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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Sep 20. 2022

먼 곳에서 내가 살아가는 것처럼

-오늘의 기분, 176-177쪽.

나는 가겠다고 생각했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눈앞에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머리를 빡빡 깎고 푸른 수의를 입은 죄수들의 이미지였다. 그들은 타인들을 해친 죄인들일 것이었다. 도둑이거나 강도거나 성폭행을 저질렀거나 사기를 쳤거나, 심지어 사람을 죽인 이들도 있을 것이었다. 그들을 앞에 두고 내가 무슨 인문학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인지, 갑자기 두렵고도 싫었다. 

  교도소 정문에서 용무를 말하고, 교도관의 안내에 따라 육중한 철문과 그보다 작은 여러 개의 쇠창살로 만들어진 문들과, 꺾어지다가 이어진 미로를 지나 어느 교실로 들어갔다.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날의 그 우중충하면서도 서늘한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애초에 그렸던 것처럼, 사실 그런 이미지라는 게 영화 속에 나오는 죄수들의 모습에서 각인된 것일 텐데, 아무튼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정말로 머리를 아주 짧게 깎은 그 상태로, 색 바랜 푸른색 수의를 입은 채 반듯한 자세로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들을 외면한 채 흰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교실 천장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들이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용서 받기 어려운 죄를 지었든, 여러 겹으로 갇혀 있는 상태의 초췌한 모습을 한 이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고 선 느낌이란, 참으로 아득한 것이었다. 그들도 어쩌면 수상하고 불안한, 어떤 나쁜 꿈들의 시간을 지나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 나는 그들의 얼굴을 응시하는 대신 색 바랜 푸른 수의와 짧게 깎은 머리 너머 허공을, 그래봐야 벽이나 천장 정도에 불과했으나 말없이 오래 눈길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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