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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Nov 25. 2018

17. 돌비 마스터

17. 돌비 마스터 


 캠프 참가자들은 위원장의 안내에 따라 푸다크 별궁 밖으로 나왔다. 소금궁전의 앞을 지나 왕의 두상이 올려진 제단들이 있는 도로 옆으로 들어섰다. 두 줄짜리 파란 타일이 깔린 샛길이었다. 길은 여러 번 커다란 바위벽을 지나쳤고, 어느 정도 걸었다 싶은 느낌이 왔을 때 한창 정신없이 바쁜 공사장에 도착하였다. 


 20명 정도의 딥언더니인들이 끌과 망치를 들고 소금암석에 매달려 열심히 깨뜨리고 다듬는 중이었다. 돌을 깨트리는 망치와 서로 고래고래 질러대는 고함 소리로 엄청 시끄러워 막 도착한 그들의 정신이 다 몽롱해질 정도였다. 암벽을 안으로 파서 완성해가는 중이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 용도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차릴 수 있는 참가자는 없었다. 


 위원장이 허연 먼지가 폴폴 일어나고 암석을 깨느라 돌이 튀는 공사장 한가운데에 그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눈에 힘을 주어 주변을 기웃기웃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스레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무슨 공사를 하는 건가요?”

 

“정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난장판이지만 나중에는 아주 아름다운 지하 정원이 들어설 겁니다. 에이취(H)~”

 

 카할의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 위원장이 재채기를 했다. 그는 넓은 옷자락으로 코와 입을 가리었다. 그만큼 돌 부스러기, 분진, 먼지가 천장과 벽에서 떨어지거나 바닥에서 모락모락 풍기며 떠올랐다. 그에게 전염이 되었는지 해마와 왕허준, 수진이 재채기를 따라 했다. 먼지 나는 이 난장판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은지, 위원장의 눈동자 안에서 빨리 안 나타나는 그 누군가를 증오하고픈 시뻘건 화염이 활활 타올랐다. 게다가 그는 발까지 동동 굴렀다. 

 

“정원이라면, 꽃도 피고 나무도 있는 그런 정원을 말하는 건가요?”


 이안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지만 주위가 시끄러워 그의 귀에까지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에게서 아무런 대꾸가 없자 수진이 살짝 위원장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제야 그는 질문이 떠오른 듯 입을 가리던 옷자락을 옆으로 살짝 치우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저 너머의 누군가를 향하고 있을 뿐 조금도 옆으로 돌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보통 지상에서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질지는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들이 위대한 건축가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분명 브라잇 동맹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이 완성될 겁니다. 대충 보기에 저기는 탑과 기둥 위에 장식 조각을 하고 있고, 저기는 연못을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나중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지 무척 기대가 큽니다.”     


 위원장은 더 이상 기다리기 싫어졌는지, 미리 답사해보라는 말만 남기고는 어디론가 급히 걸어갔다. 난장판 한가운데 남겨진 참가자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곧 그들은 건축 장인들이 돌을 반죽처럼 부리는 현란한 솜씨에 완전 정신이 홀리었다. 장인의 머릿속에는 이미 설계도가 완벽히 내장되어 있는지 돌 위에 스케치를 하지 않고도 손이 가는 데로 두들기고 다듬었다. 

 처음 보기엔 그저 망치로 정신없이 막 때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정교하면서도 훌륭한 작품들이 끌 밑에서 요술처럼 펼쳐지자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중 수진이 가장 넋을 잃은 채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았다. 기둥에다 망치질을 하면 한 그루의 나무가 뚝딱 조각되었고, 또 뚝딱하면 우아한 탑이 올라갔다.


 우연히 고개를 쳐든 그녀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다들 저 위 좀 봐봐!” 


 그들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깜짝 놀라 저마다 떠오르는 감탄사를 쉴 새 없이 내뱉었다. 천장에서 뜻밖의 신기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장인들이 높은 천장에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일을 하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마치 바닥인 것처럼 편안히 걷거나 앉거나 서 있었다. 그래도 역시 중력의 영향으로 가끔씩 주머니에 넣었던 사탕이나 물건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일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그들의 긴 머리카락과 수염은 단단히 따서 양 옆으로 고정시켰고, 너불거리는 옷자락도 끈으로 잘 고정시켜 작업에 거추장스럽지 않게 했다.

