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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Aug 05. 2018

15. 도둑맞은 토르의 망치 - 1

15. 도둑맞은 토르의 망치


 소금궁전의 웅장한 대문 앞이었다. 갑옷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이 날이 번뜩거리는 도끼를 어깨에 멘 채 보초를 섰다.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거나 먹을 것을 나눠먹으면서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문득 그들의 머리 위로 파리떼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윙윙윙~"


 한 명이 도끼를 이리저리 흔들어 무자비하게 찍으려 하자 그것들은 정신없이 날아다니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문 양쪽으로 각각 지붕을 지탱하고 있는 거인상 기둥의 툭 튀어나온 무릎 위에 어느새 그것들은 앉아 있었다. 문이 바깥으로 열리며 한 병사가 나오자 그것들은 그 틈을 이용해 재빨리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복도의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날아가다가 허름해 보이는 작은 나무문의 열쇠 구멍을 겨우 통과하였다. 그곳은 빗자루, 걸레, 양동이, 나무 의자 등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창고였다. 


 파리 세 마리는 마룻바닥에 내려앉았다. 몇 초 후 점점 덩치가 커지더니 이안과 수진, 손오공으로 변하였다. 손오공과 달리 그들은 변신이 끝난 후의 후유증인 어지러움으로 몇 초간 가만히 있어야 했다. 어지러움이 가시자 그들은 창고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행사용 간이의자들이 마구잡이로 쌓여있었다. 각자 의자를 꺼내어 가까이 모여 앉았다. 일단 궁전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심장이 뛰어서 못하겠어. 아까 시퍼런 도끼날에 찍혀 죽을 뻔했단 말이야!”


 그녀의 불평에 이안의 입이 툭 튀어나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속에 삭혀두었던 말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러길래 따라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넌 안 오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괜히 고집 피워서 여기까지 들어와서는. 다시 분명히 말하지만 만약 네가 잡혀도 난 혼자 도망칠 거야. 네가 감옥에 가든 어떻게 되든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알겠어?”


“알아. 불운하게 자꾸 잡힌다는 말 좀 하지 마.”


“그냥 별궁에 있지 왜 따라온 거야? 너 때문에 신경 쓰여 죽겠어.”


“누가 신경 쓰래? 난 손오공을 돕고 싶은 마음에 온 거야. 내가 죽든 말든 넌 신경 끄쇼.”


“정말로.. 넌..”


 이안과 수진이 서로를 향해 씩씩거리며 싸우려 하자 손오공이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조용히 좀 해. 밖에서 누가 들으면 어떡해?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단 말이야. 빨리 보물실을 찾아야 해.”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둘은 으르렁거리며 잠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임무를 위해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이안이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궁전이 아주 넓어. 방도 엄청 많고. 방을 다 돌아다녔다간 하루 안에 끝내기는 불가능할 거 같아.”

 

“내가 추측하기에 그것은 아마 지하에 있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수진?”


 손오공이 흠칫 놀라서 그녀에게 되물었다. 


“만약 내가 왕이라면 보물실은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에 만들 거야. 그러려면 사람이 많이 다니는 1층이나 2층보다는 지하가 더 낫지 않겠어? 더군다나 그곳은 어두우니까 감추기에 좋을 거고.”


“음. 일리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이안?”


“나도 그 의견에 동감이야. 지하부터 찾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럼 지하로 내려가는 층계를 찾아야 하는데. 너희들은 잠시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부대와 함께 정찰하고 올 테니.”


 손오공은 등에서 털 한 뭉치를 뽑아 입안에 넣어 잘게 씹은 후 "훅~"하고 내뱉었다.


“키크라카로카커쿠라쿠쿠라쿵쿵, 파리 부대로 변해라!”


