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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Jun 10. 2018

13. 아이런 대장간

13. 아이런 대장간 


 그들은 버핏의 안내로 딥언더니아 원형광장 구석에 있는 ‘아이런 대장간’에 도착했다. 


 그곳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딥언더니아인이 그들의 아방가르드한 단체복을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는지 모른다. 꼬마들은 단체복에서 하늘거리며 춤추는 붕대들을 뜯으려고 뒤에서 잡아당기기까지 했다. 이안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째려보자 그들은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1층에 위치한 대장간은 다른 곳보다 두 배 정도 큰 나무문을 달고 있었다. 활짝 열린 문 안에서 후끈후끈한 열기와 수증기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더위를 싫어하는 위원장이 인상을 찌푸린 채 그들의 등을 떠밀며 재촉했다.


“이젠 알아서들 들어갈 수 있겠지?”


 이안과 수진은 수증기를 헤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부침개 뒤집개를 닮은 시커멓고 거대한 철판들이 나란히 박혀 둥근 벽을 이루었고, 그 안으로 뜨거운 용광로가 들어가 있었다. 용광로에는 붉게 달아오른 석탄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그 앞으로 열 명의 대장장이들이 열심히 망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다른 세 명의 딥언더니아인은 계속 용광로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뒤집개에 난 큰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보다가 석탄불이 약해지는 곳이 생기면 재빨리 달려가 끝이 기다랗고 주머니처럼 생긴 장비를 갖다 대어 바람을 불어넣었다. 풀무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그라들던 불꽃은 다시 높게 타올랐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장장이들의 시끄러운 망치소리로 인해 그들이 카할을 부르는 소리는 완전 묻혀버렸다. 수진이 옆의 대장장이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에 열중한 나머지 그녀의 말을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긴 그의 요란한 망치소리로 인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녀는 풀무질을 막 끝낸 자에게 다가가 길을 막고서 다시 묻자, 그는 손에 든 장비의 기다란 끝으로 뒤쪽에 나있는 문을 말없이 가리켰다. 그의 온몸은 땀과 석탄재로 뒤범벅되었고 말할 힘도 없어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그들은 그곳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그들의 얼굴과 몸으로 확 불어 덮쳐왔다. 용광로가 있는 곳보다 훨씬 더 덥고 답답하게 꽉 막힌 작은 방이었다. 희미한 안개 사이로 아이들과 엄청난 근육질 체구에 이글거리는 두꺼비눈을 가진 블랙 아이런이 보였다. 그는 헐렁한 청색 멜빵바지를 입고 두꺼운 검은 가죽 허리띠를 둘렀는데 갖가지 크기의 집게와 망치 등 연장들이 그 띠에 열쇠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는 이안과 수진을 발견하고 손짓으로 자신 옆으로 오게 했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우렁차게 외쳤다.

  

“환영하네. 그런 일을 겪었다기에 오늘 프로그램은 참석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다니 아주 기쁘군. 난 이 나라 최고의 대장장이 명장인 ‘블랙 아이런’이네.”


 ‘최고’라는 표현을 엄청 강조한 그는 다른 딥언더니아인과 달리 수염을 깨끗이 면도한 상태였다. 끝이 뭉툭한 코는 얼큰히 빨갰고, 검은 긴 머리는 하나로 촘촘히 따서 끝을 노란 리본으로 묶었다. 온몸이 단단한 근육으로 다져져 매우 울룩불룩했고, 키는 딥언더니아인 치고 꽤 커서 수진보다 약간 더 작을 뿐이었다. 그의 이마와 굵은 목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단체복을 입은 아이들의 얼굴과 머리카락도 마치 밖에서 내리는 비를 한참이나 맞은 것처럼 완전히 젖어있었다.


 특히 해마는 계속 흐르는 땀 때문에 수분캡슐을 매 10분마다 챙겨 먹어야 했고, 등에 매단 생수통과 연결된 링거를 왼쪽 팔에 꽂은 상태였다. 물속에 살던 인어가 이런 곳에 있으려니 고생도 그런 생고생이 없었겠지만,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그저 꾹 참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방의 한쪽 바닥에는 대장장이들이 막 끝낸 완성품들이 놓여 열기를 식히었다. 아이들이 마주 보는 벽에 설치된 선반에는 판매를 원하는 다양한 제품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있었다. 블랙 아이런은 방금 전까지 이곳 대장간에서 파는 제품들을 소개하던 중이었는데, 이안과 수진의 등장으로 그만 맥이 끊기었다. 그가 방을 나가자고 말하자 아이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티앤 단까오가 수진의 귀에다 귓속말을 속닥거렸다.


