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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Sep 24. 2022

기적 없이 나는 잘 살고 있다

-오늘의 기분, 263-264쪽.

  무엇보다 우리의 삶은 개인이나 사회나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과거에 매몰되어 있는 개인이나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과거의 불행했던 일들을 굳이 기념하고 기억하는 데 사회적 비용을 쏟아 부을 게 아니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그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처를 낫게 하는 방법은 상처 위에 약을 바르는 것이지 그 상처를 자꾸 헤집는 게 아니다. 김재영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는 균형감을 잃은 사람이다. 좋다, 그를 희생양 삼는 데 모두 동의했다면, 내가 정리하지 못할 건 또 뭔가. 그래야 내게 불통이 튀지 않고 이 모든 악몽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 밤늦도록 나는 글을 쓴다. 

  어떤 종류의 삶이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일까에 관해 청탁받은 글은 마감날짜를 며칠 미루기로 한다. 김재영이 읽고 흡족해 할, 그래서 그가 별 다른 저항을 하는 대신 순순히 사인하고 탈 없이 돌아나갈 수 있는 명문을 쓴다. 

  글의 제목은 “책임의식이란 무엇인가”로 정한다. 책임윤리란 무엇인가로 하면 지나치게 추상적인 것 같아서다. 이은주의 죽음에 그가 조금은 연루되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불안정한 신분상태의 지속과 미래에 대한 전망 없음, 누구도 손 내밀어주지 않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 가장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무용하다는 의식과 목소리를 잃어버렸다는 자각증상은 그의 죽음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김재영은 그녀와 동료이면서 선배인 시간강사로서 그가 죽음에 이르도록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방관한 자로서의 그 무책임에 대해, 그 자신이 충분히 느끼고 두고두고 괴로워할 그 무책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명예가 될 것이다. 죽은 이들에 대한 위로와 산 자들의 수치심을 덜어줄 유일한 처방이겠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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