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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Dec 31. 2015

5. 브라잇 동맹 - 1

5. 브라잇 동맹


 히든벅과 지원, 이안은 불쑥 안으로 뛰어 들어온 수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닫힌 동굴이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상황. 그녀를 이번 여행에 동행시키자고 지원이 제안하자 들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귀찮아하는 표정의 이안을 보자 그녀는 괜히 따라왔나 후회가 물씬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들은 출구를 향해 조용히 나아갔다.

 제일 앞장선 건 히든벅이었다. 지원이 그의 뒤에서 손바닥으로 그의 엉덩이를 툭 치며 넌지시 물었다.


“아까 말씀 중에 비밀조직이라 하셨는데 그럼 왕자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는 겁니까?”


“그렇소. 그러니 내가 대표로 이곳에 온 게 아니겠소?”


“아주 흥미진진하군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요. 저도 어차피 왕자님을 모시고 있는 처지이니, 만약 가능하다면 거기에 들어가고 싶은데, 자리 하나 있겠습니까? 영화에서처럼 조직원 전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소. 내가 대표이니 내가 결정하면 됩니다. 당신을 바로 조직원으로 받아들이겠소.”


“와우~ 멋지군요. 근데 조직의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한 100명 정도? 혹시 500명이 넘나요?”


 히든벅이 킥킥거리며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진지하지만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직을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직원이 별로 없소. 이제 당신이 들어왔으니 총 두 명이 되는군요. 당신과 나 말이오.”


 그 말을 듣고 무척 실망하는 지원이었다.      




 출구 밖으로 나온 그들은 맑은 밤하늘 아래 펼쳐진 나지막한 오르막 구릉에 서 있었다. 출구 앞 개암나무 가지에는 바나나 모양의 전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주변을 밝혀주었다. 이곳에는 눈이 전혀 없고 기후도 봄처럼 한층 따듯했다. 꽃향기를 품은 바람이 구릉 꼭대기에서 연이어 불어왔다.


 기분이 다시 좋아진 지원이 외투를 벗으며 히든벅에게 제안을 했다.


“오늘은 여기서 묵읍시다. 날도 이미 어두워졌고요.”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근데 나는 바닥에서 자도 괜찮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할지, 혹시 텐트라도 가져오셨소?”


“텐트보다 훨씬 좋은 것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그는 재빨리 배낭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한참을 뒤지더니 조그만 가죽 상자를 꺼내었다. 그는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눈빛으로 그것을 잠시 음미하였다. 보석 상자처럼 앞을 들어 올리자 안에 부직포가 깔려있는데, 엄지손톱 크기의 미니어처 모형 여러 개가 줄을 맞춰 박혀있었다. 위의 부직포를 꺼내니 밑에 또 다른 모형들이 박힌 부직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고심하다가 알록달록한 모형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고 구릉 위로 꽤 걸어 올라가 흙바닥에 그것을 내려놓고는 다시 되돌아왔다. 그가 품 안에서 마법지팡이를 꺼내 그것을 정확히 조준하며 외쳤다.


“플라잉이글드래곤, 미니어처 커져라!”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이 일정한 비율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곧 척박하고 메마른 구릉 위로, 하얀 벽에 빨간 지붕이 덮인 아름다운 이층집이 생겨났다. 문과 창문이 모두 둥글고 하얀 펜스로 경계가 진 정원도 딸려 있었다. 이안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수진은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히든벅이 지원 옆을 따라 걸으며 꽤나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말로만 듣던 여행킷이군요. 듣기는 했었지만 직접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세일할 때 하나 구매했지요. 여행을 좋아해서요. 아주 저렴한 겁니다. 이런 것에 괜히 돈 많이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히든벅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수진과 이안은 펜스문을 열고 잔디밭에 깔린 검은 돌길을 따라 둥근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안이 육중해 보이는 도넛 모양의 쇠손잡이를 옆으로 돌리었다. 돌아갔지만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돌려 보았다.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를 앞으로 당겨 보았으나 헛수고였다. 뒤로 다가온 지원이 씩 웃더니 그를 옆으로 비키게 하고는 자신이 직접 그것을 돌렸다.


“어허, 이게 왜 안 열리지?”


 당황한 그가 낑낑대며 이리저리 밀고 당겨보았지만 문은 전혀 열리지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그때 뒤에 서 있던 수진이 문틈에서 카드를 발견하고 그에게 건네주었다.


 카드를 열자, 안에서 붉은 립스틱을 과하게 칠한, 크고 두툼한 입술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은 움직여지더니 신경질적인 여자 목소리로 안내방송을 전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고객님,

저희 랄랄라 여행킷을 사용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 가지 안내를 드리자면, 이 제품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주문을 외워주셔야 합니다.

주문이 어디 적혀 있느냐면, 그것이 좀 복잡하니까 잘 들어주세요.


여러분이 서 있는 바로 오른쪽 창문틀 정 가운데에서

밑으로 30cm 내려가시다 오른쪽으로 꺾어 75cm 쭉 가고,

그 지점에서 다시 밑으로 60cm 내려가시면 바로 그곳에 주문이 적혀있습니다.

아주 작은 글씨로 적혀있으니 눈을 벽 앞에 바짝 대고 읽으셔야 합니다.

지금 줄자를 소지하지 못하신 고객님을 위해 한 가지 더 안내해드리자면 마법지팡이가 대충 30cm라고 하더군요.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입술이 하얀 입김을 허공에 내뿜자


‘오른쪽 창문틀 중앙, 밑30, 오75, 밑60’


 글자들이 나타났고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지원이 머리 위에 떠 있던 초를 집어 들어 오른쪽 창문으로 다가갔다. 허공에 떠있는 글자를 바라보며 그는 마법지팡이를 줄자 삼아 위치를 찾아 내려갔다. 그 지점에 분명 뭐라고 적혀있기는 한데 글씨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초를 가까이 대고 눈을 벽에 바짝 붙인 채 읽어보려 했지만 당최 읽을 수가 없었다. 그가 돋보기를 찾으려 일어나 배낭으로 다가가는데 뒤에 섰던 이안이 그 벽을 쓱 쳐다보았다.  


