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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Jan 14. 2016

5. 브라잇 동맹 - 2


“저기, 아까 말이야.”


 이안이 옆에서 계속 말을 꺼냈지만 수진은 그를 철저히 무시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몇 걸음 앞질러 구릉을 올라갔다. 바구니를 든 지원과 히든벅이 그들을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그녀와 보조를 맞추려 노력하면서 그녀의 눈치를 살피더니 안 떨어지는 입술을 겨우 벌렸다.


“저기, 아까 주방에서 내가 한 말은...”


“듣기 싫거든.”


 빨간 핸드백을 쳐들며 윽박지른 그녀가 다시 그를 앞질러 뛰어나갔다. 그리고 제일 먼저 구릉 꼭대기에 도착했다. 그녀는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앞향한 그녀의 눈과 입이 두 배로 커졌다.   


“세상에나!”


 그녀의 운동화 아래로 하얀 꽃들이 온 분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꽃들은 산들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며 흔들거렸고 주위는 온통 새하얗게 빛났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하호호히히’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녀 옆으로 다가온 지원이 함께 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은 꽃밭 구릉을 천천히 내려갔다. 마치 지상낙원을 거닐고 있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오직 한 종류의 꽃이 이곳을 덮고 있었다. 탁구공 크기의 그 꽃은 두 장의 하얀 꽃잎으로 이루어졌고 한가운데에 노란 심이 박혀있었다. 특이하게도 가지 끝에만 꽃이 피어있을 뿐 줄기에는 잎이 하나도 달려있지 않았다.


 그녀가 한 송이를 꺾어 자세히 관찰하자 지원이 자랑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그 꽃의 이름은 화이트커런트댄서 (white current dancer)란다. 바람을 온몸으로 껴안으며 바다 위의 하얀 물결처럼 춤을 춘다는 뜻이지. 오직 ‘하하호호히히’에만 존재하는 꽃이야. 네가 있던 세상에서는 절대 볼 수 없단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 세상, 즉 ‘하하호호히히’가 시작됨을 알리는 지표가 되어주지.

 수진아, 너는 지금 여기를 지남으로써 더 이상 한국의 롤리마을이나 롤리숲에 있는 것이 아니야. 너는 ‘하하호호히히’라는 정말로 다른 세상에 있는 거란다.”


“‘하하호호히히’라니 이름이 참 희한하네요.”


“옛날, 아주 오래전에, 네가 살던 세상에 사람이 살기 훨씬 오래전에, 이 땅에 세 명의 선조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단다. 그들이 눈을 떠서 제일 먼저 바라본 것은 아마 여기와 같이 아름다운 곳이었을 거야. 꽃과 과일이 가득하고 풍요로운, 아주 살기 좋은 세상 말이야. 그래서 그들이 보고 처음 꺼낸 말이 바로 웃음이었대. 첫 번째 사람이 “하하” 웃으니 옆 사람이 “호호” 웃었고 또 그 옆 사람이 “히히” 웃었다는 거야.

 게이트‘빅락'은 ‘하하호호히히’로 들어오는 통로이고.”


“게이트‘빅락’이라니요?”


“우리가 들어온 바위 동굴 말이야.”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려고 기회를 엿보던 이안이 대신 대답을 가로채며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좀 신기한 게 있어. 너에 대해 말이지.”


“무슨 말이야?”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 물론 넌 예외였지만.”


“예외라니?”


“게이트로 인도하는 황금잎블루베리를 알아봤잖아? 아침에 히든벅이 자세히 말해줬어. 그 나무는 여기 ‘하하호호히히’에 속한 자에게만 보이는 표식이야. 그리고 네 앞에서 게이트가 닫히지도 않았고 말이야. 여기 태생이 아닌, 즉 너희 세상에 속한 자가 가까이 다가오면 자동적으로 닫히게 되어있거든.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말이야. 너도 직접 닫히는 장면을 목격했으니 잘 알겠지?”


“난 이곳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거지?”


“우리도 잘 모르겠구나.”


 지원이 그녀를 향해 윙크하며 대답했다.


 바로 그때였다. 바람이 앞에서 세차게 불어왔다. 꽃들은 하얀 거품이 이는 파도처럼 물결이 되어 넘어와 그들을 지나쳐 뒤로 건너가버렸다. 아주 환상적이었다. 지원과 히든벅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을 앞질러나갔다. 이안은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아 멈춰 세웠다.