 

 아이들이 천장에 몰두해 있는 사이, 수염과 머리는 허옇게 세었지만 주름 하나 없이 빤빤한 얼굴을 가진 장인이 벽 앞에서 손을 흔들어대며 그들을 불렀다.


"어이, 외국인들. 여기 좀 보지? 어이, 신기한 것 좀 구경할래?"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그는 마치 묘기라도 부릴 듯한 태세로 소금 벽에 발 한짝을 갖다 댔다. 그러자 신발이 쩍 하고 벽면에 붙었다. 나머지 신발도 벽에 갖다 대자 딱 붙었다. 그의 몸이 평행을 유지하며 옆 벽을 똑바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인간 스파이더맨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마치 지상을 걸어가듯 몸을 똑바로 세운 채 바닥과 수평으로 걸으며 지구의 중력을 거스르고 있었다.

 

 그들은 환호성과 박수갈채로 그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내었다. 그는 그들 머리 위쪽의 천장을 한 바퀴 돌아 반대쪽 벽으로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 듯 두 손바닥을 위로 쳐든 채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달려오자 그는 씽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난 이제 천장으로 가서 ‘해’와 ‘달’을 조각해야 해. 내가 어떻게 올라갔냐고? 바로 이 신발 때문이지. 이걸 신으면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아. 아무리 높은 절벽도, 울퉁불퉁한 곳에서조차 디딜 수 있는 작은 면만 있다면 딱 붙어서는 절대 떨어지지 않지. 그리고 뾰족한 창끝을 밟아도 절대로 신발 밑창을 뚫을 수 없어. 그래서 우리가 저 높은 천장에서 자유자재로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거야.”


 그제야 참가자들은 그와 장인들이 신고 있는 신발이 보통 딥언더니아인이 신는 장화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자의 플랫슈즈를 닮은 검은 신발은 앞코가 둥글고, 신으면 발가락만 가린 채 발등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던 중에 위원장이 노란 곱슬머리와 노란 수염을 함께 말아 양 옆으로 삐삐처럼 땋은 딥언더니아인과 함께 나타났다. 그 딥언더니아인은 나이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 인상과 달리 목소리는 젊은이 못지않게 카랑카랑하고 힘이 넘쳤다. 그는 활기찬 표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시유. 나는 딥언더니아 건축석공 장인협회 회장 ‘돌비’라고 합니다유. 그냥 ‘돌비 마스터’라고 불러주시유. 나이는 230살로 한창 좋은 때이지만 일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지라 이곳 정원 공사의 책임을 도맡아서 지시만 하고 있지유.

 오늘부터 여러분을 아름다운 건축과 석공의 세계로 인도하고 참여시킬 테니 잘 부탁합니다유. 스톰펌 왕의 명으로 여기 정원에 놓을 조각품들을 여러분이 직접 맡아 총 이틀 동안 작업을 하게 될 거구먼유. 그럼 내 소개는 이만하고 어서 따라오슈. 이제 당신은 가도 되유. 괜히 여기 있으면 귀찮고 방해만 되니 말이어유.”


 위원장은 마치 그 말을 절실히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에게 인사 비스므리한 거 하나 없이 부리나케 자리를 떠나버렸다. 아니, 초스피드로 사라졌다. 



 돌비는 그들에게 머리 중앙 꼭대기에 조그만 우산이 달린 안전모를 하나씩 돌렸다.


“천장 작업장을 지나가다 운 나쁘게 돌이 떨어져 다치게 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유. 조심하슈.”


 안전모를 쓴 그들은 먼지가 폴폴 나고 조그만 돌덩이와 재가 떨어져 내리는 건설현장을 지나갔다. 천장에서 “조심해!”라는 말이 들리고, 곧 허준의 우산 위로 주먹만 한 돌덩이와 부스러기가 비처럼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돌비 마스터는 임시로 지어진 아담한 나무 창고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그 안에는 다양한 도구와 장비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는 한쪽 구석에 수북이 쌓여있는, 아까 빤빤한 피부의 그 장인이 자랑하던 것과 같은 검은 신발더미 앞으로 다가갔다.



“이것은 개발한 자의 이름을 따서 ‘카무신’ 이라고 부르지유. 이 고무는 특수한 재료들을 섞어 만드는데 아마 그것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할 거유. 

