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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8. 성당에서 문어국밥까지

낮술을 두잔 마시니 얼굴은 발개졌지만 흥이 납니다. 

이 여세를 몰아 지하철을 타고 호시우rossio 역으로. 








밖으로 나가보자! 

어제 저녁에도 왔던 곳이지만 어제랑 오늘이랑은 컨디션 차이가 확 나서 그런지 햇볕이 더 따사롭고 하늘도 더 예뻐 보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이곳 지하철도 출구가 여러개라 어느 방향으로 나가는 건지 미리 확인을 해야 하는데,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는 나라라 대부분 어느 도로 방면이다 / 어느 도로의 남쪽이다 북쪽이다 등으로 안내되어 있습니다. 







라고 쓰긴 했지만 걍 아무데로나 나와봄. 

요 출구 바로 앞엔 파스텔라리아 수이싸pastelaria suica가 있구만요. 1922년에 문을 열었다는 오~래된 케익집pastelaria입니다. 파스텔pastel은 케익을 비롯한 달두왈을, 파스텔라리아pastelaria는 고걸 파는 곳을 뜻합니다. 빵은 빵pao이고 달두왈은 파스텔, 머핀틱한 퍽퍽빵류는 볼루bolo로 구분해 부릅니다. 







동 페드로 4세 광장Praca de D. Pedro IV이라는 정식 명칭 대신 으레 호시우 광장이라고 불린다는 그곳에 다시 왔스야. 

오른쪽 하얀 탑 위에서 벌 서고 계신 동 페드로 4세 오빠를 그윽하게 바라봅니다. 아니 왜 사람을 도망도 못가게 일케 높은데 박아놨어.








동상 하단 받침대의 이분처럼 좀 편하게 앉혀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그나저나 비둘기와 함께 하고 계신 앉아있는 그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쪽 조각 오빠는 섬세한 꼬임이 매력적인 밧줄과 이런저런 물건들을 손에 들고 계시고









또 이쪽 그늘진 곳 오빠는 나침반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고이 붙잡고 계십니다. 

이 밧줄, 나침반, 기타 여러가지 물건들은 항해에 필요한 도구들이에요. 바다! 모험! 식민지! 다 우리땅이야! 라는 이글이글 욕망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온 세계를 자기네 안방인줄 착각하며 설치고 다니던 시절의 흔적이죠. 에효 그려... 근데 그거 지금은 다 어쨌누...








우얏든동 날이 이래 좋으니 햇볕 쬐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고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 읭? 이거 사진 찍는거 아닌거 같은데? 

갑자기 우오오오 외치며 포즈를 딱 취하더니 급 율동을 시작하는 그분들.







어쩌구! 저쩌구! 으어! 흐어!








신나게 구호를 외치며 율동중. 뭔가 미묘... 가 아니라 대놓고 손발이 맞지 않지만 그게 또 나름 귀엽다고 옹호해 봅니다. 

론리 플래닛 왈, 이곳 호시우 광장 주변은 일본 도쿄의 시부야 같은 곳이라는데 그만치 사람들이 많이들 오가는 중심지라는 얘기겠죠. 그러다 보니 뭔가 으쌰으쌰를 하는 단체도 꽤 많고, 모금과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이 양반들도 아마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뭔 내용인지는 모르것지만 같은 구호+율동을 열번 가까이 하고 하고 또 하더라구요. 히...힘내... 이따 맛있는거 먹어...







광장 바닥 전체에 쫙 깔린 아름다운 칼사다 포르투게사calcada portuguesa. 일렁일렁 파도치는 돌바닥.









아까부터 율동팀을 열심히 독려하며 동영상을 찍고 있는 빨간옷 언니와 어느새 그 주변에 우루루 모인 사람들. 









다들 싱글싱글









자 또 신예희씨는 뭔가 흥미진진한 곳을 찾아 가보려 하는데 거기가 어디냐면









잠깐... 단거 하나 먹고...

좀전에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던 파스텔라리아 수이싸에서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 샀어요. 그냥 포도는 아니고 건포도랑 와인맛이 솔솔 나는게, 럼 레이즌 아이스크림이랑은 또 다르면서 아주 맛있습니다. 요거 한스쿱에 1.9유로. 

