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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Sep 18. 2022

너는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고

-오늘의 기분, 136-139쪽.

 매번 기말고사를 치르고 성적입력을 해야 하는 학기 말 무렵이면 나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학기마다 다르고 수업마다 다르지만 성적입력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성적에 대해 물어오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수업에서 내가 어떤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했는지는 무관한 일이었다. 참을성 없는 아이는 전화로, 대체로는 문자로, 드물게는 메일을 보내왔다. 메일을 보내온 학생의 경우가 그런대로 예의를 갖추어서 성적을 좀 더 잘 받아야 하는 사정을 알려왔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성적을 좀 더 나은 쪽으로 정정해주고 싶은 경우가 없지 않았으나, 그럴 경우 그 아이는 가까운 친구에게도 내게 메일을 보내볼 것을 권유할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더구나 여분을 남기지 않고 성적입력을 마친 탓에 어찌해 볼 도리도 없었다. 나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혹은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애초에 여분을 두지 않고 성적입력을 하는 편이다. 


  사는 것이 힘들고 무서운 건, 내 수업을 들었던 아이들에게서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는 위협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보다는, 실제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나, 어쩌면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예전에 정말 내게 못되게 굴었던 남자아이가 SNS에 메시지를 남겼었다. 한 학기에 2백 명이 넘는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은커녕 이름이나 목소리조차 기억하고 있지 않았으나, 그 아이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동안 군대에 다녀왔다고, 군대에서 교수님 생각을 많이 했다고, 그런데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너무 후회된다고,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온 모양이니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답을 주었으나, 그 아이와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 아이를 차단했다. 미움은 오래 남아 종종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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