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빵먹고 술먹고

좀전엔 시장 구역을 구경했으니 이번엔 건너편 푸드코트틱한 곳으로 넘어가 봅니다. 호홍 뭔가 포르투갈틱한 음식들이 가득하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푸하학 어디서 너허허무나 친숙한 냄새가 나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초밥집임. 그 왜 생선이랑 식초랑 섞인 특유의 냄새 있잖여. 아니 누가 포르투갈까지 와서 초밥을 먹고 그러나요(근데 여행 마지막 날 눈물을 흘리며 먹음).

한편 요쪽은 피자집. 완전 포르투갈 음식만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읭? 싶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푸드코트 역시 쌩 한식만 모아두진 않았으니 쌤쌤이다 싶기도 하구요.

물론 포르투갈 음식을 파는 곳도 많습니다. 아직 여행 초반이라 이게 비싼건지 싼건지 뭐가 어드렇고 어드런지 감이 잡히지 않는데 이후 한끼 한끼 사먹으면서 아 메르까도 다 히베이라mercado da ribeira 밥집들이 좀 비싸긴 했구나 라는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렇다고 헉 할 정도로 비싼건 아니지만 동네 주민들은 굳이 찾지 않을 것 같은 느낌? 포르투갈어 보다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더 많이 들리는 곳입니다.

한켠에선 음식 촬영이 한창 진행중

이쁜셔츠 언니 화이팅

뭘 먹을까 뱅글뱅글 돌다 그래 여기다! 하며 콕 찍은 이곳은 치즈 전문점. 포르투갈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치즈가 가득합니다. 모듬 치즈를 먹는거야 그래 최소한 서너종류는 쫙 깔아놓고 먹어줘야징... 하며 언니 나 모듬 한판 줘용 했는데 어우야 그거 너무 많아서 다 못먹을거에요 라며 뜯어말리는 그분. 이럴땐 일행이 있으면 참말 좋것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언니 생긋 웃어줬는데 초점이 나귀 타고 장에 가서 미얀...

정색하고 다시 와인 따르기에 집중하는 그분. 그래서 모듬 한판 대신 뭐가 좋을까 하니 맛있는 치즈를 한가지 고르면 그걸로 샌드위치를 해 주겠답니다. 어우야 나 포르투갈 치즈 오늘 처음 먹는거야. 니가 추천해줘!

그리하여 그분이 아주 좋아한다는 맨 왼쪽 치즈를 써억썩 바른 빵이랑 거기에 잘 어울린다는 와인을 한잔 샀구먼요.

두둥

단촐해 보이지만 무척 맛좋은 빵과 치즈. 부드럽고 살짝 끈적이면서 맛은 꼬리합니다. 야성적인 향이 살살 나는 양젖 치즈인데 맛도 그렇고 질감도 그렇고 그렇게 오랫동안 숙성시킨 것 같진 않습니다.(오래 숙성시키면 지금 상태보다는 더 단단해질것 같구먼요) 어이구? 빵이랑 치즈랑 간이 잘 맞는데? 와인이랑도 딱인데? 하며 무척 맛있게 먹었어요. 

치즈를 바른 빵은 3.5유로, 도우루 강rio douro 주변에서 생산했다는 맛좋은 화이트 와인은 6유로입니다. 

근데 지금 멫시여? 핸드폰을 슥 보니 12시 반쯤 되었네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왼쪽 2인은 프랑스어로, 오른쪽 2인은 중국어로 대화하길래 안녕하세여 저는 한국에서 여행왔어여 중국에서 오셨나봐여 라고 인사 겸 말을 붙이니 우리는 중국이 아니라 홍콩에서 왔다고 대답하시는 그분들. 

문득 제 홍콩 친구가 생각납니다. 중국인으로 불리는걸 정색하며 거부하는 친구인데, 그 마음을 알것도 같고 모를것도 같고.

어우야 너넨 뭐먹니

저의 치즈 빵이랑 와인을 아주~ 맛있게 움냠냠 먹은 후 벌떡 일어나 다시 좀전의 치즈집으로 갑니다. 어흑 지금 먹은 치즈가 정확히 뭔 치즌지 이름 좀 적어가야 쓰것어! 나중에 이거 하나 사갈거야!

