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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14. 남의 집 남의 방 구경

흥이 넘치는 페나 궁전Palácio Nacional da Pena의 내부를 본격적으로 구경해 봅니다. 

그러고 보면 여기는 왕궁이야 옛날 사람이 살았던 곳이지 하며 입장료를 내고 성큼성큼 들어가 사진도 찍고 있긴 한데 실은 그저 남의 집, 남의 방, 남의 세간살이를 구경하는 거란 말이죠. 포르투갈 왕족들은 이런 미래의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








왕이 그림을 그리며 취미생활을 했던 공간입니다. 그리다 만 듯한 이젤 위 캔버스를 보며 잘 그렸네 못 그렸네 느낌이 있네 없네 하며 한 마디씩 하는 서민ㅋ들을 보면 왕께서는 뭐라고 버럭하실런지.









뿐만 아니라 옛 문인들이 주고 받은 편지들, 특히 내밀한 연애 편지 같은 것도 탈탈 털리는 경우가 꽤 많잖아요? 어우 당사자들이 알면 무덤 속에서 발차기를 퍽퍽 날릴 것 같은데 말여요. 안네 프랑크처럼 전 세계에 일기가 공개되는 경우는 또 어떻구요. 









라는 생각을 하며 페나 궁전의 여러 방들을 순서대로 쭉 돌아봅니다.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침대와 테이블, 테이블보, 실내 장식물들. 특히 침대를 보면 당시 사람들의 키가 어느 정도였을지 대충은 짐작이 가요. 








궁전의 여러 방들은 건물 내부 중정을 쭉 따라가며 감싸고 있는 회랑과도 연결됩니다. 환기하기 좋것다. 

보통 요런 회랑은 수도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페나 궁전 터가 16세기까지 수도원이었기도 하고, 또 요런 스타일이 나름 유행이기도 해 갖다 써 먹었다고 하는구만요. 








2층짜리 회랑 구조. 

회랑이 있으면 내부에 레이어가 한겹 더 생기는 셈이라 그만큼 실내 공간은 줄어들겠지만 깊이감이 생기는 장점이 있겠네요. 하기사, 가정집도 아니고 궁전씩이나 되는 곳인데 건평이 어쩌고 실평이 어쩌고 따지는게 우습겠지라. 우얏든동 페나 궁전의 회랑은 이렇게 아름다운 아랍풍 타일로 촘촘히 장식되었습니다. 

1852년 페나 궁전이 완공된 후 포르투갈 왕가에서 대를 이어 가며 여름 별궁으로 쏠쏠히 잘 사용했다니 지금 남아있는 요런 장식이라던가 실내의 가구, 집기들은 궁전을 지은 동 페르난도 2세Don Fernando II와 여왕 도나 마리아 2세Dona Maria II가 완성한 기본 스타일에 포르투갈 왕조의 마지막 왕족들 취향이 더해진 것이 아닐까요.








마침 벽에 포르투갈 왕가의 가계도가 붙어 있구먼. 위에서 두번째 줄, 왼쪽 두번째 언니랑 세번째 오빠가 바로 여왕 도나 마리아 2세랑 남편인 동 페르난도 2세입니다. 

근데 가계도를 잘 보시면 동페르 오빠 오른쪽으로 줄 하나가 찍 그어져 있잖아요? 거기 또 어떤 언니가 딱 있잖아요? 이 언니가 누구냐, 동페르 오빠의 둘째 부인입니다. 도나 마리아 2세가 사망한 후 동 페르난도 2세는 엘다 백작부인Condessa de Elda과 재혼을 합니다. 그리고는 이곳 신트라의 페나 궁전에서 알콩달콩 살다가 세상을 뜨게 되구요. 이때 남겨진 둘째 부인 엘다에게 유산으로다가 뭘 물려주느냐, 살던 집, 그니까 페나 궁전의 소유권을 준겨. 







그래서 엘다 백작부인은 이곳 페나 궁전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되었는데, 문제는 여론이 드럽게 나빴다는 겁니다. 야 아무리 왕실 소유 부동산이라고 해도 한 나라의 어엿한 궁전인데 이런 식으로 막 물려주냐! 쫌 그렇다! 국격이 떨어진다! 이러면서 말이죠.

그리하여 결국 포르투갈 왕실 사람들이 엘다 백작부인과 샤바샤바 네고해 페나 공원(현재 국립공원) 안에 살 집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페나 궁전을 다시 매입하게 돼요. 

이후 이곳은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쭈욱 쓰이다 1910년 민주혁명으로 군주제가 폐지된 후 정부에 귀속되고, 1911년엔 페나 궁전과 주변 공원이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라고 역사 함 읊어봤슈. 

그나저나 어우 계단 손잡이 디테일 봐. 종잡기 힘든 온갖 양식들이 뒤섞인 매력적인 곳입니다. 도나 마리아 2세와 동 페르난도 2세 부부간 쿵짝이 잘 맞으니 외주업체도 일할 맛이 나지 않았을까요. 전하 유럽 어드메에서 요런 게 유행이랍니다 하며 샘플을 보여주면 야 고거 재밌겠다 해보자 하며 결재도 금방금방 내 줬을 것 같아요. 결제도 금방 해 줬으려나...








