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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Dec 29. 2017

거미장군,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겠노라!


 나는 동물을 매우 좋아한다. 개 같은 늑대류를 좋아하고 호랑이도 좋아하고 최근에는 고래나 상어 같은 해양동물에게도 관심이 급상승하는 중이다. 뱀 같은 파충류도 다큐에 나오면 흥미롭게 쳐다보곤 한다. 아마도 난 포식동물을 좋아하나 보다. 얌전하고 귀여운 채식 동물보다는...

 그러나 거미나 곤충은 그다지 호감이 없는 편이었다. 오늘은 브라잇 동맹 연재가 늦어지고 있는 미안함에 내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 하나를 털어놓아볼까 한다. 어차피 이 매거진은 그리 인기가 있지 않으니 비밀을 말한다고 팍 퍼질 염려는 거의 안 해도 될 듯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늘 VR, AR, MR 등 딱딱한 이야기만 하였는데 한 번은 감성적인 글을 써도 괜찮을 듯하다.


이건 내가 실제 겪은 경험담이다.



 우리 집 화장실엔 거미가 살았었다. 


 자세히 모르겠지만 최소 몇 년은 나와 같이 산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것의 성별은 모르겠지만 느낌에 암컷 같기도 했다. 암튼 그 존재와의 만남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난 그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늘 그렇듯 아래층 화장실로 직행했다. 우리 집은 화장실이 두 개인데 위층 것은 부모님이 쓰고 아래층은 내 전용이다. 습관적으로 변기에 앉았다. 매일처럼 두 눈은 감긴 채였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누군가 날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뒤통수가 뜨끔했다. 난 변기 뚜껑을 덮고 물을 내린 후 변기 뒤쪽을 쓱 쳐다보았다. 화장실 조명이 그리 밝지 않아 변기 뒤쪽은 늘 그늘에 잠겨 있었다. '뻥뚫어'도 거기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거의 쓴 적은 없었다. 근데 이날 처음으로 살피는데 뻥뚫어 주변으로 뭔가 허연 것이 묻어 있는 것이었다. 실타래 같은 것이 원형의 검은 고무 주위를 살살 감싸고 있었다. 아침이라 급한 나머지 그냥 먼지겠거니 여기고 화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바로 잊어버렸다. 


 며칠 후 난 그것의 정체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 녀석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침 샤워하고 있는데 변기 옆으로 천천히 기어 나왔다.

 난 처음엔 잘못 본 줄 알고 물로 눈을 씻은 후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기절할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은색 타란튤라를 닮은 통통한 집거미가 나를 향해 멈춰 서 있는 것이었다. 살면서 수많은 거미를 보았지만 그리 통통하고 큰 건 처음이었다. 물론 아래 사진처럼 주먹만 하지는 않았지만 손가락 하나만은 했다. 다리털도 보였으니까. 우리 집엔 원체 벌레가 많이 나온다. 화장실 앞에는 파리채가 상시 대기 중인데 이건 파리채로 때리기에 징그럽고 무서울 정도였다. 


 아, 이 일을 어쩌지? 난 진짜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재빨리 변기 옆 세면대 밑에 위치한 하수구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샤워기 수압을 높여 센 물줄기를 그것에게 쏘아댔다. 화장실 문이 닫혀있기에 그것은 피할 길이 없었다. 물벼락을 맞은 그것은 발버둥을 치며 다시 변기 뒤로 가려고 했지만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악착같이 물을 그 길목에다 뿌려댔다. 드디어 힘이 빠진 그것은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오더니 마지막으로 하수구 구멍 모서리를 두 다리로 잡고서 버티었다. 정말로 살고 싶은 듯 절망적으로 붙잡았다. 하지만 난 잔인하게도 샤워기를 그리로 갔다 댔다. 그것은 수압에 힘없이 하수구 구멍으로 사라졌다. 뚜껑을 재빨리 덮은 후 난 변기 뒤로 가보았다. '뻥뚫어'를 꺼내었다. 세상에나, 허연 거미집이 그것을 빙빙 둘러싸고 있었다. 물로도 씻기지가 않아 손으로 떼어내는데 솜사탕처럼 끈적거렸다. 아까 그것이 여기서 꽤나 살았던 흔적이었다. 물론 독 같은 건 없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내 곁에 있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런데 아까 발버둥 치던 녀석의 모습이 점점 떠오르는 것이었다. 살려고 그리 애쓰는 걸 그대로 하수구로 수장시켜버렸으니 순간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암튼 복잡한 심정이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하루 정도 후유증을 낳았다. 그리고 그 뒤로 가끔 변기 뒤의 '뻥뚫어'를 살피는 버릇도 생기었다. 길이나 마당에서 거미를 볼 때마다 그때 그냥 둘 것 그랬나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하필 화장실에 집을 만든 그 녀석의 불운을 탓하며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곤 했었다.


<타란튤라>



 

 인생이란 건 참 알다가도 모르는 일인가 보다. 내 기억에 남을 또 다른 거미를 그 후 다른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것도 또 우리 집에서. 쓰다 보니 우리 집엔 거미가 참 많이 나오는가 보다ㅠㅠ.  '벌레 집합소'라고 불러야겠다. 집이 산에 위치해 있으니 당연하겠지.