세라 다 에스트렐라serra da Estrela 지역 특산품. 세라serra는 산을 뜻하는데 세라 다 에스트렐라는 포르투갈에서도 제일로 높은 산맥입니다. 강렬하고 부드럽고 입안에 쫙쫙 붙는 양젖 치즈. 이후 여행중 이 치즈를 넣은 다양한 음식을 먹었는데 하으아 하나같이 모두 좋았습니다. 

지역명 옆의 DOP는 Denominacao de origem protegida의 약자에요. 요것을 영어로 바꾸면 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PDO)가 됩니다. 이 이름은 특정 지역에서 특정 과정을 엄수해 생산한 것에만 붙일 수 있다 라는 의미. 거품 뽀골뽀골 난다 해서 모두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고 푸른 곰팡이가 스멀스멀 피었다 해서 모두 고르곤졸라 치즈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요. 

하여간 그래서 결론은... 아웅 이 치즈 맛있졍 ㅎㅎ

한편 이 안에는 음식 뿐 아니라 이쁘장한 기념품들, 특히 먹을거 관련된 것들을 모아둔 가게도 있는데

이때는 아직 잘 몰랐지만 이후 참으로 많은 기념품 가게들을 쫘아악 돌아본 결과 허허 초반의 이 집이 매우 훌륭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니깐 딱딱 핵심만 골라서 한군데 잘 모아놨다는 느낌이 든다는 얘기야요. 

왜 그런거 있잖아. 고만고만한 인터넷 쇼핑몰들 중에서도 관리자 취향 괜찮고 안목 좋으면 딱 튀지 않습니까. 이 가게가 그런 느낌입니다. 포르투갈의 아주 밝고 화사한 면만 참 잘 모아놓았음.

대신 물건 가격은 상대적으로 좀 비싼데, 그렇다 해도 1-2유로 차이이니 딴데 여기저기 들르면서 비교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차라리 여행 막판에 이집에서 확 쓸어가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요런거 마트에도 다 있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큰 마트며 백화점 등에 가 보니 일케 선물주기 딱 좋은 이쁘장한 것들은 잘 없더라구요.(라는 것은... 누구 선물줄땐 실용적인거고 나발이고 일단 이쁜게 중요하다는 소리임)

and 요쪽은 와인 매장인데

포트와인과 더불어 포르투갈에만 있는(사실 꼭 그런건 아니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고) 비뉴 베르드vinho verde가 쌓여 있습니다. 비뉴vinho는 와인이야요. 발음이 어렵쥬? 레드 와인은 비뉴 띤뚜vinho tinto, 화이트 와인은 비뉴 브랑코vinho branco 입니다. 그럼 비뉴 베르드는? 베르드verde란 초록색을 뜻하니 그린 와인인가 싶지만 그건 아니고, 어리고 풋풋하다는 뜻 되것습니다.

어리고 풋풋한 와인이라니 뭔 소리인가. 덜 익은 포도로 만들었다는 것이구만요. 신맛이 강한 편이고 도수가 약해 꿀꺽꿀꺽 잘 넘어가는데,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보다도 보존 기간이 짧으니 만들면 그때그때 후딱 마셔야 한다고. 포르투갈에서도 특히 북쪽 지역이 요걸로 유명한데,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차콜리txakoli랑도 느낌이 참 비슷하거든요. 갸나 얘나 산뜻하고 새큼하고 때로는 사알짝 탄산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기사, 저긴 스페인이고 여긴 포르투갈이야 라며 국경을 딱 나눠놨긴 하지만 두 나라 다 이베리아 반도에 있으니 비슷한 점이 많을 수 밖에 없겠어요. 그나저나 요 비뉴 베르드 병은 어두운 색이지만 보통은 아주 밝은 연두색입니다. 

비뉴 베르드만 있나, 다양한 포르투갈 와인을 두루 갖춘 가게. 포트 와인이라던가 마데이라 와인 같은 주정 강화 와인도 있구요. 하아... 한병에 5유로도 안한대... 인간적으로 너무한거 같아...

포르투갈 하면 으레 포트 와인을 떠올리지만 고것은 해외 수출을 많이 하다 보니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이고 맛좋은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등이 전국 방방 곡곡에서 좌악좍 생산됩니다. 근데 자국 내에서 꿀꺽꿀꺽 다 마셔버려 수출할게 거의 남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더만요. 맛도 참 좋고 가격도 아주 저렴하니 포르투갈 여행을 하신다면 밤이나 낮이나 가까이 해주소서. 

