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무어인의 성

by 신예희

울창한 초록 숲길을 걸어 무어인의 성Castelo dos Mouros 입구로 쏘옥 들어오니 딴딴 튼튼 성실하게 생긴 돌뎅이 바위뎅이가 저를 반겨줍니다. 능선을 따라 길다랗게 조성된 성곽 양쪽 끝에 큼직한 성채가 있는데, 그 중 일단 좀 낮은 성채 쪽으로 올라가 보겠사와요.(라고 말하며 벌써 헉헉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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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그러니까 점심때는 이미 지난 시간. 지금쯤이면 해도 너무 쨍쨍하지 않고 덥지도 않을거야 라고 생각하며(물론 그것은 착각이었네) 올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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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목적지는 왼쪽 저 위의 성채.

중간 중간 꽂혀 있는 깃발 속 문양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시대에 따른 포르투갈 국기 변천사를 걸으면서 볼 수 있는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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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며 허억허억 헐떡헐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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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왼쪽 아래 신트라 시내, 그러니까 빌라 드 신트라vila de Sintra가 보입니다.

하이고오 멀리도 왔네 높이도 왔어. 이곳 까스뗄루 도스 모우루스Castelo dos Mouros, 무어인의 성은 해발 412m 지점에 지어진 성채입니다. 9세기 경 이 지역을 지배한 무어인이 지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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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고대 켈트족은 이 산에서 달의 신을 숭배하는 의식을 치뤘습니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 9세기에는 무어인이 성채를 지었고, 다시 18세기에는 포르투갈 왕가가 산 전체를 공원처럼 꾸몄구요.

그 긴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곳. 달에, 빛에, 소망에, 꿈에 가까이 닿아 있을 듯한 곳. 신트라의 산에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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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신트라 왕궁을 마다하고 여기 왔자낭. 근데 숨 차서 죽겠자낭. 그래도 저기 코 앞에 성채가 보이니 에잇 하며 힘을 내어 돌계단 쪽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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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있으니 불가리아의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arnovo에서 차르베츠Tsarevets 성곽을 쫘악 걸어 돌아보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도 멀리서 그 긴 성곽을 바라보며 호호 이 더위에 누가 저길 가니 했는데 결국 갔거든요. 왜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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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래야 내 몸에 무언가 새겨지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며 쭉쭉 올라갑니다.

이제 다 왔다! 성채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은 동 조앙 6세Dom João VI가 1816년에 제정한 국기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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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희 잘했어 잘왔어를 중얼거리며 아래 풍경을 눈에 담은 후 카메라에도 담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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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돌 성벽. 이 산에서 채취한 것들일까요,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공수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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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딴 소리를 하며 애써 쩌어기 맞은 편, 여기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성채를 무시하려 하는 1인입니다. 아오 더워 나 안가 배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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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는 하지만 안갈 수 있간디. 에효 내 팔자야를 외치며 쭉쭉 걸어가 봅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규모가 으엄청난 성곽은 아니에요. 다 해서 3km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단지 저의 몸뚱이가 무겁고 왼쪽 무릎이 몇년 전 살포시 나갔으며 4월 말인데도 벌써 더워서 그럴 뿐... 아마 어지간한 분들은 호호 이것은 껌인걸? 하며 가볍게 휘리릭 오르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중간 지점의 작은 탑 안에 도나 마리아 2세Dona Maria II(그 왜... 페나 성 지은 그 언니요)가 1830년에 제정한 국기가 있길래 야 요건 또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찍었더니 나의 턱주가리가 나왔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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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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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허억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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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다 온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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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니고 쫌만 더 올라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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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알폰수 3세Dom Afonso III가 1248년 제정한 국기가 펄럭이는 성채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하으아 근데 국기고 나발이고 저 멀리 페나 궁전 저것이 나의 심금을 울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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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궁전 페나 궁전, 그리고 묘한 성 무어인의 성. 이렇게 산 속에 있으니 살포시 아득해지는 게 여기가 어느 대륙 어느 나라인지 알게 뭐냐 싶습니다. 결국 같은 하늘이고 같은 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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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내부 계단을 걸어 올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오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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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오른 얼굴과 거칠어진 호흡을 달래고 있는 사람들. 너네도 힘들었구낭 나도 힘들었졍 하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1인이옵니다.

요 오른쪽에서 펄럭대는 시원하게 생긴 깃발은 엔리께 백작Henrique de Borgonha이 무어인과 한참 전투를 하던 1095년에 제정한 것으로 이 성에서 나부끼는 여러 시대의 국기들 중 가장 오래된 거에요.

이 엔리께 백작이라는 양반이 누구냐면 그 왜~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인을 축출한 후 포르투갈도 우리도 왕국이야! 를 선언했는데 스페인(당시 이름은 카스티야-레온 왕국. 요게 나중에 에스파냐 왕국이 됩니다)에서는 고것을 인정하지 못하것다 너네 땅은 우리 것이다 라며 뻗댔거든요. 그때 엔리께 오빠가 버럭하며 일어나 내가 그놈들과 싸우겠소 하며 전투를 벌였습니다. 포르투갈의 독립에 큰 역할을 한 오빠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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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께 오빠의 푸른 십자가 깃발은 이후 여러 형태로 변형되었는데 그중 요것은 동 산꼬 1세 Dom Sancho I의 1185년 버전입니다. 십자가 모양이 다시 다섯 개의 푸른 방패로 바뀌었어요.(배열은 여전히 십자 형태) 왜 방패냐, 이런 깃발은 주로 전투할 때 으쌰으쌰 들고 나갔기 때문에 다치지 않을 거야 잘 싸울 거야 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것쥬. 현재의 포르투갈 국기에도 이 푸른 방패 모양 심볼이 담겨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이 커플 여기요 나좀 봐봥 나 사진 좀 찍어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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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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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을슬 해가 저무려고 하니 올라온 길을 다시 살살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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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버스로 신트라 역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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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오전에는 사람으로 무척이나 붐비던 곳이라 역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지금 다시 둘러보니 호호 예쁘장한게 보기 좋습니다.

어느새 저녁 6시, 슬슬 리스본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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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와 마찬가지로 딱 40분 만에 리스본 호시우rossio 기차역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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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 팔 분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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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대체 누가 여기까지 와서 저런 데를 가니 라고 했던 바로 그 호시우 기차역 1층 스타벅스에 샤샤샥 들어와 딴거 다 제껴놓고 무려 녹차-.-를 마시는 중이옵니다. 열댓 시간 비행기 타고 와서 스벅에서 녹티 마시는 영장류가 바로 나임. 그래도 무료 와이파이가 있는걸요... 나의 숙소에서는 와이파이가 안되는걸요 흑흑...

그나저나 영수증에는 45분간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론 2시간 넘게 매우 잘 썼어요. 엉덩이 붙이고 진득히 앉아 여행 노트 정리를 열심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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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신없이 기록한 후 핸드폰 시계를 보니 어이구야 9시 반이 넘었네. 부랴부랴 밖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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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보는 칼사다 포르투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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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호시우 광장은 또 다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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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신트라 여행, 꽤 좋았어, 좋은 곳이었어 라는 생각을 하며 호시우 광장을 지나쳐 걸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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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근처까지 가 봅니다. 밤에 봐도 예쁘구나. 반짝반짝 빛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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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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