“저기, 수진. 아까 주방에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저기 그러니까... 음... 미안해.”


 그는 ‘미안해’를 너무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그녀가 잘 들리지 않는다며 다시 크게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얼굴을 붉힌 채 몸을 홱 돌려 앞으로 훅 달려 나갔다.




 꽃밭이 끝나고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길로 이어졌다. 히든벅은 한층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일행을, 특히 수진을 향하여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숲은 보기보다 위험한 곳이니 정신 바짝 차리렴.”


 그러나 몇 시간째 걸어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거진 나무 덤불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 나타나자 지원은 잠시 쉬어가자고 제안했다. 히든벅의 눈 끝이 찍 치켜 올라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멈추지 말고 계속 가야 하오. 숲에선 밤이 일찍 찾아오잖소.”


“잘 알지만, 수진이 너무 힘들어해서요. 어차피 점심 먹을 때도 됐잖아요.”


 따로 그의 승낙이 필요 없다는 듯, 지원은 바구니에서 돗자리를 꺼내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점심을 차리기 시작했다. 음식을 보자마자 이안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머지 세 명이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바닥에 놓인 컵들 안의 수면이 여러 번 물결치는 것이었다.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컵들이 옆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어 접시들과 그들의 몸뚱이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다!”


 겁에 질린 지원이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히든벅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아니야, 이건 지진이 아니야. 뭔가 다른데.’

 

 땅바닥에서 울리는 진동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 그들은 똑바로 서 있기조차 쉽지 않았다. 어느새 곁으로 돌아온 이안이 원숭이처럼 단숨에 나무를 타고 올라가 주변을 살피었다. 그가 다급한 어조로 아래를 향해 마구 고함쳤다.


“순록 떼야! 적어도 수십만 마리가 이리로 달려오고 있어. 어서 저리로 피해!”


 그들은 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땅 위로 불쑥 튀어나온 바위를 향해 있는 힘껏 내달렸다. 그런데 이안의 눈에 끔찍하고도 미칠 것만 같은 장면이 포착되었다.


“수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저 바위로 가라고!”

 

 그의 사나운 외침에, 막 바위 위로 올라서던 지원과 히든벅의 고개가 돌려졌다. 그들은 경악했다. 그녀가 계곡으로 되돌아가 돗자리에 놓고 온 빨간 핸드백을 낚아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쪽으로 달려오는데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아있었다.


 주위가 무섭게 흔들리고 땅이 갈라지는 듯 소음이 최고조에 달하던 순간, 덤불 위로 커다란 뭔가가 타다닥 뛰어올랐다. 순록이었다. 엄청난 수의 순록 떼가 빠르게 달려 나와 그녀를 추월하였다. 무리 중간에서 달리던 그녀는 점차 힘이 빠지며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순록 한 마리가 그녀를 향해 무섭게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녀는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다리가 마비된 것처럼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다 포기한 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젠 끝이로구나. 엄마, 외할머니, 모두 안녕.’


 순록의 거친 숨소리가 피부 가까이에서 느껴지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잽싸게 낚아채어 공중으로 붕 올라갔다. 이안이었다. 그녀를 안은 채 그는 달리고 있는 순록의 등 위로 내려왔고, 다시 점프를 하여 앞서 달리는 순록의 등으로 옮겨 탔다. 그녀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커스 곡예사처럼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채 완벽한 균형감각을 유지했다. 그렇게 10마리 정도의 등을 타고 넘어서야 드디어 바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순록들은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내뱉으며 바위 주변을 무서운 속도로 지나쳐갔다.



 주변이 고요해지자 숲에는 그것들이 지나간 흔적들이 처참히 남아있었다. 나뭇가지들이 부러지고 돌과 풀이 뽑히고 점심이 차려졌던 돗자리와 접시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지고 부서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고마움을 표시하려 이안을 찾는데 이런, 곁에 보이지가 않는다.

 

“이안이 없어요!”


“걱정할 필요 없단다. 아까 너를 내려주고 왕자님은 사냥을 하겠다며 다시 순록 등으로 뛰어내렸거든.”


“아니, 이런 상황에 사냥이라니요?”


“음... 그럴 일이 있단다. 어서 가자꾸나.”