 순간 수십 마리의 파리떼가 그의 입안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정렬했다. 파리로 변신한 손오공과 부대는 함께 열쇠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이안과 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손오공의 변신하는 둔갑술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여전히 신기했고, 아까 싸운 기세의 여파도 조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참다못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약한 노란 불빛을 발하는 램프 여러 개가 소금벽에 매달려 있어 분간하고 돌아다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녀는 세워진 빗자루 더미를 지나쳐 커다란 선반 앞으로 다가갔다. 신문지에 싸인 다양한 크기의 물건들이 차곡차곡 선반에 놓여 있었다. 눈높이와 딱 맞는 위치에 직사각형으로 쌓인 신문지가 별안간 그녀의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브라잇 동맹 데일리’라고 적혀있었고, 그 아래 기사 타이틀이 크게 있었다.

 

[ 흑마법 주문을 아는 자가 사라졌다. ]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타이틀 밑으로 아무 기사도 적히지 않은 채 두 줄 정도 칸이 비어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을 느낀 그녀는 타이틀 부분을 손가락으로 스쳐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타이틀 글씨에서 연두 빛이 튀어나오더니 기사가 허공으로 번쩍 띄어진 것이다.      


[ 블랙수트마키아 당시 일룸니아 왕국의 군사들이 행한 흑마법 주문을 안다는 자가 최근에 나타나 세간의 이목을 끌었으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행방불명된 상태이다. 그는 ... ]     


 빛이 갑자기 사라지고 이안이 타이틀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그녀는 짜증이 난 표정으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왜 끄는 거야? 지금 읽는 중인데.”


“목소리 낮춰. 여긴 잠입한 곳이라고.”


 잠시 구경하느라 긴장의 끈을 놓은 그녀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그녀의 화도 빠르게 진정되었다. 그들은 의자로 되돌아와 얌전히 손오공을 기다렸다. 아까 읽던 기사가 계속 떠오르자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흑마법이 뭐야?”


 그는 왜 물어보는지 알겠다는 의미의 미소를 살짝 지으며 역시나 작게 대답했다.


“남을 해치거나 죽이는 마법이야. 그리고 아주 고약한 저주를 건다던가.”


“그럼 그 마법 주문의 처음 시작도 “플라잉이글드래곤” 이야? 네가 늘 쓰는 주문처럼?”


“아니, 전혀 다른 주문이라고 알고 있어. “플라잉이글드래곤” 은 아주 아주 오래전 신성한 독수리와 드래곤이 일룸니아와 오나시아에게 사용하라고 알려준 ‘백마법 주문’이야. 실크롱 강의에서 브라잇 동맹 편에서 같이 싸워준 바로 그 왕관 독수리와 화이트 드래곤 말이야. 그 주문은 그들이 가졌던 맑고 선한 기운을 바탕으로, 이 땅 위의 모든 생명체에게 이로움을 전하라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데. 

 그런데 전쟁 '블랙수트마키아'가 다가오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남을 해치는 흑마법이 필요해졌지. 전쟁은 선한 기운만으로 이길 수 없거든. 결국 일룸니아 왕국의 이안 1세가 흑마법 주문을 알아냈어. 그리고 일룸니아 군사들에게 몰래 퍼트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 오나시아는 끝까지 그것을 몰랐다고 해.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마왕이 봉인되자 흑마법 주문은 동맹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어.”


“영원히 사라지다니, 어떻게?”


“주문을 알던 군사들과 그 가족들이 모두 하룻밤 사이에 왕국에서 사라져 버렸거든.”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아무도 몰라. 아무튼 완전히 사라져 버렸어. 근데 이상한 점은 그들이 살던 집에서 짐을 꾸리거나 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거야. 그냥 사람들만 증발하듯이 사라졌데.”


“혹시 외계인들이 납치해간 것 아니야?”


“외계인? 그게 누군데?”

“이안, 외계인 몰라? 외계인이란 이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와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야. 그들은 우리보다 더 선진화된 문명을 갖고 있는데 가끔씩 지구로 날아와 사람들을 납치해간데. 그러니 그들 역시 외계인에게 납치당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주문을 알던 사람과 가족만 골라서 데려갈 수 있겠어? 전혀 불가능하지.”


