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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Dec 30. 2018

18. 위험한 모험을 계획하다 - 1

18. 위험한 모험을 계획하다.    


 다음날은 조각품을 완성하느라 힘들었을 참가자들을 위해 아침 먹는 시간이 꽤나 늦춰졌다. 그래서 다들 모처럼 늦잠을 자거나 빈둥빈둥 침대 위를 구르는 등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캠프가 시작된 이래 이런 적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아침식사를 하러 나오는 그들의 얼굴에 나른하고 행복한 표정이 가득했다. 더군다나 이날은 각자 원하는 활동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는데 총 3개의 옵션이 그들의 오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1) 딥언더니아 왕이 자주 간다는 아름다운 호수에서 수영하고 휴식 취하기

2) 딥언더니아의 전통요리 배워보기

3) 딥언더니아인의 주 무기인 도끼 다루는 법 배우기     


 티앤 단까오만이 전통요리를 배우러 소금궁전의 주방으로 내려가고, 다른 이들은 당연히 호수로 놀라갈 거라 예상되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카할과 이안이 바로 도끼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마치 꼭 필요하다고 여기어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듯이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호수로 결정한 수진에게도 같이 배우자며 계속 조르기까지 했다. 그녀가 싫다고 몇 번씩 거절을 해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졸라대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승낙하며 그들을 따라나섰다.


 도착한 곳은 소금궁전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 훈련소였다. 오늘 그들을 맡게 될 특별 교관은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쪽지를 훈련소 문 앞에 붙어놓았다. 그것을 떼어낸 후 그들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병사들의 힘찬 기합소리가 먼저 그들을 맞이하였다. 표면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네 벽에는 갖가지 크기의 도끼들과 장검, 단검, 삼지창 등 보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무기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병사들은 틈틈이 필요한 무기들을 떼내어 훈련을 했는데, 작은 건 작은 데로 큰 건 큰 데로 마치 가벼운 공이나 되는 냥, 위 아래 옆으로 쓱쓱 날아가고 받아내고 돌리고 찌르는 등 현란한 기술을 뽐내었다. 


 교관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홀로 구석의 빈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이안과 카할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 옆으로 스르륵 다가왔다. 


‘드디어 나한테 말하려는구나.’ 


 며칠간 그들의 속삭거리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었던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기다렸다. 예상대로 그들은 그동안 감추어두었던 속셈을 작은 소리로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점차 확대되었다. 그녀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작지만 화난 목소리로 반박하였다.

 

“너무 위험해. 다시 생각해봐.”


“아니, 충분히 생각하고 토론했어. 우린 말한 그대로 꼭 실행할 거야.”


 이안이 강경하게 대답하자 카할의 고개가 굳세게 끄덕여졌다. 그녀는 다시 설득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그들의 결심은 더욱더 굳어져 갔다. 특히 카할은 흥분하여 아주 열성적으로 반응했는데, 두 팔을 앞뒤로 흔들고 그녀에게 침을 튀겨가며 이 일의 중요성을 열렬히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때, 막 문을 열고 들어온 특별 교관이 곧장 다가오는 바람에 그들 사이의 설전은 잠시 중단되었다. 비쩍 마르고 예민해 보이는 교관은 한쪽 귀가 잘려져 없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의 기를 단번에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도끼를 들고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치었다.


 목표물을 향해 도끼를 정확히 던지는 법, 야구 볼처럼 직구로 날릴 것인가 변화구로 날릴 것인가를 결정한 후 그대로 던지는 기술, 양손에 도끼를 쥐고 동시에 던지는 법, 목표 적중률을 높이는 팁 등 다양한 기술을 알려주었다. 


“꼭 도끼뿐 아니라 이 벽에 걸린 어떤 무기에라도 똑같이 적용시킬 수 있단다. 그러니 기술을 무조건 자기의 것으로 익숙하게 만들도록.”


 그의 설명과 시범이 끝나자 연습시간이 돌아왔다. 아이들은 목표물인 오크를 닮은 인형의 심장을 향해 열심히 도끼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안과 카할은 처음에는 목표물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지만 교관이 다가와 살짝 도움을 주자 곧 제법 정확히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수진은 예외였다. 그녀의 도끼는 계속 제멋대로 날아다녀 주위에서 훈련 중이던 병사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도끼를 들어 올릴 때마다 그들은 훈련을 잠시 중단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구석으로 피하거나 방패 뒤로 몸을 가렸다. 이안과 카할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교관은 강한 인내심과 지독한 끈기를 지닌 군인이었다. 그녀가 가할지도 모를 목숨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그녀를 가르쳤다. 이백 번 넘게 던지자 그녀도 어느 정도 목표물 근처로 던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크의 급소인 심장을 단 한 번도 명중하지 못하여 그녀는 많이 아쉬워했다. 