 말을 마친 지원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세 명은 엉망이 되어버린 길을 따라 걸었다. 저 멀리 이안이 커다란 떡갈나무 둥치에 등을 기댄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원에게 다가와 등 뒤에 감추었던 유리병 두 개를 재빨리 건네주었다. 지원은 배낭 안에 그것들을 얼른 집어넣었다. 둘의 손동작이 감쪽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얼핏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저 병 안에 든 붉은 액체는 뭘까? 토마토라 하기엔 꽤나 검붉네.’


 옷 여기저기에 흙이 묻은 이안은 아침보다 훨씬 생기가 넘치고 피부의 혈색도 좋아 보였다. 그녀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고마움을 전했다.


“아까는 정말 고마웠어. 너 정말 대단하더라.”


“앞으로 조심 좀 해. 핸드백이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잖아? 내가 조금만 늦었으면 넌 이미 순록에게 깔려 죽었다고. 숲은 보기보다 매우 위험한 곳이야. 알겠어?”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매몰차게 나무랐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 틀린 점이 하나도 없기에 그녀는 묵묵히 들었다. 그녀는 슬쩍 지나가는 투로 그에게 물었다.


“앞으로 조심할게. 근데 사냥은 실패했나 봐?”


“응? 뭐?”


“아까 지원 아저씨가 너 순록 사냥 갔다고 했거든. 근데 잡은 순록이 없잖아?”


“음.. 그게...”


 그녀가 그의 빈손을 바라보자 그는 말을 얼버무렸다. 그의 파란 동공이 흔들리고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사냥은 무슨…, 나 혼자 어떻게 그 큰 순록을 잡겠어? 그냥 순록 등 좀 타고 달렸을 뿐이야.”


 사실 그녀는 그가 건네준 병들에 대해 꼬치꼬치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무척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어렴풋이 그들이 자신에게 뭔가를 숨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등을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문득 그의 후드티 뒷면 아래쪽으로 묻어있는 검붉은 자국을 그녀는 보고야 말았다. 청바지에도 그런 자국이 군데군데 있고 흙도 막 엉겨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순간 바짝 조여들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신경이 예민해진 거라 여기며 그녀는 일부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었다.      

 

 붉은 노을이 숲을 비추던 시각, 이안이 서 있던 떡갈나무 뒤쪽으로 여우가 평소처럼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흙더미를 발견하고 이내 멈춰 섰다. 그곳을 파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흙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용케 피한 여우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죽은 순록의 거대한 몸체가 통째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들은 며칠을 내리 걸었다. 해가 질 무렵 여행킷 미니어처로 만든 이층집을 숲 속에 다시 세웠는데 집의 모양이 매번 좀 달랐다. 미니어처는 놓인 주변 환경에 맞게 알아서 부풀려졌는데 하늘을 가린 나뭇잎들 아래로 지붕이 끝나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끼어 너비는 전보다 훨씬 좁았다. 그러나 실내는 이전과 모든 것이 똑같았다.


 주변의 버섯밭으로 나간 그들은 그날 저녁거리로 먹을 버섯을 따고 있었다. 손이 없는 히든벅은 빈둥빈둥 쓸데없이 다 참견하고 다녀 일행의 따가운 눈총을 샀다. 그런데 버섯을 집던 지원이 갑자기 배를 부여잡더니 버섯 바구니를 훽 던지며 집으로 마구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문 앞에 선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듯 이를 악물며 주문을 읊었다. 놀라운 점은 이 와중에도 그가 의도적으로 ‘굼벵이’를 살며시 빼버린 것이었다.


“나는 밥만 축내면서 집에서 놀고먹는...입니다.”


“주문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시 읊어주세요.”


“아이고 배야, 곧 나올 것 같은데. ‘나는 밥만 축내면서 집에서 놀고먹는 굼벵이입니다.’ 자, 됐냐? 빨리 열어! 화장실 급하단 말이야.”


“딸깍”


 문이 열리자 그는 급히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점잖은 자세로 그가 버섯밭으로 여유롭게 걸어왔다.      



 다음날도 그들은 숲길을 걷고 또 걸었다. 히든벅과 이안은 앞장서 가고 한참 뒤에서 수진과 지원이 나란히 걸었다. 그녀는 여행길의 고단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던 중 그동안 궁금했던 걸 물어보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히든벅과 아저씨는 이안을 항상 왕자님이라고 부르는데 ‘하하호호히히’의 왕자님인가요?”


