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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11. 열심열심 쿠킹 클래스

계속되는 쿠킹 클래스 이야기. 

네 가지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드디어 고대하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파이지를 펼쳐 끝 부분을 살짝 접은 후 도르르 말아줍니다. 끝을 접은 이유는 말기 편하라고 그런 거야요.







똘똘또르르 잘 말린 파이지는 다시 칼로 성둥성둥 썰어줭. 

대충 뭐 한 2센티미터 길이 되게 썰어줭. 요리 선생님은 1센티미터라고 말했지만 그러면서 실제로 썰기는 한 1인치는 되게 썰었... 고추장 한 숟갈 넣어주세요 라며 두 숟갈 같은 한 숟갈 넣는거 있잖아요. 그런 느낌-.- 







그럼 마 요만하게 잘립니다이







다 잘랐다! 그럼 얘네를 가지고 뭘 어떻게 하느냐면







요 타르트 틀에 올려놓고







펴줭







근데 타르트 틀에 버터를 펴바르지 않고 대신 손가락에 물을 뭍혀서 꾹꾹 누르라길래 좀 의아했어요. 버터 안발라요? 올리브 오일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녜요? 하고 물으니 얘야 물이면 충분하단다 라는 그분. 하긴, 생각해 보니 파이지에 이미 버터가 차고 넘치게 들어가 있겠구만요.   







한편 아까 반죽해 둔 알레이라alheira 소시지 + 밀가루 + 맥주 + 우유 + 마늘 + 양파 + 파슬리 + 겨란 + 소금 등등을 드디어 요리할 차례. 팬에 기름을 찰랑하게 붓고 가열한 다음 반죽을 한 숟가락씩 떠서 살살 넣어 튀깁니다. 

기름 높이가 얕아 튀김이라기 보다는 광장시장 빈대떡 정도로 기름을 머금은 부침개의 느낌이에요. 이 음식을 빠따니스까스 드 알레이라pataniscas de alheira 라고 하는데 빠따니스까스pataniscas가 튀김, 부침개, 뭐 이런 뜻이니 말 그대로 알레이라 소시지 부침개것네요.  







그렇게 한장 한장 튀기... 아니 부치는 중입니다. 어우 이건 뭐 명절 부엌 냄새가 솔솔 나는구만요. 기름의 위력이란...







다 되얏다! 냄새만 그런 게 아니라 생긴 것도 차암 익숙합니다. 

아직 여행 이틀째라 잘 몰랐지만, 이후 다양한 포르투갈 음식을 먹으면서 야~ 거참 우리 것과 느낌이 비슷하네 라는 순간이 상당히 많았어요. 재료도 그렇고 재료를 조합하는 방식도 그렇구요. 쿠킹 클래스 선생님이 말하길 포르투갈 음식엔 양파랑 마늘이 필수라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촤아악 퍼져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호호 아까 만들어 체에 한번 거른 후 사알짝 식혀둔 커스터드 크림을 드디어 부어주기 시작합니다. 어우 크림만 퍼 먹어도 맛있겠다 맛있겠어.







커스터드 크림은 요래 요래 파이지 맨 위 까지는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찰랑하게 부어 넣고







팬 위에 얌전히 올려준 다음







오븐에 샤라랑 집어넣으니







오마이갓 귀퉁이 부분이 버글버글 끓기 시작합니다. 어우야 벌써 막 뭔가 달달한 냄새가 나!







and 순식간에 부오오오오 부풀어 오르는 크림. 순식간에 진한 색으로 확 썬탠을 하네요. 

마카오와 홍콩에서도 에그 타르트를 먹어봤고 이곳 리스본에 와서도 빵집이란 빵집에선 다 요걸 팔고 있어 계속 눈에 밟히지만 직접 만들어 보는 건 처음이라 마구 설렙니다. 그렇구나, 크림이 이렇게 빵빵해졌다가 푹 꺼지는 거였구나.







오븐 앞 상황은 대략 이렇습니다. 다들 여기에 확 꽂혔음. 전채고 메인이고 뭐고 식사의 꽃은 역시 단거인가요.







이만치 때깔이 진해질 무렵







분연히 일어나 엄숙히 오븐을 열고







골고루 익어야행... 라며 팬을 홱 돌려 다시 오븐에 넣으시는 그분. 

어떤 오븐을 쓰느냐에 따라 필요 없기도 한 과정인데, 대부분의 가정용 오븐은 타르트 한 판이 단번에 고른 색이 나긴 어려우니 중간에 한번 돌려 넣는게 좋다고 해요. 

