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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Jun 24. 2018

14. 대장간 박물관 - 1

14. 대장간 박물관


 쥐고기 패드를 넣은 햄버거와 얼음이 동동 뜬 옥수수 주스로 배를 채운 아이들은 블랙 아이런을 따라 식당 한쪽 벽에 위치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계단 끝의 조그만 공간에 석문이 하나 있었다. 문은 커다란 자물쇠로 단단히 잠궈진 채 두꺼운 쇠사슬이 여러 겹으로 꽁꽁 휘감고 있었다. 


 대장장이는 바지 가슴 부분의 앞주머니에서 조그만 열쇠들을 잔뜩 매달은 꾸러미를 꺼내 찬찬히 살펴보다가 한 개를 찾아들었다. 자물쇠 한가운데 난 아주 작은 구멍 안으로 그것을 넣고 돌리자 “찰칵”하고 열렸다. 그리고 또 다른 열쇠를 찾아 쇠사슬 더미 사이에 은밀히 난 구멍에다 넣고 돌리었다. “덜컥” 쇠사슬 여러 겹이 한꺼번에 풀어지며 바닥으로 우르르 떨어졌다.


 석문을 안으로 밀며 들어서니 산뜻한 향기를 품은 선선한 공기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는 문 양옆 벽에 걸린 두 램프의 스위치를 켰다. 불이 들어왔다.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깨끗이 청소된 석실 바닥에는 파란색 고급 카펫이 깔려있고, 도저히 대장간에 속해있는 방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인테리어 장식이 매우 세련되고 화려했다.


 방의 정 중앙에는 각각 통유리로 막힌 하얀 대리석 제단 여덟 개가 세워져 있었는데 다섯 제단 위에만 물건이 얹어져 있었다. 제단 아랫 기둥에는 룬문자와 색을 입힌 화려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석실의 높은 천장은 마치 밤하늘을 보고 있는 것처럼 수많은 별과 달의 수정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진짜 맑은 여름날의 밤하늘처럼 영롱하게 빛이 났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흩어져서 구경하였다.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블랙 아이런이 큼지막한 입을 벌려 자랑스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어조로 말했다.

 

‘아이런 대장간’은 딥언더니아 왕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장간으로 이곳을 거쳐 간 명장의 명패 개수만 자그마치 47개나 된단다. 이곳 명장들은 왕국을 위해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아낌없이 발휘하셨지. 그들이 피땀 흘려 만든 작품 중에는 너무나 훌륭해서 역사에 길이 남은 것들도 상당수 있었단다. 그래서 나 바로 이전 이전 이전 이전 이전 대장장이이셨던 ‘블루 아이런’(그의 5대 전의 조상님이다)께서 그것들을 기념하고자 이 박물관을 손수 지으셨지. 


 하지만 미리 알아둘 건, 여기 전시되어있는 것은 모두 모조품이란 사실. 진짜들은 현재 소금궁전의 보물실에 잘 보관되어있지. 많이 부끄럽지만, 150살인 나조차 진품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왕 말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없으니 당연한 거겠지. 어쨌든 오랫동안 닫혀두었던 이곳을 연 이유는 여러분이 우리 대장간의 뛰어난 업적을 기억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주기 원해서이다. 

자, 여기 첫 작품은..” 


“저기요, 목공소 찰떡 씨가 외상으로 톱 하나만 달라는데요.”


 땀으로 흠뻑 목욕을 하다 중간에 달려 나온 듯한 한 대장장이가 박물관 문 앞에서 그를 불렀다. 그러자 그의 자랑스러운 얼굴이 금세 분노로 시뻘겋게 변하였다. 그는 대장장이를 따라 밖으로 쏜살같이 튀어나가며 무섭게 화를 냈다.


“벌써 몇 번째 외상이야? 이 작자 다리를 오늘 톱으로 확 잘라 부릴까 보다.”      


 그가 나가자 아이들은 제단 주위를 돌며 감상하기 시작했다.   