 어느새 시간이 다 되어 마칠 때가 되었다. 이안과 카할은 교관에게 감사인사를 한 후 바로 훈련소를 떠났다. 그러나 수진은 엉거주춤 홀로 남아 있었다. 


“저기 교관님,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삼지창 쓰는 법 좀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정중한 그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 그는 벽에서 삼지창을 떼어내어 그녀 곁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스스로를 방어하고 공격하는 아주 기본적인 동작들을 가르쳐주었다. 그가 보여준 능숙한 자세와 폼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따라했다.  


‘아직 연습과 훈련이 많이 필요하지만 우선 이 정도면 될 거 같아.’


 훈련을 마친 후 그녀는 스스로 이렇게 위안을 삼았다. 문을 나서는 그녀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뒤에서 훈련병들이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떠남에 따라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에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안 돼.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넌 못 가!”


“나도 너희랑 같이 갈 거야!”


“수진, 고집 좀 그만 피워. 넌 절대 가면 안 돼! 털어놓은 내가 바보였지. 그냥 비밀로 할걸.”


“내가 가겠다는데 네가 왜 막아? 난 무조건 갈 테야!”


“여기서 그만둬. 절대 안 돼. 더 이상 말 안 할 거야!”


 이안이 화를 내며 수진을 광장에 남겨두고 급히 자리를 피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카할을 구슬려 볼 생각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았다. 저 멀리서 그들을 목격한 그는 그녀를 피해 푸다크 별궁으로 쏜살같이 도망쳐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결심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까 삼지창 쓰는 법도 배웠겠다 어느 정도 자기 방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씩씩거리며 푸다크 별궁으로 향하였다.


 



 캠프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여 소금궁전에서는 화려한 파티와 만찬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들은 평상시의 단체복에서 벗어나 깨끗한 정장이나 파티복으로 갈아입고 최대한 아름답고 멋있게 꾸민 채 파티에 참석하였다. 수진은 스톰펌 왕과의 아침식사를 위해 맞추었던 레이스가 가득 달린 연두색 드레스를 다시 입고 나타났다. 또한 예전에 거북영감이 선물로 준 진주 목걸이와 팔찌도 찼다. 


 그러나 검은 드레스와 화려한 보석으로 완벽하게 꾸민 안젤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검소해 보였다. 물론 그녀의 몸매 역시 늘씬한 안젤라와 비교해 매우 정직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에 기죽을 수진이 아니었기에 나름 즐겁게 보내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단, 아까 이안에게 매달리며 부탁한 일은 제외하고 말이다. 


 이날은 외모 가꾸기에 영 소질이 없는 왕허준까지도 깔끔하게 턱시도를 차려입었다. 그래도 역시나 잘생긴 이안이 파티에 참석한 남자들 중에서 가장 멋있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자라면 누구나 그날 힐끔 그를 훔쳐볼 정도였으니까. 다들 반짝이고 아름다운 가운데 즐겁게 웃고 떠들며 파티 분위기를 만끽하였다.  


  그들은 궁전의 중앙홀을 나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커다란 벽난로가 위치한 만찬장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엄청나게 긴 직사각형 테이블이 한가운데 놓여있고 그 위로 화려하게 빛을 반사시키는 황금 접시와 황금 잔, 은 나이프와 은 스푼, 은 포크 등으로 아름답게 세팅되어 있었다. 특이하게도 테이블 바로 위 천장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생선뼈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완벽하게 조립된 채 테이블의 긴 모양과 평행으로 걸려있었다. 


 각자 이름표가 놓인 자리에 앉아야 했는데 수진은 우란과 해마 사이, 이안은 카할과 안젤라 사이에 앉게 되었다. 안젤라가 무척이나 좋아라 했다. 가장 높은 상석에 앉은 채 번쩍이는 보석들로 온몸을 치장한 스톰펌 왕이 그들을 향해 금잔을 들어 올렸다. 잔을 든 그의 다섯 손가락에 색색의 보석반지들이 끼어져 있었다. 

 그가 손님들을 향해 우렁차게 외쳤다.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과 우정을 위해! 딥언더니아와 브라잇 동맹의 평화를 위해!”


“딥언더니아와 브라잇 동맹의 평화를 위해!”


 그들은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올리며 힘차게 그의 말을 따라했다. 옥수수술이 채워진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의 잔에는 붉고 달콤한 옥수수 음료가 담겨 있었다. 물론 이안과 안젤라는 늘 마시는 붉은 피였지만 말이다. 