“내 말을 뭘로 들었어? 선진화된 문명을 가졌다니까? 그러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거라고.”


“그럼 그 외계인들이 아주 고도의 마법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네?”


“바로 그거야, 이안! 어디서 보니까 그들은 하룻밤에 이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데.”


“에잇, 그건 또 무슨? 지금 너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농담은 그만둬.”


 그들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각자 속으로 어서 손오공이 왔으면 바라고 있었지만 벌써 30분이 흘러가는데도 여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혼자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가 뭔가 떠오른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근데 그 흑마법 주문이 영원히 사라진 건 아니야. 이안 1세가 그것을 전해줬으니 그는 알고 있었을 거 아냐? 혹시 그도 그날 밤 같이 사라졌데?”


“아니, 나의 선조는 그대로 계셨어. 그러나 그가 공개적으로 고백하길, 그들이 사라졌던 밤이 지나자 자신도 흑마법 주문을 다 까먹어버리셨네.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되었다나?”


“어머 진짜? 그럼 아까 그 신문기사는 뭐야, 그 주문을 알고 있는 자가 있었다는 거 아냐?”


“칫, 저런 기사는 심심하면 올라와. 조사해보면 다 거짓말이고 뻥이었지. 괜히 유명해지고 싶으니까 저런 술수를 피우는 걸 거야. 한심한 자 같으니라고.”


 그때였다. 복도 끝에서 쿵쿵거리며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창고 앞에서 멈추었다. 수진과 이안은 급히 일어나 산처럼 쌓여있는 의자 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삐끄덕~” 문이 열리고 노란 모자와 노란 하인 옷을 입은 어린 딥언더니아 소년이 들어왔다. 그는 빗자루들 쪽으로 향하다가 방금 전까지 아이들이 않아있었던, 바닥에 나란히 모여져 있는 세 개의 의자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순간 뒤에 숨어있던 그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행히 소년은 머리를 한번 긁적이고는 의자를 거꾸로 들어 그들이 숨어있는 더미 앞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정리를 마친 그가 얼른 긴 빗자루 한 개를 챙겨 들고 나서며 입을 삐죽거렸다.


“이런 하찮은 일이나 시키다니. 뭐, 나보고 파리를 잡으라고. 내가 뭐 파리 사냥꾼이야? 이 넓은 곳에서 그것을 어떻게 잡으라고.”


 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그들은 의자 뒤에서 튀어나왔다. 이곳도 그리 안전한 곳은 못되나 보다. 그런데 방금 나가는 것을 분명히 확인한 그 딥언더니아인이 갑자기 문을 확 열어젖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얼음이 된 수진과 이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수만 가지의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그런데 그가 그들을 향해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배를 부여잡고 낄낄거리는 것이었다.


“크크크. 나야 나, 손오공. 방금 나간 자와 똑같이 변신을 해봤지. 그런데 너희들 표정이, 하하하, 흡사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데. 너무 웃기다. 크크크.”


 그제야 긴장이 풀린 아이들은 어색한 웃음을 띠었다. 겨우 진정한 이안이 그에게 따지듯이 야유와 불만을 토로했다.


“다시는 절대 그런 장난치지 마. 들킨 줄 알고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알았어. 다음엔 절대 안 그럴게 가 아니지롱~”


 혀를 내민 손오공이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춤을 추었다. 그가 이렇게 장난꾸러기인 줄 그들은 미처 몰랐었다. 더 이상 정자에 갇힌 신세가 아니어서 그런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일을 벌이려는 스타일이었다. 그가 괜히 정자에 갇힌 것이 아니었나 보다고 이안은 잠시 생각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알아봤어?”


 그녀가 묻자 손오공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더욱 환해지며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찾았어. 지금 바로 떠나자.”


“저기, 이번엔 파리 말고 좀 귀여운 것으로 변신시켜주면 안 될까?”     




