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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Dec 10. 2015

4. 프렐리야의 휜사슴 히든벅 - 1

4. 프렐리야의 흰사슴 히든벅  


 수진이 도착한 열 번째 황금잎블루베리나무는 여태 본 것 중 가장 크고 아름다웠다.


 다음 나무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는데, 문득 저 건너편의 눈이 쌓인 나뭇가지들이 사사삭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재빨리 블루베리나무 뒤로 가 몸을 숨겼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내밀어 앞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들이 부르르 떨리더니 커다란 뭔가가 옆으로 툭 튀어나왔다.


 세상에나, 그것은 하얀 뿔이 달린 흰 수사슴이었다. 신성한 빛에 둘러싸인 사슴은 위엄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녀가 다가가자 사슴은 움직였고 그녀가 멈추면 사슴도 멈추었다. 그녀가 잘 따라오고 있음을 확인한 사슴은 천천히 그리고 우아한 동작으로 길을 인도하였다.     


 잠시 후,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았다. 막다른 길이었다. 둥글게 펼쳐진 바위벽 앞으로 황금잎블루베리나무들이 가로수처럼 쭉 심겨있었다.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이곳은 무수히 많은 황금잎이 품어내는 빛으로 상당히 환했다. 그녀는 황홀해진 기분으로 바위 사이에 난 작은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그 안에서 훈훈한 기운과 함께 희미한 불빛이 품어져 나왔다. 그녀가 사슴을 따라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려던 그때였다.


“뿌지직 뿌지직.”


 숲의 고요를 깨며 눈을 밟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뒤돌아보았다. 나무들 사이로 뭔가가 허우적거리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흐느적거림만으로는 사람인지 짐승인지 전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황금잎이 비추는 빛 안에 들어오고 나서야 그것이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충격에 빠져 비명을 질렀다.


“어머나, 이를 어떡해!”


 남자의 가슴에 말뚝이 박혀있었다. 그의 얼굴과 손, 옷이 모두 피범벅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듯 앞으로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녀 옆으로 사슴이 재빠르게 지나갔다. 사슴은 그를 이리저리 살피며 킁킁거렸다. 앞발로 그의 팔을 뚝뚝 건드린 후 그의 얼굴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아주었다. 용기를 내어 으로 다가선 그녀는 피가 거의 걷힌 얼굴을 보자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이안 일룸니아였던 것이다.


“이안! 이안! 눈 좀 떠봐, 어서 눈 좀 떠보라고!”


 그러나 그는 눈을 뜨지 못하였다. 그의 몸에 경련이 일고 입술이 새파랗게 변해갔다.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나 좀 도와주렴.”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사슴뿐이었다.


“혹시 네가 말한 거니, 이안?”


 그녀는 울음을 삼키며 그를 흔들어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시간이 없어. 오직 너만이 왕자를 도울 수 있어.”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재빨리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었다. 그런데 사슴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이럴 수가, 사슴이 입을 열어 인간의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똑똑히 말했다.


“혼란스럽겠지만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어. 왕자가 위험해. 급히 나의 부탁을 들어줘야겠다.”


 사슴이 고개를 땅으로 숙인 채 뭐라고 중얼거리자 그의 벌린 입 안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두 눈에 힘을 잔뜩 주자, 자두씨 한 크기의 구슬이 그의 입에서 툭 떨어졌다. 투명한 유리 안에 갇힌 하얀빛이 구슬 안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뱉기 전과 달리 매우 피곤하여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녀는 우선 이안부터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에 ‘이성’이라고 쓰인 스위치를 꺼버렸다. 그랬더니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것을 그의 보호자인 박지원에게 갖다 주렴. 그는 이걸 어떻게 다룰지 알아.”


“초록갓 아이스크림 가게 아저씨 말인가요?”


 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 순간이동하는 절차를 설명했다. 그녀는 그의 지시대로 왼쪽 손바닥 위에 구슬을 올리고, 오른손으로 나뭇가지를 주워 그것을 살짝 때리면서 주문을 외쳤다.


“플라잉이글드래곤, 롤리마을 박지원에게 나를 보내줘!”


 외침과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구슬에서 검은 회오리바람이 튀어나오며 그녀를 확 덮쳐버린 것이다. 미처 피할 새도 없었다.


“펑!”


 그녀를 품은 회오리바람이 폭죽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불이 꺼진 건물 안벽에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거기를 통과하여 그녀가 바깥으로 내던져졌다. 같이 따라온 눈과 낙엽이 바닥에 함께 내려앉았다. 구멍은 사라졌다. 정신을 차린 후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 주택 내부의 복도였다.


“계세요? 누구 없어요?”


 아무도 없는 빈집이었다. 그녀가 문으로 향하려는데 마침 열쇠 구멍이 찰칵거리며 문이 저절로 열리었다. 지원이 장갑 낀 손을 비비며 매서운 바람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섰다. 등을 켜자 불안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그는 흠칫하여 잠시 어쩌지 못하였다. 그러다 뭔가를 기억해내곤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넌 예전에 우리 가게에 처음 왔던 아이 아니니?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니?”


 숲에서 겪었던 무서운 일에서 벗어나 그의 친근한 얼굴을 보자 그녀의 입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머릿속의 ‘이성’스위치가 다시 켜진 것이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을 알려야 하기에 그녀는 울먹이며 빛이 꺼진 구슬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안이.. 죽을 거 같아요. 피를 흘리고... 정신도 못 차리고.. 숲..에 쓰러져있어요.”


 말을 겨우 마친 후 그녀는 엉엉 울었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손바닥에 놓인 구슬을 보고 더욱 창백해졌다.


“아니 어떻게...이건 여의주인데.. 누가 준 거니?”


