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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Jul 15. 2018

14. 대장간 박물관 - 2


 푸다크 별궁으로 돌아오자 홀의 식탁에 풍성한 저녁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대장간 일로 많이 힘들었을 참가자들을 위해, 그리고 이안과 수진의 무사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왕이 특별히 준비시킨 잔치음식들이었다. 그들은 조금 전의 기분 나쁜 일도 다 잊은 채 맛있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온 후 대부분 들쥐피로 연명하던 이안과 안젤라를 위해 특별히 신경 써서 준비한 사슴피와 노루피는 그들의 입술 끝에 미소를 걸어주었다. 걱정하던 해마는 안색만 좀 핼쑥할 뿐 식사를 하는 것으로 미루어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것 같았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식사가 거의 끝나가도 천장에 붙은 아나콘다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다들 즐겁고 여유롭게 식사하는 가운데 유난히 급한 사람 한 명이 어째 돋보이는 듯하다. 수진이 평소보다 더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자기 접시에 음식을 잔뜩 덜어 조용히 방으로 갖고 들어갔다. 몇 분이 지나자 그녀는 나와서 빈 접시에 다시 음식을 꾹꾹 담았다. 발을 잘못 헛디디면 바닥에 큰 사고를 칠 것처럼 접시 위로 층층이 쌓인 음식들이 발걸음마다 아슬아슬하게 출렁거렸다. 다행히 그녀는 한 점 흘리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그렇게 두 번을 더 나오고 빈 접시를 든 채 세 번째로 다시 식탁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식탁에 앉아있던 아이들은 슬슬 걱정이 되었다. 접시에 음식을 꾹꾹 담는 그녀를 우란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넌지시 말렸다.


“그만 먹어도 될 것 같은데. 수진, 그러다 배탈 나겠어.”


 그녀는 괜찮다 말하고는 접시를 가득 채워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안이 냅킨으로 입 주변을 닦은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방문 앞으로 다가가 노크를 했다. 문이 조금 열리더니 그 사이로 얼굴을 내민 그녀가 조곤조곤 말하였다. 그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다급히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그 모습을 식탁에서 쭉 지켜보던 안젤라의 아름다운 보라색 눈동자가 마침내 질투심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그녀는 남은 잔의 액체를 벌컥벌컥 들이마셨고, 입술 옆으로 붉은 액체가 흘러내려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옆에서 카할이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나 무섭게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에 그만 그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푸다크 별궁으로 급히 돌아온 후 위원장에게 받은 수분캡슐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삼켜 다시 건강을 되찾은 해마는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는 수진의 방문을 향해 두 손을 쭉 뻗으며 세레나데를 부르기 시작했다.


“둘의 사랑이 익어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아름다워라~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도 저들을 따라가지 못하리. 저 연인의 끝은 어디일까? 행복한 끝맺음일까? 아님 불신과 배신으로 얼룩진 고통일까? 천국을 다니는 행복과 환희의 기쁨일까, 지옥에서 맛보는 쓰디쓴 원망과 한탄뿐일까?”


“그만두지 못해!”


 그는 깜짝 놀라 노래를 멈추고 고개를 돌리었다. 소리친 안젤라가 벌떡 일어나 부르르 주먹을 쥔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뱀파이어를 화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그는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버렸다. 다른 이들도 하나 둘 식탁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제자리에 앉아 힘없이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홀에 혼자만 남았다고 여기던 그때, 누군가가 터벅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녀의 얼굴에 공포와 충격이 떠올랐다. 그녀의 몸이 두려움으로 부르르 떨리었다. 




 문을 잠근 이안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한 어조로 불렀다. 


“손오공!”


 그랬다. 방바닥에 주저앉은 손오공이 접시의 음식을 헐레벌떡 먹고 있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빈 접시를 갖고 나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손오공은 입 안 가득 음식을 넣고도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가끔 음식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바닥에 줄줄 떨어졌다. 그의 배는 만삭의 임신부처럼 불룩 튀어나와 무거워 보였다.

 

“지난 1,000년 동안 이렇게 맛난 것을 먹을 수 없었는데 여기가 진짜 천국이로세.”


“야, 손오공, 너 돌아간다면서 왜 다시 온 거야?”


 이안의 짜증에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접시에 놓인 음식에만 집중하며 말했다.


“사실 쥐로 변해 출구를 찾아 지상으로 나갔었거든. 근데 옥수수밭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도대체 내 여의봉을 찾을 수가 있어야지. 한참 동안 찾아도 없기에 혹시 여기 딥언더니아에 있을까 싶어 다시 돌아오는데, 때마침 너희가 광장을 걷고 있는 거야. 그래서 너희 뒤를 졸졸 따라갔지. 근데 그 대장간에서 내 무기의 위치를 알게 되었으니 이런 우연이 또 어디 있겠니? 역시 너희는 나의 최대 행운이야. 정자에서 나를 풀어주고 거기다 여의봉의 위치까지 알게 해주었으니. 