어머 내가 무슨 소릴ㅋ 

하여간 페나 궁전이 완공된 후 캬아 거기가 그렇게 예쁘대 라는 소문이 쫙 퍼졌는데, 동 페르난도 2세의 사촌인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2세Ludwig II도 여기 함 놀러왔다가 감명을 받아 이후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ß Neuschwanstein을 지을때 은근히 참고했다더라~ 라는 설이 있습니다요. 너 이쉑기 형 집이 부럽냨ㅋㅋ 하니까 정색하며 아니야 안 베꼈다구 이러면서 싸우는 장면이 상상됩니다. 

어쨌든 동화 속 궁전의 진짜 원조집인 페나 궁전. 그런 곳을 직접 돌아보고 있다니 괜히 막 좋아요. 







샤방샤방 노란 벽, 뽀골뽀골 천정 장식









방 주인의 모습이 담긴 액자.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비인 아멜리아Amélia de Orleães 왕비입니다. 오를레앙 그니까 불란서 출신입니다. 아멜리아의 둘째 아들 마누엘 2세Manuel II가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만 민주 혁명으로 2년만에 폐위되었어요. 한 왕조의 마지막 왕족이라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이 방은 페르난도 2세와 둘째 부인 엘다가 사용했던 침실을 물려받아 새로 꾸민 것이라고. 

소파 색깔 좋습니다. 그치만 과자 같은 것 먹다 보면 저 쏙쏙 들어간 곳으로 부스러기가 미친듯이 끼겠지...







하여간 그렇게 이 방 저 방 구경을 하며 쭉쭉 앞으로 나갑니다. 어이구 여긴 벽이랑 천정 조각 장식이 정교한데... 라고는 하지만 뭔가 좀 어색한 감이 있는데









여기두요. 얼핏 보는 거랑 음? 하고 보는 거랑 좀 다르지 않습니까요?









라는 것은 ㅋㅋ 이거 실제로 조각한 게 아니라 그린 거임. 

조각보다야 이 쪽이 훨씬 싸게 먹히것지 싶기도 하지만 설마 한 나라의 궁전 인테리어 예산 절감용으로 그렸것습니까. 당시 유행하던 트롱프 뢰유trompe-l'œil 기법이라고 해요.

최~대한 진짜처럼 그리는 것. 띠용 하며 튀어나올 것 같은 극사실화라던가 요런 건축물 내부 장식에 많이 쓰이는데 전 요게 그렇게 봐도 봐도 재밌더라구요. 낮은 천정이 노옾아 보이게 그린 것도 좋구요.








헤헤 요건 좀 만만해 보인당









요쪽 벽 트롱프 뢰유도 단순하구요.









요 천정처럼 아라빅 패턴과 트롱프 뢰유를 접목시킨 것도 무척 멋있어요. 얼핏 봐선 나무판 착착 재단해 슥슥 잘라서 붙여 만든 것 같지만 저 두께감 저거 다 그린 거라니깐?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서도 긴가 민가 싶어 사진을 찍은 후 확대해 보고서야 아~ 그렸구나 했습니다. 









그렇게 방들을 쭉 구경하며 걷다 보면









자연스레 요 테라스로 나오게 됩니다. 

실내에 있다 밖에 나오니 어휴, 햇볕이 엄청 쨍해요!








작은 매점과 까페를 겸한 가게와 테이블, 의자가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습니다... 가 아니라 어우야 이 날씨! 이 하늘! 잠깐이라도 앉았다 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에요.









그리하여 탄산수 한병 사서 시원하게 마시는 중입니다. 탄산수는 아구아 꼼 가스água com gás라고 하는데, 어지간한 식당이나 까페에서 탄산수를 주문하면 으레 요 뻬드라스pedras라는 브랜드 제품을 주더라구요. 맛은... 탄산수맛...









하늘 한번 보고









부스럭 부스럭 지도를 펴 현재 위치도 콕 찍어봅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거그가 여그여. 이렇게 보니 어우 지금 대단한 곳에 앉아 있는거네 라는 기분이 들어 괜히 으쓱으쓱. 









지도를 홱 뒤집으니 페나 국립공원Parque e Palácio Nacional da Pena 전체 모습이 요렇게 담겨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콕 찍은 곳이 페나 궁전이니 공원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이 가시것지요. 트래킹 코스로도 좋다고.









지금까지 방문했던 많은 궁전들 중 제일로 마음에 든 곳









혼자 낄낄 웃으면서 즐겁게 본 곳









페나 궁전, 안녕!









신트라 좋은데? 마음에 드는데? 하며 언덕길을 걸어 입구로 내려갑니다. 아까 기차역 앞에서 탔던 버스를 다시 타려구요.









434번 버스 정류장.

리스본과 신트라를 왕복하는 기차표에 신트라 버스 무제한 탑승권이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요 434번을 많이 타게 됩니다. 신트라 기차역, 시내 중심부, 페나 궁전을 비롯해 신트라의 중요한 포인트를 콕콕 찍으면서 다니는 버스거든요.







그런고로 여기 서서 잠시 기다렸다가









버스에 올라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돌아 내려갑니다. 차내 방송을 듣고 다 왔다! 하며 내리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냉큼 탑승. 그래서 여기가 어디냐면








신트라 시내 중심부인 빌라 드 신트라Vila de Sintra. 신트라 여행의 첫 단추를 잘 꿰었으니 이제부터 시내 구경을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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