 드디어 모두가 기대하고 기대하던 만찬이 나오기 시작했다. 요리는 무려 20코스나 되었고 디저트는 5종류나 나올 예정이라고 스톰펌 왕이 자랑스러운 어조로 발표했다.


 황금접시에 담겨 나온 사슴고기볶음은 육즙이 풍부한 것이 식감이 부드러웠다. 화덕에 구운 옥수수 요리도 담백한 것이 달콤 고소했다. 수진은 태어나서 이렇게 훌륭한 코스 요리를 접해본 적이 처음인지라 무척이나 행복하고 즐거워했다. 

 게다가 왕은 뱀파이어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딥언더니아의 음식 역사상 최초로 피로 만든 몇 가지 요리를 따로 선보이기까지 했다. 피를 굳혀서 만든 푸딩과 선지를 구워서 만든 스테이크, 그리고 피를 섞어 구운 빵 안에 굳힌 피크림을 잔뜩 바른 크림빵 등이었다. 이안과 안젤라는 진심으로 감동받았고 이곳에 온 후 처음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버핏 위원장은 왕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선 그의 비위를 맞추느라 만찬을 즐기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저 음식이 가득 든 입을 오물조물 벌리면서 다른 동맹국과 비교하여 맛이나 외양 면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왕에게 계속 아부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사실 다른 이가 듣기에도 그저 빈말은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19번째 접시가 들어왔다 나가고 이제 마지막 코스 요리만이 남아 있었다. 왕은 수저로 황금 잔을 탁탁 치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마지막으로 나올 요리는 특별히 소개할 필요가 있소이다. 그것은 여러분을 보석섬으로 이끈 옥토스 대령이 잡아온 심해어(深海魚)로 만든 스테이크라오.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뼈가 바로 그 증거이지. 가끔씩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가 직접 심해로 내려가 잡아오곤 하지요. 올해에도 캠프 참가자 여러분을 위해 또 한 마리를 잡아왔소이다. 그의 노고에 감사하며 맛있게 쳐 먹도록 합시다. 

 그리고 난 불편해서 더 이상 포크를 쓰지 않겠으니 전혀 신경 쓰지 마시오. 심해어 스테이크는 입으로 뜯어야 제맛이거든. 도끼로 목을 후려칠 정도로 진짜 맛있소.”


 그는 포크와 나이프를 뒤로 던져버리고 스테이크를 양손에 쥔 채 우걱우걱 뜯어먹었다. 뱀파이어들을 제외하고 버핏을 비롯한 모두가 그를 따라 맨손으로 파먹기 시작했다. 대형 심해어의 식감은 좀 별났다. 완전 생선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육지 고기 같지도 않았다. 달콤한 과일소스를 입혀 구워서인지 담백하고 부드러운 것이, 입에 넣고 몇 번만 씹으면 스르르 녹아내리었다.


 식사가 끝나자 5종류의 디저트들이 차례로 나왔다. 스위티니아에서 특별 주문한 초콜릿, 자하토르테 케이크, 옥수수 크림푸딩, 블루베리 칵테일과 알록달록한 설탕과자였다. 


 아이들의 배는 한 입만 더 먹으면 뻥 터질 정도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다들 의자에서 일어나는데도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밤을 우아하고 맛있게 마무리했다는 생각에 소금궁전을 떠나는 그들의 얼굴에는 캠프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자부심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스톰펌 왕과 캠프 관계자들이 직접 목격하였다면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으며 매우 기뻐하였을 터였다.  




“끼이익.”


 모두가 꿈나라에 빠져 고요한 가운데 푸다크 별궁홀의 문 하나가 살며시 열리었다. 안에서 이안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용히 튀어나왔다. 


“끼이익.”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이어 바로 옆문이 조금씩 열리었다. 안에서 카할이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친구를 발견하고 조용히 나와 문을 닫았다. 그들이 까치발로 조심조심 홀을 나서려던 그때였다.


“끼이익.” 


 이건 예상치 못한 소리인데? 화들짝 놀란 그들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빨간 핸드백을 맨 수진이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어둠 속에서 배시시 웃으며 따라오는데 순간 무덤에서 기어 나온 처녀귀신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지는 그들이었다. 등 뒤로 찬바람이 스쳐 지나간 듯 그들은 소름이 끼치고 다리가 부르르 떨리었다. 

 

 이안이 나서서 그녀의 길을 막아선 채 조용히 속삭였다.


“넌 무슨 일이야?”


“그러는 넌 밤중에 무슨 일이야?”