 전에 창고로 들어온 그 하인처럼 변신한 손오공이 빗자루를 든 채 복도를 빠르게 뛰어갔다. 그의 머리를 덮은 노란 모자 위로 두 마리의 귀여운 햄스터가 올려져 있었다. 그가 왼쪽으로 급히 꺾자 햄스터들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모자에 바짝 붙이며 안간힘을 썼다. 지나가던 다른 하인과 보초병이 그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이, 하르카. 오늘은 여러 번 보네.”


 아까 그 하인의 이름이 하르카였나 보다. 손오공은 능청스럽게 인사 하나하나에 다 응대하였다. 신기한 건 목소리도 그 하인과 똑같았다. 한 병사가 그의 머리에 얹은 햄스터의 용도를 물어보았다. 손오공은 혀를 내밀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대답했다. 

 

“네, 요 귀여운 것들을 오늘 왕을 위한 특식으로 제공할 예정이에요. 보다시피 제 손톱이 너무 길어 이것들 피부에 상처를 줄까 봐 이렇게 머리에 얹어두었지요. 얌전해서 보채지도 않고 통통하니 잘 튀겨 요리하면 왕이 아주 기뻐할 거예요.”


 아이들은 그가 농담을 건네는 줄 알고 있었지만 저도 모르게 눈이 왕방울처럼 크게 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손오공의 모자에 엎드린 그들은 지금 옆으로 지나치고 있는 복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전에 스톰펌 왕과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서 지나가던 바로 그 복도였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숲과 희귀한 동식물들이 생동감 있게 사실적으로 그려져 흡사 진짜 숲 속을 헤쳐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길은 밝은 곳에서 벗어나 좁고 어두운 구석으로 이어졌다. 수진은 그만 옆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옅은 빛이 비추는 곳에 흉측한 외눈박이 거인이 그녀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숨이 턱 막혀 사지가 덜덜 떨리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벽면에 걸린 부조작품이었다. 조각된 거인의 벌린 입 속으로 딥언더니아 군사들이 검과 불을 들고 돌진하고 있었다. 거인은 그들을 토해내기 위해 양 손을 입으로 가져갔으나 이미 군사들의 도끼가 손목 여기저기 박혀있어 처참하게 상처를 입고 있었다. 

  

 손오공이 오른쪽으로 길을 꺾었다. 그리고 계속 코를 킁킁거리는데 지하에서 풍겨오는 쾌쾌한 곰팡이 냄새를 쫓는 중이었다. 아이들조차 냄새가 아주 진해졌다고 느껴졌을 때 지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정찰한 부대에 따르면 저기가 지하로 내려가는 유일한 계단이래.” 



 계단은 좁고 어두웠다. 그러나 손오공은 별 문제가 안 된다는 듯 빠른 속도로 뛰어 내려갔다. 계단이 끝나자 두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복도로 이어졌다. 지하의 공기는 상당히 차갑고 눅눅했다. 아무도 없어 조용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손오공은 두 손바닥으로 이안과 수진을 바닥에 내려주었다. 손오공의 입김을 받자 그들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현기증으로 그들은 잠시 제자리에 있어야 했다. 손오공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얀 소금 암석으로 지어진 소금궁전의 지하실은 위층과 달리 보통의 회색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복도의 양 벽면으로 나무문들이 띄엄띄엄 배열되어 있었다. 문마다 중앙에는 위아래로 길게 세워진 직사각형 모양의 유리 창문이 뚫려있어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지나치며 양쪽의 창문들 안을 꼼꼼히 살피었다.


“여기는 햄 저장소이고, 여기는 곡물창고야.” 


“여기는 맥주가 있고, 그 옆은 이상한 열매로 가득 차 있네.”


 방들에는 모두 식량뿐이었다. 궁전의 식량창고임에 틀림없었다. 복도 끝에 다다를수록 그들의 마음은 실망과 허무감으로 물들어갔다. 가장 조급해하던 손오공은 창문 안을 들여다보며 공기 빠진 풍선에서 나올법한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여긴 잼이랑 피클 종류들이고, 이곳은 베이컨뿐이고, 이제 마지막 방인데, 치즈 덩어리뿐이네. 아무리 봐도 우리가 잘못 찾아온 것 같아.”


