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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12. 또스따 미스따 먹고 신트라로

2015년 4월 23일, 목요일입니다. 

아침에 눈 뜨고 딱 보니 허허 어제에 이어 기미 주근깨가 나 불렀냐며 파파팍 돋을 만한 날씨. 일단 공용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눈썹을 그린 후 길을 나섭니다. 








잠깐... 셀카 좀 찍고...

공용 욕실에서 락 스피릿을 부르짖는 여인.







오늘의 아침 미션은 숙소의 안토니오 오빠가 첫날부터 맛있다며 추천해 준 빵집을 가는 것.

근데 호호호 아시다시피 첫날엔 여권 분실로 정신이 나갔고 어제는 번지수를 잘못 봐 엄한 데로 갔다는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방향치의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제대로 찾아왔다! 딱 보니 동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끊임없이 어디선가 빵이 날라져 오는 것이 아하 여기 괜찮나봐 라는 느낌이 옵니다. 입구 근처엔 다양한 빵과 달달한 것들이 좌라락 들어있는 쇼케이스가 있고 안쪽엔 테이블이 꽤 많은데 대부분 이렇게 서서 후딱 먹고 나가더라구요. 







주문 받고 빵과 음료를 준비하고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 주느라 정신 없는 그분. 그 와중에 갓 구운 빵이 이렇게 날라져 오면 뒷편 빵 선반에 종류별로 챡챡 정리도 합니다.









오빠 나 메이아 드 레이뜨랑 또스따 미스따 주세요 하니 그래 저어기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 있으면 오빠가 갖다주께 라는 그분. 그치만 동네 사람들은 다들 서서 먹고 있는데 이마에 나 여행왔어요 라고 쓴 제가 어찌 앉아서 먹을 수 있겠습니까. 굳이~ 궁뎅이를 비벼가며 사람들 사이에 끼어듭니다. 

자리는 아주 금방 나요. 들어와서 주문하고 먹고 마시고 돈 내고 나가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이겠죠. 그나저나 제가 시킨 어쩌고 저쩌고가 대체 뭐냐면







요겁니다요. 또스따 미스따toasta mista. 치즈랑 햄을 끼워 꾸욱 눌러 구운 샌드위치에요. 이게 차암 딱 봐도 별거 아닌데 빵대국의 저력인지 어이구 소리가 나게 맛있습니다. 나 원 참, 딱히 신기한 게 들어간 것도 아닌데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한편 또스따 미스따 뒤에서 저기요 저도 있어요 하고 있는 커피는 얼핏 봐선 비까bica, 그러니까 에스프레소 같지만







잔이 좀 큽니다. 커피 반, 우유 반을 섞은 메이아 드 레이뜨meia de leite에요. 메이아는 절반, 레이뜨는 우유를 뜻합니다. 어제 마신 갈라웅galão은 커피랑 우유가 1:2 비율이라 이것 보다 양도 많고 맛도 부드럽... 싕겁습니다.









쇼케이스 안에는 요렇게 달달한 빵이 가득합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아침식사로 커피와 빵을 먹는게 보통이라는데, 특히 요런 단 빵도 아침으로 많이 먹더라구요. 한입 베어물면 오렌지빛 크림이 쫘악 삐져 나오는 설탕 범벅 큼직 도나스 같은 걸 아침 8시에 드시는 할아벗님들을 보며 야 이 나라 왠지 되게 좋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것이 사랑받는 좋은 나라...

그나저나 또스따 미스따를 바삭 베어물며 우어 맛있다 하고 있는데 두둥 하고 등장한 쌍둥이.







근엄한 눈빛의 그분. 자주 오는 모양인지 바쁘게 일하던 빵집 아저씨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뽀뽀를 쪽쪽 해준 다음 어이구 와쪄 뭐 줄까아 뭐 먹을래에 어이구 그래쪄로 추정되는 포르투갈어를 좔좔 읊습니다. 다음날도 여기서 아침을 먹었는데 얘네 또 봤음. 









아침식사는 4.3유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빵집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호시우rossio 역으로. 거기서 기차를 타고 근교로 이동할 거에요. 









그리하여 호시우 지하철 역에 도착해 호시우 기차역을 찾으니, 어라, 연결 통로가 있거나 아니면 바로 근처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금 떨어져 있네? 알고 보니 지하철 헤스타우라도로스restauradores 역이랑 더 가깝다고 합니다. 근데 호시우 역에선 걸어서 5분이고 헤스타우라도로스 역에선 2분이니 걍 거기서 거기여.

그나저나 좀 전에 길 가르쳐 주신 아벗님이 분명 저 골목으로 나가면 바로 앞에 있다고 하셨지만 어째 기차역이 보이지 않는데요?







정면엔 이런 건물만 있는데?









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이곳이 바로 호시우 기차역인 것입니다. 여기 왜 이렇게 예쁜가요! 

호시우 기차역은 1891년 완공된 이후 1954년까지 리스본의 중앙 기차역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장거리 노선이 다른 역으로 옮겨가고 단 하나의 노선만 남았습니다. 저는 오늘 그 기차를 타려고 여기에 온 것이구요. 

근데 호호 여기 1층에 스타벅스 있다아? 대체 누가 리스본까지 와서 스타벅스를 가냐고 말하면서 내가 막 가고 싶다아?







리스본에서 기차로 딱 40분 걸리는 그곳, 신트라Sintra 행 기차표를 구입합니다. 