리스본에서도 호시우 광장과 그 주변이 아무래도 물가가 살짝 비싼 편이고 그중에서도 파스텔라리아 수이싸는 목 좋은 곳에 자리잡은 인기 까페라 더 비싼데... 라고는 해도 1.9...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마음에 콕 찍어둔 곳을 향해 걸어갑니다. 호시우 광장 옆쪽 골목을 지나는데 어디서 짠내가 솔솔솔









바깔라우bacalhau 가게. 꾸덕하게 말린 거대 대구의 겉에 잔뜩 묻은 허연 것은 소금이여 소금. 

옛날 옛적엔 대구잡이를 한번 나갔다 하면 하안참 있다가 겨우 육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봄에 나가면 가을에 돌아오는 식으로요. 잡은 대구를 갑판에다 쫙 깔아놓고 상하지 말라고 왕소금을 미친듯이 팍팍 뿌려 바닷바람에 말린게 요 바깔라우의 시작이야요.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러니까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주 사랑받는 식재료인데 특히 포르투갈 사람들은 단백질의 약 40% 가량을 요 바깔라우를 통해 얻는다고 합니다. 대체 얼마나 많이 먹길래!








그렇게 사랑받는 식재료다 보니 포르투갈 사람들은 바깔라우를 fiel amigo(믿을만한 친구) 라고 부르기도 한대요. '포르투갈인은 꿈을 먹고 살고, 바깔라우를 먹고 생존한다' 라는 표현도 있구요. 

1년 365일, 매일 다른 바깔라우 요리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요리법이 있다고 합니다.








근데 이거 다 노르웨이산이여... 라며 찬물을 홱 끼얹는 바깔라우집 사장님. 

왜에~ 왜 너네 포르투갈산 대구 안쓰는데에~ 라고 앙탈을 부리니 아주아주 옛날 우리 선조들은 포르투갈산 대구 잡았어 그치만 지금은 잘 없어 노르웨이 바다 가야해 라고 하시는구만요. 







걸어걸어 도착한 이곳의 이름은









건물 앞길 이름에 힌트가 있사와요. 

이그레자 드 상 도밍고스igreja de sao domingos 입니다. 이그레자igreja는 교회에요.








어서왕 여기는 사람들 기도하는 곳이야 그니까 미사 중에는 뛰지 말고 플래쉬 팍팍 터트리지 말고 핸폰 통화도 안했으면 좋겠어 라고 여러 나라 언어로 쓰여 있어요. 

고맙게도 미사 시간 외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입장료는 무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첫 눈에, 어 여기 뭔가 다른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으로 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돌 기둥과 오렌지빛 벽, 천정이네 싶지만 실제론 두 가지 재료의 질감과 빛깔, 마감 등이 상당히 이질적이거든요.








이곳 상 도밍고 교회는 1241년에 완공된, 당시 리스본에서 제일로 큰 교회였습니다. 포르투갈 왕가의 결혼식도 여기서 할 정도로 위풍당당 위세등등. 

물론 그 악명높은 마녀 재판도 여기서 했것지요-.- 억울한 죽음을 당한 피해자들의 한이 서린 곳입니다. 포르투갈은 이후 인도 고아 지방을 식민지로 삼아 거기에도 종교 재판소를 세웠어요. 차암 제가 진!짜 싫어하는게 종교를 이용해 그런 짓 하는 겁니다. 

우얏든동 세월이 흘러 1531년과 1755년, 두 번에 걸친 대지진을 겪었지만 여차저차 힘겹게 복구해 놨는데








하이고야 1959년, 큰 불이 난 것이에요. 뭐가 이리 파란만장하니! 

이후 36년간 어렵게 어렵게 힘들게 힘들게 복구해 1994년 겨우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사진 속 스크랩된 기사들은 당시의 화재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깔끔 멀끔한 외부 모습과 상반된 내부 모습에 얼떨떨해집니다. 

불이 지독하다 싶게 할퀴고 지나간 흔적, 겨우 남은 부분들, 그리고 그 사이를 메꾸고 있는 오렌지빛 부분의 불협화음. 불협화음이라고는 하지만 한편으론 묘한 조화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뭐라 딱 말하기 힘든 곳이에요. 

