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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15. 빌라 드 신트라

페나 궁전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와 도착한 이 곳은 빌라 드 신트라vila de Sintra, 또는 신트라 빌라Sintra-vila 라고 하는 지역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신트라 시내인 것이야요. 

그럼 시내에는 무엇이 있느냐, 지금부터 쭉 돌아 보것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서 아름다운 푸른 빛의 타일 아줄레주azulejo가 오가는 사람들을 살살 유혹합니다. 저기 언니들 오빠들 지갑 한번 열어보지 않겠어?









아줄레주 뿐인가요. 포르투갈의 상징, 바르셀로스의 수탉galo de barcelos 모양의 도자기가 꼬리를 살살 치고









숨 쉬기 괜찮을까 싶은 우리 열쇠고리 오빠들도 짤랑짤랑중. 









한 마디로 신트라 시내엔 온갖 어여쁜 기념품들이 가득하다는 이야기 되것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드시며 호호 자주색 유리 그릇을 살까 푸른 빛깔 유리 화병을 살까 고민중이신 어멋님.







여행 초반이라 아직은 몸을 최대한 사리고 있지만 포르투갈 기념품 상점의 물건들이 어찌나 예쁜지 and 가격도 괜찮은지 슬슬 손톱이 드릉드릉 합니다. 

지난번 모로코 여행때 그릇을 아주 그냥 이고 지고 왔던 관계로 이번엔 어지간하면 무거운 건 사지 말자 하고 있지만 과연... 호호홍...








코르크 생산량 세계 1위의 나라답게 다양한 코르크 제품들이 있습니다. 특히 요런 가방 같은 것들은 말하지 않음 코르크인줄 모르지 싶어요. 아주 가볍고 부드럽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온 사방에 기념품 가게가 가득한 빌라 드 신트라, 그러니까 신트라 중심부에는 페나 궁전 못지 않게 이 지역을 대표하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여기여. 신트라 왕궁Palácio Nacional de Sintra입니다. 페나 궁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에요. 

무어인이 이 지역을 지배하던 약 10세기경에 지은 건축물을 기본으로, 요기는 이렇게 조기는 조렇게 하며 조금씩 확장공사를 해 지금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포르투갈 왕조의 여러 궁전 중에서도 제일로 보존상태가 좋다고 해요. 

근데 이렇게 쓰면 곧장 저 안으로 들어가 여얼심히 구경을 한다는 얘기 같지만








어우 조금 전 페나 궁전이 어찌나 좋았던지 괜히 다른 유적에 들어가기가 싫습니다. 이 상태에선 뭘 본들 눈에 찰 것 같지도 않고 영양가 없는 비교만 잔뜩 하다 나올 것 같아요. 









그런고로 저는 요 이쁘장하게 생긴 좁은 언덕형 골목길을 구경해 보것습니다.









이곳 역시 바닥엔 칼사다 포르투게사calcada portuguesa가 쫙 깔려 있는데 특정 무늬를 표현하는 대신 어둡고 밝은 색의 돌을 불규칙적으로 점점이 흩어지듯 배열해 놓았습니다. 오가는 사람들 발길에 반들반들 닳은 돌 표면. 눈 오고 비 오면 너 죽고 나 죽는거여.









하여간 그래서 요 언덕 골목길에는 무엇이 있느냐, 상어가 어흥 하고 있는 레스토랑도 있고









아줄레주 공방들도 좌라락









한마디로 관광객 어서오세요 매우 웰컴 하며 두 팔을 벌리는 골목인 것입니다. 지역 경제의 아주 큰 부분을 여행 수익이 책임지고 있구나 라는 것이 그냥 확 느껴져요. 베트남 중부의 호이안Hội An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그러고 보니 두 도시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호이안의 경우는 지나치게 서양인만을 위한 아시안 테마파크화 되었고 뭘 하든 흥정을 해야 하며 상인들이 불친절해 여행하는 동안 마음이 많이 불편했어요. 네 년의 지갑을 오늘 탈탈 털어가겠다 라는 호전적인 느낌. 호이안 뿐 아니라 베트남이라는 나라 전체가 좀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 어떤 의미로든 간에 돈은 빨리 벌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반대로 리스본과 신트라, 그리고 이후 포르투갈 곳곳을 여행하면서는 무척 마음이 편했습니다. 

근데 호호 이제 보니 요 도자기 가게에선 진쟈ginja도 파는구나.








초콜렛 컵에 쪼르륵 따라서 한입에 우적우적하면 딱 좋은 달달한 체리술 진쟈. 이곳 말고도 꽤 여러 가게에서 진쟈를 팔고 있는데 가격은 모두 똑같습니다.









진쟈 옆에는 도자기 정어리가 요렇게









벽에는 크기 다양 무늬 다양 형태 다양한 접시들이 가득하구요. 특히 오른쪽 맨 위의 문어 접시가 저의 심금을 에밀레종 울리듯 데엥데엥 울립니다. 그래... 오늘은 문어를 먹어야겠어...