 여의봉아~ 좀만 기다려. 곧 너의 주인이 찾으러 갈게. 일을 하기 전에 배 좀 채우면 좋을 것 같아서 그녀에게 부탁해 음식을 가져오게 했지. (튀어나온 만삭의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자 ‘크으윽’ 트림이 나왔다.) 이제 배도 부르니 잠 좀 자볼까? 오늘 밤에 몰래 찾으러 가야 하니까 미리 자 둬야지.”


 손오공은 수진의 침대 위로 점프해 올라가 등을 대고 누웠다. 베개를 베었다가 뒷목이 결리는지 그것을 옆으로 홱 던져버리고는 두 손으로 담요를 끌어와 가슴을 덮었다. 오히려 주인인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안이 침대 옆으로 다가와 그가 덮은 담요를 사정없이 빼앗았다. 그리고 화를 내며 빽빽거렸다.


“여긴 수진 침대란 말이야. 잘려면 바닥에서나 자라고.”


“이런, 이래 봐도 난 보통 원숭이가 아니야. 원숭이의 왕 손오공이라고. 왕이 바닥에서 자는 거 봤냐?”


“그래도 안 돼. 1,000년 동안 목욕 한 번 못했을 텐데 그러다 털에 있는 이나 벼룩이 침대 시트에 떨어지면 어떡해? 으악, 벌써 떨어지고도 남았겠군. 만약 그녀에게 옮기면 어떡할 거야!”


 손오공은 그의 악소리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로 담담히 대답했다.


“이나 벼룩도 존귀한 생명체인데 같이 좀 지내면 어때? 피도 좀 나눠주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지.”  


 그는 담요 위로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를 한 손으로 어루만지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의 손목을 홱 낚아채어 당겼다. 침대에서 떨어진 그가 질질 끌리어갔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벗어나려 했지만 뱀파이어의 강한 힘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수진이 손오공의 발목들을 부여잡으며 다그쳤다.


“그만들 좀 해!”


 그와 그녀가 서로 잡아당기자 손오공의 몸이 허공에 뜨더니 고무줄처럼 위아래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손오공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며 자기 쪽으로 더 세게 잡아당겼다. 아픔을 느낀 손오공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란 두려움에 마구 비명을 질러댔다.


“둘 다 그만해! 내 몸이 찢어질 것 같아. 죽을 것 같이 아프다고.” 


 놀란 그들은 동시에 손을 탁 놓았다. 손오공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걱정이 된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대로 누워있는 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더니 깊은 잠에 빠져든 듯 보였다.


“크렁크렁.” 


 그가 코를 골았다. 수진은 그를 안아서 침대로 데리고 와 눕힌 후 담요를 덮어주었다.

 

“많이 피곤했나 봐.”


 그녀는 침대 곁에 살짝 걸터앉으며 말했다. 이안이 그녀 곁으로 다가와 앉으려다가 혹시 손오공 몸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을 이나 벼룩 생각에 급히 엉덩이를 떼며 일어났다. 그는 얕은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얘가 소금궁전의 보물실이 어디 있는지 알고나 이러는 걸까? 분명 꽁꽁 숨겨놓았을 텐데 넓은 궁전에서 찾는 게 말처럼 쉽겠어? 만약 도중에 들키기라도 하면? 도대체 자신이 계획한 도둑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나.....”


 순간 손오공의 두 눈이 번쩍 뜨이더니 몸을 튕겨 두 번 회전한 후 바닥에 사뿐히 정지하였다. 사실 그는 죽음을 앞에 두고 겁을 냈던 게 부끄러워서 일부러 잠든 척 연기를 했던 것이었다.


“도둑질이라니, 누가 도둑이라는 거야? 여의봉은 본래 내 거야. 내가 직접 아쿠아니아에서 몰래 뽑아 와서 만든 것인데, 도둑이라니…”


 그의 말소리가 힘이 빠져 점점 작아지자 이안의 얼굴에는 승리의 미소가 차차 떠올랐다.


“그래, 결국 그곳에서 도둑질해왔다는 거잖아. 그리고 다시 보물실에서 훔쳐 내야 할 판이고. 두 사건이 다를 게 뭐가 있어?”


“그래도 여의봉은 나만이 다룰 수 있는 거야! 그러니 되찾기 전에는 절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어. 그게 없으면 나 역시 존재하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니까. 여의봉과 손오공은 늘 하나야, 하나라고!”