 다행히 이번 사건은 저번처럼 마음이 쓰라리지도 공포스럽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흥미로웠다. 


 어느 여름날의 늦은 오후였다. 아마 일요일이었던 것 같다. 아래층 전용 화장실 옆 옆에 위치한 방으로 난 들어갔다. 다리미질판과 스팀다리미가 놓여 있고 예전 동생이 썼던 침대와 화장대가 놓인 방이다. 옷을 다리려고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왜 들어갔는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또 다른 녀석을 만나려는 운명이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씩씩하게 그 방으로 들어서려던 찰나였다. 난 그만 허겁하여 문지방에서 한 발자국만 내민 채 그대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세상에나,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큰 집거미가 (제일 큰 건 위의 화장실 사건 때의 그 녀석임.) 화장대 아래 서랍 모서리를 따라 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기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놈 역시 내가 멈추자 바로 움직임을 멈추어 섰다. 그것의 늠름하면서도 신중한 걸음걸이에서 난 수컷임을 확신했다. 


 근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과 내가 제자리에 마비된 채 서로를 뚫어져라 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역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리고 발 하나 땅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있는 그놈의 검고 반짝이는 눈알까지 다 들여다보았다. 녀석의 눈알은 총총했다. 


 마치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의 환생인 그 거미와 로마의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장군의 환생인 신디 황의 대결이 시작되는 듯했다. 우리의 주변 배경이 문득 바뀌었다. 수많은 이들의 생사와 지중해 패권을 걸고서 로마와 카르타고의 운명이 갈리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자마 전투지에 있었다. 양쪽 진영에서 서로를 관망하며 노려보는 두 장군의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졌다. 절대로 질 수 없다. 네가 먼저 비켜라! 난 못 비킨다! 

 

 그러는 동안 저걸 어쩌지? 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빨리 몸을 돌려 화장실 앞의 파리채를 가져와 때려볼까? 아니야, 그렇기에는 너무 크고 토실해. 그럼 개미퇴치 전용 스프레이를 가져다가 뿌릴까?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 들었다. 앞의 그것도 나의 이런 전략적 주저함을 알아차린 듯 느껴졌다. 그런데 불현듯 내 마음속에 어떤 뿌듯함 같은 것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보통 거미라면 내가 멈추어 서 있는 와중에 뒤로 아님 옆으로 도망치려고 할 텐데 저놈은 계속 부동자세를 유지한 채 나를 뚫어져라 주시하는 것이었다. 몸에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검은 눈알은 오직 나만을 향하고 있었다. 

'어라, 요놈 좀 보게.'

 퍽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예전 화장실 사건이 떠올랐다. 수장시켜 미안해 라는 후회가 다시 내 맘을 채우면서 어떤 여유 같은 것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살짝 감동까지 느껴졌다. 드디어 난 결정했다.


 영화에서 보았던 로마 황제처럼 난 오른손을 앞으로 쑥 내밀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용기에 감탄하였노라. 훌륭하도다. 거미장군,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겠노라. 너는 자유다."


 난 고개를 뻣뻣이 든 채 뒤돌아 방을 나와버렸다. 10분 정도 흐르고 다시 그 방으로 가 보았다. 거미장군은 사라진 후였다. 우리의 전쟁은 실제 역사와 달리 그렇게 무승부로 끝나버렸다. 그 후 난 장군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이후 난 그 사건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거미에 약간 흥미가 생기었다. 그래서 '브라잇 동맹'에다 거미를 집어넣어 버렸다. 바로 5층 집 정도 크기의 괴물거미  비와니프스 이다. 이것한테서 뽑은 실로 만든 마법 밧줄을 박지원이 가지고 다니는데 다음과 같은 효용이 있다. 


 - 절대 끊어지지 않고 길이도 자유자재로 늘어난다.

 - 밧줄이 꼬이거나 엉키지도 않으며 아무리 꽉 잡아도 손에 상처가 나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을 보면 악의 세력인 거미가 나오는데 바로 운골리안트 이다. 좁은 협곡 안에서 살고 괴물과도 같은 거미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호빗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산을 오르다 이것의 독침 공격을 받아 몸이 마비된다. 거미는 징그러운 외모 때문에 악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헐리우드 영화에선 거미가 외계에서 온 침략자 거나 행성에 살고 있는 외계 괴물로 나타난다. 난 그냥 그것의 외양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는데 나중 어디서 보니 거미나 곤충 같은 것이 외계에 생명체로 살아있을 확률이 아주 높다는 연구가 있단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이야기겠지 싶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미물이라 여기지만 사실 인간인 우리가 그보다 더 미물일지도 모른다. 


 거미장군은 자신보다 몇천 배나 큰 인간 앞에서 무서워서 도망치거나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나와 한판 기싸움을 벌였다. 자신의 생사가 걸린 전쟁에서 두려움에 결코 굴복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다. 로마라는 거대한 조직 앞에서 홀로 외로이 맞선 한니발처럼 그렇게 당당하고 용감하게 최선을 다해 버티었다. 만약 내가 거미장군이었다면 그놈처럼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담대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2018년 새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브런치도 더욱 흥하고 여러분에게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 희망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거미장군도 많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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