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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4. 알파마를 걸어봅니다

관람객 거의 없는 조용한 수도원을 천천히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니 아 맞다 여기 외국이지 라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여전히 머릿속은 뿌옇고 정신은 반쯤 나갔고 여기가 어딘지 지금이 몇신지에 대한 감각도 후두둑 떨어져 있는 상태. 







언덕 찻길을 좌악좍, 그리고 파란 하늘을 샤악샥 가르고 있는 트램 철길과 전기선.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라 자꾸만 사진을 찍게 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28번 나무 트램 도착. 요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차암 이쁘게 생겼음. 리스본 관광수익에 아주 매우 대단히 큰 일조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포르투갈 어쩌고 리스본 어쩌고 하는 사진이며 영상에 어지간해선 빠지지 않는 주인공이에요. 트램 모양을 한 기념품도 무지 많구요.









자본주의 사회인지라 트램 외부엔 이렇게 광고가 챡 붙어 있습니다. 사실 요 광고만 없어도 관광 상품으론 훨씬 가치가 있것지만(멀리 바라보는 눈)... 하여간 그렇게 승객을 타라락탁 태우고 제 눈 앞을 쌩하니 도도하게 달려가는 트램









...은 얼마 못가서 교통 체증에 딱 걸림









뭐야 뭐야 뭔데 뭔데 웅성웅성









그 와중에 반대편에서 드르륵득득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트램. 기사님들끼리 서로 훗 하며 간단한 인사를 나눕니다. 아아 이것은 우리동네 마을버스 기사님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조금 전의 트램을 탔다면 리스본 시내 중심가로 후딱 돌아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이 곳에서 아아무 생각없이 걷는게 더 알짜일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듭니다. 

파아란 하늘과 요 맛있게 생긴 노란색 집, 그리고 낡은 초록색 타일. 하이고 이거는 일부러 이렇게 하래도 못하것다. 오오오랜 시간이 빚어낸 조화로운 모습.









땡땡이 카트를 드륵드륵 끌고 언덕길을 내려가시는 스트라이프 어멋님.









리스본 대성당이니, 아까 들렀던 수도원이니 등등 근사한 장소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아아무 생각없이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만 그렇것습니까, 이 골목 저 골목을 들며 나며 아 좋다 좋아 하고 있는 여행자들을 계속 마주치게 되는 곳. 









말씀드리는 순간 쩌어기 언덕 위쪽에서 다시 노오란 나무 트램이 드르륵대며 내려오고









눈 앞을 드륵드륵 스쳐 지나갑니다.









창가에 앉은 사람들 아주 그냥 신나서 입이 찢어짐. 이른 아침과 늦은 밤을 빼고는 항상 붐비는 28번 나무 트램. 아름다운 바깥 풍경에 정신을 살짝 놓으면 가방과 주머니를 털릴 수도 있으니 조심 또 조심. 

실제로 여행 중 딱 봐도 나는 한국인이에요를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여성분이(세인트제임스 스트라이프 티셔츠 + 스키니바지 + 슬립온 + 에코백. 참고로 뿔테안경 + 스냅백 + 학교잠바의 나는 한국인이에요 남성버전도 있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개를 돌려 뒷모습을 바라보게 만드는 트램의 마력.









살랑살랑 바람에 날리는 빨래, 혹시 저거 계획된 오브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골목과 잘 어울립니다. 이후에 만난 포르투갈 총각과 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분 왈, 아니야 단지 집에 건조기가 없을 뿐이야 라고. 그 그래-.-









아무렴 어떻것습니까. 어우 뭐야아아아 여기 이쁘잖아아아 하며 입을 헤 벌리고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는 곳인걸요.









한편으론, 이 지역에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매일 보는 이 풍경이 언제나 아름답고 새로울까, 무덤덤해지지는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거주하기 쾌적할까. 

뜨내기 여행자의 눈에는 그냥 마냥 예쁠 뿐이니 언제까지나 이 모습 그대로이길 바라지만 실 거주자는 쾌적하고 편리한 생활을 더 원하지 않을까요. 발전과 보존, 그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나갈 것인가.









글로벌 체인 대신 가급적 그 지역 사람들이 운영하는 숙소, 식당, 까페, 바, 상점 등을 이용하는 것이 균형 잡기의 한가지 방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부터도 여행 중 스타벅스 이용 횟수를 줄여야겠어요. 어흑...









그윽한 눈빛의 소색깔 멍멍이. 그러고 보니 스페인에선 타일 장식은 옛 궁전이라던가 오래 된 성당 등 유적에서 주로 만날 수 있었는데 포르투갈의 아줄레주는 걍 생활의 일부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딱 봐도 오래 되었구나 싶은 아줄레주, 아 요건 공장 대량생산이네 싶은 아줄레주가 뒤섞여 재미난 분위기를 폴폴 풍깁니다.









그니깐 아줄레주라는게 걍 현재 진행형 건축 자재여. 말씀드리는 순간 홀로 스피닝중이신 아벗님... 인줄 알았는데 하핫 자전거 바퀴에 숫돌을 연결해 칼을 갈고 계시는 그분이셔요.








어디보자 다됐다 닭잡고 소잡자 








이곳 알파마alfama 지역은 리스본 시내에서도 드물게 무어인 지배시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이게 뭔 말이냐 하면, 북아프리카의 무어인들은 8세기에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해 꽤 오랫동안 지배했거든요. 도로라던가 집 등등 마을의 기초를 그 시절에 챡챡 세워 놓았습니다. 









근데 마아아않은 시간이 흘러흘러 무어인들이 본토로 쫓겨나고 이베리아 반도가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으로 나뉘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두둥! 1755년 리스본에 대지진이 일어나 도시 대부분이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 그러니까 알파마 지역만 거의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니 딱히 재건이 필요하지 않았것쥬. 그래서 무어인 지배 시절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랍니다. 