   


 손잡이가 유독 짧은 쇠망치,  

 

손바닥 만한 크기의 정교하게 만들어진 배 모형, 


이동식 철제의자,  


녹슨 사다리,  


팔뚝만 한 크기의 쇠봉       



“이게 뭐야? 우리 오나시아에서 거지가 쓰는 물건들과 진배없잖아. 이 배가 그나마 조금 나아 보이는데 아이들 장난감인가? 이 쇠봉의 황금은 진짜이기는 한 거야? 이 정도를 가지고 역사에 남을 최고라니. 오나시아 박물관에 그가 와서 보면 바로 눈이 튀어나와 혀 깨물고 죽겠군.”


 왕허준이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다른 이들 역시 그의 말에 별 이견이 없는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고물상에서 갖고 온 것처럼 여기저기 녹이 슬고 보잘것없는 물건들 같았다. 감상이고 뭐고 구석에 모여 그들이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위에서 크게 싸우는 말소리가 들려왔고 천장이 쿵쾅거렸다.


 곧 잔뜩 흥분한 블랙 아이런이 숨을 씩씩거리며 석실 안으로 들어오다가 뒤를 향해 고함치고 침을 내뱉었다.


“그 작자 다음에 또 오면 당장 몽둥이로 내쫓아버려. 우리 대장간을 뭘로 보곳! 퇫퇫!” 


 그는 망치가 올려 진 제단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옆에 선 왕허준에게 퉁명스레 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제단 위의 물건을 가리켰다. 


“너 이게 뭔지 알아?”


“망치잖아요. 쇠망치요.”


 왕허준이 히죽거리며 건들건들 답하자 그런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이런이 빈정거리는 어투로 다시 물었다. 


“이게 보통 망치인 줄 알아? 


“이런 망치는 우리나라 거지도 쓰지 않는다고요.”


“이런 무식한.. 넌 ‘토르의 망치’도 모르냐?” 


“이게 그 유명한 '토르의 망치'라고요?”


 허준을 대신하여 대답한 이안이 깜짝 놀라며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리고 통유리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어 그것을 열심히 관찰하였다. 마음이 좀 풀어졌는지 블랙 아이런은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래, 바로 ‘토르의 망치 묠니르’이다. 딥언더니아의 안전을 위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보물이지. 아니, 성물이라고 불러주렴. 제작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블랙수트마키아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해. 혹시 이것에 얽힌 사연을 알고 있나?”


 그가 묻자 이안은 고개를 내저으며 모른다고 솔직히 답하였다. 명장은 마음이 완전히 풀려 흐뭇한 미소를 띤 채 두루 쳐다보면서 설명을 늘어놓았다.


“기록들이 아주 오래되어 미비한 수준이지만 잘 추려보면 다음과 같은 사연을 갖고 있지."




< 토르의 망치 묠니르의 내력 >


 아주 아주 아주 오래전, 고대 딥언더니아는 거인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전쟁준비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승리를 장담하기엔 거인족은 너무나도 강력한 적이었지. 오죽하면 만약을 대비해 원형광장과 궁전에 비밀 탈출구를 여러 개씩 만들어놓았다는구나. 까딱 잘못되면 스스로 알아서 도망치라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토르’라는 자가 나타났지. 그는 딥언더니아의 왕을 방문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내가 거인들을 무찔러 주겠소. 대신 내가 원하는 무기를 하나 만들어주시오. 그러면 내 몸소 전쟁에 나가 거인들을 싹 전멸시키겠소.”


“그대가 원하는 무기는 무엇인고?”

 

 양쪽 귀 위로 멧돼지 송곳니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었고 가운데 정중앙에 초록색 에메랄드가 박힌 황금 왕관을 쓴 왕이 솔깃한 표정으로 묻자, 그는 간절히 호소하는 눈빛으로 또렷이 대답했다.


“망치요.”


“망치야 이곳 아무 대장간에 가도 수백 개씩 널려 있어.”


“아니요. 그런 망치 말고 내가 말하는 건 아주 특별한 것이오. 저 지상의 어떤 대장간도 내가 원하는 걸 만들 수 없었소. 그래서 마지막 희망을 안고 이곳으로 직접 찾아온 것이요.”


