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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Jun 20. 2022

소설에 대하여

최은미 소설「울고 간다」와「창 너머 겨울」에서 서술자의 위치

         

   최은미 소설 「울고 간다」는 소멸에 관한 이야기군요. 암에 걸려서 (영희의) 엄마가 죽고 그 전엔 아비가 죽었고, 엄마 친구 미순도 목을 맸고, 쉬는 날도 없이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은색 가건물에서 열쇠만 지키고 있던 노인도 죽고, 철수도 떠나가는군요.     

   소설의 초점인물인 ‘영희’는 방을 비워주고 어디론가 이사를 가야하고요. 그런데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냉장롱’이라 부르던, 엄마 임모 씨의 혼수품이자 그녀의 유골을 담아 둔 영업용 냉장고 안으로 (영희의 옷가지와 책, 화장품, 그릇, 각종 서류, 그리고 임모 씨가 들어있는) 들어가는군요.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했던 옛 노래처럼, 영희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죽거나 떠나가는 것을 소설 밖 서술자가 이야기하는 구조지요.     

   소설을 창작할 때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이야기 대상으로서의 누구의 문제가 있고요(누구의 이야기인가), 다른 하나는 그 이야기를 전달할 주체로서의 누구의 문제(누가 이야기하게 할 것인가)가 있겠지요. 소설의 대상은 인간의 삶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소설을 쓰기에 앞서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누구로 하여금 전달(말)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 두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서술자의 위치란 누가(서술자) 서술의 대상인 그 누구(인물)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지요.      

   최은미 소설「울고 간다」에서는 소설 내 초점 인물 영희를, 소설 바깥에 위치한 전지적 인물(작가)이 바라보면서 독자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전달(말)하고 있어요.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이죠. 최은미의 다른 소설인 「창 너머 겨울」에서는 소설 내 인물인 ‘나’(내)가 자신과 관련된 인물들(사촌 규와 사촌 형수와 자살한 아버지와 직장동료인 그녀-창 팀장 등)에 관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말)하고 있어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서술이죠. 이 소설은 입술만 축여도 죽는다는 전설의 제초제 ‘그라목손’을 한 모금 마시고 자살한 나의 아버지로부터 옮겼을 지독한 사타구니 가려움증을 앓고 있는 인물의 이야기네요.     

   도입부의 사촌 형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깨어지고, 그런 느낌이 직장동료 그녀(창팀장)에게 이동하는 듯 하지만 평창과 무주 사이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 끝에 나는 그녀를 곤란한 상황에 빠트려요. 그런데 나는 또 사타구니의 가려움증을 치료한답시고 욕조 가득 락스를 풀어놓는군요. 다시 서술자의 문제로 돌아가 보죠.     

   소설 텍스트가 그 외부와 관계 맺는 층위는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작가-현실의 반영-독자 등으로 나눌 수 있지요. 다른 하나는 텍스트(소설 작품) 내부의 여러 요소들(인물, 공간, 시간, 사건 등)과의 관계고요. 그런데 텍스트 내부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과 서술자의 거리(위치 및 관계)라 하겠지요. 소설이 어느 인물의 삶의 모습이고,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중개(말해지는 것)되는 것인 한 소설은 인물과 서술자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는 다시 서술자의 인물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 할 것인데, 서술자가 인물의 의식 및 행동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보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하나 있고요, 다른 하나는 서술자가 인물에 대해 어떤 감정과 태도를 취하느냐의 문제로 나누어 살필 수 있어요.     

   최은미 소설「울고 간다」에서 전지적 서술자가 초점 인물 ‘영희’를 바라보는 시선은 중립적인 듯 보여요. 이 소설에서 초점화자 ‘영희’는 그녀와 관계 맺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다소 아련한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고요. 소멸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어요. 「창 너머 겨울」에서의 서술자는 ‘나’인데, 특히 사촌인 ‘규’에게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규의 아내이자 자신의 사촌 형수에게는 긍정적인 시각에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변화하고요. 직장 동료인 그녀-창 팀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처음 사촌 형수를 바라보는 것처럼 애틋하더니 나중엔 그녀를 곤란에 빠트리는 모양새고요.     

   서술 주체인 서술자와 서술의 객체인 소설 내 인물의 관계에서 서술자가 인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인물의 성격과 종류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서술자가 인물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그 인물은 독자에게도 부정적인 느낌을 주겠지요.       

  「창 너머 겨울」을 읽을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서술자의 시각에서 소설의 인물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규의 아내, ‘나’의 사촌 형수가 그러하지요. 그런데 또 서술자 ‘나’의 직장동료인 그녀의 경우엔 어떤가요? 서술자의 태도가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뀌는 것처럼 독자 역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 않나 싶어요. 이 경우엔 독자가 판단하는 거죠. 「울고 간다」에서는 서술 주체인 전지적 작가가 소설 내 인물인 영희를 어떠한 태도로 바라보나요? 일종의 연민의 태도겠지요. 서술자가 인물을 긍정 혹은 중립의 태도로 바라볼 때 가능한 일이겠지요. 독자는 그러한 흐름 속에서 업소용 냉장고 안에 죽은 어미의 유해까지 보관해 놓고 종국엔 스스로 그 안으로 몸을 구부려 넣는 그녀에게 연민의 태도-감정을 갖게 되지요.      

   이처럼 서술자가 인물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는 소설에서 인물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서술자의 위치는 결국 인물의 창조와 깊은 관련이 있고 그것은 다시 주제의 구현에 가장 적합한 서술 시점이 무엇일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연결되는 문제지요. 1인칭 주인공이거나 관찰자 혹은 3인칭 관찰자나 전지적 시점 어떤 위치로 시작하든 주의할 것은, 특히 단편소설에서는 시점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장을 바꿔서 다른 인물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도 더러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서술 시점의 유지가 중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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