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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17. 무어인의 성

울창한 초록 숲길을 걸어 무어인의 성Castelo dos Mouros 입구로 쏘옥 들어오니 딴딴 튼튼 성실하게 생긴 돌뎅이 바위뎅이가 저를 반겨줍니다. 능선을 따라 길다랗게 조성된 성곽 양쪽 끝에 큼직한 성채가 있는데, 그 중 일단 좀 낮은 성채 쪽으로 올라가 보겠사와요.(라고 말하며 벌써 헉헉댐)








한낮, 그러니까 점심때는 이미 지난 시간. 지금쯤이면 해도 너무 쨍쨍하지 않고 덥지도 않을거야 라고 생각하며(물론 그것은 착각이었네) 올라가 봅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왼쪽 저 위의 성채. 

중간 중간 꽂혀 있는 깃발 속 문양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시대에 따른 포르투갈 국기 변천사를 걸으면서 볼 수 있는 셈이에요.








라고 말하며 허억허억 헐떡헐떡









저기 왼쪽 아래 신트라 시내, 그러니까 빌라 드 신트라vila de Sintra가 보입니다. 

하이고오 멀리도 왔네 높이도 왔어. 이곳 까스뗄루 도스 모우루스Castelo dos Mouros, 무어인의 성은 해발 412m 지점에 지어진 성채입니다. 9세기 경 이 지역을 지배한 무어인이 지은 곳.







옛날 옛적 고대 켈트족은 이 산에서 달의 신을 숭배하는 의식을 치뤘습니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 9세기에는 무어인이 성채를 지었고, 다시 18세기에는 포르투갈 왕가가 산 전체를 공원처럼 꾸몄구요. 

그 긴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곳. 달에, 빛에, 소망에, 꿈에 가까이 닿아 있을 듯한 곳. 신트라의 산에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도 신트라 왕궁을 마다하고 여기 왔자낭. 근데 숨 차서 죽겠자낭. 그래도 저기 코 앞에 성채가 보이니 에잇 하며 힘을 내어 돌계단 쪽으로 올라갑니다. 









이러고 있으니 불가리아의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arnovo에서 차르베츠Tsarevets 성곽을 쫘악 걸어 돌아보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도 멀리서 그 긴 성곽을 바라보며 호호 이 더위에 누가 저길 가니 했는데 결국 갔거든요. 왜 그랬지?-.- 









그래도 이래야 내 몸에 무언가 새겨지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며 쭉쭉 올라갑니다. 

이제 다 왔다! 성채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은 동 조앙 6세Dom João VI가 1816년에 제정한 국기라고 해요.







신예희 잘했어 잘왔어를 중얼거리며 아래 풍경을 눈에 담은 후 카메라에도 담아 봅니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돌 성벽. 이 산에서 채취한 것들일까요,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공수했을까요.









라고 딴 소리를 하며 애써 쩌어기 맞은 편, 여기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성채를 무시하려 하는 1인입니다. 아오 더워 나 안가 배째









라고는 하지만 안갈 수 있간디. 에효 내 팔자야를 외치며 쭉쭉 걸어가 봅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규모가 으엄청난 성곽은 아니에요. 다 해서 3km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단지 저의 몸뚱이가 무겁고 왼쪽 무릎이 몇년 전 살포시 나갔으며 4월 말인데도 벌써 더워서 그럴 뿐... 아마 어지간한 분들은 호호 이것은 껌인걸? 하며 가볍게 휘리릭 오르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중간 지점의 작은 탑 안에 도나 마리아 2세Dona Maria II(그 왜... 페나 성 지은 그 언니요)가 1830년에 제정한 국기가 있길래 야 요건 또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찍었더니 나의 턱주가리가 나왔스야.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허억허억 앞으로









이제 진짜 다 온듯









은 아니고 쫌만 더 올라가니









동 알폰수 3세Dom Afonso III가 1248년 제정한 국기가 펄럭이는 성채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하으아 근데 국기고 나발이고 저 멀리 페나 궁전 저것이 나의 심금을 울리는구나.