 왕은 전쟁을 이기게 해 주겠다는 그의 약속을 믿고 그 당시 최고의 대장장이에게 그를 보냈다. 바로 이곳 '아이런 대장간'의 창시자이자 전설적인 명장 ‘베룬드 아이런’이었지. 토르는 그에게 망치의 재질과 모양, 만드는 순서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망치의 해머 부문은 용의 불길에서도 살아남은 금속으로, 그리고 좀 짧은 손잡이 부분은 번개를 맞았음에도 살아남은 나무의 뿌리로 만들어야 하오.”


 그의 요구사항을 전해들은 왕은 그저 '웃기네'하며 한바탕 웃음으로 치부해버렸지. 그런데 놀랍게도 베룬드는 한 달 만에 그가 원하는 망치를 만들어주었다. 완성해서 토르에게 건네주자 왕과 베룬드 앞에서 그는 망치를 시연해 보였다. 목격하고 나서야 둘은 이것의 놀라운 위력을 드디어 알게 되었지. 그들의 눈알이 보석처럼 빛나며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 위력이 뭔지 아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군. 잘 들어봐.


 이 망치는 날아가서 어떤 적이건 단번에 쓰러뜨리고, 아무리 멀리 던져도 주인에게 저절로 되돌아와. 특히 거인에게는 치명적이어서 그것의 두개골 정수를 정확히 때려 부셔버리지. 

 

 망치를 얻은 토르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단다. 딥언더니아와 함께 싸워 지하에 침입하려는 거인족을 단번에 무너뜨렸지. 역사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후 그는 망치를 들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 채 말이야.


 그 후 딥언더니아에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모든 게 다 평온했지. 그래서 그들 사이에 '토르의 망치 묠니르’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명이 무언가를 들고 이곳으로 찾아왔지. 옥수수밭에서 주웠는데 아무리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 같더래. 그 당시 이곳의 대장장이였던 ‘캄캄 아이런’이 눈을 비비고 자세히 살펴보니 아니, 바로 여기서 아주 오래전에 만들었다던 그 ‘토르의 망치’가 아니겠어? 그는 그 길로 소금궁전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왕에게 그것을 바치며 찬양했지.


“왕이여, 드디어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소환의 예언처럼 망치가 제 발로 되돌아왔습니다.”     




“에잇, 망치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말도 안 돼요!”


 수진이 정색하며 그의 말을 중간에 끊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그는 무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좀 더 들어보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다시 토르가 왕과 베룬드 앞에서 망치를 선보인 그 날로 되돌아가 보자꾸나. 



 

 마음이 급해진 왕은 베룬드에게 몰래 귓속말을 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 베룬드는 토르에게 아직 망치의 마지막 손질이 남아있으니 다음 날 다시 찾으러 오라고 요구한 후 그것을 대장간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몰래 그것에 소환 주문을 걸었지. 주문자 토르가 죽은 후 고향 딥언더니아로 돌아오도록 말이야.


 그런데 정말 그것이 돌아왔어. 그것은 또한 토르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 왕은 그것을 소금궁전의 보물실에 안치했단다. 


 평화의 시대는 끝나가고 어두운 감운이 지상과 지하에 돌기 시작했다. 그런 불운한 기운은 곧 전쟁 블랙수트마키아로 이어졌지. 딥언더니아는 다시 한번 망치의 위력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단다.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여 수많은 거인과 괴물을 부셔버릴 수 있었지. 

 브라잇 동맹이 승리한 후 ‘토르의 망치 묠니르’는 딥언더니아를 수호해주는 성물로 떠받들어졌다. 


 그것이 왕국에 있는 한, 거인이나 괴물은 결코 이곳을 침범하지 못하리라.”






 설명을 마친 그는 자부심이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옆 제단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자, 다음 것은 바다와 하늘을 자유로이 항해하는 큰 배이지만 손바닥 크기로 접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스키드블라드니르’이다.”     


 아이들이 그를 따라 배 모형 주위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러나 카할은 제자리에 홀로 남아 토르의 망치 모조품을 여전히 응시하였다. 그저 검은색 나무 손잡이를 가진, 한쪽 끝은 뭉툭하고 다른 끝은 뾰족한 머리를 가진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쇠망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속에 그리움과 아련함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뚫어져라 봐, 카할?”


 이안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묻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어. 계속 눈에 밟히네.”


“보기엔 참 평범해도 그런 놀라운 능력이 있다니 무척 신기하긴 해.”