빼곡하게 놓인 의자에 잠시 앉아 천정 한번 올려다 보고 양쪽 벽 한번씩 바라보다가







0.4유로를 주고 초를 하나 사서









불을 붙여봅니다.









포르투갈은 인구의 85%이상이 가톨릭 신자라고 해요. 굉장하죠! 

몇 년 전 인구의 80%가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 신자인 불가리아를 여행하면서 야 여기는 그 종교가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포르투갈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8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해 13세기 중반까지 으쌰으쌰 지배하던 무어인들이 본토로 쫒겨가던 때, 아하 지금이 찬스다 하며 포르투갈 사람들은 스페인 왕국에 독립을 선포합니다. 자자 우리도 어엿한 나라야 하며 포르투갈 왕국을 세웠어요. 스페인에선 웃기고들 있네 라며 몇 차례씩 군대를 보내 위협했구요.









이때 포르투갈에서 어디다 도움을 요청했느냐, 바로 바티칸입니다. 아니 교황님 저희가요 이렇게요 가톨릭을요 열심히요 믿는데요 이제는요 저희도요 독립국인데요 스페인요 쟤네요 진짜요 너무한거 같아요~ 훌쩍훌쩍~

그리하여 바티칸에서 정식으로 포르투갈은 카톨릭 왕국이로다 하며 승인을 해 주었고 주변 나라들도 끄덕끄덕 동참하니 스페인도 더 이상 어떻게 하기가 어렵게 되었어요.







이후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를 열며 온 사방에 민폐를 끼치는 해양 강대국으로 성장합니다. 그게 15세기 이야기. 

그렇게 한 100년 가량 떵떵거리며 동네방네 배 내밀고 잘난척을 하다 16세기 후반, 왕위 계승 문제로 왕실이 삐끗하는 일이 생기자 스페인에선 호호 요때다 요놈들아 하며 군대를 이끌고 스르륵 들어와 어험 너네가 매우 혼란하니 우리가 잘 돌봐주마 하며 포르투갈의 왕좌에 턱 하고 걸터 앉아버립니다. 당시 스페인 왕 펠리페 2세Felipe II de Habsburgo가 포르투갈의 필리프 1세Filipe I를 겸하게 된 것. 포르투갈 사람들 뒤통수 후두려 맞고 얼얼~







왕위를 스페인 사람에게 뺏긴 것도 열받아 죽겠는데 한술 더 떠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외교권을 빼앗기고 국력이 간당간당해지니 사방에서 태클이 들어옵니다. 특히 네덜란드와의 트러블이 치명적이었는데, 그 결과로 그전까지 포르투갈이 독점하던 식민지 무역의 권리를 내어주게 되었어요. 인도양 독점무역 종료! 









17세기 중반 다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 외교권도 찾아왔지만 그 사이의 피해는 생각보다 너무나 심해, 포르투갈은 이후 재기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물론 식민지인 브라질의 막대한 광물을 팍팍 퍼다가 잘 써먹긴 했지만 한번 내리막길 타면 올라오기 힘들지 않것습니까. 게다가 18세기 중반에 리스본 대지진까지 쿵야쿵야 쿵쿵야 일어났으니 어휴...







비어있는 수많은 의자들. 

미사 시간에는 아마 꽉꽉 들어차겠죠.







군데 군데 패여있는 돌바닥. 긴 시간과 파란만장한 역사가 남긴 흔적일 것이구요.









잘 보존된 교회가 내뿜는 기운과, 또 이렇게 녹록치 않은 일들을 겪은 교회가 내뿜는 기운은 사뭇 다릅니다. 

불꽃이 할퀸 자국이 선명한 돌벽에서 중얼중얼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요 의자에서도 뭐라뭐라 속살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종교 사원이란 분명 뭐가 있는 곳, 뒤통수를 간질간질 건드리는 뭔가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갑니다.









상 도밍고 교회 주변엔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인 만큼 기념품 가게도 많고, 유서 깊은 교회 앞 답게 성물 판매소도 많은데









점심때라 다들 문 닫고 밥 먹으러 갔엉









뉘기가 뉘긴지 잘 모르것다 싶은 와중에 그래도 아는 오빠가 있어 반갑게 사진을 찍어봅니다. 사자 쓰담쓰담 하고 있는 웃통 깐 할아버지, 성 히에로니모Sao Jeronimo. 

