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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Feb 18. 2016

7. 한밤중의 사냥꾼들 - 1

7. 한밤중의 사냥꾼들


 숲길이 끝나고 이어진 평지는 곧 파도처럼 융기된 언덕 지형으로 바뀌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지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허, 이상하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길을 잘못 들었나?”


 앞서가던 히든벅과 이안은 언덕 꼭대기의 나무 옆에서 걸음을 멈춘 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안이 뒤를 돌아보는데 꼭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불안해진 지원과 수진이 그리로 뛰어갔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는 순간 그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에구머니나!”


 그들 앞으로 거대한 낭떠러지가 시커먼 입을 쫙 벌린 채 아무나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떨어진 맞은편으로 끊어진 길은 다시 이어졌다. 마치 거대한 채찍으로 땅을 여러 번 후려치기라도 한 듯 낭떠러지가 양옆으로 길게 뻗어나가고, 바닥은 아주 까마득하여 검은 안개에 가려져 그 끝이 보이지도 않았다.

 

 히든벅이 주위를 꼼꼼히 살핀 후 물었다.


“지원,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소매로 눈을 비비며 지원이 대답했다.  


“글쎄요. 긴가민가한 것이, 전에는 이런 곳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아니야, 이 길이 맞아. 저기 건너편에 보리수 보이지? 예전에 우리 저 나무 아래서 잠시 쉬었었잖아?”


 이안은 저 멀리 건너편 땅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요. 저 나무 아래서 식사를 했었어요. 근데 그새 어떻게 이런 낭떠러지가... 그나저나 어떡하죠? 히든벅, 혹시 여기 말고 다른 길을 알고 있나요?”


“안타깝게도 다른 길은 모르오. 여기를 건너는 수밖에 다른 방도는 없을 것 같군.”


 그날 밤, 언덕 아래로 텐트 하나가 쳐졌다. 역시나 여행킷에서 나온 미니어처 모형이었다. 카키색 텐트는 겉으론 1인용으로밖에 안보였지만, 그 안에는 복도와 여러 개의 방, 화장실, 주방, 그리고 양털이 깔린 넓은 거실이 딸려있었다. 거실에 모인 그들은 낭떠러지를 건널 방도에 대해 열심히 토론을 벌였다. 결국 두 가지 안으로 좁혀졌고 다음날 상황에 맞게 택하기로 결정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날이 밝았다. 수진이 텐트를 나오자 여행킷에서 나온 열기구 모형이 크게 확대되고 있었다. 어젯밤에 세운 첫 번째 계획은 저 열기구를 타고 낭떠러지를 건너는 것이었다. 지원은 땅에 서 있는 바스켓 안으로 들어가 기구의 버너와 가스통 등을 꼼꼼히 점검하였다. 이안과 히든벅은 언덕 위에서 풍향을 세심히 관찰하였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에게 지원이 손을 흔들어 도움을 요청했다.   


“수진아, 이 밧줄이 제대로 고정되어있는지 확인 좀 해줄래?”


 그녀는 말뚝으로 달려가 기구와 연결된 밧줄매듭을 꼼꼼히 확인했다. 완벽했다. 그 옆으로 대나무 바구니 여러 개가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준비가 완료되자 지원은 일행을 불렀다. 모두 바스켓 안에 탑승한 것을 확인한 후 그가 버너를 작동시켰다. 가스불이 풍선 안으로 쏴 쏘아지면서 풍선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이윽고 바스켓이 땅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말뚝에 연결된 밧줄이 팽팽해지자 이안이 칼로 잘라냈다.


 무지개풍선 열기구는 맑은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기구를 처음 타본 수진은 불안감과 즐거움이 교차했지만 하늘 위에서 바라다본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열기구는 순탄히 바람을 타고 낭떠러지 위를 건너는 중이었다.


 그런데 중간쯤 왔을까? 갑자기 거센 돌풍과 함께 풍향이 돌변하였다. 열기구가 뒤로 확 밀려나더니 그들이 처음 탔던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악몽 같은 일이 벌어지자 그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어젯밤부터 풍향을 관찰하던 히든벅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힘겨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키진 않지만 두 번째 안으로 실행해야겠군.”