“하하하, 아니야. ‘하하호호히히’는 ‘빅락’ 같은 게이트 너머의 새로운 세상을 뜻하는 이름이란다. 지금 있는 이곳도 포함되지. 


 ‘하하호호히히’는 마법사와 마녀, 거인과 난쟁이, 뱀파이어와 인어 등 네가 살던 세상에서 감히 상상하던 모든 판타지가 가능한 놀라운 곳이란다. 그 안에는 다양한 나라들이 존재하는데 가까이 모여 살던 나라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동맹을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브라잇 동맹’이야.


 처음에는 일룸니아, 오나시아, 아쿠아니아, 딥언더니아, 스위티니아 이렇게 다섯 왕국이었는데, 20년 전에 뱀파니아 까지 들어오면서 총 여섯 왕국으로 되었지. 왕자님은 브라잇 동맹의 수장국인 ‘일룸니아 왕국’의 정통 왕자란다. 그의 아버지 메이슨 왕이 돌아가신 후 신변안전을 위해 잠시 롤리마을에 숨어 지냈었던 거야.”


“숨어 지냈다고요? 왕이 돌아가시면, 왕자가 왕이 되는 게 아닌가요?”


“원칙은 그렇지. 하지만 왕의 동생인 제임스와 대마법사 와이즈맨이 손잡고 일으킨 반란이 성공하는 바람에 원칙대로 따를 수 없게 되었단다. 지금 일룸니아의 왕으로 앉아있는 제임스는 이안 왕자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거든. 그래서 왕자님은 그에게서 되도록 멀리 도망쳐야만 했지. 바로 우리 집으로 말이야. 그런데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이렇게 피난가게 되었으니.”


 그는 왕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표정이 급 어두워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왕자님의 충격이 매우 컸을 거야.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사랑해주던 아버지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했으니. 게다가 자신도 제임스의 칼에 직접 찔렸으니 말이야.”


“그래도 하늘이 도와 이안만 겨우 살아남은 것이군요?”


“으음. 음. 뭐.. 대충 말하자면 그으으…러엏지.”


 당황한 그가 말을 얼버무렸다.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한숨만 내쉬고 입을 닫아버렸다. 둘 사이에 얼마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고아가 된 이안의 뒷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일룸니아 왕국으로 향하는 건가요?”


“오우, 아니야. 아직은 돌아갈 때가 아니란다. 우리는 브라잇 동맹 안으로 들어가 ‘화이트캐슬’로 가야 해. 제임스의 반란 이후, 왕자님이 롤리마을로 오기 전까지 숨어 지냈었던 비교적 안전한 장소이지. 왕자님은 당분간 그곳에 계실 예정이란다. 내가 장담하건대, 너도 분명 그곳을 좋아할 거야. 나와 히든벅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떠나야 하는데, 내가 돌아오면 그때 같이 롤리마을로 돌아가자꾸나.”


“아저씨 고향은 어디세요?


“난 왕자님과 같은 일룸니아 출신이야. ‘빅락’ 게이트키퍼로 발령이 나서 롤리숲으로 보내진 거였지. 초록갓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들은 사실 브라잇 동맹에서 파견한 게이트키퍼였단다. 나는 사계절 내내 열매를 맺는 황금잎블루베리나무를 손질하고, 게이트 근처에 이상한 점은 없는지 늘 체크했지. 그게 내 주요 임무였거든.”


“그럼 ‘빅락’은 이곳 ‘하하호호히히’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게이트인가요?”


“오, 물론 아니야. 게이트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 사실 게이트키퍼인 나조차 총 몇 개의 게이트가 있는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단다. 대부분 인적이 드문 곳에 있을 거라 예상은 하지만, 보통 자신이 이용했던 게이트를 다시 이용하니까 다른 곳은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게다가 그것들의 위치 또한 극비로 붙여져 알기가 쉽지 않고.


 수진아, 넌 매우 특별한 아이야.

 왜냐면 황금잎블루베리를 알아봤으니까.

 

 어디를 가든 이것을 꼭 기억해 두렴.

 만약 그 나무를 다시 본다면 근처에 ‘빅락’ 같은 게이트가 있다는 점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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