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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16. 시내에서 다시 산으로

크라켄을 구워먹고 매우 만족한 신예희씨는 온 안면에 흐뭇한 미소를 띄고 실실 쪼개며 다시 신트라 골목 탐방을 나섭니다. 이게 참 웃긴게, 같은 풍경이라도 공복 상태에서 보는 거랑 배부른 상태에서 보는 거랑 느낌이 꽤 달라요. 그리고 맛있는 걸 먹고 배부를 때랑 맛없는 거 먹고 배부를 때랑도 매우 다름... 라고 쓰다 보니 호호 이 무슨 당연한 소리를...








언니 모해 오빠 모먹어









사워 체리인 진쟈ginja 담금주를 파는 요런 가게들이 무척 많습니다. 오른쪽 현수막 상단에 licor de ginja라고 쓰여 있는데 리꼬르licor는 liquor를 뜻하는 포르투갈어니까 체리 리큐어 라는 뜻이에요. 이걸 줄여서 으레 

진쟈ginja라고 하지만 정식 이름은 진지냐ginjinha 입니다. 즉 진쟈는 재료, 진지냐는 술 이름.








나두줭 한잔줭









쬐깐한 초콜렛 잔에 찰랑하게 담긴 진쟈. 사알짝 호로록 한 다음 곧바로 입 안에 몽땅 털어놓고 우물우물 씹어 먹었어요. 

진쟈는 오비두스Óbidos라는 도시의 특산물인데 사실 원조는 리스본이라고 합니다. 왜, 어제 호시우 광장 근처의 상 도밍고 성당Igreja de São Domingos 갔었잖아요? 옛날 옛적 거기 수도사 오빠들이 남아도는 체리로 술을 담가 마셔보니 괜찮길래 주변에 쫙 나눠주어 큰 인기를 끌었다 해요. 지금도 상 도밍고 성당 앞엔 진쟈를 파는 오래된 술집들이 좀 있구요.

이후 리스본 및 주변 도시로 퍼졌는데 그중 오비두스가 요 진쟈를 대량 생산하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기 시작해 지금은 진쟈 하면 오비두스 라는 식으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마케팅... 중요하죠... 







초콜렛 잔에 진쟈를 담아 마시는 것 역시 오비두스에서 제일 먼저 시작해 유행시킨 것인데, 실은 이게 의외로 역사가 짧습니다. 오비두스는 진쟈 말고도 초콜렛을 갖고 또 그렇게 마케팅을 잘 하는 곳인데(여기 마케팅팀 일 참 잘하는 듯) 매년 초콜렛 축제를 하거든요. 근데 지난 2002년, 한 초콜렛 가게에서 아이디어 상품으로다 요런 잔을 만들어 진쟈를 꼴꼴 따라서 팔았는데 히트를 쳐 지금은 전국구로 쫙 퍼진 것이라고 합니다... 

라고는 하지만 저는 요게 귀엽긴 해도 진쟈의 맛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옵니다. 왜냐면 해당 축제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의 초콜렛 컵은 대량 생산품(마트에서도 팔아유)인데 퀄리티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거든요. 질이 좋은 초콜렛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것구만요. 혹은 유리잔에 진쟈를 한잔 따른 후 제대로 만든 가나슈를 한 티스푼 정도 꾹 짜 넣어 홀랑 원샷한다던가... 꿍얼꿍얼... 







라고 맛있게 처먹고 뒷담화를 까는 1인입니다. 그나저나 어우 이 동네는 길거리 수돗가에도 아줄레주를 붙여놨어.









윤을 낸 돌을 의미하는 아랍어 al zulaycha, 그리고 패턴 타일이라는 뜻의 아랍어 zellige에서 유래되었다는 단어 아줄레주azulejo. 옛 유적 속에 남아 있는 동시에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무척 좋습니다. 포르투갈 여행을 하며 야 이 나라 참 매력있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런 현재 진행중인 전통 예술이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요 길바닥의 칼사다 포르투게사calcada portuguesa도 그렇구요. 포르투갈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옛것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기 때문에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이다... 라는 농담같은 얘기가 있지만 그보다는 관광 수익 증대를 위한 전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정 지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은 무엇 때문에 해당 지역을 찾는가, 한마디로 이곳의 사진발을 어떻게 해야 더 좋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 고것을 손가락 꼽으며 가늠한 결과가 아닐까요.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하다 보니 내 나라 내 지역도 여행자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급조한 트렌드와 뭉근한 클래식,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얼마나 멀리 보고 깊게 고민할 것인가.









라고 꿍얼꿍얼 불평좀 해봤엉ㅋ 그나저나 여전히 바쁘신 우리 바이런 오빠. 기념품점 간판의 타일 속에도 그분의 얼굴이 담겨 있고









요 가게의 엽서에도









요렇게 가득한 그분이십니다. 바이런 오빠가 이 사실을 알면 최고의 초상화가를 고용해 최대한 뽀우샤시하게 다시 그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ㅎㅎ 물론 지금도 멋지지만요.









하여간 신트라 중심부vila de Sintra는 요렇게 철저히 상업적인, 이쁘게 꾸며진, 방문자가 지갑을 샤르륵 열게 만드는 목적을 가진 곳입니다... 라고 쓰면 어우 상업적이야 라며 불평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에요. 타이완의 지우펀九份 상점가라던가 베트남 호이안Hội An에서는 무표정하고 생기없는 상인들을 보며 싫다 못해 슬퍼지기까지 했지만









이곳에서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물건, 음식 등 문화를 파는 사람들이다 라는 아우라와 자부심.