포르투갈 전통 자수... 를 직접 놓은 것은 아니고 프린트한 천 제품도 무척 흔합니다. 큼직한 식탁을 다 덮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에서부터 손수건 크기까지 다양해요. 잘 보시면 꽃이라던가 식물 줄기 등 자연을 모티브로 한 패턴들 사이에 뭐라뭐라 글이 쓰여 있는데









이처럼 짧은 글귀, 싯구를 수 놓은 걸 꽈트로quatro 라고 해요. 옛날 옛적부터 포르투갈 소녀들은 연애 편지를 쓰는 대신 요렇게 손수건에 수 놓아 보내곤 했는데, 대항해시대에 접어들면서 애인이나 남편 등 사랑하는 사람을 바다로 떠나 보내게 된 여인들도 수 놓기에 동참했다고. 당시엔 여성이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아 철자, 문법이 많이 틀렸지만 현재엔 그런 오류까지도 하나의 문학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지금은 이 수건처럼 대량생산되어 기념품으로 널리 팔리고 있구요.








그렇게 이쁜 것들을 구경하다









슬슬 입에 단거를 넣어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눈 앞의 까페에 스윽 들어왔습니다. 실내는 물론이고 야외의 그늘 자리, 파라솔 테이블이 모두 꽉 차서 요렇게 땡볕 아래에 앉았어요. 

아니 이 가게 왜 이렇게 인기래? 요 바로 앞 테이블의 자주색 윗도리 어머님이랑 눈이 딱 마주친 김에 호홍 여기 드럽게 사람 많네요 떼돈 벌겠네요 호호홍 하고 말을 거니








자주색 그분 왈, 어머 얘 여기 유명한 집인데 몰랐니 라고. 알고 보니 인기있는 달두왈 가게의 2호점이라고 합니다. 그 그런거유? ㅎㅎ









그리하여 신트라 명물이라는 달두왈 2종과 비까bica커피를 냉큼 주문했습니다. 호호 역시 난 친절해 라는 듯한 그윽한 눈빛의 그분. 자기는 주문할까 말까 고민중이라며, 언능 먹어보고 맛이 어떤지 말해달라며 기다리는 중이셔요.









진한 갈색의 둥그런 것은 께이자다queijada, 설탕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다 온 네모진 것은 트라베세이루travesseiro에요. 께이자다는 쬐깐한 것이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랑 비슷한 크기인데









얇고 바삭한 타르트 쉘 안에 치즈 맛이 솔솔 나는 달달한 필링이 가득합니다. 치즈, 설탕, 밀가루, 계피, 달걀 노른자 등으로 만드는데 파스텔 드 나타처럼 물컹하고 부드러운 크림 필링이 아니라 컵케익의 빵 부분 같은 질감이에요. 타르트 쉘은 나초 칩(맛은 전혀 다르지만)처럼 바삭하게 부서지구요.









한편 트라베세이루는 아몬드 향이 물씬 풍기고 달걀 노른자 맛이 꽤 진한 달달한 크림이 든 페이스트리인데 한입 베어무니 일곱 번 접어 만들었다는(그래야 진정한 트라베세이루랴...) 파이가 아주 파삭파삭하면서 겉에 잔뜩 뭍은 설탕이 아작아작 씹히는게 상당히 맛있습니다. 유명세는 께이자다 쪽이 높다는데 맛은 트라베세이루가 더 좋은데요? 

그나저나 구글에서 travesseiro를 검색하면 웬 베개 사진이 쫘라락 나오는데, 트라베세이루가 베개라는 뜻이라 그렇습니다요. 생긴게 베개랑 비슷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께이자다는 1유로, 트라베세이루는 1,4유로, 비까 커피는 1.1유로. 다 해서 3.5유로 되것습니다.







골목 탐방 계속. 뜬금없이 등장하신 시인 바이런 경Lord Byron인데 실은 뜬금있는 등장입니다. 18세기 후반에 태어난 바이런은 19세기 초반 이곳 신트라에 여행을 왔더랬어요. 당시 영국 사람들 사이엔 날씨 칙칙한 본국을 떠나 화창한 나라를 여행하는 게 엄청 유행이었다고 해요. 유럽에서도 햇볕 따땃하기로 소문난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 반도를 또 그렇게 좋아했댑니다. 









하여간 그래갖고 짐 꾸려서 신트라에 딱 왔더니 어머 웬녈 날씨가 진짜 좋은거야. 영국에서 맨날 비 맞고 살다 신트라에서 제대로 비타민 D를 합성한 바이런 경은 너무나 감동을 먹은 나머지 설화시 Childe Harold's Pilgrimage에 'Lo! Cintra's glorious Eden intervenes In variegated maze of mount and glen.' 라는 멋진 문장을 쓰게 됩니다. 에덴 동산에 비유할 정도였으니 어지간히 좋았던 모양이야요. 

우얏든동 그런 인연이 있다 보니 신트라엔 바이런 경의 초상화가 담긴 엽서라던가 바이런 까페 바이런 와인바 등이 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페나 궁전은 바이런이 다녀간 이후에 지어졌는데, 만약 바이런이 그곳까지 보았다면 또 뭔 소리를 했을런지 궁금하네요.