 사실 두 번째 안은 그뿐 아니라 모두가 꺼리던 방법이었다. 특히나 수진은 상상만 해도 불안하고 오금이 저려 그것을 하느니 당장 롤리마을로 돌아가자고 떼쓰고 싶을 정도였다. 열기구가 하강하는 가운데 또다시 돌풍이 불어 나무 위로 추락했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진 않았지만 풍선이 찢어져 못쓰게 되자 지원은 그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배낭을 한참 뒤지더니 하얀 실이 감긴 실패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본 그녀의 눈이 공포로 짙어져 그만 소리를 꽥 질러댔다.


“아니, 그게 밧줄이에요? 그냥 흰 실이잖아요. 그게 어떻게 우리 무게를 견디겠어요?”

 

 히든벅이 옆으로 다가와 그것을 찬찬히 관찰하더니 바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우! 이거 진짜 물건이구먼. 이건 괴물거미 비와니프스(bewanips)에서 뽑은 실로 만든 밧줄이라오. 절대 끊어지지 않고 길이도 자유자재로 늘어나지. 밧줄이 꼬이거나 엉키지도 않으며 아무리 꽉 잡아도 손에 상처가 나지 않아. 전설상으로 그 거미의 크기가 대략 3층 집 정도였다고 하니, 그것을 지탱할 정도의 거미줄 실이라면 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이것을 어디서 얻었소?”


“스위티니아에서 열리는 ‘케이크 멀리 던지기 대회’에 참가해 일등으로 받은 상품이지요. 아직까지 한 번도 쓴 적은 없어요.”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렇게 훌륭한 물건이었음을 안 지원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쓰다듬었다. 히든벅은 열기구를 묶어놨던 말뚝으로 다가가 사각 대나무 바구니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돌연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보게 지원, 아무리 봐도 바구니가 내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것 같아. 혹시 요거 밑이 빠지면 어떡하지?”


“괜찮을 겁니다. 당신이 우리보다 훨씬 무거우니 더 빨리 미끄러져 내려올 거예요. 많이 걸려야 몇 분일 텐데 그때까지는 대나무 바닥이 견뎌줄 겁니다. 혹시 잘못되면 그때 방법을 강구하도록 합시다.”


“그때라면 난 이미 저 밑으로 떨어져 저승 문을 두들기고 있을 걸세.”


 그의 마지막 대답을 듣지 못한 지원이 언덕 위로 올라갔다. 실패에서 밧줄을 조금 풀어 끝을 늘어뜨린 후, 보리수를 향해 들고 크게 주문을 외쳤다.


“비와니프스 비와니프스 비와니프스, 저기 보리수에 묶어!”


 늘어졌던 밧줄의 끝이 갑자기 번쩍 들어 올려지더니 뱀의 머리처럼 각이 잡힌 채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강을 향해 던져지는 낚싯줄처럼 실패에서 나온 밧줄이 낭떠러지 위를 붕 날아 순식간에 건너편에 도착해 스스로 보리수나무를 여러 번 감싸며 단단히 고정시켰다. 일행 모두는 이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지원은 줄을 팽팽히 유지하여 가파른 경사를 만들고 바구니들을 차례차례 줄에 매달자, 히든벅이 자신의 뿔로 그것들이 밑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받치었다. 실패는 언덕 위에 선 나무를 여러 번 감아 고정하였다.


“플라잉이글드래곤, 우리가 탈 정도로 커져랏.”


 이안이 마법지팡이로 바구니들을 치자 그것들은 점점 부풀어 각자 탈 수 있을 정도로까지 커졌고, 언덕 끝에 나란히 정차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가장 먼저 탑승할 자로 아이디어를 낸 지원이 지명되자, 그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바구니 안에 올라탔다. 심호흡을 한 후, 바구니를 앞으로 밀어 낭떠러지로 쿵 떨어졌다. 그것은 밧줄에 매달려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단 몇 분 만에 건너편 보리수 앞에 도착하자 그는 매우 기뻐하여 어서 건너오라고 큰소리쳤다.


 다음은 이안 차례였지만 히든벅의 제안으로 덜덜 떨고 있는 수진과 함께 한 바구니에 탑승하게 되었다. 그들도 별문제 없이 건너편에 도착했다. 마음껏 스릴을 즐긴 그와 달리 그녀는 떨어지는 내내 구석에 앉아 “엄마”를 수백 번 넘게 불러댔다.   