지하철이며 버스, 트램 등에서 이용할 수 있는 비바 카드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요것은 신트라 왕복 기차 전용 티켓이에요. 기차뿐 아니라 신트라 근교로 가는 열차, 그 지역의 버스도 요걸로 탑승이 가능하니 리스본으로 컴백하는 순간까지 고이 품고 다녀야 하겠습니다. 요금은 15유로인데 카드값 0.5유로까지 15.5유로구먼.







15분에 한 대 꼴로 있다는 신트라 행 기차. 현재 시간 아침 9시 26분입니다. 사진으로 봐서는 뭔가 차암 한산해 보이는 게 호호 신트라 텅텅 비었을 것 같아 거기 가는 사람 나 밖에 없나봥 싶지만









열차 안은 아주 그냥 미어 터짐. 다음 열차를 타느니 서서 가겠다는 사람들이 한가득입니다. 

론리 플래닛님이 말씀하시길 네가 정녕 신트라에 가고 싶다면 여름 성수기를 피하고 주말을 피하여라 라고. 저기요, 오늘이 딱 그런 날이거든요? 4월 23일이고 목요일이거든요? 대체 성수기엔 어떻다는 것인지 어우 생각만 해도-.-







그리하여 더도 덜도 아닌 딱 40분 만에 신트라에 도착했습니다. 

우워어어 하며 기차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머리와 머리 사이로 살풋 살풋 보이는 벽의 타일이 예뻐요.







카드 뾱 찍고 밖으로.









역 안의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동네 설명이라도 들어야 할까 생각했으나 호호 끝없는 줄을 보니... 음... 그냥 사람들 따라 가면 될 것 같...









그리하여 우리 꽃패딩 어멋님 뒤를 졸졸 따라 역 바로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탑니다. 

오른쪽 직원 오빠가 얘야 티켓을 보여주렴 하길래 여기요 하고 기차 티켓을 보여주니 바코드를 띠딩 찍어 확인후 스티커를 하나 콕 붙여줘요. 이제부터는 요 스티커만 보여주면 다 되는 것입니다요.







기차에 사람이 그리 많았으니 버스는 또 어떻것습니까. 팍삭 낑겨 으억 나 죽는다 절규하며 신트라 시내 중심가를 지나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 도착한 이 곳은 바로 페나 궁전Palácio Nacional da Pena. 페나 궁전 국립공원Parque e Palácio Nacional da Pena 안에 있는 궁전입니다. 

매표소 앞에 붙어 있는 요금표를 보니 어디 보자, 국립공원이랑 궁전이랑 해서 14유로인데 국립공원은 무진장 넓으니 여기서 1박 할게 아니면 좀 무리겠네, 그럼 궁전 입장권만 끊어야지... 라고 생각했으나 호호 그런 입장권은 없구만요. 이눔시키들ㅋㅋ 결국 페나 궁전을 보고 싶은 성인 개인이라면 최소한 14유로는 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드넓은 숲을 탐험할 것이 아니라면요,







아무렴 어떻것습니까. 

이렇게 날씨가 좋은걸요.







매표소에서 성까지는 이렇게 예쁘장한 언덕길입니다. 두 곳을 연결하는 셔틀버스가 있긴 한데 직원 왈, 걸어서 15분 정도라길래 에이 그럼 걸을래 하며 올라가는 중이에요. 그런데 허허 약 5분 거리여. 이건 15분 걸리기도 힘들것습니다. 삼보일배 하면 모를까-.- 

결론은, 기분좋은 산책길이라는 것!







드디어 쩌어기 페나 궁전이









근데 어머?









으엌ㅋㅋㅋ 뭐죠 이 느낌????









이렇게도 맑은 하늘 아래, 쨍한 햇살 아래 알록달록 생크림 케익 같은 성채가 쿵야 하고 나타나 버리니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힙니다. 

맨 아래 푸른 빛 외벽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들을 보고 아, 궁전이니까 저 구멍으로 총이나 대포 같은 걸 쏘지 않았을까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화... 화분 올려놓는 선반이구만요. 뭡니까 여기 왤케 귀여워!!!!!








야 여기 심상치 않은데? 하며 두근두근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뭔가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곳.









설레는 마음으로 아치 문을 통과하니









어우야 파란 하늘 노란 성채 어우야









어우야 디테일 어우야









야 나 이거 되게 설레는데? 하며 조금 전 매표소에서 받은 지도를 부스럭 부스럭 펴 봅니다. 그렇구나, 이 궁전은 이렇게 생겼구나.








놀이 동산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뽀샤시하고 귀여운 궁전이지만 실은 반대입니다. 디즈니랜드를 비롯한 많은 놀이 동산들이 이곳 페나 궁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어졌다고 해요.









대체 누가 어떤 영감을 받아 설계하고 건축한 궁전일까, 여기 진짜 웃긴다 하며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궁전이 지어진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도! 나도! 나도 끼워줘! 하며 어떻게든 참여하고픈 프로젝트입니다. 어떤 클라이언트인지 만나보고 싶엉!

쿠욱 찌르면 쑤욱 들어갈 것만 같은 실한 덩어리감. 스티로폼을 쌓아 올려 사포로 살살 깎은 것 같기도 하구요. 내부를 둘러볼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아름다운 곡선과 직선, 패턴과 컬러를 보면 모로코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해요. 아니 이게 대체 어떤 양식이여 시방?

다음 포스팅에서 본격적으로 페나 궁전 곳곳을 구경해 보것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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