이 좋은 느낌을 많은 여행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언젠가 이 곳을 다시 찾았을 때 저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여행자들도 그런 좋은 기분을 느꼈으면 좋것는데... 요것은 인간적으로 좀 자신이 읎네...








하이고 아벗님 주머니에 손 넣고 걷다 넘어지시면 손목 똑 분질러져요 여기 돌바닥 미끄러와요









그렇게 요 골목 조 골목을 드나들다 다시 중심 광장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나저나 아까 점심으로 문어 먹기 전에 어떤 까페에서 께이자다queijada랑 트라베세이루travesseiro 라는 단거 먹었잖아요? 유명한 가게의 2호점이라 사람이 드럽게 많다고 했잖아요? 이제 보니 광장에서 골목으로 쏙 들어가는 입구에 1호점이 있스야. 요 노란 타일 타라라락 붙여 놓은 집, 삐리뀌따piriquita 입니다.







그르쿠나 그래서 요 앞에 사람들이 그렇게 오골오골 모여 있는 것이었구나. 

통박을 데굴데굴 굴려 간판에 뭐라뭐라 써 있는지 해석해 보자면, antiga는 오래됐다는 뜻이고 fàbrica는 생산자라는 뜻이고 queijada랑 travesseiro는 아까 먹은 달두왈이고 doce는 단거, regionais는 지역이니 합치면 '삐리뀌따 - 우리 동네 특산물 달두왈 파는 전통의 가게' 뭐 이런 의미 아니것습니까. 







근데 난 아까 2호점에서 이미 께이자다랑 트라베세이루를 먹었졍









라고는 하지만 이왕 왔는데 뭔가 다른 단거를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미간에 주름을 팍 짓고 고민하다 오빵 나 이거줭 하니 친절하신 그분이 싱글싱글 웃으며 요렇게 포장지로 싸 주셨어요. 사진으로는 그냥 종이로 쌌나보다 싶지만 실제론 오호? 싶은 포장기술입니다. 어케 어케 챡챡 접는 요령이 있는데, 이 가게뿐 아니라 많은 과자집에서 같은 방식으로 포장을 해 주더라구요.









...그치만 먹으려면 벳겨야 함. 오빠가 정성스레 접어준 포장지를 1초만에 다시 벳겨버리고 한입 우왕 먹으니 오오! 디스 이즈 매우 맛있다. 전체적으로 피칸파이의 필링 부분마냥 부드러우면서도 쫀쫀 탄력있는 질감의(그러니까 꽤 단단한 푸딩같은) 케익인데 위에 솔솔 뿌린 하얀 코코넛 과육 입자에서는 좋은 향기가 폴폴 풍깁니다. 요거 하나에 1.2유로에요. 아까 먹은 께이자다와 트라베세이루도 맛있었지만 걔네 둘은 지역 특산물이라는 유명세 덕도 크게 보는 듯 합니다. 









그렇게 선 채로 맛난 단것을 먹은 후









눈을 들어 광장을 바라봅니다.









쁘라싸 다 히뿌블리까praça da república 즉 히뿌블리까 광장. 신트라의 중심부이자 신트라 넘버원 유적지가 있는 곳인데









넘버원 유적지라는 것은 이거 아니겠습니까. 신트라 왕궁Palácio Nacional de Sintra.









근데 여전히 페나 궁전의 알록달록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구만요. 그치만 리스본에서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제일 유명하다는 여길 들어가 보긴 해야것지 싶기도 하고. 









그리하여 우물쭈물하다 왕궁 매표소에 들어가 줄을 섰는데 제 차례가 다 되었을 무렵 매표소 벽에 붙어있는 어떤 곳의 사진을 보고 와하하 웃으며 밖으로 다시 나와 버렸습니다. 그래 나 왕궁 안 가! 확 땡기는 데 가 버릴 거야!









그리하여 오늘 하루 죙일 잘 써먹고 있는 요 교통카드, 리스본과 신트라 왕복 기차 및 신트라와 근교 버스를 커버해주는 요것을 꺼내어 버스를 타고 다시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









까스뗄루 도스 모우루스Castelo dos Mouros에 와버린 것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Castelo는 카스테라... 라는 것은 뻥이고 castle 그니까 성을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요. Mouros는 Moorish. 합해서 무어인의 성입니다.

그래 신트라 왕궁 너는 이번에는 나랑 인연이 아니었나봐. 언제가 되었든 언니가 다시 신트라에 오게 되면 그땐 너 꼭 구경할께.







어우 딱 봐도 울창한 숲이네. 표지판을 보니 쩌어기 위로 400미터 정도 쭉 가면 되는 모양인데









말씀드리는 순간 다가오신 그분









언제 봤다고 미친듯이 친한척을 하고는









자 네년의 접대가 끝났으니 다른 여행자의 접대를 해야겠다 라며 시크하게 홱 지나갑니다. 아이 샹 드러워서 야 어디가 엉엉 가지마









눈물을 흩뿌리며 산길을 오르는 1인. 길이 요래 잘 닦여 있어 오르는 데 딱히 부담이 없구만요. 









그렇게 나무도 보고 풀도 보고 쩌어기 아래 시내도 내려다 보면서 올라가니 슬슬 성채가 나타납니다.









뭔가 굉장히 오래되었으면서 견고하면서 투박한 듯 하지만 빈틈없다는 느낌을 주는 성벽. 야 이거는 아주 쫀쫀하고 단단한데?








무어인의 성, 까스뗄루 도스 모우루스Castelo dos Mouros. 과연 어떤 곳일까 두근두근하며 입구로 다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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