그나저나 이쯤 되자 다들 뭔가 음식 하나가 모양새를 갖춰갈 때 마다 환호하고 휘파람 불고 박수를 치고 꺄아 맛있겠다 냄새 죽여준다 난리가 났습니다. 당연히 기뻐서 그런것도 있지만 사실은







하아안참 전부터 이곳은 술판이었기 때문임. 달달하고 산뜻하고 맛좋은 세투발Setúbal 지역의 모스까텔 품종 와인인데, 주종 불문하고 두 잔이면 끝인 저도 어쩌다 보니 야곰야곰 살곰살곰 서너 잔은 마셨습니다. 

세투발은 리스본에서 차로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에요. 포르투갈 와인 하면 으레 포트port만 생각했는데 직접 와 보니 다양한 지역에서 맛좋고 저렴한(이거 중요) 와인을 왕창왕창 만들고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에그 타르트가 오븐 밖으로 나왔습니다. 

많은 이들의 쌧바닥을 통으로 홀랑 해 잡쉈다는 공포의 갓 나온 에그 타르트...







얘들아 좀 식으렴 하며 냅두니 부풀었던 윗면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제가 평소에 보던 그 에그 타르트의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얘네들의 이름은 파스테이스 드 나타pastéis de nata에요. 파스테이스pastéis는 과자라던가 케익, 파이류 등 달달한 것들을 뜻하는 파스텔pastel의 복수형입니다. 나타nata는 크림을 뜻하는데 여기에선 콕 집어 커스터드 크림(겨란 노른자가 왕캉 들어갔응게)을 말하는 거것지요. 영어로는 egg tart 라고 하구요. 영어 이름으로 처음 알게 된 거라 포르투갈 이름, 그러니까 원조 명칭에 달걀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걸 알고 좀 의아했어요. 







우얏든동 얘네들이 적당히 식으면 요 칼끝으로 요렇게 요렇게 해서







틀에서 빼 주면 되야요.







버터나 기름 칠을 따로 하지 않았지만 슥슥 잘 빠집니다. 

이따가 저녁 식사의 맨 마지막에 먹게 될 텐데 아오 지금 당장 몰래 한개 홀랑 먹고 싶어 죽갔구만요. 버터 향기가 콧구녁을 파고드니 교호양 따위 집어 던지고 걍 틀고 튀고 싶습니다요.







하지만 난 미대 나온 배운 여자니까 교호양 있게 오리 육수랑 쌀을 익혀줌. 

꽤 오랜 시간 푸우우우욱 끓인 오리 냄비에서 육수를 쪼르륵 따라낸 후 쌀을 넣고 버글버글 끓입니다.







다 되얐다! 요 아로즈 드 빠또arroz de pato에 쓰는 쌀arroz은 찰기 없는 장립종 쌀인데, 찰기 없게 해서 먹는게 포인트라 익힐때 너무 열심히 젓지 말라고 하네요. 저으면 전분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푸우우욱 익은 초리조chouriço랑 당근은 따로 빼 두고 오리는 살점을 샥샥 발라냅니다. 당근 중 하나는 온전한 모양으로 놓아 두고 나머지는 먹기 좋게 다지구요.







그 다음 큼직한 그릇에다 맛있는 냄새(라는 것은 고기 스멜♡) 풍풍 풍기는 쌀을 절반쯤 담고







윗부분을 평평하게 잘 펴줭







좍좍 찢은 오리 살점이랑 잘게 다진 당근을 쌀 위에 올리고







다시 평평하게 평평평 펴줍니다. 

한편 초리조랑 당근은 가래떡 썰듯 얇게 어슷썰기 하는데, 특히 요 초리조는 두어 시간 넘게 끓여 단물 다 빠졌겠지 했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특유의 맛과 향이 그대로라 놀랐습니다. 속살도 전혀 부스러지지 않았구요. 







절반 남겨두었던 쌀을 한겹 더 올리고 마지막으로 당근과 초리조로 마무리. 

아로즈 드 빠또arroz de pato 완성입니다... 인줄 알았는데 요대로 다시 오븐에 넣어 윗 부분이 갈색으로 변하도록 살짝 더 구워야 좋다는구만요.







자자 슬슬 끝이 보인다! 다진 양파랑 마늘을 올리브 오일에 볶다가 성냥개비만한 감자칩을 넣어 슥슥 섞습니다. 바깔라우 아 브라스bacalhau à Brás 를 만드는 거에요. 

바깔라우는 제가 아까 손질한 염장 대구살이고, 브라스Brás는 지역 이름인가 했는데 이 음식을 개발한 사람의 성이라고 합니다. 리스본의 전통 음식이라고 하는데, 사진 속 저 쬐깐한 감자칩이 포인트. 채 썬 감자를 튀겨 만들거나 아예 이 음식 용으로 나온 감자칩을 사서 써도 된다고. 나중에 마트 식품 매장에 가 보니 정말 바깔라우 아 브라스용 감자칩을 팔더라구요. 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과자인줄 알았겠구나.







