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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6. 굿모닝 아침시장

2015년 4월 22일 수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오 전날엔 두세시간밖에 못잔 관계로 오늘은 진!짜 뻗어 자겠구나 생각했는데 호호 여전히 시차에 사로잡힌 40세 여인은 너댓시간만에 다시 눈을 번쩍 뜨고 말았습니다. 아 이거 매우 곤란혀... 기본 여덟시간은 자야 하는 것인데...








뭐 어쩌것습니까. 이미 일어나 버린 것을... 바깥 분위기를 보아하니 허허 오늘도 쨍하겠구나









모닝 쌩공복에 면세점에서 산 정관장 찐득이를 한스푼 냅다 처넣고 물을 꿀꺽꿀꺽 마셔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다가 홍삼 먹고 딱히 어디가 어떻게 좋더라 라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는데 그래도 왠지 여행중에는 홍삼발이 필요할것만 같구만요. 민간신앙 홍삼교 신도...









어제 H&M에서 만오천원 주고 산 탑에 양재역 구제샵 만오천원 청카바를 입은 삼만원패션 여인. 양재역 구제샵이라는 것은 그니까 역 지하 3호선이랑 신분당선이 만나는 지점에 딱 있는 쬐깐한 옷집인데 뭐가 대단한게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어라? 싶은게 있어서 지하철 갈아탈때면 한번씩 들르는구만요... 라고 열심히 썼는데 나중에 가보니 그집 없어졌더라 하면 얼마나 허무할까 









우얏든동 숙소 주인아저씨가 맛있다고 추천해준 동네 빵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갑니다. 근데 호호 어찌나 예상대로 움직이는 1인인지 바로 요 근처랬는데 칼같이 방향감각을 잃었네? 

그리하여 에이 썅 나 안해를 부르짖으며 걍 눈앞에 보이는 빵집에 들어왔어요. 어제 여권찾아 삼만리 하기 전에 먹었던 것과 같은 메뉴, 빵 꼼 만테이가pao com manteiga와 비까bica를 주문했습니다. 어제 먹은건 뭔 맛인지 기억도 안나는 관계로 다시 야곰야곰 야물딱지게 먹어보려구요. 

버터manteiga를 바른 빵에 에스프레소보다 야악간 더 찐한(기분탓인가 진짜인가) 커피인 비까bica. 요 빵이 어찌나 맛있는지 어이구야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커피가 0.65유로, 빵이 0.9유로, 둘이 합쳐 1.55유로.









빵pao 하면 보통 아무것도 안넣은 걍 맨빵을 뜻하는데, 그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공기밥 아니겠습니까. 그 옛날 13세기엔 세금 조로 빵을 징수하기도 했다고. 

이게 뭔 말이냐면 서민들에게 야 돈내놔 하며 세금을 걷으러 와 보니 허허 집에 현금들이 없네 다들? 그럼 너네가 생산한걸로 대신 지불해 빵 와인 고기 우유 계란 이런거 다 받을거야 라고 한 것이죠. 그중에서도 빵은 항상 인기 1순위였다고 합니다. 고기를 이기다니 그럴 수가 있나 싶지만 당시 빵의 위상이 그정도였던 모양.









맛있게 먹고 지하철 까이스 두 소드레cais do sodre역으로 이동합니다. 리스본 지하철 로고는 저렇게 생겼스야. 









까이스 두 소드레 역은 지하철 베르데verde 선의 종점이자 꽤 많은 트램 노선의 종점이기도 해 사람이 버글버글합니다. 뿐만 아니라 요 근처에 기차역도 있고 페리 터미널도 있으니 엄청 중요한 교통의 요지인 것이죠. 여긴 역 바로 앞의 트램 정류장.








아스팔트에 쫘악 매끈하게 깔린 트램 철로와 머리 위의 전기선.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라 볼때마다 신기하고 재미납니다. 하여간 그래서 여길 왜 왔느냐 하면









쩌어기 길 건너 하얀 건물에 가려고 왔스요. 살살 길을 건너봅니다.









반들반들 오돌도돌 돌바닥을 걸어









건물 입구로 쏘옥. 메르까도 다 히베이라mercado da ribeira 라고 바닥에 빙 둘러 쓰여 있습니다. 메르까도는 시장, 히베이라는 해변 또는 강변을 뜻하는데 여긴 떼주 강rio tejo 앞이니 강변시장쯤 되것네요. 자자 안으로 들어가 보자!









조명이 주렁주렁









테이블이 와다다다. 무척 넓찍한 공간 가운데 요런 테이블과 의자가 챡챡 배치되어 있고, 벽쪽으로는 포르투갈 음식, 피자, 치즈와 와인, 빵집, 까페 등 먹을것을 파는 가게들이 좌라락 입점되어 있습니다. 아니 시장이라더니 뭐죠 이 푸드코트 같은 분위기는









신선식품 해물 정육점 유제품 담배가게 등은 저쪽이에용 라고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길래 그 그래? 하며 그쪽으로 가 봅니다.









그렇구나, 요쪽이 시장이구나. 조금 전의 푸드코트틱한 공간에 비해서는 좁은 편인데 손님이 도에 지나치게 없어 휑하고 넓게 느껴집니다.









이곳 메르까도 다 히베이라mercado da ribeira가 있는 지역은 약 13세기부터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 거래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한창 포르투갈이 잘 나가던 시절엔 유럽에서도 제일로 큰 생선 시장으로 손꼽혔을 정도구요. 바닷것만 팔았것슈? 과일 야채 치즈 육가공품 등등 별거별거 다 파는 활기찬 시장이었다고.