“그래. 근데 이상하지, 이안? 그리 낯설지가 않아. 아마...”


 말을 채 끝내지 못한 그가 좀 더 가까이서 보려는 듯 유리에 얼굴을 바짝 갖다댔다. 그렇게 눌린 생쥐 모양으로 섰다가 이내 겨우 떨어졌다.


“아마 아버지 대장간에서 만든 망치를 많이 보고 자라서 그런가 봐.”


“아까 들은 이야기도 무척 인상 깊었잖아. 어서 가자.”


 그는 겨우 눈길을 돌려 이안과 함께 수진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블랙 아이런의 설명은 동시에 끝나버렸다. 토르의 망치만큼 깊은 애정이 없었는지 아주 짧은 설명만으로 '스키드블라드니르'의 소개를 끝낸 것이다. 그들은 다음 제단으로 바로 향했다. 


 그때였다. 걸음을 옮기려던 수진의 오른쪽 귀 주위로 파리 한 마리가 앵앵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흔들어 내쫓았다.

 

‘지하에 웬 파리야?’



 ‘스스로 움직이는 철제의자’‘목적지까지 자유자재로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사다리’를 지나, 양끝에 금테두리를 두르고 가운데는 검은 쇠로 이루어진 쇠봉 앞으로 그녀가 자리를 옮기려는 찰나였다. 그녀의 오른쪽 귀로 어떤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멈춰 서서 가만히 들어보니 누군가의 고함소리였다.


“저기 내 물건이 놓여 있어! 저거 내 여의봉이란 말이야!”


 그녀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쇠봉을 놓은 제단 앞으로 가버려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급히 그리로 따라가려는데 문득 그녀의 눈앞에 파리 한 마리가 붕 날아올랐다. 


‘이번엔 기필코 잡고 말리라.’ 


 그녀가 두 손바닥을 벌려 그것을 딱 때려잡으려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무섭게 돌진해오더니 그녀의 이마를 딱 치고 위로 날아갔다. 머리가 뒤로 확 젖혀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눈앞에 스쳐 지나간 것이 전형적인 파리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에구머니나, 저게 뭐야?’  

 

 한 발자국도 못 가 아까의 고함소리가 또다시 그녀의 귀로 들려왔다. 이번엔 왼쪽 귀였다.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들렸다. 


“수진, 나야 나! 손오공.”


 파리가 그녀의 눈앞에서 윙윙거리며 요란스레 날아다녔다. 그녀가 손바닥을 내밀자 그것은 그 위에 얌전히 내려앉았다.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서 살펴보니 몸과 날개는 파리였지만 손오공의 얼굴과 꼬리가 달려있었다. 경악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녀의 왼쪽 귓바퀴에 달라붙어 꽥꽥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건 내 거야! 지하 정자로 붙잡혀 오다가 하늘에서 그만 떨어뜨렸는데. 근데, 저것은 진짜가 아니네. 진짜가 어디 있는지 빨리 물어봐줘.”


“진품은 다 소금궁전 보물실에 있데. 조금만 기다려봐. 저분 설명하는 걸 너도 듣게 해줄게.”


 수진이 소곤소곤 대답하자 앞에 서 있던 이안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그녀 쪽으로 뒤돌아봤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그의 고개는 다시 앞으로 돌려졌다. 그녀는 블랙 아이런 옆으로 가 섰고 손오공은 같이 그의 말을 엿들을 수 있었다.  


“이것은 ‘여의봉’이라는 건데 약 1,000년 전 옥수수밭에서 농부가 발견했단다. 비록 여기서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왕의 요청으로 봉의 양끝에 금테만큼은 우리 선조가 직접 멋있게 둘러줬다고 하지. 그런데 요 작은 것이 얼마나 무겁던지 가장 힘세다고 자부하는 100명의 딥언더니아 장정들이 힘을 합쳐야만 겨우 옮길 수 있었다. 처음엔 이름도 모른 채 원형광장 구석에 전시해 놓았다가 우연히 이것에 대해 아는 자가 나타났지. 