 이제 히든벅 차례였다. 남아있는 두 바구니 모두 하필 바닥이 엉성한 것들이 걸려들었다는 사실에 그의 마음은 심란해졌다. 더군다나 그의 덩치에 비해 바구니가 좀 작기까지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주저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뒷발부터 안에 쑤셔 넣고 앞발은 테두리에 걸치었다. 그러다 문득 무게가 너무 앞으로 쏠릴까 두려워진 나머지 몸을 반대로 돌리려는데 이런, 그날이 그의 인생에서 엄청 불운한 날이었나 보다.


 스스로 몸의 균형을 잡기도 전에 그만 바구니가 절벽으로 툭 떨어져 내린 것이다. 건너편의 일행은 거꾸로 내려오는 그의 널찍한 등짝을 바라봐야만 했다. 거기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또 다른 불행이 닥쳐오고 있었으니, 그의 무게를 감당치 못한 손잡이가 “딱” 소리와 함께 바구니 본체에서 뜯어져 나간 것이다. 바구니는 순식간에 줄에서 이탈하여 급속도로 추락하였다. 머리의 뿔을 줄에 걸어보려 그가 필사적으로 시도해봤지만 다 실패로 돌아가자 수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안, 마법지팡이로 어떻게 좀 해봐! 빨리!”


 이안과 지원이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워봤지만 이미 그는 검은 안개 밑으로 사라진 후였다.


 동료를 잃었다는 충격에 그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지원이 주저앉으며 울부짖자 수진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댄 체 같이 통곡했다. 이안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고통스러운 얼굴로 묵묵히 낭떠러지 바닥을 응시하였다.



 그렇게 한 10분쯤 흘렀을까? 이안의 귀에 빨래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낭떠러지 밑으로 하얀 탁구공이 어둠 속에서 붕 떠오르는 것이 포착되었다.


“저게 뭐지?”


 수진은 눈물을 닦으며 다가와 그가 말로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탁구공이 야구공이 되고 곧 농구공 크기로 커지고 나서야 그녀는 그것의 실체를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머나, 히든벅이잖아?”


 그것은 두 날개를 펄럭이며 힘껏 날아오르는 프렐리야의 흰사슴 히든벅이었다. 검은 안개를 헤치고 하얀 털을 휘날리며 우아하게 날아오는 그의 모습이 흡사 신화에 나오는 페가수스 같았다. 바람을 가르며 낭떠러지에서 솟아오른 그는 주위 하늘을 한 바퀴 돈 다음 보리수 앞으로 사뿐히 내려왔다. 그들은 처음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응시하였다. 일행이 귀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짓자 히든벅은 배시시 웃으며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 돌아오니 다들 기분이 별로 안 좋은가 보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일행 모두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아까와 달리 기쁨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히든벅은 인자한 눈빛과 달래는 어조로 그들을 위로했다.


“내가 그리 쉽게 죽을 줄 알았소? 정말 많이 놀랐나보우? 자, 이젠 그만 우시오. 이렇게 살아왔으니 다 된 거 아니오?”


“혹시 귀신은 아니지요? 날개는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진작 알았다면 당신은 그냥 날아서 건너도 될 걸 그랬어요. 그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말입니다.”


 지원의 울먹거림에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나도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소. 아까 낭떠러지로 떨어졌을 때 난 어미에게 떠밀려 둥지에서 추락하는 새끼 독수리와 같았지. 이 아래가 얼마나 깊은지 한참을 떨어져도 바닥이 나오지 않더이다. 떨어지면서 난 마구 울부짖었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이대로는 못 죽어!”


 아 그랬더니 글쎄,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붕 떠 있는 게 아니겠소? 여러분처럼 나도 깜짝 놀라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지. 그때 알았소. 내 등에 커다란 날개가 생겼다는 것을. 그리고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는 걸 말이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료를 잃은 아픔을 겪어 본 그들은 각자의 존재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애틋한 감정이 그들 사이에 피어났고 서로를 배려하려는 마음 또한 충분히 느껴졌다. 


 지원은 두 나무를 연결하고 있는 밧줄을 풀기 위해 역주문을 외웠다. 역주문은 주문을 거꾸로 세 번 외우는 것이었다.