가톨릭 성화, 성상속 인물들은 인간적으로 차암 구분하기 힘들기 땜에 뭘 들고 있는지, 주변엔 뭐가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요. 성 히에로니모의 경우 돌멩이로 가슴을 퍽퍽 치고(회개하는 것임), 비쩍 곯았으며(고행중), 사자를 이뻐해주고 있다는게 포인트에요. 

이 양반이 한창 사막에서 고행을 하고 있는데 웬 사자 한마리가 스르륵 다가왔습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하며 잡아먹힐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읭? 얘 어디 아픈 모양이네? 낑낑대네? 자세히 보니 발에 이따만한 가시가 박혀 있어, 어이구 가엾어라 하며 쑥 빼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자가 성 히에로니모 곁에서 평생 떠나지 않았다고 해요.








라며 종교는 없으나 이런 얘기는 차암 좋아하는 1인이 야매 설명을 해 보았어요. 

그 외에도 이렇게 수많은 성인들이 있구먼 왜 성 히에로니모 이야기만 했느냐, 리스본에는 이 오빠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수도회의 아주 멋진 수도원이 있고 거의 뭐 리스본 넘버원 관광지로 꼽히고 있어서 함 얘기해 봤시요.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녀. 나 또 배고픔.









먹을거 찾아 두리번 두리번









식당 한 곳을 콕 찍어 들어왔습니다. 수줍게 건넨 첫마디... 여기 와이파이 돼용?

어흑 숙소 로비(라기 보다는 주인 아저씨 사무실)에서만 와이파이가 되고 방에선 신호가 너허허무나 약해 답답했던 관계로 까페든 밥집이든 어디든 들어갔다 하면 와이파이부터 찾고 있는 1인이야요. 그나저나 와이파이 리스트 위에서 네번째에 당당히 떠있는 화웨이... 포르투갈에도 샤오미와 화웨이 파워, 장난 아닙니다.








뭐먹지 뭐먹지 우헤헹









샐러드를 주문하니 냉큼 가져다 주는 올리브 오일이랑 식초. 그래서 풀때기만 주문했느냐 하면 제가 설마 그럴리가 있것습니까.








식당 앞 메뉴판에 요것이 적혀 있길래 아하하 나 이거먹을래! 하며 들어온 것입니다. 아로즈 드 뽈보arroz de polvo! 

아로즈arroz는 쌀이고 뽈보polvo는 문어야요. 국물 자박자박하게 끓인 국밥입니다. 포르투갈에 또 그렇게 문어 요리가 다양하고 하나같이 맛있다더라 라는 소문을 듣지 않았것소. 그래서 궁금하지 않았것소.








살라다 미스타salada mixta 그니까 mixed salad도 같이 나왔지만 호호 풀따위야 풀맛이니 일단 제껴두고 문어국밥에 올인해 봅니다. 

위에 솔솔 뿌린 초록색 쟤는 파슬리야요. 강한 향이 폴폴 나는데, 아로즈 드 뽈보뿐 아니라 많은 음식에 요 파슬리가 꽤 두루두루 들어갑니다. 코리앤더를 함께 쓰는 경우도 많구요. 







인간적으로 문어로 낸 육수가 얼마나 감칠맛 날 것이며 여기에 질기지 않게 잘도 익혔구나 감탄하게 되는 문어 다릿살이 듬뿍 들어가고 파슬리는 향기를 마구 뿜어대니 허허 너허허무나 만족스럽습니다. 길쭉길쭉 장립종 쌀도 잘 어울리구요. 

어머 웬녈이니 어머어머 하며 무척 맛있게 먹었습니다. 나 이거 순식간에 원샷했엉...








제가 허부적 허부적 문어국밥을 먹는 사이 선 채로 후딱 식사를 하고 나가시던 아벗님들. 커피와 빵 등의 간단한 식사는 이렇게 서서 먹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잘 먹었습니다! 샐러드가 2.1유로, 아로즈 드 뽈보가 6.95유로, 탄산수가 1.6유로니까 다 해서 10.65유로.






자 또 뭘 하면서 배를 꺼트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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