“그렇게. 설령 보물실을 식량창고 옆에 두진 않겠지?”


 이안의 대답에 무척 실망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방금 내려왔던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그때 수진이 그의 꼬리를 잡아당겼다. 


“잠깐만! 저기 치즈 덩어리들 뒤로 문이 하나 있어.”


 그들은 그녀가 서 있는 창문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살펴보았다. 정말 치즈로 만든 산 옆으로 파란색 문이 벽에 비스듬히 달려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자물쇠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그러나 들어가서 확인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지 손오공은 고개를 돌려 외면한 채 말했다.


“보나마나 창고겠지. 치즈 방에 붙어있으니 버터나 크림 정도 있지 않겠어?”


“다른 문과 달리 매우 새것인데? 좀 틀려 보여.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확인해보자. 버터나 크림 정도면 저렇게 큰 자물쇠로 잠가두었을 리가 없지.”

 

"그럴까, 이안?"

 

 대답한 후 얼굴에 희망이 피어오르는 손오공의 어깨를 살짝 스치며 이안은 먼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수진도 따라나섰다가 방 안에서 감도는 강한 치즈 냄새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치즈 덩어리들이 적어도 수천 개는 되어 보였고 여러 개의 산처럼 방 천장까지 높게 쌓여있었다. 그들은 파란 문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 부근이 암석이 아닌 회색 벽돌과 시멘트로 쌓아 놓았던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넓은 면이 임시로 땜질한 듯 보였다. 이안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암석이 무너져 보수를 했나?” 


“치즈가 뭐 이렇게 많아? 얼마나 쳐 먹으면. 커다란 치즈 봉우리들이로세.”


 마지막으로 따라 들어오며 불평을 늘어놓은 손오공이 문 앞으로 다가와 한 손으로 자물쇠를 잡았다. 그리고 등의 털 하나를 뽑아 자물쇠 열쇠 구멍 안에 집어넣고 주문을 외우자 찰칵하며 열렸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너비가 상당하고 천장이 굉장히 높은 커다란 동굴이 문 뒤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예 빛이 없었기에 이안은 마법지팡이를 꺼내어 그 끝에 하얀빛을 매달았다. 수진도 양손에 하나씩 낀, 램프 반지의 수정을 오른쪽으로 돌려 불을 밝혔다. 주위 분간이 될 정도로 밝아졌다. 이안은 그녀의 반지를 보고 뭔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정체모를 역한 냄새가 곰팡이 냄새와 섞여 코를 자극했다. 바닥에서 쩡쩡 울리는 자신들의 발자국 소리에 가끔씩 그들 스스로도 놀랐는데, 조그만 소리도 여기선 크게 공명되어 돌아왔다.     


 곧 이상한 것이 저 앞으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는 새장을 수십 개 붙여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도 도대체 뭔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암석을 안으로 파서 만든 1인용 구멍들이 다닥다닥 밀집된, 위아래 몇 십층으로 이루어진 절벽이었다. 각각 구멍이 뚫린 입구에는 쇠창살이 장착되어 있었을 텐데 대부분 뜯어지거나 망가진 채였다. 절벽 한쪽 구석으로 꼭대기 층까지 도달할 수 있는 철제 사다리가 놓여있었다. 


 그들은 절벽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전부터 맡았던 불결하고 역겨운 냄새가 점점 심하게 풍겨져 나왔다. 


“감옥처럼 보이는데.” 

 

 빛이 올려진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어 관찰하는 이안이 소매로 코를 막으며 말했다. 수진은 램프 반지를 이용하여 구멍의 안쪽을 비추었다. 죄수의 다리에 찼을 쇠고랑과 수갑, 곰팡이가 피어있는 밥그릇과 뭔지 모르겠지만 색깔도 그렇고 엄청 불결한 것들이 가득 차여있는 양동이가 보였다. 특히 역겨운 냄새는 그 양동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비위가 팍 상하였다. 그녀는 코와 입을 소매로 가린 채 그곳에서 벗어나 물러난 후 속을 달래야 했다.

