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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Dec 24. 2015

4. 프렐리야의 흰사슴 히든벅 - 2


“그대는 누구입니까? 어떻게 우리를 알고 있지요? 왜 우리를 돕는 거예요?”


 초록갓이 써진 머리를 숙이며 정중히 그러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원이 묻자, 사슴은 동굴을 흘끗 쳐다보며 빠른 어투로 대답했다.


“지금은 자세히 말해줄 수 없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 역시 왕자를 돕기 위해 이곳으로 왔고 당신들 편이란 사실이오. 어서 왕자를 데리고 떠납시다. 그를 공격한 자들이 곧 들이닥칠 것이오. 눈 위에 피가 뿌려졌으니 추적해오는 건 시간문제요. 자, 어서, 시간이 없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여의주를 내뱉을 수 있는 자는 아주 극소수의 마법사뿐입니다. 사슴이 마법을 부리고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오신 분인지 말씀 좀 해줄 수 있는지요? 당신이 우리와 한배를 타려면 그 정도는 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우리도 믿고 따를 것 아닙니까?”


“‘프렐리야의 흰사슴 히든벅’이라고 혹시 들어봤소?”


“아니 당신이? 그분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살아계셨나요?”


“깊은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지 죽은 것은 아니었소. 잠을 자는 동안 내 마음의 눈으로 일룸니아 왕국내의 끔찍한 반란을 예감했고, 때가 되어 눈을 떴을 때 반란이 정말로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 후, 비밀조직의 대표로 왕자를 돕기 위해 이리로 오게 된 것이오. 자, 설명이 되었소? 어서 갑시다. 시간이 없소. 어서 빨리.”


“그런데 어떻게 왕자가 이곳에 있는 줄 알았습니까? 이곳은 브라잇 동맹에서도 한참 먼 곳인데요?”


 히든벅이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뿔을 흔들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꿈에서 그대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보았소. 됐소? 어서 갑시다.”


“근데 ‘빅락’이 열려있는지 확인 좀 해봐야..”


“지금 내 뒤로 열린 것이 보이지 않소? 어서요!”


 지원은 급히 이안에게 다가와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옆에 있는 수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여기서 헤어져야겠구나. 일이 이렇게 되어 우리는 잠시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한단다. 당분간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도와줘서 고맙고 한 가지 부탁 좀 들어줄래? 오늘 본 것은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주렴. 부디 비밀을 꼭 좀 지ㅋ...”


“우르르르, 우르르르~”


 갑자기 톱니바퀴들이 서로 맞물려 내는 소음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들려왔다. 앞의 바위가 이리저리 기우뚱하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뿐 아니라 다른 일행도 뭔가 들어서는 안 될걸 들었다는 듯 깜짝 놀라며 서로를 다급히 쳐다보았다. 히든벅이 애절하게 외쳤다.


“빨리 오시오! ‘빅락’이 닫히고 있소. 낯선 이가 가까이 있음에 틀림없어, 빨리!”


 히든벅은 뒤도 안 돌아보고 아까 그녀가 들어가려 했던 동굴 속으로 쑥 들어갔다. 지원은 이안을 앞장세워 안으로 뛰어가는데 허공에 떠 있던 세 자루의 초 역시 그를 따라 들어갔다.


 수진만이 동굴 밖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다. 입구가 점차 좁혀지면서 안에서 나오는 빛의 양은 점점 적어졌다.


‘나도 따라갈까? 하지만 내가 가버리면 엄마와 할머니는 어떡해?’


 이제 동굴 입구는 바로 서서는 못 들어가고 몸을 굽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혀졌다.


‘어떡해?’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왕자라고 부르는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평범치 않아 보이는 그들은 누구지? 저들이 가려는 곳은 어떤 세상일까? 마음속에서 그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강하게 일자 그녀는 무작정 동굴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의 운동화가 사라지고 난 직후 동굴은 완전히 닫히었다. 동시에 톱니바퀴 소음이 멈추고 주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해졌다.




 잠시 후, 두 개의 손전등 빛이 닫힌 바위 표면을 훑으며 지나갔다.

 

 마이클과 토마스가 나타나 주변을 샅샅이 뒤지었다. 한쪽에 붉은 피가 많이 고여 있는 눈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피는 거기까지만 뿌려있었다. 그 아래로 동물의 발굽과 여러 명의 발자국 흔적들이 혼란스레 찍혀있었다. 토마스는 손전등으로 그것들을 따라가 보았지만 커다란 바위에 막혀 그만 끝나고 말았다.


 그가 혀를 차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놈 하나만이 아니군. 근데 이것들이 하늘로 솟았나, 아님 땅으로 꺼졌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색에 진전이 없자, 그들은 아침에 다시 오기로 결정하고 교회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문을 여는 순간 그들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절규가 터져 나왔다. 밤새 새하얀 담요가 온 세상을 덮은 것이다. 그들은 급히 숲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피 흔적은 이미 쌓인 눈 밑으로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수색을 포기하고 어깨를 쭉 늘어뜨린 채 터벅터벅 숲에서 되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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