“때마침 잘 왔어. 조금만 늦었으면 우린 여기서 숨 막혀 죽었을지도 몰라. 지금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그들은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 앞에서 작업하고 있는 대장장이들을 지나 그 아래 비어있는 공간으로 갔다. 거기에는 8개의 모루들이 원으로 빙 둘러싸여 있고, 그 중심 안으로 1인용 목욕탕 사이즈의 물양동이와 집게나 망치 등 연장들이 올려진 공동 선반이 있었다. 블랙 아이런은 용광로 앞으로 가더니 뒤집개 창문 사이로 집게를 집어넣어 석탄에 꽂혀있는 짧은 쇠막대기 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힘차게 말했다. 


“자,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잘 따라 하렴. 빼내어 봤을 때 끝부분이 이렇게 빨갛게 달아있으면 오케이. 이걸 모루 위에 얹고 각자 원하는 모양으로 망치질을 시작한다. 인정사정 보지 말고 힘껏 두들기도록.” 


 그는 달구어진 쇠막대기를 가까이 위치한 모루 위로 올려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허리띠에서 적당한 망치를 빼내어 일정한 속도로 두들기다 잠시 멈추어 그것을 들어 올리더니 이리저리 관찰하였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용광로 속의 뜨거운 석탄 속으로 푹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몇 번이고 이렇게 불 속에 집어넣어 달구어야 한다. 다시 빨갛게 변하면 빼내어 두들기고. 자, 두 눈을 크게 뜨고 한번 감상해봐라! 딥언더니아 최고 대장장이 명장 블랙 아이런의 현란한 망치 기술을.” 


 그는 망치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쇠를 정신없이 때려댔다. 자랑한대로 대단한 솜씨였다. 그는 곧 멈추더니 다시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았다. 만족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묻어나고 물양동이 속에 그것을 집어넣자 하얀 증기가 분수처럼 위로 뿜어져 나왔다. 어느새 완벽한 모양의 번쩍거리는 부엌 칼날이 그의 집게 끝에 들리어 있었다. 


 그가 그것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아이들은 모두 감탄하여 열렬히 박수를 쳐 주었다. 그는 지나가던 대장장이를 불러 그가 들던 자루 안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자루 안에는 벼르기를 끝낸 쇠붙이들이 들어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것들의 날을 날카롭게 갈고 나무 손잡이까지 달면 완성이었다.  

    

 그의 시연이 끝나자 캠프 참가자들이 직접 해보는 실습시간이 되었다. 카할과 우란에게는 모루의 높이가 잘 맞았지만, 나머지에게는 꽤 낮아 허리를 많이 굽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들은 용광로 뒤집개 앞으로 쭈르르 서더니 꽂혀있는 쇠막대기를 서너 개 정도 뽑아 살펴본 후, 가장 마음에 드는 크기의 것을 골라잡았다. 


 카할과 왕허준은 장검을 만들 수 있는 기다란 쇠막대기를, 

 우란 미스가와 안젤라는 중간 길이의 도끼용 쇠막대기를, 

 해마는 전복과 조개를 따기 위한 낫 전용을,

 이안과 티앤 단까오는 단도용의 짧은 쇠막대기를, 

 수진은 이것저것 뽑아보다가 끝이 둥글게 덩어리 진, 가장 길이가 긴 쇠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국자를 만들어 할머니께 선물해 드리기로 결심했다. 할머니 집의 오븐에서 식탁 위까지 충분히 닿을 길이였다. 


 그녀는 모루 위로 가져온 쇠막대기를 집게로 겨우 받친 채 티앤 단까오가 추천해준 망치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마침 둘의 사이좋은 광경을 목격하고 난 후 이안은 굳은 표정으로 애꿎은 쇠붙이를 망치로 무섭게 때려댔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대부분은 처음 해보는 대장간 일이라 그런지 손이 무척이나 서툴렀다. 꼭 벼려야 할 부분을 놓치거나 벼리지 말아야 할 곳을 두들기거나, 손이 미끄러져 쇠가 아닌 모루를 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아까 뚝딱 칼을 완성시킨 블랙 아이런의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하긴, 괜히 최고 대장장이 명장이라 부르겠는가?


 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들의 작업에 별 진전이 없었다. 그나마 카할이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떠올리며 작업한 덕분인지 그럭저럭 검 비슷한 모양이 나오고 있었다. 

 

‘나도 이 방면에 소질이 있나 보지.’