 

 이안이 사다리를 가져다가 위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어느 구멍에는 담요와 옷가지들이 잔뜩 구석에 말려져 있고, 어디에는 책과 사진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손오공은 코도 막지 않은 채 별거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아래층을 살펴보다가 크게 외쳤다.


“이안, 이곳을 사용 안 한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진 않은데. 밥그릇을 봐도 그렇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하 감옥 같은데 왜 더 이상 사용을 안 하는 걸까? 근데 쇠창살 뜯긴 곳이 꽤 많은데. 왜 이렇게 뜯어났지?”


 바로 그때였다. 다른 구멍으로 가기 위해 사다리를 탄 이안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쇠창살이 갑자기 뚝 끊어지며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안, 조심해!”


 다가오다가 걸음을 멈춘 수진이 두려움에 휩싸여 소리쳤다. 그는 잽싸게 몸을 날려 오른쪽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뱀파이어의 날렵한 움직임이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였다. 그것은 방금 전 그가 있었던 사다리 부분과 부딪쳐 서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파편들이 밑으로 떨어져 내리자 천둥과 같은 공명 소리가 온 동굴을 내달려 메아리처럼 그곳으로 되돌아왔다.


“괜찮아?”


 그녀의 걱정에 이안은 손을 밖으로 내밀어 흔들었다. 그는 지팡이 끝에 다시 빛을 불러와 자신이 우연히 들어온 구멍 안을 비추었다.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든 그가 지팡이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의 눈이 번쩍 떠지고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허둥지둥 밖으로 튀어나와 땅에 착지하는데 그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히 새어 나왔다. 그는 그녀의 팔을 세게 붙잡아 흔들며 다급히 외쳤다. 


“어서 여기서 나가자. 어서!”


“왜 그래?”


“이따 말해줄게. 어서 여기를 벗어나야 해.”


 그들은 파란 문으로 돌아가려는데 손오공이 앞을 딱 가로막았다. 그는 짧은 손가락으로 감옥 너머 깊숙한 방향을 가리키며 펄쩍 뛰면서 말했다.


“저기 꽁꽁 막아놓은 큰 문이 있어. 아마 거기가 보물실일 거 같아.”


 이안이 그의 말에 고개를 강하게 내저으며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아니야. 귀중한 보물들이 이런 흉측한 곳 옆에 있을 리가 없어. 어서 여기서 나가자.”


 이안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수진은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뭘 본거야?”


 그는 계속 대답을 망설였다. 손오공까지 그녀와 합세하여 다그치자 그는 결국 순순히 불었다.


“내가 피한 구멍에.. 뼈들이 가득했어. 그런데 그게.. 누군가가 먹고 뱉은 것 같았어. 죄수들이... 잡아먹힌 거 같아.”


 수진과 손오공의 등짝이 오싹해지고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그러나 손오공은 자신이 가리켰던 곳을 한번 확인만 해보자며 계속해서 졸라댔다. 안 그래도 겁이 나는데 화가 난 그녀는 심하게 나무라는 어조로 목청을 높였다.


“방금 듣고도 가보자는 거야, 손오공? 거기 뭐가 있을지 어떻게 알아?”


“우리처럼 놀라서 도망가도록 일부러 감옥을 설치해 놓았을 수도 있잖아.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그녀는 이 오싹하고 기분 나쁜 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끝까지 요지부동이었다. 이안이 결국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빨리 확인만 해보고 가자.”


 그녀는 불안감을 꾹 참고 그들을 따라갔다. 손오공과 이안 사이에 일부러 끼어 걸으니 그녀의 마음이 좀 안심되었다. 이안은 만일에 대비하여 마법지팡이를 손에 단단히 쥔 상태였고, 손오공의 손에도 쌍칼이 들려 있었다.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여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그들은 조심히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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