“믿지 못하시겠지만, 사람 말을 하는 사슴이 아저씨께 갖다 주라고 했어요. 나머지는 아저씨가 다 알아서 할 거라고요.”


 지원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거실로 데려가 소파에 앉혔다. 그녀에게 진정하라고 말은 했지만 그의 눈동자 역시 초점 없이 막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여기서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급히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여의주를 침대 위에 조심이 내려놓고 서랍장에서 고동색 마법지팡이를 꺼내 그것을 때리면서 외쳤다.


“플라잉이글드래곤, 메시지를 보여줘.”  


 구슬이 다시 번쩍이더니 허공에다 영상 프로젝터를 뱉어냈다.



 잠시 후, 그가 급히 계단을 내려와 주방으로 향하였다. 냉장고 안에서 붉은 액체가 담긴 병들을 챙겨 허둥지둥 올라가는 그의 모습에 수진도 같이 뒤따라 올라갔다.

 그는 침대 밑에서 갈색 상자를 끌어내어 가죽 배낭을 꺼내고 그 안에 병들을 마구 집어넣었다. 외투를 입고 초록갓을 쓰고 배낭을 멘 후, 그는 왼손에 든 여의주를 마법지팡이로 살짝 때리며 외쳤다.


“플라잉이글드래곤, 이안 왕자에게 나를 보내줘!”


 여의주에서 튀어나온 회오리바람이 그를 집어삼켰다. 수진은 이때를 놓칠세라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펑!”


 회오리바람이 그들과 함께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날아다녔던 침실 물건들이 방 안 여기저기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허공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지원이 튀어나왔다. 수진도 나왔다. 그는 이안을 보고 사색이 되어 달려가려는데 사슴이 울부짖자 얼른 여의주를 그의 입 속에다 밀어 넣어주었다. 그러자 사슴은 완전히 기운을 차린 듯했다.

 

 그새 이곳에도 어둠이 내려앉았다. 황금잎들도 잠을 자는지 이전만큼 밝지 않았다. 지원이 배낭 안에서 초 세 자루를 꺼내 심지에다 입김을 훅 불자 불이 저절로 붙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던지자 그것들이 스스로 공중에 뜬 채 적당한 위치에서 비춰주었다. 그가 이안 옆으로 다가가자 그것들도 따라왔다.

 

 이안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욱 창백해져 거의 보라색을 띠었다. 사슴이 그에게 말뚝 빼는 방법을 설명하자 지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비통하게 외쳤다.


“아니 말뚝에 불을 붙이라니요? 만에 하나 불이 그것을 타고 왕자님을 태우면 어떡합니까?”


“저것은 그냥 뽑자고 뽑힐 것이 아니요. 번개 맞은 자작나무로 만든, 주술이 걸린 말뚝이란 말이요. 다행히 지금은 심장을 벗어나 있지만 곧 스스로 찾아가 그것에 박힐 거요. 주술을 푸는 방법은 태우는 수밖에 없소. 우선 말뚝 끝에 불을 붙인 후 반응을 보이면 그때 바로 뽑아버립시다. 나는 손이 없으니 자네가 해야만 하오.”


“만약 다 탈 때까지 말뚝이 아무 반응도 없으면요?”


“ ----- ”


 사슴은 그 이상은 모르겠다는 듯 대답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때 이안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뒤틀었다.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자 사슴은 더욱 간절히 간청했다.


“말뚝이 점점 깊이 박히고 있소. 어차피 저러고 있으면 곧 죽고 말 것이요. 우선 해볼 수 있는 것부터 해봅시다.”


 절망하는 표정의 지원이 이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한 손을 위로 들어 올리자 초 한 자루가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촛불을 말뚝 끝에 대려는데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그만 초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난, 난 도저히 못 하겠어요.”


 눈물을 흘리며 그가 절망하자 사슴은 하는 수 없이 수진에게로 시선을 돌리었다. 그녀도 처음에는 못한다고 말하려다가 이안이 피를 한 움큼 토하자 결심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초를 건네받아 침착하게 말뚝 끝에 가까이 대었다. 불이 붙었다. 그것에 파란 불꽃이 일더니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모두에게 들려왔다.

 

“살려줘. 난 죽고 싶지 않아. 아악~”


 말뚝이 부르르 떨더니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안의 얼굴은 극심한 고통으로 심하게 찡그려졌다. 사슴은 그것을 예의 주시하다가 즉시 그에게 명령했다.


“지원, 지금이야, 어서 뽑아!”


 지원은 눈을 잔뜩 묻힌 양손으로 그것을 힘껏 들어 올렸다. 그것이 빙그르르 돌려지며 쑥 빠져나왔다. 눈 위로 떨어지자마자 그것은 파란 불길이 일면서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이안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졌다.

 사슴은 또다시 명령을 내렸다. 아까보다 더 재촉하는 어조였다.


“지원, 어서 가지고 온 것을 먹이게, 어서!”


 그는 재빨리 배낭 안에서 병을 끄집어냈다. 수진이 이안의 머리를 들어주자 그는 그의 입을 벌려 병의 붉은 액체를 천천히 부어주었다. 그렇게 반 병 정도 마시고 난 후 이안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가 서서히 눈을 떴다. 시선을 지원에게서 수사슴, 수진에게 돌리더니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어 지원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호들갑 피지 마.”


“왕자님, 정말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요.”


 이안은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창백했던 얼굴에 조금씩 혈색이 돌고 있었다. 지원은 동굴 앞에 있는 사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그를 수진에게 맡겨두고 떠났다. 그녀에게서 자초지종을 다 들은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그녀가 한 일에 비해 너무나도 짧은 감사의 인사였다. 좀 더 긴 말을 기대했던 그녀는 당혹감이 섞인 미소를 지었지만 그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는 그저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하기에 바빴고, 그녀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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