 사실 이것은 아쿠아니아 왕국의 성전 왼편을 받치던 쇠기둥으로 어느 날 도둑이 들어 그것을 뽑아 훔쳐 달아났다는구나. 소문으론 원숭이라던데 아무튼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져 천벌을 받을 범죄자이지. 그놈 때문에 성전 한쪽이 무너져 내렸으니까. 그런 큰 기둥이 어떻게 이렇게 작아졌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통 물건이 아닌 게 틀림없어서 전시해 놓은 거란다. 원숭이든 고릴라든, 줍는 자가 임자 아니겠니?”


“아니야, 그건 내 거라고. 내 거야, 내 거!” 


 손오공이 격분하여 그녀의 귀에다 대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리고 블랙 아이런에게 날아가서 자신의 것이라 크게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에겐 그저 "윙"하는 파리의 날개 마찰 소리로만 들릴 뿐이었다. 그가 파리를 때려잡으려고 여러 번 손뼉을 쳤다. 간신히 그의 무지막지한 손바닥을 피한 손오공은 수진의 왼쪽 귓바퀴에 다시 내려앉았다. 그를 대신하여 그녀가 대장장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짜 여의봉 역시 소금궁전 보물실에 보관되어 있는 거지요?”


“너희는 진품에 참 관심이 많구나. 그래, 그곳에 있지.” 


“그럼 그 보물실은 궁전의 어디에 위치해있나요?”


 블랙 아이런이 질문한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튀어나온 배를 붙잡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글쎄다. 그것이 어디 있을까? 일개 대장장이인 내가 그걸 알 수 있으려나? 소금궁전 어딘가에 있긴 있겠지. 스톰펌 왕을 뵙는다면 한번 농담으로나 여쭤보려무나, 하하하.”

     


 박물관 견학을 마친 그들은 판매 제품들이 전시된 아까의 그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새 그들의 작품은 연마작업을 거친 후 나무 손잡이까지 단단히 고정되어 완성품으로 각자의 손에 전달되었다. 손잡이 끝에는 ‘아이런 대장간’이라는 글씨가 갈색 인두로 찍혔다. 


 그런데 블랙 아이런의 표정이 갑자기 오묘해지더니 신속히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앞에 버티며 서 있는 게 아닌가? 아이들은 순간 '왜 저러시나?'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선반에 놓인 완제품들을 향해 손가락을 쭉 내밀면서 구매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할인을 해 줄 테니 캠프에 온 기념 선물로 무조건 사가렴. 안사면 이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갈 줄 알아.”


“근데요. 몸이 그리 좋지 못해서 빨리 나가야 할 거 같아요.”


 말을 마친 해마의 얼굴이 매우 창백하였다. 수분 부족 현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대장장이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다시 강매를 요구했다. 해마는 물건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옆에 있는 아무거나 집어 들더니 바로 돈을 냈다. 그가 문의 잠금장치를 풀자 해마는 급히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시 문이 닫히고 남은 이들도 이곳에서 제일 싼 면도칼이나 눈썹칼 등을 집어 들었다. 수진의 눈썹칼은 이안이 대신 돈을 내주었다. 그런데 카할이 끝까지 구매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장장이가 그를 째려보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이안은 얼른 등 뒤에 놓인 주머니칼 하나를 집어 카할의 손에 쥐어주며 대신 값을 치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화를 풀고 돈을 받아 챙겼다. 손수 방문까지 열어주면서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이 일은 위원장이나 누구에게도 절대 말하면 안 된다.”



 아이들은 대장간에서 완전히 벗어나 광장을 걸어가는 중이었다. 해마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그들은 걱정이 되었지만 속으로만 되뇔 뿐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카할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이안과 수진에게 마구 불만을 토로했다.


“너무 비싸게 팔잖아. 솔직히 우리 아버지 대장간에선 여기의 반값 정도로만 판단 말이야. 그리고 이건 네가 샀으니까 네 거야.”


 그가 주머니칼을 이안에게 되돌려주려 하자 그는 선물이라며 여러 번 사양했다. 카할은 끝까지 받기를 거부했다. 결국 그것을 받아 든 이안은 금화 3닢이라는 비싼 비용을 들여 캠프에 참가했는데 이렇게 바가지까지 씌우다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이들 역시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같은 기분이었다. 


 전에는 오고 가는 광장 길이 참으로 재미나고 즐거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별궁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 처음으로 그들에게 답답하고 짜증스럽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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