하지만 좋은 시절도 끝이 나고 포르투갈은 길고 긴 불황에 늪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뭔가 쌍큼하게 분위기를 바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리스본 시 당국은 적절한 투자자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다 영국의 미디어 그룹인 타임아웃Time out과 손을 잡게 되었구요. 그리하여 2010년, 지금의 시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하여 관광객에게 인기만점인 곳이 되었다더라 라는 얘기를 듣고 이 곳을 찾아온 것인데 막상 와보니 인간적으로 좀 썰렁합니다. 어쩐지 오늘 여기 갈거라고 하니 숙소 주인 아저씨도 까페에서 만난 아줌마도 아 거기... 그래 관광객들이 많이 가지... 근데 우리는 안가... 거기는 너무 비싸... 라고 애매한 표정으로 얘기하더라. 









실망스러운 기분을 잠시 잊게 해줄 오늘의 포르투갈어 코너. 바타타batata는 감자고 도씨doce는 달달하다는 뜻이니 합해서 sweet potato 되것습니다. 키로에 1.2유로 하는 모양이구먼.









and 맨 앞의 쇼코스chocos는 초콜렛인줄 알았으나 갑오징어여. 








반짝반짝 정어리도 예쁘구나









한편 등 돌리고 앉아 뭔가 열심히 작업중이신 그분









어멋님 뭐 하시나요 









말린 고추 묶는다 이것아









이것은 겨란









겨란은 포르투갈어로 오부ovo인데, 제가 예전에 차암 할일이 없어가지고 뜬금없이 라틴어 공부를 한 적이 있어요.(대체 왜 그랬지???) 그때 외운 단어를 다 까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나 요 패키지를 보며 갑자기 계란을 뜻하는 라틴어 오붐ovum이 툭 생각났습니다. 유럽의 언어 쩌어기 깊숙한 곳엔 라틴어가 어원으로 쿵야 자리잡고 있다는게 이럴때 실감이 나요.









근데 지금 그런게 문제가 아니지. 이곳 메르까도 다 히베리아 이거 너무 썰렁한거 아닌가요. 그나마 문을 연 가게들 위주로 사진을 찍고 있어 그렇지, 실제로는 문을 닫은 곳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기사 생각해 보면 지역 주민들이 굳이 이곳까지 신선식품 장을 보러 오기엔 가격 메리트가 없는 모양이고, 여행자가 여기서 장을 봐다 음식을 해 먹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 이대로라면 요쪽 시장쪽은 서서히 죽고 맞은편 푸드코트쪽만 남는것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뜨내기 여행자의 섣부른 추측이길 바라며









시장 어멋님 아벗님들 모두 힘내시라고 수줍게 응원해 봅니다. 근데 사실 여기서 장을 와장창 봐 가는게 진짜 응원이것쥬. 하이고 지금 배추 양파 이런걸 살수는 없으니 과일이라도 좀 사야겠습니다. 









순무로 추정되는 동글이와 리크로 추정되는 길쭉이. 우리나라에선 리크를 본 적이 아직 없는데 혹시 이거 파는 곳 없으려나요? 생긴건 자이언트 대파처럼 생겨갖고선 맵거나 아리지 않고 달달해 스프 끓여도 맛있고 흰살 생선같은 거랑 같이 지글지글 해서 먹어도 좋더라구요. 포르투갈에선 요것을 알류뽀호alho-porro라고 합니다. 









여행 가기 전 어지간하면 먹을거 관련 그 나라 말은 좀 공부하자 주의인데 이번 포르투갈 여행은 출발 직전까지 어우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아주 빠듯했어요. 이잉 나 공부 별로 못해쪙 하며 불쌍한 척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너무 사전 자료 수집을 많이 하는 것도 좀 문제지 싶은게...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그건 분명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어지간한 걸 다 봐 버리는 것이 문제. 현지에서 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여요.









아 이게 그거구나, 인터넷에서 봤어. 아 여기가 거기구나, 인터넷에서 봤어. 이런 식으로 발자국만 한번씩 꾹꾹 찍는 여행이 되어 버리는건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고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날 수도 없는 일. 그 사이에서 어떻게 밸런스를 맞춰 갈 것인가, 영원한 숙제입니다. 

근데 어머 채소과일집 비닐봉투에 요런 인쇄 하는 것도 괜찮다아









콩콩콩 콩이 가득








하 까라꼬이스ha caracois 라는 입간판을 세워둔 이 집은 뭘 파는 곳인가 하면 호호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달팽이caracois 되것습니다. 시장뿐 아니라 식당에서도 하 까라꼬이스ha caracois 라고 써 붙이는 곳이 꽤 많은데 요게 '여기 달팽이 팔아요' 라는 의미로 으레 쓰이는 표현이라고 해요. 더운 여름날이 제철이라고. 

옆나라 스페인과 바다 건너 모로코에서도 달팽이를 무척 많이 먹는데 포르투갈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제 입에는 스페인식 달팽이는 딱 좋았고(마늘 넣고 푹푹 삶은 골뱅이 맛이었음) 모로코식은 흙내가 팍팍 나는 것이 맛이 개운치 않았는데 포르투갈에선 어떻게 요리하려나?







오 껍질벳긴 토끼다









차렷하신 정육점 어멋님









나 찍어줘 라고 근엄하게 말씀하시는(feat.혼을 실은 바디랭귀지) 그분이십니다. 어멋님 저 토끼 먹어봤어요 뼈가 많아서 먹을게 별로 없었어요 실망이에요 라고 여얼심히 얘기했으나 그분은 영어를 거의 못하시고 저는 포르투갈어를 한개도 못하는 관계로 대화가 점점 미궁속으로 빠졌...









그렇게 시장을 한바퀴 돌고








건너편의 푸드코트틱한 공간으로 건너가 뭔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합니다. 근데 뭐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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