하여간 고렇게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보니 차 한잔을 하더라도 굳이~ 컴컴한 식당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것스야. 에지간하면 밖에 앉아줘야죠. 기미 주근깨가 매우 신경쓰이긴 하지만ㅋ 아오 몰라ㅋ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왔다갔다 오르락 내리락 하며 걷는 중. 이 나라의 요 오돌토돌 돌바닥은 사진발에 무척 강하지만 호호 무릎과 골반뼈에 에밀레종 같은 뎅뎅뎅 진동이 울린다는 문제가 있으니 반드시! 꼭!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하것습니다 and 이거 꽤 미끄러움. 비 오고 눈 오면 ㄷㄷㄷㄷ









거리 이름 표지판도 이뻥... 우리나라로 치면 죽전대로 테헤란로 표지판 사진 찍으며 이뻥이뻥 하는 거겠지만 껄껄 아무렴 어떻것습니까 여행 1일차 눈에는 모든게 다 이쁩니다.









계속 쭉 걸어갑니다. 그래 유도 좋지.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지역인 만큼 식당과 까페, 바, 기념품 상점이 곳곳에 쏙쏙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디보자 술이랑 레모네이드랑 주스랑 와이파이랑... 와이파이 맛있겠다... 









식당 바깥 벽에 붙여 놓은 오늘의 메뉴 안내판. 프라토스 두 디아pratos do dia 라는건 그러니까 오늘의 메뉴인 셈인데, 메뉴판에서 요것조것 조합해 주문할 수도 있고 요걸로 주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 집은 메인 요리에 하우스 와인이나 물, 맥주, 주스 중 한가지에 빵 끼워주고 수프랑 디저트 중 택일인 모양이고~ 밥 다 먹고 나면 커피 한잔 해갖고 6.5유로인 모양이구만요. 많은 식당들이 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요.









한편 이 집은 생선구이 백반 전문인듯, 사진 메뉴와 글 메뉴에 온통 생선 생선 생선이 가득합니다. 염장대구 바깔라우bacalhau, 정어리sardinha, 농어robalo 등을 구워 준다는cozido 얘기여. 포르투갈어 한개도 모르는데 먹는거 관련해서만 뭔 말인지 대충 이해하는 1인이옵니다. 얼마나 먹고 댕겼길래 그렇게 된 것인가.









그렇게 위성 안테나 접시들 가득한, 집 간격이 아주 좁은... 라기 보다 간격이라는게 있긴 있나 싶은 알파마 골목을 되는 대로 들며나며 걷다가









인간적으로 좀 힘든데? 하며 적당한 까페에 들어가 오렌지 주스를 한잔 쫙 마십니다. 주문하면 꽉꽉 눌러 짜 주는 요런 주스 한 잔에 2유로여. 오렌지 주스는 쑤무 드 라란자sumo de laranja 라고 하는데, 쑤무(쑤움~)sumo가 주스고 라란자laranja는 오렌지여. 잠깐 쉬며 와이파이로 여기가 어딘지 지도 검색을 해 봅니다.









다시 밖으로. 뭘 금지하는 것일까요.









좀전에 까페에서 현재 위치를 대충 파악했으니 이번엔 목적지를 콕 찍어놓고 걸어보기로 합니다. 제가 또 어마어마한 방향치 아니겠습니까. 가이드북의 지도라던가 여행 안내소에서 나눠주는 지도 따위 저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었는데 어흑흑 이번 여행에선 핸드폰의 구글지도 어플 도움을 어마어마하게 받았습니다. 









이렇게요. 마 이래 가다가 70메다 앞에서 마 좌회전하면 마 된다는거 아입니까. 재작년 모로코 여행중엔 요 어플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해 아쉬웠는데(함께 여행한 친구의 아이폰은 제대로 됐는데 갤럭시는 말을 듣지 않았음) 2년 사이 뭐가 엄청 좋아졌구먼. 









사람 일은 모른다며 수집한 여행 정보 프린트한것 한뭉텡이를 챙기고, 같은 정보를 핸드폰에 저장해 2중으로 들고 왔는데 아무래도 핸드폰이 만만하고 편하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는 주로 화면을 들여다 보며 도움을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여행은 가방이 좀더 가벼워질 수도 있겠다 라는 희망이 생깁니다요.









물론 충전기를 잘 챙겨야겠지만요. 실제로 며칠 후 까페에서 노트 정리를 하고 있는데 웬 여행자 청년이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혹시 아이폰 충전기 있니 나좀 빌려주면 안될까 하는 것을 보았... 미 미안 누나는 갤력시란다...









계획된 오브제 같은 빨래들









오른쪽 빨래는... 음...









포르투갈의 여러 상징물 중 하나인 제비. 정어리, 닭, 제비, 트램, 아줄레주 등 아하 포르투갈 사람들 이거 좋아하는구나 라는 것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등장한 이 기념품 가게만 해도 정어리 냉장고 자석 아줄레주 냉장고 자석 등등이 요래 빼곡하구먼.









와르르 모아놓고 보면 예쁜데 하나만 고르라면 어... 하고 잠시 멈칫하게 되는 냉장고 자석들. 마치 까사미아 매장에 들어가서 와 다 이쁘다 하다가 하나만 사려면 뭔가 쫌 애매해지는 고런 느낌. 역시 요런건 딱 요대로, 한판 통채로 들고 튀어야 하나봐요.









냉장고 자석 옆엔 물론 엽서도 이만큼.








그렇게 핸드폰 GPS를 흘끔흘끔 보며 다음 목적지로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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