 특수한 재료들이 뭐냐구유? 바로 달팽이의 끈적거리는 진액, 5년 동안 자라서 말린 끈끈이 풀, 3년 3개월 3일 동안 절벽에서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는 도마뱀의 발가락, 보름달이 뜨는 밤에 잡은 개미핥기의 혀 등 이지유. 뭐, 재료를 더 첨가하고 싶으면 세상에서 제일 끈끈한 것들을 같이 섞어주면 되유. 고무와 이것들을 잘 섞은 후 신발을 만들고 신 테두리 안쪽에 룬문자로 주문을 적어 넣으면 완성이유. 

 이걸 신으면 절대 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마치 땅 위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서 있을 수 있게 되지유. 자, 다들 한번 신어봐유.” 

    

 처음에는 조금 커 보이던 카무신을 수진이 신어보자 신발이 저절로 작아지더니 딱 편할 정도의 사이즈로 맞춰졌다. 발을 땅에서 떼어낼 때마다 약간 힘이 들어갔지만 그럭저럭 걸을 만했다. 아이들은 카무신을 신은 채 왔다갔다 걸어 다녔다. 그때 신을 유심히 살펴보던 수진이 불쑥 손을 들어 마스터에게 질문했다.


“이것 말이에요. 한국에서 조상님들이 신던 ‘고무신'과 모양이 똑같아요. 지금도 사찰에서 신는다고요.”

 

“그런가유? 그럼 그들이 우리 것을 모방했나 봐유.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장인들은 ‘하하호호히히’를 넘어 세계 방방곡곡으로 건축과 석공기술을 전수하러 출장을 떠나기도 했지유.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 짓는 법을 전수해주었고, 멕시코 유카탄 주 욱스말의 ‘마술사의 피라미드’, 음, 그러니까 마야의 전설에 따르면 일명 ‘난쟁이의 집’인 그곳도 우리가 단 하루 만에 건설했지유. 


 그런데 종종 가지고 간 도구를 장인들이 여기저기 흘리거나 잃어버리지 않겠어유? 아주 환장하겠슈. 꼼꼼히 챙기라고 아무리 해도 말이 씨도 먹히지 않으니 말이어유. 한국도 몇 번 갔을 거구먼유. 분명 덜렁대던 장인이 짐을 챙기다가 거기서 카무신을 잃어버렸던 게 틀림없구먼유. 한국인이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고 똑같이 만들어 팔았을 거구먼유. 

 

 허나 여기서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카무신’은 우리 딥언더니아에서 만든 것이 원조(Original)라는 사실이유. 왜냐하면 고무신은 우리 것처럼 천장을 걸어 다닐 수 없을테니까유.”    

 돌비 마스터는 카무신 신은 발을 벽에 대더니 밟고 올라서기 시작했다. 옆 벽면을 마치 평지라도 되듯 가뿐히 걸어 올라가서는 높은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아이들에게 어서 오라고 소리쳤다. 그들도 할 수 있다며 아래로 계속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벽 앞에 나란히 서기는 했지만 겁이 나는지 아무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았다. 천장에서 계속해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기를 갖고 발을 디뎌보슈! 어서유!”


 수진이 먼저 카무신 신은 발을 벽에 대어보았다. 우란이 다가와 밑에서 그녀의 등을 잡아주었다. 우란이 손을 빼자 신기하게도 수진은 힘 하나 들이지 않은 채 꼿꼿이 바닥과 평행으로 벽 위에 서 있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용기를 내어 한 발짝씩 내딛기 시작했다. 수진은 우란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란은 카할을, 카할은 이안을, 이안은 안젤라를, 안젤라는 허준을, 허준은 티앤을, 티앤은 해마의 손을 잡아당기며 줄을 이루어 벽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돌비 마스터 옆에 도착하여 천장에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리게 되었다. 머리카락과 단체복에 달린 리본들이 중력을 받아 아래로 흘러내렸지만 처음 겪는 신기한 경험에 그런 것쯤은 조금도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따라 천장을 좀 더 걸으며 적응 훈련을 마친 후에야 반대쪽 벽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비록 신을 신고 있어도 천장에서 작업하는 것은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하지유. 그러니 여러분은 이번에 천장 작업을 할 수 없어유.”