“나는 밥만 축내면서 집에서 놀고먹는 굼벵이입니다.”


“뭐라고요? 왕자님,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까의 충격으로 그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 지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안은 오른손으로 뒤통수를 만지며 겸연쩍게 대답했다.


“‘나는 밥만 축내면서 집에서 놀고먹는 굼벵이입니다.’ 이게 벽에 쓰인 주문이야.”


“참내, 주문이 어쩜 그리 흉측할까요?”


 지원은 불만스레 중얼거리면서 문 앞에 섰다. 그런데 입을 열기를 자꾸 꺼려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적미적대다가 결국 마당에 서 있는 히든벅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애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주문을 말하기가 꺼려지네요. 내가 밖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 히든벅, 당신이 좀 해보는 게 어떻겠소?”  


“지금 위대한 프렐리야의 흰사슴 보구 직접 굼벵이라고 말하라는 게요? 나도 자존심이 있지, 당신이 가져온 집이니 당신이 알아서 해보구려.”


 히든벅은 말을 끝내자마자 차갑게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들은 계속 옥신각신했다. 결국 보다 못한 이안이 문 앞으로 다가가 대신 주문을 외웠다.


“나는 밥만 축내면서 집에서 놀고먹는 굼벵이입니다.”


 찰칵, 문이 열렸다. 동시에 집 내부의 등이 모두 켜졌다.


 이층집은 새로 지은 것처럼 가구와 벽에서 반짝반짝 윤이 났다. 가전제품이나 그릇, 식수, 휴지, 과일, 통조림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침실들은 2층에 위치했는데 각자 한 방씩 배정받아 들어갔다.


 특이하게도, 수진의 방에는 다른 방에는 없는 분홍색 하트 문이 왼쪽 벽 구석에 장착되어 있었다. 그것을 열자 그녀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방의 네 벽을 두른 옷장에 한 번도 입거나 보지 못한 아름다운 옷들이 가득 걸려있고 서랍마다 가방, 신발, 액세서리로 넘쳐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이 휙 돌아갔고 감동의 눈물까지 핑 돌았다.


 옆으로 다가온 지원이 여행킷 상자에 들어있는 ‘숙녀옷방 미니어처 모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마음을 완전히 빼앗긴 그녀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침 서랍 제일 앞에 놓인 빨간 핸드백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그것을 메어 보고 이것저것 입고 신어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한 밤을 보내었다.




 다음날 아침, 1층 주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식탁 위로 음식들이 거나하게 차려졌다. 달걀프라이, 블루베리 머핀, 건포도가 박힌 스콘, 장미 잼, 닭고기를 넣어 만든 수프, 칠면조 구이, 계란 묻힌 토스트, 초콜릿 쿠키, 사과파이, 요구르트, 자몽주스, 우유, 커피 그리고 사과와 오렌지가 쟁반 위에 먹기 좋게 잘려있었다.


 옷장에서 세심히 고른 하늘색 원피스를 차려입은 수진이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일행 모두는 이미 자리에 앉아 아침을 들고 있었다. 히든벅은 사슴인데도 마치 사람처럼 엉덩이를 의자에 대고 앉아 두 앞발로 개인 접시를 고정시켰다. 하지만 손이 없기에 이안이 그의 요청대로 음식을 접시 위에 덜어주어야만 했다. 그들은 그 많이 친해져 서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이안과 지원 사이에 앉아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 음식 하나하나가 다 맛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이상한 점이 곧 포착되었다. 이안이 음식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 것이었다. 그의 앞에는 붉은 액체가 든 유리잔만 달랑 놓여있을 뿐 접시조차 없었다. 그녀는 사과파이를 한입 베어 먹으며 이상한 눈길로 그에게 물었다.


“왜 음식은 안 먹고 토마토 주스만 마시니? 배 안 고파?”


 순간 지원과 히든벅이 당사자보다 더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지원이 뭔가를 말하려 입을 오물거리는데 이안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


“난 특수 체질이라 토마토 주스만 마셔도 돼. 다른 음식은 필요 없어.”


“거짓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니? 있을 때 많이 먹어둬.”


“거짓말 아니고 정말이야. 앞으로 식사 때마다 내가 주스 마시는 광경을 보게 될 거야. 근데, 너는 며칠 굶었냐? 무슨 여자가 이렇게 많이 먹어?”


 그녀의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지더니 한입 남은 파이를 차마 입에 넣지 못하고 접시 위에 그대로 내려놓았다. 지원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그녀를 다독였다.


“허허, 잘 먹으면 튼튼하고 좋은 거란다. 어서 마저 먹으렴.”


 아프리카에서는 굶주린 아이들이 진흙으로 구운 과자도 먹는다는데, 음식을 남기는 것은 큰 죄라는 생각에 그녀는 파이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이안을 한번 째려본 후 자리를 박차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잠시 후, 지원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왕자님, 그녀도 언젠간 알게 될 텐데 미리 얘기해주면 안 될까요?”


“절대로 안 돼. 당분간은 비밀로 해줘. 부탁이야.”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히든벅에게 걱정스러운 눈짓을 보냈다. 주스를 다 마신 이안의 쓸쓸한 시선이 빈 컵에 가 잠시 머물렀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과 베일에 싸인 불안이 싸늘한 바람처럼 식탁 위를 이리저리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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