“스프니와비 스프니와비 스프니와비!”


 건너편 나무에 묶인 실패가 벌떡 일어나더니 스스로 밧줄을 감으며 이쪽으로 날아왔다. 실패가 땅에 툭 떨어지자 지원은 배낭 안에 그것을 소중히 집어넣었다.


“앗, 히든벅, 날개가 사라졌어요.”


 수진의 말처럼 그의 등에서 어느새 날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찡끗 윙크를 하더니 앞장서며 길을 재촉했다.


“어서 갑시다. 이미 여행이 많이 지체되었소.”   




 그들은 며칠 동안 깊은 숲 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지체된 일정 때문에 해가 지고 어두워져도 한두 시간을 더 걸어서 보충해야만 했다. 텐트를 치려고 하면 히든벅이 조금만 더 가자며 일행을 재촉했다. 수진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이 걸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의 몸은 말도 못하게 피곤해졌다. 지원의 따듯한 관심이 없었다면 그나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정작 가장 기대했던 이안은 야속하게도 그녀에게 힘을 주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날도 어둠 속을 걷다 가까스로 장작불을 피워 저녁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쌓인 피로와 노곤함 때문에 따듯한 불을 쬐자 다들 머리가 끄덕여지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주위는 고요했고 보름달로 변해가는 달이 그들의 머리와 숲을 조용히 비추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멍멍, 멍멍, 멍멍.”


 불현듯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뚝 끊겼고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늑대나 들개일 수도 있겠군.’


 혼자 눈을 뜬 이안이 나뭇가지로 장작불을 뒤적거리며 그 위에 땔감을 더 집어넣었다. 불길이 확 타올랐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자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멍멍, 웡웡, 크르르르, 따닥따닥, 휘이익휘이익, 탕탕..”


 그의 두 눈이 번쩍 떠지었다. 이번에는 다른 소리들도 같이 들려왔다. 사냥개뿐만 아니라 말굽의 따그닥 소리, 사람들의 휘파람 소리와 채찍 소리, 총 쏘는 소리 등이 뒤섞여있었다.


 그는 재빨리 일행을 흔들어 깨웠다. 제일 늦게 깨어난 수진이 눈을 뜨면서 주위의 소음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하던 히든벅이 문득 고개를 들어 달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 두려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설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 가... 다들 뛰어, 어서!”


 그의 다급한 외침에 아이들은 후다닥 일어나 정신없이 앞으로 뛰었다. 지원도 얼른 배낭을 집어 들고 튀었다. 곧 뒤쪽에서 나무들이 태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흔들릴 수 있는지 그녀는 달리면서도 의아했다. 그러나 뭔가 나쁜 것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달리던 히든벅이 멈춰 서더니 긴박하게 외쳤다.


“지원, 어서 왕자와 수진을 데리고 피하게.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아니, 도망칠 수 없습니다. 늑대 정도는 저희도 상대할 수 있어요. 그렇죠, 왕자님?”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지팡이를 꺼내 싸울 태세를 취하였다. 흔들리는 나무들을 바라보던 히든벅이 황급히 그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무섭게 화를 냈다.


“늑대가 아니란 말이오. 저 붉은 달을 보시오. 분명 ‘한밤중의 사냥꾼들’이오.”


 정말로 그새 달이 핏빛으로 붉어져 있었다. ‘한밤중의 사냥꾼들? 그럼 사람이구나.’란 생각에 안심이 된 수진은 바로 이안과 지원을 쳐다보았다. 붉은 달빛이 비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이 새파래진 것을 목격한 그녀는 또다시 불안해졌다. 지원이 주저 없이 이안과 그녀의 어깨를 확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그럼 여기를 부탁합니다. 히든벅, 살아서 장막 앞에서 만납시다!”


 그를 그곳에 홀로 남겨둔 채 그들은 어두운 숲 속으로 도망쳤다. 곧 뒤에서 한바탕 소란과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그녀가 멈춰 서서 뒤돌아보자 이안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며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한참을 달려 꽤 멀리까지 왔다고 느낀 지원은 그제야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왕자님, 수진을 잘 데리고 있지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는 다시 물었으나 역시 대답이 없자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그곳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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