여기에 손질한 바깔라우를 넣어 슥슥 섞은 후 마지막으로 소금, 후추로 간한 달걀물을 와르르 붓고 불을 끈 후 감자칩이 으깨지지 않게 살살 섞습니다. 그럼 여열로 달걀물이 살짝 익는데, 완전히 익히지 않고 촉촉한 느낌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하이고야 그렇게 여섯 시 부터 열 시 까지, 장장 네 시간의 요리 수업이 끝났습니다. 식탁에 앉으니 입에서 저절로 으어어이구 소리가 나오는구만요. 그새 서로 확 친해져 각자의 자식 자랑이 한창입니다. 서로 핸드폰 속 애들 및 손주들 사진을 보여주며 이뿨이뿨 칭찬해 주는 중.   





촉촉한 바깔라우 아 브라스bacalhau à Brás와 고소한 빠따니스까스 드 알레이라pataniscas de alheira 로 저녁 식사를 시작합니다. 마늘, 양파, 파슬리의 향이 좋고 쫀쫀한 대구살과 닭고기 소시지 알레이라 속살도 어우 맛있어요. 하기사 직접 만든 건데 뭔들 ㅎㅎ 







옆자리 에스토니아 언니와 맞은편 뉴욕 아벗님 어멋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입니다. 야 이게,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예전 같으면 잘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하게 돼요. 정치, 경제, 요런 것들요. 평소에는 그런 주제로 이야기 하는 걸 조심하는 편인데 오히려 처음 만난 외국인들 앞에서 입이 터집니다. 경제 위기, 청년 실업, 그리고 대를 이은 권력과 금전의 장악...







술을 계속 마셨더니 쌧바닥이 술술 돌아갔스야. 시원하게 식힌 화이트 와인과 함께 맛좋은 전채 요리를 먹고, 이번에는 찌인한 레드 와인으로 다시 건배합니다. 







오늘의 메인 요리 아로즈 드 빠또arroz de pato를 영접하는 순간임. 

오렌지 껍질 향이 살짝 나고 쌀은 씹히는 느낌이 좋은, 말하자면 알 덴테 상태입니다. 오리랑 여러 가지 야채, 초리조가 어우러진 육수에 익힌 쌀이니 우어어 굉장히 맛있어요! 특히 초리조가 압권인데, 여러 종류의 초리조 중에서도 화이트 와인으로 숙성시킨 걸 썼더니 산미가 꽤 강합니다. 그게 빠밤 하는 포인트가 되어 주네요. 우리 음식에는 산미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초리조를 넣고 가금류의 육수를 내는 것.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 꼭 응용해 봐야지 결심했습니다. 소시지를 이렇게 활용할 수 있구나! =(라고는 하지만 술을 이래 마셔서 뭐 기억이나 나것냐) 

중국식 소시지 중에 랍장臘腸이라고 있는데 바람 부는 데서 꼬득꼬득 말린 거라 초리조랑 꽤 비슷하게 생겼고 맛도 강렬하거든요. 고걸 얇게 썰어 밥에 넣고 같이 익히기도 해요. 지금 이 쌀 요리랑 어딘가 닿아 있습니다. 세계가 둥글긴 한개벼...







마지막으로 디저트 시간이 되자 의자에 축 늘어져 배부르당 취했당 하던 사람들 눈이 갑자기 번쩍번쩍 빛나기 시작함. 역시 달두왈의 위력이란 ㅎㅎ 

포트와인을 곁들인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시나몬 가루를 사알짝 뿌리면 어우야 맛이 확 야하게 살아나는게 이거다 싶습니다. 요리 선생님이 말하길 시나몬은 취향을 타니까 뿌리지 않아도 상관 없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은 대부분 뿌린다고. 그래서 그냥 한 입 먹고 뿌려서 한 입 먹어보니 확실히 시나몬을 뿌린 쪽이 더 맛있구만요. 







즐겁게 배우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칠판에 각자의 언어로 '반갑습니다' 를 적어 넣어봅니다. 여러 언어가 이미 적혀 있지만 한글은 아직이길래 냉큼 슥슥 적었어요. 

그 아래 에스토니아어를 더하고 있는 그분. 내 나라는 오랫동안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지금은 아니야. 나는 그게 얼마나 문제가 있는 체제인지 겪어봐서 잘 알아. 너 이 책 한번 읽어봐야 해, 아주 좋은 책이야... 라며 책 한 권을 열정적으로 소개해 주었는데 하아아안참 얘기를 듣다 보니 아무래도 제가 읽은 책 같은데 영어 제목을 모르겠는 겁니다. 그래서 혹시 그 뭐냐... 프라하... 스프링... 밀란 쿤데라... 그거 아녀? 했더니 맞다고 매우 좋아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었어요 ㅋㅋ






쿠킹 클래스의 참가비는 65유로입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숙소로 돌아가야죠.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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