“우린 할 일이 있어. 넌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


“나도 따라갈 거야. 아까 네가 왕에게 몰래 쪽지 건네는 것도 다 봤어. 그래서 네 방문에 실을 걸어 내 손목에다 묶어났었지.”


“나랑 카할만 갈 거야. 넌 제발 이 일에서 빠져주라. 응, 제발.”


“싫어. 만약 날 안 데려가면 지금 이 자리에서 크게 고함칠 거야! 그래서 모두 단잠에서 깨게 만들 거야!”


 계단을 오른 후 복도에서 몇 분을 허비하며 설득하려던 그는 결국 그녀의 황소고집에 두 손 두발을 다 들고 말았다. 말없이 돌아선 그는 카할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바닥을 위로 들어 올리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들은 조용히 별궁문을 빠져나와 소금궁전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도 이안은 그녀 옆에 계속 따라붙으며 날카롭게 날이 선 목소리로 위협적인 말을 구시렁대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도 난 책임 안 질 거야. 네가 스스로 선택한 거야.”


“알았어. 내 목숨은 내가 지킬게. 너희들한테 전혀 부담주지 않을 거야.”


 그녀가 떵떵거리며 대답하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나질 않았다. 


 그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겁이 많은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으로 힘들어했는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솔직히 그녀는 무서웠다. 그렇지만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려는 친구들을 마음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도와주고 싶은 바람이 더 컸다. 

 게다가 그녀는 좀 더 자신을 강하게 성장시키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보살펴 달라 질질 짜고 징징대는 겁쟁이가 아닌 용감한 여전사처럼 되고 싶었다. 막상 닥치면 그리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한밤중이라 그런지 낮보다 경비병의 수가 줄어들어 별 제재 없이 궁전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안이 굳게 닫힌 대문을 두들기려는데 갑자기 그것이 안으로 열리더니 비쩍 마른 병사가 종종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매서운 눈초리로 그들을 쭉 훑어보며 심문하는 어조로 물었다. 


“너희들이 이안과 카할이냐? 왕께서 기다리고 계시다.”


 수진이 그들 사이에 껴서 같이 들어가려 하자 그는 잽싸게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약속 명단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안과 카할은 마침 잘 되었다 싶은 표정으로 둘만 들어가려는 내색이었다. 그때였다. 그녀가 잽싸게 이안의 손목을 잡더니 매달린 채 절대 놓아주지를 않는 것이었다. 이안은 계속 이러다가 손목이 빠져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녀도 같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병사에게 왕의 승인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승인이 떨어지고 나서야 세 명 모두 안으로 들여보내졌다. 그들은 곧장 왕의 침실문으로 안내되었다. 카할이 조심스레 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왕의 대답에 그는 문을 살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안과 수진도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들은 하마터면 심장마비에 걸려 쓰러질 뻔하였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뭔가 시커멓고 커다란 것이 그들을 가로막으며 위협적으로 서 있었다. 그것은 뒤에서 비쳐오는 불빛에 전체적으로 그늘이 생겨 처음엔 도대체 뭔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알아차렸으니, 털이 복실거리고 거대한 이빨들을 드러낸 채 두 다리로 일어서서 그들을 막 덮치려는 불곰이었다. 얼마나 생생하게 박제가 되었는지 치켜세운 앞발을 내려 그들을 때리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만 같았다. 그것의 갈색 눈동자는 살아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매끄러운 유리알처럼 완벽히 보존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헉 놀라 숨을 참은 채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두렵고 무서워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밀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의 눈동자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서야 겨우 옆으로 지나쳐갔다. 


 이럴 수가, 이번엔 입을 크게 벌린 채 으르렁거리는 박제 호랑이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세모 모양의 초록색 눈과 혀를 날름거리며 똬리를 튼, 어마어마한 크기의 비단구렁이가 머리를 바짝 들어 올린 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박제되어 죽었지만 숲 속에 살아있을 당시처럼 자연스러운 자세를 유지하며 윤기 나고 매끄러운 껍질을 여전히 지니었다. 그들은 심호흡을 내뱉은 후에야 겨우 걸음을 떼어 벗어났다.


 그들을 향해 서 있는, 정체 모를 이상하고도 기형적으로 생긴 동물들의 박제품까지 다 지나치고 나서야 드디어 활활 타오르는 석탄 난로가 정면에 나타났다. 난로의 불빛을 받으며 가로 놓인 소박한 일자 모양의 소파를 발견하였다. 그런데 왕은 혼자 앉아있는 게 아니었다. 소파 위로 그보다 머리 하나를 더 얹은 키에 금발머리를 가진 뒷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왕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자는 아주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니었다. 아이들은 소파 옆으로 조심스레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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