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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Sep 24. 2022

낯익은 이의 이름을 삭제하며

-오늘의 기분, 247쪽.

 표상하는 존재가 지식인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듣는다. 그것도 경찰관의 입을 통해 듣자니 기분이 고양이 같다. 묘하다는 뜻으로 이수정 경위가 썼던 말이다. 지식인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사회학이 아니라 문학을 가르치는 나도 강의실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주제다. 작가가 지식인인 것은 아니지만, 작가 모두가 지식인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작가는 지식인 이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가, 무엇이 아름답고 추한가에 대한 자신의 언어가 명료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서에서 그런 질문을 받다니 묘한 기분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책『지식인의 표상』에서, 지식인이란 대중을 향해서, 대중을 위해서 하나의 메시지, 관점, 철학, 철학이나 의견을 나타내거나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개인적 존재라고 했다.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겠으나 굳이 이의를 달 건 없다. 

  문제는 우리가, 죽은 이은주나 교양학부 강사나 피종수 교수나 내가 지식인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이겠다. 나는 지금 그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박사학위를 갖고 있고,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학술지에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연구자인 내가 지식인이기는 한 것인가 하는 의문. 자격이 문제가 아니라 표상할 줄 아는 의지나 태도가 문제라고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거짓된 삶 속에 올바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도르노의 말을 삶의 지침으로 삼은 적도 있었으나, 까마득한 것이다. 지식인의 문제 이전에 우리가 사회에서 그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내적 가치인 존엄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존엄이 없으면 인간이라 할 수 없다. 인간도 아닌데 지식인일 것이 없다. 새삼스레 지식인 타령이라니. 한편으론 슬프다. 그렇다면 학생들 앞에서 했던 그 무수한 말들은 자기기만일 것이다. 저널에 발표했던 그 많은 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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