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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Jan 24. 2023

수필에 대하여

-공감와 위안으로서의 글쓰기

 수필이란 무엇인가


수필, 즉 에세이는 특별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글이다. 이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수필의 개념은 사실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시나 소설이나 희곡처럼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무질서하게 써도 되는 글은 아니라는 뜻 정도는 알겠는데, 그 내용이 사람살이와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의 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수필, 즉 에세이는 자기의 생활의 시도이며 음미이다. 이것은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봄으로써 개인적 성과를 제시하는 것이며 사회현상의 음미이며, 더 나아가서 사회 현실을 관찰하고 사회 문제를 논의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문학은 독자에게 감동적인 놀라움을 예비해야 한다. 놀라움이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지만, 마음의 심층에서 우러나오는 탄성일수록 좋을 것이다. 이러한 충격은 감각의 자극과 새로움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서 잠재되어 있는 감각을 일깨워주고 일상적인 인식을 늘 새롭게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수필 역시 문학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수필은 우선 조촐하고 다소곳한 글이다. 또한 수필은 서정시 같은 균형 잡힌 정서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수필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가장 깊은 관계가 있다. 문학이 인생의 표현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인간 생활과 관계없는 문학 장르란 없다. 그러나 수필의 경우 다른 어떤 문학 장르보다 일상의 소소한 것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수필은 나를 표현하는 문학이다. 수필은 무엇보다 자기 고백적인 성격이 가장 강한 글이다. 그래서 수필에는 글쓴이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다만 수필이 나를 드러내는 문학이라고 하지만 결국 나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 일반의 보편적인 문제로 귀결됨을 알아야 한다. 결국 수필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과 경험을 풍부한 사색을 통해 드러내는 ‘개성적인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쓰인 수필은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줄까? 아니 독자는 수필을 읽고 어떤 위안을 얻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참한 운명을 보고 간접 경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이 해소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일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용어는 문학 외의 여러 영역에도 사용된다. 정신 분석에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나 상처를 언어나 행동을 통해 외부로 드러냄으로써 강박 관념을 없애고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 역시 카타르시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렇게 카타르시스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삶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비극을 예로 들면,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드라마의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보다 높은 신분이나 능력이나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남들에게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될 만한 주인공이 운명 혹은 성격의 결함으로 이후 몰락해가는 과정을 다루는 것이 비극의 주요 서사라 할 수 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자로 태어나 코린토스의 왕자로 자라지만 결국 친부살해의 죄를 짓고 두 눈을 잃은 채 그리스를 떠도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관객들은 이 오이디푸스 같은 인물의 생을 보면서 일정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의 감정이 카타르시스이다. 여기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안도감 등이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관객들은 연극이 끝나면 그 상황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안도와 함께 편안한 느낌이 들 때 카타르시스는 완성된다. 이렇듯 허구의 현실로 빠져들어 자신의 현실을 잃어버리는 효과를 동화同化라 부른다. 이 동화의 감정이 주는 가장 큰 효과는 대리 만족이다. 동화의 긍정적 효과는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준다는 데 있다. 시나 소설이나 드라마, 특히 앞에서 언급했던 수필들이 그러한 긍정적 효과를 준다. 복잡한 일상에 찌든 사람들의 영혼을 쉬게 해주고 그들에게 잠시나마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곳이라는 위안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는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위안의 긍정적인 효과가 견디기 힘든 현실에서 잠시 마음을 빼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화同化의 효과를 통해 얻는 위안은 동화가 깨어지는 순간, 곧 각자의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사라져버리기 쉽다는 데 있다. 우리는 현실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정한 성취를 이룬 인물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들의 성공담을 통해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모든 여자가 신데렐라처럼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 말의 의미는 자명하다. 수필의 경우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더욱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위안은 자칫 거짓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부박한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건 거짓이라는 뜻이다.  

    

수필은 그 성격상 추악한 현실을 들추어내거나 철저하게 불행한 인물을 그려내거나 절망적 상황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수필의 독자는 생활에 활기를 되찾을 만한 약간의 자극은 허용하지만 몸 전체를 바짝 긴장시킬만큼 큰 자극은 부담스러워한다. 수필의 장점은 정신적 휴식을 제공해주고 심리적 안정을 제공해 준다는 데 있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수필은 위로가 필요할 때 자신과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수필은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하거나 현실을 견뎌낼 힘을 주기도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수필이 이 시가 갖고 있는 도저한 정신주의의 함정에 빠져기 십상이라는 점에 있다. 대부분의 수필에서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나 부조리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수필의 긍정은 현실을 바꿈으로써 생기는 게 아니라 그런 현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생긴다. 이러한 긍정은 많은 경우 현실 개선의 의지를 꺾거나 사회 구조의 문제를 자기 자신의 (부족함)탓으로 여기게 되는 잘못을 왕왕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필의 매력은 돌아보는 아름다움, 현재의 안정을 전제로 한 아름다움, 따라서 과거가 현재의 위안이 되는 아름다움에 있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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