 


 그들은 그의 안내를 받아 한 구역으로 따라갔다. 아무도 없는 휑한 공간에 그의 키 만한 바위들이 여기저기에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처음 아이들에게 카무신을 소개했었던, 수염과 머리가 허연 장인을 데리고 와서는 ‘조각의 기초기술’을 가르치도록 시켰다. 장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조각기술 전부를 단 30분 만에 쏟아내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어가며 빠르게 설명을 이어갔다. 혀에 무슨 모터라도 달린 듯 방언을 쏟아내는 것처럼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다들 그저 어떻게 되겠지 란 생각으로 이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설명이 끝난 후 한 사람씩 바위를 배정받았다.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보슈. 완성된 조각품은 메리슨 폰데 캠프 개최 기념으로 여기 지하 정원에 영원히 전시될 예정이니 성심껏 완성하셔야 해유. 꼬박 이틀을 드릴께유.”


 말을 마친 그가 조각기술을 설명해준 장인과 함께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한동안 아이들은 배정받은 바위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곧 결심이 섰는지 카할이 침착한 표정으로 망치와 끌을 들더니 바위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망치를 들고 따라 때리었다. 바위의 재질이 그리 단단하지 않기에 잘 부서졌다. 이틀이면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수진은 당당하고 용감한 여전사의 모습을 새기고 싶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구상한 스케치를 바위 위에 대충 투영하여 깎아 내려갔다. 완성품이 지하 정원에 영원히 전시된다고 하니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뿐 아니라 다들 같은 생각인 듯, 서로에게 말 한마디 꺼내지 않은 채 열심히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게 꼬박 이틀이 지나갔다. 수진은 조각을 하면서 익룡처럼 거대한 학과 무시무시한 개에 대한 기억이 점차 무뎌지고 공포와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됨을 느끼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안정을 되찾아갔다. 내색은 안 했지만 이안 역시 비슷한 것 같았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돌비 마스터가 장인들과 버핏 위원장을 대동하고 작업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지난 이틀 동안 잠자는 시간과 식사 시간까지 아껴가며 완성한 작품들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였다. 여덟 개의 바위들이 황금색 천으로 가려져 있고 아이들은 각자의 작품 앞에 서 있었다. 만족한 결과물이 나왔는지 대부분 보람찬 표정들이었다. 단, 수진만 빼고 말이다. 그녀의 얼굴엔 깊은 좌절과 체념이 가득했다. 


 왕허준이 제일 앞줄에서 긴장된 얼굴로 서 있었다. 


“먼저 시작하세요.”


 마스터의 요청에 그는 자부심 가득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발표를 시작했다.


“오나시아 왕국의 타이타이 왕을 조각하였습니다. 저의 아버님 되십니다. 그분에게서 뿜어 나오는 영광의 빛줄기가 이곳까지 비추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가 말을 마치며 천을 밑으로 잡아당기었다. 구슬이 매달린 왕관을 쓴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공작 꼬리털로 만든 부채 든 손을 하늘 높이 뻗으며 포효하고 있었다. 왕관만 없었으면 딱 나무 위의 사람을 잡아먹으려 공격하려는 불곰의 모습이었다. 왕의 옷 표면은 시간이 부족해 미처 완성시키지 못하여 거칠고 엉성했고, 얼굴은 눈코입을 넣지 못해 둥근 계란처럼 뭉뚱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나름 열심히 한 흔적이 역력했기에 마스터를 비롯한 장인들과 아이들은 손뼉을 쳐 주었다. 위원장은 마치 열성팬이라도 되듯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토르의 망치로 거인의 두개골을 때리려는 저 자신입니다.”

 

 왕허준과 비교하면 카할의 것은 꽤나 괜찮은 작품이었다. 거인의 정수리 부분과 그 위에 앉아 망치든 손으로 내리치려는 카할의 모습이 마치 당대의 영웅인 것처럼 역동적으로 표현되었다. 마스터가 칭찬을 늘어놓았다. 한 가지 아쉬운 거라면 코 부분을 할 시간이 부족하여 콧대 없이 구멍 2개가 뻥 뚫려 있다는 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입니다.”


 안젤라는 그야말로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보석이 박힌 아름다운 드레스가 입혀져 있고,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내려 D컵은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풍만한 가슴 앞으로 구불구불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허리 부분을 날씬하게 한다는 것이 그만 욕심이 과한 나머지 힘 조절에 실패하여 돌이 너무 많이 깨져나갔다. 겨우 손목만 한 둘레밖에 허리가 남아있지 않기에 터질 듯한 가슴과 대조되어 완전 기형적인 몸매로 변해버렸다. 조만간 허리가 똑 부러질 것만 같았다.      


