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분, 30-31쪽.
기념재단 부속 연구소의 비상근 객원연구위원이 되어보겠다고 서류를 갖추어 그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연구계획서에 무슨 내용을 담았을까. 어쩌면 그날을 제재로 한 소설들 중에서 역사적 의의를 평가 절하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작품들을 찾아내고, 그런 작품들이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끼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누구에게나 죽음은 하나일 따름이오. 물에 빠져 죽거나 총에 맞아 죽으나 죽음은 매 한가지요. 그런데 얼간이들은 그것에 부질없는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오. 이것이야말로 내가 혐오하는 감상주의자들의 버릇이오.”라는 소설 내 인물의 발화를 빌려 그날의 죽음을 탈역사화하는 소설이 있다. 아무도 문제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석기 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그 소설을 대체로는 읽지 않아서 모르거나, 읽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무감각했거나, 아니라면 문학에는 많은 것을 허용할 수 있으니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날의 그 무참한 죽음들을 물에 빠져 죽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죽음은 매 한가지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무감각하게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죽음을 보았던 자는 죽음의 기억을 평생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나는 그랬을 것이다. 마음도 그러했는지는 자신할 수 없으나.
하긴 누구라도 그 마음이란 게 그리 믿을 바는 되지 못한다. 아마도 한명기 선생의 역작『병자호란』이 아니었나 싶은데, 아무튼 병자호란 관련 글을 읽다가 기억에 남았던 내용 하나는, 피란을 가다가 오랑캐를 만나면 여인들의 경우 필경 겁탈을 당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던 때라, 실제로 그러하였고, 그래서 피란을 가던 사대부 여인들이 불안과 공포의 감각에 내몰려있던 때에 누군가 말하기를, 만약 그 오랑캐 놈들을 만나게 되면 내 스스로 자진하겠노라 선언하듯 다짐을 했다. 그러자 다른 여인네들도 이구동성으로 나도 그러하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서로를 격려한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어느 사대부 여인은 그런 분위기에 동참하지 않아서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피란을 가다가 그만 오랑캐 놈들과 마주하고 만다. 청나라 군병을 만나면 스스로 목숨을 버려 정절을 지키겠노라고 다짐했던 이들은, 물론 어쩔 수 없기는 했겠으나 스스로 죽지는 않았고, 아무런 다짐을 하지 않았던 여인은 치욕을 당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물론 그것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여인들에게 강요한 정절에의 강요, 일종의 윤리적 억압이어서 그런 행위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살아서 치욕을 견뎌야 옳다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판단이 부동의 진리라는 것에 대한 확신 대신 유보적 태도를 갖는 것이 좀 더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봄날의 진눈깨비처럼 마음이 흐렸던 날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