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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Jul 12. 2023

여전히 성폭력 범죄에 둔감한 사회

-MBC가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조영주 장편소설『붉은 소파』는 15년 전 연쇄 성폭력 피해로 생을 달리 한 딸의 범인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고단한 여정을 서사화하고 있다. 살해된 딸의 기억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진작가 정석주와 그 자신 연쇄 성폭행 살인사건의 생존자인 형사 김나영은 공소시효 소멸 직전의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결국 자기 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해나간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러한 바람을 담은 소설일 뿐이고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해서, 어떤 성폭력 희생자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뇌출혈로 쓰러져 숨진다. 

  2004년, 한 여자 대학원생이 아르바이트로 사극 드라마의 보조출연자 일을 하다 보조출연자 공급업체 반장 12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충격과 경찰 조사과정에서 겪은 스트레스 후유증으로 2009년 8월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세간에는 이를 “단역배우 집단 성폭행 사건”이라고도 한다. 수사 과정에서 조사관이 네 번이나 바뀌었는데, 한 조사관은 그녀가 메모한 증거자료를 스무 번 넘게 책상 위에 후려치면서 “성인이 좋아서 자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어떤 수사관은 종이에 그 남자들의 성기를 그려보라고도 했고, 어떤 수사관은 “이 아가씨가 열두 명이랑 잤다는 사람이야?” 하는 등의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언니에게 보조출연자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던 여동생도 언니의 자살 후 며칠 안 돼 잇달아 목숨을 끊었고, 그의 아버지는 충격에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다. 사망 당시 언니는 34세, 동생은 30세였다. 희생자들의 어머니 주장에 따르면, 재판과정에서 집에 불을 지르고 가족들을 살해 할 수도 있다는 가해자들의 온갖 협박에 못 이겨 결국 고소를 취하하게 된다. 이후 희생자들의 어머니는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때로부터 약 9년 6개월, 자살한 때로부터 4년 6개월이 지나 제기한 것으로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다. 

  문제는 가해자들로 지목된 이들의 대다수가 지금도 여전히 방송사의 외주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하청업체에서 단역배우 공급반장 일을 하고 있고, 그들은 아무런 단죄를 받지 않았다는 데 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는 풍비박산 난 한 가정의 남은 가족(희생자의 어머니 밖에 없다.)의 피눈물 섞인 호소를 외면하고 있다. 암 투병 중이라는 희생자의 어머니를 향해 일부 가해자들은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면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는 등 끊임없는 괴롭힘이 지속되고 있다. 그들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처벌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당연한 일이긴 하나, 반인륜적이거나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에게는 특별법을 만들어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처벌하거나 보상하면서, 저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에 대해서 그것은 개인적 피해요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오불관언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노릇이다. 국가의 책무를 방기한 것이다. 뿐더러 저와 같은 성폭력 범죄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과 하등 다름이 없다. 

  사건이 발생했던 때는 지금처럼 성폭력 범죄에 대한 비난과 단죄가 현저하게 공론화되지 못하던 때다. 소급입법을 헌법에서 허용하지 않고 공소시효가 지난 범죄는 수사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면, 최소한 저들의 범죄가 가능했던 드라마의 외주와 단역배우들의 공급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는 착취 시스템이라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무책임과 방관이 성폭력에 둔감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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