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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10. 쿠킹 클래스 두두둥

해가 지기도 전에 숙소에 돌아오니 조금 아쉽습니다.

는 개뿔 침대에 벌렁 누워 발가락을 주물주물하다 보니 으하하 이렇게 편할 수가 그냥 지금부터 자 버릴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하지만 저에겐 야간일정이라는 것이 있는 관계로 무거운 몸을 웃샤 일으켜 밖으로 나가봅니다.









그리하여 도착한 이곳은 쿠킹 클래스 두둥

숙소랑 꽤 가깝길래 구글 지도를 찾아보곤 어라? 우연인가? 했어요. 그런데 완전 중심가인 지하철 호시우rossio 역 주변이랑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조용한 주택가이면서 호시우 주변보다는 확실히 임대료가 쌀 것 같아서 여기에다 사무실을 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숙소 역시 입지가 그러하다 보니 중심가에 비해 숙박비가 꽤 저렴하거든요...라고 쓰다 보니 껄껄 자영업자 티내는구먼. 

수업은 저녁 6시에 시작합니다. 저와 동시에 도착한 영국언니가 각각 에스토니아와 캐나다, 영국에서 온 참가자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중. 








나도 찍어줭 ㅎㅎ








여행 출발 전 미리 예약한 수업입니다. 저녁 무렵 시작해 마지막엔 다 함께 식사를 하게 돼요. 

그동안은 아침에 시작해 점심때 끝나는 수업만 들었는데 요런 시간대는 어떠려나? 









비교해 보자면, 일단 저녁 수업이다 보니 시장에서 함께 장 보기 코스는 없습니다. 재료는 이렇게 미리 준비되어 있구요. 어느 정도는 손질이 된 상태. 

저의 경우는 이른 시간 북적이는 전통시장에서 재료를 사 갖고 돌아와 다듬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을 절약하게 되니 요리 수업이 더 상세해진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번 쿠킹클래스를 포함해 제가 체험해 본 수업들은 모두 약 4시간 가량 걸리는데, 그중 시장 탐방이 약 1시간 가량 잡아먹거든요. 저는 고걸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불만일 수도 있을거라 생각해요. 여러 쿠킹 클래스들을 쫙 늘어놓고 어떤 수업 과정이 나한테 맞것는가를 잘 살펴봐야 하는구만요. 

그리고 오늘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 다섯 명은 해외 출장으로 리스본에 와 자유로운 저녁 시간에 뭔가 재밌는 걸 하고 싶어 검색하다 요리 수업을 발견한 거라고. 야, 너네 진짜 좋은 아이디어다. 회식보다 낫다.








그나저나 오우 오리 핑크빛 오우 싱싱한거. 초리조chouriço도 굵직하고 큼직한 게 마구 설레입니다. 

오늘 만들 요리는 네 가지에요. 하이고 벌써부터 허리가 아플라고 그려 ㅎㅎ







일단 엄숙한 분위기로 시작. 조리복도 앞치마도 몽땅 검은색이라 그런지 엄숙하구먼. 

오늘의 선생님 안토니오가 자 여러분 지금 뒷짐을 지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얼른 재료 하나씩 붙잡고 손질해요 라며 손질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리는 육수 팍팍 우려내야 하니까 맨 먼저 불에 올려두겠다는 그분. 아로즈 드 빠또arroz de pato 밑준비입니다. 아로즈arroz는 쌀이고 빠또pato는 오리. 쌀과 오리라, 왠지 어떤 건지 알 것만 같지 않습니까. 

찬물에 오리 풍덩 집어넣고 초리조chouriço랑 양파, 마늘, 당근, 통후추랑 파슬리도 풍덩풍덩 한 다음 소금도 좀 뿌려서 살살 끓여주기 시작. 

초리조chouriço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니까 합쳐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두루 먹는 소시지인데 얘네가 사방 팔방 식민지 접수하러 나댔던 관계로 지금은 차암 많은 곳에서 먹고 있어요. 돼지고기 살점이랑 지방에다 파프리카니 고추니 후추니 등등 온갖 향신료를 꽤 세게 팍팍 집어넣고 만들어 색이 벌그죽죽하고 맛도 상당히 야합니다. 오리 특유의 맛과 향에 초리조가 더해지면 얼마나 야할까!
그나저나 양파랑 마늘을 껍질 채로 집어넣길래 왜죠 귀찮아서인가요 물으니 껍닥에서 좋은 맛이 나기 땜에 그런거란다 라는 대답이. 육수를 내어 한번 거를 거라 괜찮다고 합니다.








드디어 칼... 은 아니고 가위를 잡은 1인. 저에게는 바깔라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성둥성둥 자르라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이틀간 찬물에 담가 소금기를 뺀 염장대구 바깔라우bacalhau. 어우 축축해 어우 쫀쫀해 ㅎㅎ 대구살이라 기름기도 거의 없고 비린내도 거의 없어요.









한편 샌프란시스코에서 오신 우리 어멋님 아벗님은 야야 어려운거 다 맡겨줘 우리가 요리를 진짜 좋아해 뜨거운 것도 잘 만져 애들 키우느라 지문이 닳아 없어지고 굳은 살만 남았어 라며 의욕에 불타는 중인데









그렇다면 알레이라alheira 저미는 걸 부탁해요 라는 슨생님. 요 뭔가 끈적끈적해 보이는 노리끼리한 반죽이 뭐냐면 큼직한 소시지의 껍질을 벳겨내고 속 내용물만 빼낸 겁니다. 알레이라alheira라는 소시지에요. 