 손오공의 굳게 닫힌 입술과 단호한 눈동자는 그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고도 남았다. 그의 결심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안이 마침내 결심한 듯 진지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대충 계획이라도 세운 거야?”


“당연하지. 너희도 보았다시피 나의 마법력으로는 아주 식은 죽 먹기야. 그러니 나에 대해 전혀 걱정할 거 없어.”


“누가 네 걱정을 한데? 지금 문제는 네가 아니고 우리라고. 안 그래도 스톰펌 왕이 우리가 멀쩡히 광산에서 살아 돌아온 것을 보고, 혹시 지하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닌지 깊이 의심하고 있단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네가 여의봉까지 훔쳐갖고 달아나면 우리는 뭐가 되냐고? 분명 왕은 여의봉과 우리가 서로 연관 있다 생각할 거고, 그러면 우리는 더욱 곤란한 처지에 빠진단 말이야. 

 이건 너뿐 아니라 우리의 명예까지 걸린 문제라고. 그러니 계획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여의봉도 포기하고, 그냥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가 주면 안 되겠니? 이렇게 부탁할게.”


 원래 누구한테 빌거나 항복하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이안이 웬일인지 두 손을 꼭 모아서는 그에게 비는 시늉을 하였다. 손오공의 표정이 불현듯 어두워졌다.


“혹시 왕이 나에 대해 알고 있던?”


 그녀는 정색한 채 자동적으로 손을 앞으로 흔들어 부정했다.


“아니야, 너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하시는 것 같았어. 정말이야.”


“휴, 다행이다. 방금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 


 그가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의봉은 절대 포기 못해. 1,000년 전 같으면 난 소금궁전 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가 왕에게 직접 내놓으라고 소란을 피웠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 조용히 해결하는 방법을 택하는 거지. 신사적이고 공손하게 말이야. 장담하건대, 그는 훔쳐가도 당분간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왜냐면 이렇게 가짜를 만들어 진짜 대신 놓고 올 계획이거든.”


 손오공은 자신의 털 세 개를 뽑아 입안에 털어 넣고 잘게 씹다가 훅 내뱉으며 외쳤다. 


“키크라카로카커쿠라쿠쿠라쿵쿵, 여의봉으로 변해라!”


 잘 보이지도 않던 가느다란 털들이 어느새 여의봉으로 변하였다. 착시효과가 아닌 정말로 만져지는 쇠봉이었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털처럼 무게가 아주 가볍다는 거였다. 


 그녀는 환호성을 내지르며 다가와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정말 아까 본 모조품과 똑같았다. 이안 역시 그의 능력에 감탄한 듯, 가짜 여의봉을 한참 동안 만져보더니 불쑥 제안했다.  


“네가 그렇게 계속 고집을 피우겠다면 할 수 없지. 대신 요청이 하나 있어.”


“뭔데? 아직 나한테 남은 소원을 말하려는 거야?”


“아니, 소원이 아니라 요청이야. 나도 너를 도와주겠어. 소금궁전에 잠입해서 보물실을 함께 찾아줄게. 그게 다야.”


 손오공은 감동한 듯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발을 동동 구르고 춤을 추며 좋아했다.


“그래 주면 진짜 고맙지. 근데 혹시, 너도 변신할 수 있어?”


“잘 못해. 날 좀 도와줘야 될 거야.”


“당연히 도와줄 수 있지. 걱정하지 마. 그까짓 것쯤이야. 오늘 밤이면 여의봉을 찾아 바로 고향으로 떠날 수 있겠구나.”


“진짜 잘 됐다.”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이안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친구를 도와주려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기특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주는 것을 보니 겉은 뱀파이어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따듯한 인간인 거야.’

 

 그런데 문득 이안의 표정에 이상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순간 불안한 예감이 든 그녀였으나 입을 열진 않았다. 


‘아마 내가 잘못 본 거겠지.’     


 혼자 생각하며 그녀는 불안감과 함께 침을 꿀꺽 삼키었다. 


 손오공은 기분 좋게 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였다. 그의 단잠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진짜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안은 그가 누웠었던 침대 시트와 담요를 가지고 그를 꽁꽁 싸매어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자신의 깨끗한 시트와 담요를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이안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바닥에 누운, 시트와 담요를 몸에 돌돌 만 손오공의 코골이에, 이갈이까지 포함하여 수면방해 패키지를 다양하고 화려하게 선보이는 바람에 결국 밤 12시까지 그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기상해야만 했다. 손오공을 깨우면서 두 번 다시 이 골칫덩어리와 한 방에서 잠을 청하지 않을 거란, 뼈저린 결심을 수백 번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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