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진과 유진> 이금이
23년 12월 15일 금요일 열두 번째 모임
첫 번째 성장소설 <유진과 유진> 이금이 지음
서로의 근황을 간단하게 나눴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는 몇 박 며칠 이어질 수 있지만, 책 이야기로 갈음했다.
먼저 책 표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개정판은 나무 일러스트가 사라졌지만 구판에는 책 표지에 나무 두 그루가 있다. 딱 보아도 건강한 나무는 큰 유진이고 굽은 나무는 작은 유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단락마다 누가 화자인가에 따라서 해당되는 나무가 그려져 있다는 것도 알았다. 소소한 발견에 모두가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금이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개정판에 실린 작가의 글에서 작가가 사실을 고백하는 부분이 나온다. 나는 구판을 가지고 있어서 몰랐던 사실이었다. <유진과 유진>은 실제 자신의 딸아이가 겪은 일이라고 했다. 딸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써도 된다고 했고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실제로 이금이 작가가 남편과 나서서 범인을 잡았다고 했다. 몰입이 잘 되었던 이유를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경험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속이 썩어 문드러졌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늠되어 마음이 더 쓰라렸던 것 같다.
각자 경험과 책에 대한 총평을 나누었다.
A :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 초 3 때 그분의 건물에 세 들어 있었다. 학교 다녀오면 이리 와- 해서 무릎에 앉혔다. 동네 여자애들만 골라 무릎에 앉히고 뽀뽀하라고 시켰던 기억이 있다. 어떤 어른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방관했다. 20대를 지나서 결혼하고 큰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그 아저씨가 집에 놀러 왔는데 임신한 내 엉덩이를 팡팡 두드렸다. 신고해 신고! 그 순간 다 쏟아냈다.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난리 쳐서 일단 보내고 엄마아빠와 옛날이야기를 했다. 전화해서 확인을 하고 다 큰 내 딸 엉덩이 두드린 것 사과해라, 해서 사과를 받아냈다. 그래서 더 몰입해서 읽었고 끝을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B : 고등학교 때 공사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보았던 바바리맨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면서 속독을 했다. 우리가 아이를 다 처음 키우는 입장이고, 이 책을 보면 아이가 겪게 될 작고 수많은 일 중에서 어떻게 치유를 해줘야 하는지를 공부할 수 있었다. 내가 겪어야 할 내 상처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C : 내 얘기를 잘하지 못하는 타입이라 늘 꽁꽁 숨겨두는 편이다. 부모님께도 마찬가지인데 너무 감사한 거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엄마가 끝까지 나를 믿어준 것이다. 비행 청소년은 아니었지만 같이 어울려 다녀도 보고 했는데 나를 꾸짖지 않고 믿어준 것. 엄마로 인해서 교회로 나갔고 다시 내 안에 있는 걸 토해내니 치유가 된다. 이 모임도 너무 좋다.
D : 작은 유진 엄마가 변하고 있구나 했다. 작은 유진 엄마가 작은 유진을 목욕시켜주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E가 가계를 위해 이사를 강행한 일. 엄마 아빠를 위해서 내가 강행한 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게 엄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실 엄마도 아이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사건 자체를 지우고 싶은 것이다. 작가는 작은 유진 엄마를 변호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작은 유진이 되게 모범적인데 나랑 비슷했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잘하려고 했는데 칭찬을 많이 듣진 못했다. 작은 유진이 일탈을 하는데 지나고 보니까 내가 삐끗했다면 저랬었을 것 같다, 큰일이 있었다면 나도 저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엄청 들었다. 엄마랑 항상 이야기하는 말이, 공부는 내가 노력해서 잘한 것인데 공부 쪽으로 잘 되지 않았던 이유가 내 끼가 있어서 못했다는 것이다. '너무너무 타락하고 싶어'라는 말에 너무나 공감했다. 나는 내가 가난한 걸 부모님이 티 내고 살았고, 남편은 부모가 티를 내지 않고 살아서 남편은 부끄러운 것도 없고 자존감 높게, 너무 해맑게 잘 자랐다. 호텔에서 작은 유진 엄마가 풀어내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전체적으로 부모의 입장보다는 작은 유진의 입장이 나 자신이 너무 투영이 돼서 읽었다.
E : 듣고 보니 나 또한 작은 유진처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다. 학교 행사에서 춤을 추기 위해 야자시간을 뺐고, 친구 전교 임원 선거 유세를 돕기 위해 '두치와 뿌꾸' 같은 노래에 코믹댄스 안무를 짜던 그 시간이 일종의 반항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작은 유진이 음악에 몸을 맡기는 장면은 뼈저리게 공감되었다. 공부가 아닌 다른 것으로 자꾸 나를 밀어 넣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115 페이지에 '그렇게 된 것이 단지 핸드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핸드폰을 갖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이해받았기 때문에 내게도 아빠 엄마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뜻이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폭넓고 깊이 있는 거겠지만 난 아직 자라고 있는 아이다. 당연히 어른이 먼저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라는 아이들은 그런 어른의 모습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다.'를 보며 부모 혹은 어른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봤다. 어른이 먼저 폭넓게 수용하며 기다려주면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배우며 천천히 자라는 거라고 믿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우리들은 '유진'과 '유진'에 몰입하다가 부모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고, 각자의 학창 시절에서 '유진'의 모습을 찾아내다가도 어느새 어른이 되어 이 사회를 저울질하기도 했다. 서로에게 들려준 이야기 조각들은 마음에 세워진 투명한 얼음벽을 조금씩 녹게 했다. 그리고 몸만 훌쩍 커버린 어른 아이가 되는 경험은 어릴 적 스스로를 보듬는 위로의 시간이 되었다.
다음 책은 <아몬드> (손원평)으로 정하고 모임을 해산했다.
책 표지에 그려진 나무 한 그루가 굽었을지언정 두 나무는 키가 비슷하게 자랐다는 것도 글을 쓰다보니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나도 아직 자라는 중이다.
+ 나는 아가가 어려 외출이 힘들었기에 줌 ZOOM으로 참여했던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