 있는 볶음밥 위에 인심을 쓰듯 5조각을 몰아주었습니다. 네, 저는 그냥 볶음밥이고요. 반찬 없는 날의 밥상에도 늘 비주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직업병 아닌 직업병이 아닐까 싶습니다. 계란 볶음밥에 피쉬소스를 넣어주면 동남아의 맛을 느낄 수 있고, 파인애플도 살짝 넣어주면 베트남 음식점에서 먹는 그 볶음밥의 맛을 간단하게 흉내낼 수 있습니다.
파스타도 한 그릇으로 끝내면서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메뉴입니다. 봉골레를 하려고 바지락을 사는데, 어찌나 바지락 크기가 크던지요. 자잘자잘한 맛은 애초에 찾아 볼 수 없을만큼 최근까지의 바지락은 정말이지 크기가 컸습니다. 봉골레가 아니더라도 홍합 스튜 등 조개 요리에 자주 쓰기 때문에 저렴한 화이트 와인 또는 먹다 남은 와인은 집에 구비되어 있으면 좋습니다. 봉골레를 할 때, 처음에 올리브 오일에 마늘과 페퍼로치노를 볶아 주는데, 이 때 파슬리 줄기도 버리지 마시고 함께 넣어서 볶아주세요. 향을 조금 더 다채롭게 합니다. 제가 정통 이탈리안 요리 학원에서 봉골레를 배울 때는 조개 껍질을 모두 발라서 껍질은 버리고, 조개살과 육수만 사용했었습니다만, 오늘은 유독 조개는 뜨겁고 손은 귀찮은 날이네요. 실한 바지락과 면을 한 그릇에 모두 담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맨질맨질 오일이 입술에 흥건히 묻었네요. 정신없이 잘 먹었다는 증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