여러 장의 타일을 이어 붙여 만든 종교화. 

어우 다 해서 멫장이여. 이건 규모가 좀 큰 작품이라 엄두가 나지 않지만 타일 네 장 정도를 붙인 것 정도라면 여차저차 조심조심 짊어지고 다닐 수 있을지도요. 

지난번 모로코 여행때도 타일을 사느냐 마느냐, 왕캉 사다가 테이블이라도 만드느냐 마느냐 고민을 하다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새삼 다시 욕심이 납니다.








전사지를 붙인 대량 생산품은 2.8유로, 손으로 그린 것은 7.5유로라고 써 붙여 놨구먼. 

검색을 해 보니 리스본을 비롯한 몇몇 도시에 요 아줄레주를 직접 그려볼 수 있는 수업들이 좀 있더라구요. 호호... 해볼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요런 타일 간판도 깔끔하니 좋고









요런 좀더 고풍스러운 표현도 좋구요. 

모로코와 터키 등 무슬림 국가와 스페인 남부에서 보았던 대로 타일 하면 으레 패턴, 그러니까 아라빅 패턴의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을 생각했는데 포르투갈에서 타일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새롭습니다. 이 자체로 하나의 정방형 캔버스가 될 수 있구나, 한 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을 붙여 캔버스를 확장시킬 수 있구나. 








아하 그렇구나 하며 웃게 되는 이런 순간이 참 기쁩니다. 이 맛에 여행을 하는 거 아니것시요. 

그렇게 실실 웃으며 이 골목 저 골목 기웃대다 보니 점점 언덕 위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야 여기 전망 괜찮다아









붉은 지붕들 너머 아까 갈까 말까 했던 신트라 왕궁Palácio Nacional de Sintra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 뭐 이따가 봐서 땡기면 가지 뭐.









오다 가다 왠지 눈에 밟히던 식당에 들어왔습니다. 그치만 날이 이래 좋은데 어찌 실내에 앉을 수 있것습니까. 차양 아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산들산들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차암 없어보이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부터 얻었사옵니다.









그리하여 쌍큼한 것을 먹겠다며 토마토랑 모짜렐라 치즈 샐러드 그니까 카프레제를 주문하였어요.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자알 먹고들 있니 맛은 괜찮니 하고 계신 흰 남방 하늘색 바지의 그분. 아마도 이집 사장님이시겠죠.







우적우적 맛있게 먹고 있으니









드디어 그분이 등장하셨어요. 뽈보 그렐랴두 꼼 바타타polvo grelhado com batatas! 

얼핏 봐선 얘가 웬 크라켄을 잡아먹나 하시겠지만 요것은 감자를 곁들인 문어구이입니다. 뽈보polvo는 문어, 그렐랴두grelhado는 굽는거grilled, 바타타batata는 감자여요. 줄기콩과 토마토, 당근 등도 곁들이로 나오고 문어 위에는 파슬리를 다져서 흩뿌렸습니다. 거기다 올리브 오일 아주 드음뿍~








칼로 슥슥 썰어 한입 먹으니 어우야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야들야들 쫄깃한 문어 다리에 향기로운 올리브 오일... 아오 이 나라 올리브 오일 우라질 진짜 맛있습니다. 간은 사알짝 세지만 그렇다고 너무 센 것도 아닌게, 속살 쫀득한 샛노란 감자랑 같이 먹으니 딱이여. 거기에 파슬리 향기까지 폴폴. 포르투갈 사람들 문어 차암 맛있게 해 먹는다더니 증말이구먼. 어제 낮에 먹었던 문어국밥 아로즈 드 뽈보arroz de polvo도 무척 좋았는데 이건 말이 필요 없네요.








탄산수 2유로, 샐러드 6.5유로, 문어 12유로. 다 해서 20.5유로입니다.

그나저나 차양 아래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걸 먹으니 하아 이렇게 좋을 수가.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눈을 슬쩍 감고 멍하니 앉아 있으니 아오 될대로 돼라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이번 여행은 빡빡하게 다니지 말자. 니가 뭔 놈의 영광을 보것다고 그렇게 바쁘게 다니냐. 뭔 영광을 보것다고 그렇게 사진을 찍어대냐.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그냥 눈으로 코로 입으로 피부로 들이마셔도 모자랄 시간에.







문어가 맛있었기 때문일까, 바람이 산들댔기 때문일까, 점심을 먹기 전과 먹은 후의 기분이 무척 다릅니다. 

좋은 느낌을 가득 안고 다시 신트라 골목을 돌아봅니다.







아줄레주 공방이 많으니 레스토랑은 저쪽이에요 호텔 전망대는 저쪽이에요 등의 표지판도 요렇게 타일로 만들어 붙였네요. 맨 위에 붙은 것이 제가 지금 막 문어를 먹은 레스토랑 표지판입니다.

자자 맛있는 걸 잔뜩 먹었으니 신트라 구경을 계속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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