묘한 궁전 페나 궁전, 그리고 묘한 성 무어인의 성. 이렇게 산 속에 있으니 살포시 아득해지는 게 여기가 어느 대륙 어느 나라인지 알게 뭐냐 싶습니다. 결국 같은 하늘이고 같은 산 아닌가.









성채 내부 계단을 걸어 올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오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달아오른 얼굴과 거칠어진 호흡을 달래고 있는 사람들. 너네도 힘들었구낭 나도 힘들었졍 하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1인이옵니다. 

요 오른쪽에서 펄럭대는 시원하게 생긴 깃발은 엔리께 백작Henrique de Borgonha이 무어인과 한참 전투를 하던 1095년에 제정한 것으로 이 성에서 나부끼는 여러 시대의 국기들 중 가장 오래된 거에요. 

이 엔리께 백작이라는 양반이 누구냐면 그 왜~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인을 축출한 후 포르투갈도 우리도 왕국이야! 를 선언했는데 스페인(당시 이름은 카스티야-레온 왕국. 요게 나중에 에스파냐 왕국이 됩니다)에서는 고것을 인정하지 못하것다 너네 땅은 우리 것이다 라며 뻗댔거든요. 그때 엔리께 오빠가 버럭하며 일어나 내가 그놈들과 싸우겠소 하며 전투를 벌였습니다. 포르투갈의 독립에 큰 역할을 한 오빠야요.







엔리께 오빠의 푸른 십자가 깃발은 이후 여러 형태로 변형되었는데 그중 요것은 동 산꼬 1세 Dom Sancho I의 1185년 버전입니다. 십자가 모양이 다시 다섯 개의 푸른 방패로 바뀌었어요.(배열은 여전히 십자 형태) 왜 방패냐, 이런 깃발은 주로 전투할 때 으쌰으쌰 들고 나갔기 때문에 다치지 않을 거야 잘 싸울 거야 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것쥬. 현재의 포르투갈 국기에도 이 푸른 방패 모양 심볼이 담겨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이 커플 여기요 나좀 봐봥 나 사진 좀 찍어줭








뿌듯하도다









스을슬 해가 저무려고 하니 올라온 길을 다시 살살 내려갑니다. 









그리고는 버스로 신트라 역 컴백. 









아까 오전에는 사람으로 무척이나 붐비던 곳이라 역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지금 다시 둘러보니 호호 예쁘장한게 보기 좋습니다. 

어느새 저녁 6시, 슬슬 리스본으로 돌아갑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딱 40분 만에 리스본 호시우rossio 기차역에 도착.









일곱 시 팔 분이로구나.









그리고는 대체 누가 여기까지 와서 저런 데를 가니 라고 했던 바로 그 호시우 기차역 1층 스타벅스에 샤샤샥 들어와 딴거 다 제껴놓고 무려 녹차-.-를 마시는 중이옵니다. 열댓 시간 비행기 타고 와서 스벅에서 녹티 마시는 영장류가 바로 나임. 그래도 무료 와이파이가 있는걸요... 나의 숙소에서는 와이파이가 안되는걸요 흑흑... 

그나저나 영수증에는 45분간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론 2시간 넘게 매우 잘 썼어요. 엉덩이 붙이고 진득히 앉아 여행 노트 정리를 열심히 했습니다.







신트라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신없이 기록한 후 핸드폰 시계를 보니 어이구야 9시 반이 넘었네. 부랴부랴 밖으로 나왔습니다. 









밤에 보는 칼사다 포르투게사









밤의 호시우 광장은 또 다른 느낌.









당일치기 신트라 여행, 꽤 좋았어, 좋은 곳이었어 라는 생각을 하며 호시우 광장을 지나쳐 걸어가









괜히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근처까지 가 봅니다. 밤에 봐도 예쁘구나. 반짝반짝 빛이 나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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