포르투갈의 육가공품은 대부분 돼지고기로 만들지만 요 알레이라는 드물게 송아지 고기라던가 닭, 오리, 메추리 고기 등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거기에 빵가루를 듬뿍 넣어 촉촉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나요.







요걸로 빠따니스까스 드 알레이라pataniscas de alheira 라는 음식을 만들 것인데 그게 뭔지는 으허허 지금은 잘 모르겠고 일단 소시지 속이나 저며놔야죠. 소시지가 꽤 큼직해 두 개 다진 게 저만큼이나 나오네요. 

이후 어느 식당에서 요 알레이라 소시지를 통채로 오븐에 넣고 구운 걸 먹었는데 소시지 주제에 엄청 푸짐했습니다. 







거품기를 들고 계신 인자한 미소의 그분. 아들과 함께 여행중이라고 해요.

그런데 수업 시작 전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각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이야기를 했거든요. 나는 영국, 나는 에스토니아, 나는 한국 등등. 그런데 이 분은 '나는 뉴욕' 이었고 아까의 부부 역시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라고 하더라구요. 그런가, 도시 이름만 말해도 미국이라는 걸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자신감이랄까요.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얘야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지금부터 반죽을 만들거란 말이야. 잘 보란 말이야.









밀가루랑 베이킹 파우더에 맥주를 부어 넣어 반죽을 할 것이야. 왜냐면 기포가 뽀골뽀골 올라와 반죽이 더 바삭하고 맛있어지기 때문이지. 물론 남은 맥주는 홀랑 마셔도 돼. (라고 말하며 슬쩍 마심)









반죽엔 코리앤더 다진 것과 소금, 저며 놓은 소시지 속살을 넣고 달걀 노른자도 분리해 넣은 후 우유를 더해 농도를 맞추고 후추도 득득 갈아줍니다. 코리앤더 대신 파슬리를 넣어도 좋다는데, 포르투갈 요리엔 요 두 가지 허브가 꽤 다양하게 쓰이더라구요. 









잘들 하고 있는지 조리대를 돌며 체크하는 그분. 간이 잘 맞는지 요것조것 넣어주기도 합니다. 참가자들이 세 조로 나뉘어 전채 요리, 메인 요리, 디저트까지 총 네 가지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조를 나누긴 했지만 금세 야 너네는 뭐하니 그거 오렌지 뭐에 쓰는거야 하며 기웃기웃하다 결국은 거대한 한 팀으로 섞이게 됩니다. 와하하 다 그런거지요! 그래서 멋진 팔찌의 우리 에스토니아 언니가 썩썩 벳기고 있는 향긋한 오렌지 껍질은 뭐에 쓰느냐, 아까부터 푹푹 삶고 있는 오리에다 넣을 것이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그 숫자가 참 맘에 안든다는 우리 뉴욕 어멋님이 득득 갈고 계시는 레몬 껍질은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 그니까 저의 사랑 에그타르트에 들어갈 거에요. 

오늘 수업에서 파스텔 드 나타를 만든다길래 기뻐 날뛴 1인을 보며 요리 선생님 왈, 얘야 포르투갈 요리 수업 디저트 시간에 그걸 안하면 뭘 하겠니 라고. 모두가 사랑하는 달콤 바삭한 디저트!







그리하여 우유랑 크림이랑 설탕이랑 겨란 노른자 듬뿍에 밀가루 쬐끔 넣어 걸쭉하게 만든 달두왈한 액체에 시나몬 스틱과 좀 전에 벅벅 간 레몬 제스트를 넣어 아주~ 좋은 향을 내준 다음









체에 한번 걸러주는 중이옵니다. 어우 막 저쪽에선 오리가 끓고 이쪽에선 소시지 저미고 여기선 또 달달한거 만들고 바쁘다 바빠! 

아까부터 이 모든 과정을 음식 만드는 짬짬이 열심히 촬영중이신 그분. 영국에서 온 언니인데






명함을 받아 읽어보니 모 국제기구의 재난관리 책임자야요. 오늘 우리 음식 만들다 불나면 언니가 우리 탈출 시켜주는 거야? 라고 농담을 하니 이미 다른 사람들도 같은 농담을 했다며 역시 세계는 하나라는 그분.







한편 뒤쪽 조리대엔 맛있는 빵이랑 올리브 오일이 이렇게 두두둥.  

올리브 오일 회사인 갈로gallo 제품들인데 번갈아 맛을 보니 처음엔 어 다 맛있는 것 같아 다 똑같은 것 같아 싶었지만 계속 먹다 보니 아하~ 난 이게 제일 좋다 라는게 딱 나오더라구요.(라는 것은 쉬지 않고 먹었다는 소리임)






바로 요겁니다! 그란지 에스꼴랴grande escolha. 산도 0.3%인데, 살짝 매캐하고 강한 향이에요. 

갈로에서는 다양한 올리브 오일이 나오는데 싼거는 진!짜 싸고, 비싸다고 해도 하이고 우리나라 올리브 오일 가격에 비하면 싸요 싸. 여기 놓여 있는 네 가지 올리브 오일은 개중 제일 고급 제품군이라는데 500ml 한 병에 9유로 정도 합니다. 여행 당시 환율로 만 오백원. 


지지고 볶는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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