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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Jun 20. 2022

식민지 근대화론의 추종자, 자발적 노예들의 사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배라는 오랜 억압과 소외의 공간에서 식민주의자들의 논리를 자발적으로 수용했던 정신적 노예들을 척결하지 못한 과제가 사회 곳곳에서 생채기를 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들과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피해배상 요구를 물리친 법원의 판결이 그 단적인 증좌다. 제국주의자들의 약탈적 성격을 외면하고 다만 저들에 의해 근대화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왜곡하면서 위안부나 강제징용의 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외면하는 주장들까지 학문과 표현의 자유라면서 용인한 탓에 이제 법원에 기생하고 있는 제국의 노예들이 사법적 준동을 부려도 속수무책이 되었다.


파농(Frantz Fanon.1925-1961)은 탈식민화를 ‘새로운 인간의 창조’로 규정한다. 그동안 식민화되었던 ‘사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 탈바꿈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첫 저서,『검은 피부, 하얀 가면』(1952년)에서 파농이 주장하는 가장 큰 논점은 식민지인들이 겪는 열등의식과 그에 따른 정신분열 현상이다. 유럽인들은 식민지인들에게 유럽식 교육을 강요하였고, 그 결과 식민지의 어린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자신을 백인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식민지인이 유럽 본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흑인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이때부터 식민지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유럽인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과의 괴리 속에서 정신분열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자신들의 주체성이나 정체성이 타자의 시각 속에서 분해되면서, 자신들마저도 스스로를 타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소외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식민지의 젊은 혼혈여성은 백인과 결혼하여 백인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집념에 빠져들게 된다. 파농은 이렇게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그의 열등 콤플렉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한 인종의 우월성을 선언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친일파의 후예들이 그런 무의식을 부지불식간에 내장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식민경험은 그것이 공식적으로 종결된 후에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 여전히 살아있으며 앞으로도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 심리적 경험이라는 문제의식이 탈식민주의 담론의 출발이다. 식민주의는 결국 타문화 출신 종족에 의한 지배이며, 여기에는 항상 (식민지 모국인)자신의 문화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이 근거로 놓여 있었다. 그것을 비판적으로 읽어내지 못하는 노예들- 친일파의 후예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채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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