“사랑에 빠진 연인입니다.”


 마스터를 비롯한 모든 이의 시선이 티앤 단까오의 작품에 내리 꽂혔다. 그것은 저 유명한 다비드상을 조각한 르네상스 시절의 미켈란젤로가 작업했다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완성미가 흐르는 훌륭함 그 자체였다. 빵모자를 쓴 소년이 케이크 한 조각을 긴 생머리의 소녀에게 바치자 그녀가 한 입 베어 먹는 장면이었는데 손동작과 얼굴 표정, 하물며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되었다. 돌로 표현되었다는 것이 도저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소녀의 머리 위에 앉은 작은 새가 마치 지금 여기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생동감 있게 여겨졌다. 뭐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한 아름다움에 마스터를 비롯한 모두가 힘차게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이안이 천을 내리자 온화한 인상의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번쩍 들어 올려 활짝 미소 짓는 작품이 드러났다. 티앤 것만큼 완벽하진 않았지만 나름 잘 표현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보기 좋았다. 수진은 아버지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과 그리움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노력과 수고에 다들 진정 어린 박수를 쳐 주었다.


 우란은 옥수수 따는 농부를 조각했고, 해마는 바위에 앉은 아름다운 인어의 모습을 나타냈다. 드디어 수진의 차례가 되었다. 천 끝을 잡았지만 내리기를 주저하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서 마스터가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 몸이 불편한가유?”


“아니오. 마지막 손질 중에 예쁜 머리띠를 조각한다는 것이 그만.. 그래서.. 그것이..”


“어서 천을 내려보셔유.”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그녀가 천을 잡아당겼다. "악" "헉" "켁" 놀라며 경악한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그랬다. 여전사의 머리부터 엉덩이 위까지 상체의 오른쪽 절반이 우지직 깨져나간 것이었다. 비뚤비뚤하게 손질된 갑옷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문양이 새겨져 있고, 한 손에는 삼지창이 들려있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그 옆의 딱 절반이 사라지고 없었다. 안젤라의 비웃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까지 또렷이 들려왔다. 그녀는 순간의 실수로 망치를 세게 때려 작품을 망쳐버린 자신의 오른손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마스터의 두 눈이 점점 휘둥그레졌다. 그 모습에 그녀는 앞으로 들이닥칠 비웃음과 조롱을 보지 않으려고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마스터가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녀의 작품으로 달려와 빙빙 돌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그것을 향해 두 손을 정열적으로 뻗으며 무척 감동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 이런 예술적 가치를 지닌 걸 본 게 얼마만인지. 아주 훌륭해유. 추상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그러면서 뭔가 끓어오르는 내면의 절규와 분노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구만유.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는 명작이어유. 분명 자신도 모르고 있는, 어떤 내재된 예술적 감각이 시켜서 이리 훌륭하게 표현된 것이구먼요. 아주 수고했어유. 최고여유.”

 

 그의 격찬으로 수진의 기분이 최하에서 최상으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수직 상승했다. 그녀는 아까까지 스스로 실수라고 자책하고 있었지만, ‘예술적 가치를 지닌, 추상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이란 표현들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고라고 칭찬해 주었으니 그걸로 된 게 아닌가? 게다가 그는 이 분야의 마스터이자 전문가이지 않는가 말이다. 표정이 잔뜩 굳어지는 안젤라를 보며 그녀는 속으로 고소했다.


 이리하여 수진의 조각품이 정원이 완성된 후 제일 좋은 자리에 놓이기로 결정되었다. 

 세상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한번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수천 년 동안 고전들이 그리 애타게 울부짖지 않았겠는가?




 그날 밤 야심한 시각, 카할의 방에서 이안과 카할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소곤거리는 말소리는 작았지만 간간히 “망치”, “축제”, “학”, “거인”, “결투”란 단어가 속삭여졌다. 서로 의견이 틀어지면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돌아다니며 상대방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흐른 후 겨우 결론을 낸 그들은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였다. 그들의 굳게 닫힌 입술과 잔뜩 힘이 들어간 눈동자에서 흡사 전쟁터에 나가 싸우기를 앞둔 전사가 내뿜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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