 혼자 좋아하며 “땡땡”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순간 옆을 지나치던 블랙 아이런의 평가에 그만 그의 기분이 팍 상하고 말았다. 


“모양이 좀 이상한데. 날이 일정하지 않고 끝이 약간 휘어졌네. 혹시 갈고리를 만들던 중이었나?”



 작업을 시작한 지 네 시간 정도 흐르자 점차 물건 같은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안은 생각했던 것만큼 모양이 잘 잡히지 않고 너무 세게 두들겨서 그런지 칼날의 두께가 무척 얇아졌다. 블랙 아이런이 옆을 지나치다가 곁눈질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해라. 더하다간 구멍이 뚫리겠어.”


 그는 그의 망치를 빼앗아 가버렸다. 


 그런데 다른 모루들은 무심코 지나치던 블랙 아이런이 불현듯 걸음을 멈춰서는 것이었다. 그의 손에서 이안의 망치가 툭 떨어져 내렸다.


“오, 이럴 수가!” 


 그가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털이 수북한 손등으로 두 눈을 여러 번 비빈 후 뭔가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바로 티앤 단까오의 단도였다. 그는 잔뜩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넌 이번에 처음 해 본 게 아니냐? 근데 어찌, 솜씨가 너무 훌륭한데. 두 시간 전만 해도 제대로 되어가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단도의 생명인 이 완벽한 칼날, 일정한 칼등의 두께. 완벽해. 아주 완벽해. 다들 이리 와서 한번 봐 보렴.”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자, 참가자뿐 아니라 대장장이들과 풀무꾼들까지도 모두 일손을 멈추었다.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티앤 단까오의 모루 주위로 잔뜩 몰려들었다. 딥언더니아 최고 명장의 칭찬은 정말 빈말이 아니었다. 그의 완성된 단도는 상점에서 파는 최상급 제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칼날 같았다.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면 으레 어깨를 으쓱이며 좋아할 텐데도 티앤 단까오의 표정은 이상스레 어두웠다. 그는 블랙 아이런의 계속되는 칭찬에도 불구하고 미소 한 번 짓지 않은 채 자신의 단도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마침 한 대장장이가 여러 개의 자루를 지니고 있었기에 그는 하나를 건네받아 안에 그것을 집어넣고 겉면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아이들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각자 자신의 작품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였다. 블랙 아이런은 돌아다니면서 뒤처지는 이의 작업을 도와주거나 충고를 건넸다. 그런데 그를 가장 괴롭히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다름 아닌 수진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욕심을 내어 자신의 키와 거의 엇비슷한 쇠막대기를 뽑았었고, 망치질하는 것조차 결코 쉽지 않았던 데다가 그녀의 손재주 역시 그리 썩 좋지 못했던 것이다. 

 막대기 끝의 뭉친 쇠 덩어리는 국자가 되어가기는커녕 모래 파는 삽처럼 쫙쫙 펴지고 있었다. 블랙 아이런은 결국 보다 못해 그녀를 옆으로 비키게 한 후 그녀의 집게를 대신 집어 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국자를 만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데 그건 불가능하고. 음, 그래, 이런 긴 막대기에는 삼지창이 제격이지.”


 그는 삽처럼 퍼진 그녀의 쇠를 석탄 속에 집어넣어 빨갛게 달군 후 모루 위에 얹어놓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머리를 가진 망치를 허리띠에서 꺼내 들어 쇠 윗면에서 두 개의 홈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거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땅땅 두들겼다. 곧 가운데 창이 양쪽 것보다 긴 삼지창이 완성되었다. 그는 가운데 긴 창이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는지라 거기서 작업을 끝내야만 했다. 


 그녀의 제품은 자루에 넣어졌다. 그런데 전체가 너무 길어 삼지창 부분에서 조금 올라온 쇠막대기까지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다른 이의 작품들도 각자의 자루 안에 들어갔다. 해마가 만든 낫, 안젤라와 우란이 만든 도끼 둘, 왕허준과 카할이 만든 장검 둘, 그리고 이안의 단도까지, 모든 작업이 다 끝이 났다. 


 다들 처음 목적한 대로 모양이 나왔는데 왜 자신의 것만 이렇게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실망하여 수진의 마음이 심란해졌다. 삼지창으로 국을 뜰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고기 굽는 포크로 써야 하나?

 

 대장장이의 유쾌한 목소리가 그녀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그들을 어디론가 안내하였다.


“일단 배 좀 채워볼까? 그리고 아주 놀라운 장소로 데려다 주지.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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