그렇게 메르까도 다 히베리아mercado da ribeira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가봅니다. 강변 시장답게 멋진 배의 모습을 담고 있는 바닥 패턴, 칼사다 포르투게사calcada portuguesa. 과거 해양 강국이었던 자부심이 넘치는 나라답게 요 칼사다 포르투게사엔 바다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많은 편이에요.

시장 앞 길바닥, 여기도 봐봐. 파도 아닙니까 파도. 여기만 그런게 아니라 리스본, 그리고 다른 도시에서도 파도 물결 무늬의 칼사다 포르투게사를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요 앞에 아저씨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길래 뭐죠 뭐 하는데죠 하고 스윽 다가가 보니

진쟈 드 오비두스ginja de Obidos 가게임. 진쟈는 체리 중에서도 사워 체리라고 왜 더 시큼한 품종 있잖습니까요. 고것으로 담근 술이에요. 오비두스Obidos라는 동네의 특산물입니다. 

왜 우리도 과실주 담글때 담금주용 독한 쐬주 사다가 콸콸 부어서 하자네? 고것처럼 포르투갈에선 진쟈에다가 아구아르덴테aguardente라는 차암~ 소주같은 투명하고 독한 술 쫘악 붓고 설탕도 좀 타고 맛있으라고 통 계피도 넣고 해서 담급니다.

고럼 어떻게 되느냐, 이미 몇잔 하신게 분명한 그윽한 미소의 콧수염 아벗님 앞에 있는 저 쬐꼬만 잔 있죠. 저 안에 든 진하고 어두운 붉은 빛의 술이 되는 것입니다. 

좀전에 치즈랑 빵 먹으면서 와인 한잔 쫙 했는데 껄껄 이것을 보니 또 한잔 안할 수 없지 않것는가. 사장님 저도 진쟈 한잔 주쎄요 뭐라구요 1유로라구요 허허허

어떤 향이 날까 어떤 맛이 날까 소심하게 혀 끝으로 호로록 하고 있는데 우리 체크남방 아벗님께서 제 어깨를 툭툭 치시면서 말씀하시길 얘야 진쟈는 한번에 쫙 들이키는 것이야 라고. 그리고 몸소 시범을 보여주십니다. 아벗님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오늘 몇잔째 드시는 거에요

하여간 그래서 맛은? 엄청 독할까봐 쫄았는데 생각처럼 막 독주는 아니고 단맛이 꽤 강합니다. 물론 과일 향기도 폴폴 나구요. 제가 좀전에 이 술이 진쟈를 아구아르덴테aguardente라는 술에 담가서 만든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럼 아구아르덴테란 무엇이냐, 아구아agua는 물이고 아르덴테ardente는 활활 탄다는 뜻이니 합치면 화끈한 물임 ㅎㅎ 포르투갈식 브랜디 같은 존재입니다. 포트 와인port 같은 강화 와인을 만들때도 쓰이는 도수 높은 술. 보통 50% 이상이라고 해요.

헤헹 좋으다 헤헹 후끈후끈하당

오비두스 지역 특산물이지만 리스본을 비롯해 여기저기 걍 전국 어디서나 다 팔어유. 뭐 다 그런거 아니것슈. 진열장 하단의 쬐깐한 하양 까망 둥그런 것들은 초콜렛으로 만든 작은 찻잔 모양의 그릇입니다. 

진쟈는 유리잔에 담아 쫙 마시기도 하지만 저 초콜렛 잔에 쪼로록 담아 홀라당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도 해요. 이후 다른 술집에서 고렇게 마셨습니다. 

신기해 신기해 신나 신나를 부르짖으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호호 이 촌년은 뭘까 하며 자애로운 미소로 이것저것 설명해 주시던 언니들. 모두들 낮술을 마시러 온건 아니고, 커피라던가 빵 등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러 온 모양입니다. 까페, 빵집, 술집 등이 칼같이 딱딱 나뉘어 있지 않고 걍 다들 커피 팔고 술 팔고 단거 팔고 그러더라구요.

그나저나 어우 이거 얼굴 어떡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