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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Nov 11. 2018

16. 학을 드디어 보다 - 2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임시로 만든 초대장이었다. 종이 한가운데에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그린 스티커가 붙여져 있고 그 위에 손가락을 대라는 지문 표시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가 지문을 꾹 누르자 녹음된 티앤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냥 잠들기 아까운 자는 티앤 단까오의 방으로 놀러 와.

 방금 전 초콜릿 케이크를 완성하고 이제 쿠키를 구우려는데 다 함께 즐기자고.

 그리고 맛있는 음료도 준비해놓았으니 마시러 와.

 뱀파이어를 위한 다과도 준비해 놓았어. 

 단 드레스코드는 꼭 준수할 것. 

 잠잘 때 옷차림 그대로 와야 함.”


 그녀는 초대받은 티앤 단까오의 방으로 갔다. 잠잘 때 입는 곰돌이 파자마 차림이었다. 화이트캐슬에 있을 때 이안에게 부탁해 확대시킨 ‘옷방 미니어처 모형’에서 일부러 챙겨가지고 온 것이었다.


 살살 노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퍽”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리었다. 그 안은 표현 그대로 난장판 그 자체였음을 이제부터 차차 들려주려 한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방 천장에는 군데군데 깨진 디스코텍볼이 스스로 돌아가고 있었다. 거기에서 벽과 바닥으로 반사된 다채로운 색깔의 빛들이 현란하게 번쩍거리어 정신이 다 없을 정도였다. 공중에 떠있는 나팔 모양의 스피커에서 힙합 음악이 팡팡 울려 퍼지었다. 흐트러진 옷가지와 부엌 도구들, 과자 부스러기, 쓰레기 등등으로 바닥은 발 디딜 틈 없이 지저분하고 부산스러웠다. 


 그런데 파티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것이었다. 방의 한가운데에 놓인 원형 테이블 위로 갖가지 다양한 종류의 쿠키와 초콜릿 케이크, 버터크림 케이크, 파이, 사탕, 초콜릿이 산처럼 그득히 쌓여 있었다. 그것들은 골고루 섞이어 가파른 산처럼 정상을 향해 위협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래를 파먹으면 위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음식들이 밑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파란 땡땡이 무늬 원피스 잠옷을 입은 우란이 초콜릿을 집어먹다가 수진을 목격하고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초콜릿으로 더럽혀진 그 손을 앞으로 내밀어 그녀에게 반갑게 흔들어댔다. 수진이 그리로 걸어가는데 돌연 테이블의 디저트산 옆으로 왕허준의 머리가 불쑥 삐져나왔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녀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입 주변에는 이미 한바탕 먹은 흔적이 너무나도 역력했다. 그는 헐렁한 반바지만 입은 채 상체는 탈의한 상태였다. 세 겹으로 늘어져 출렁거리는 그의 아랫배에 그만 그녀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안젤라는 연한 아이보리 실크 잠옷과 가운을 두른 채 유리잔들이 잔뜩 올려진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뒤에 선 파티의 주인장 티앤이 흔들고 있는 칵테일 통에서 나오는 노란 액체가 든 잔을 연이어 마시었다. 점점 취해가는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나고 실없는 웃음이 자주 떠올랐다. 


 가장 특이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해마였다. 그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일인용 튜브 욕조 안에서 그는 티셔츠를 입은 채 잠수 중이었다. 그러다 초록색 물고기꼬리를 물 바깥으로 훅 내밀어 흔들어대자 욕조 주위로 물보라가 마구 튀어 올랐다. 물보라의 물방울이 안젤라의 실크 잠옷에 튀자 그녀의 창백한 안색이 노여움으로 더욱 시퍼레지고 주먹까지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해마에게 다가가 한바탕 욕을 퍼부을 듯한 태세였으나 티앤이 뭐라고 속삭이자 그녀는 가까스로 억누른 채 다시 자리에 앉아버렸다. 


 남들이 그러든가 말든가 아예 관심이 없는 해마는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자신이 인어임을 마음껏 뽐내었다. 사실 캠프가 시작된 이래 이렇게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낀 적도 처음이기에 그는 매우 신나고 유쾌한 마음이었다. 욕조 옆으로 커다란 음료수 컵에 꽂인 가느다란 갈대 호스가 물속에 잠긴 그의 입까지 그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수진과 우란이 다과로 잔뜩 채운 접시를 들고 그의 꼬리를 구경하러 옆으로 다가오자, 그는 상체를 물 바깥으로 빼내어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였다. 



 수진이 그에게 다과접시를 건네주고 음료수를 가지러 티앤의 테이블 앞으로 갔다. 어느새 안젤라는 취해서는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수진은 다양한 색깔의 액체들로 채워진 잔들 중에서 선뜻 고르지 못하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티앤이 다홍색 액체가 든 잔을 테이블 밑에서 따로 꺼내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널 위해 특별히 만든 거야. 굉장히 달콤하면서 시원하지.”


“고마워, 우란 것도 하나 골라줄래?”


“여기 미리 따라 놓은 파란 것을 추천할게. 그녀처럼 상큼하거든. 오늘 가정방문은 어땠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어.”


“응? 나쁘다니 뭐가?”


“오늘 지상으로 나가 처음으로 학을 보았거든. 하마터면 잡혀갈 뻔했지 뭐야. 여기 학은 엄청 커서 딥언더니아인이나 사람도 잡아간데.”


“음, 들은 적이 있어. 이곳에 자주 나타난다지?”


“전설로는 요툰하임에서 날아오는 거래.”


“요툰하임? 거인들이 사는 곳?”


“응. 하지만 전설일 뿐 사실인지는 잘 모른데. 근데 이안은 관심이 있어 꽤나 믿는 눈치야.”


“그는 왜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데?”


 그녀는 순간 당황하여 음료를 마시려던 손을 멈칫했다.  


‘이러다 소금궁전에 토르의 망치가 없다는 말까지 나오겠어. 아이고, 이 바보야.’


 그녀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말을 고르기 위해 잔을 여러 번 나누어 마시면서 궁리했다.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건 어떤 대화든지 단번에 중단시킬 수 있는 마법의 말이 분명했다.


“나도 몰라.”


 그는 싱겁다는 듯 피식 웃으며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는 누구와 달리 친절하고 살뜰한 면이 있어 그와 단둘이 있어도 그녀는 전혀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잔을 다시 다홍색 액체로 채워주었다. 그녀는 잔들을 들고 해마 옆으로 되돌아왔다. 우란에게 잔을 건넨 후 접시 위에 쌓은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늦은 시각에 케이크와 쿠키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건 그녀 인생에 처음이었다. 그녀는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처럼 열심히 먹어댔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후 주위를 둘러보는데 이안과 카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이 왜 안 오는지 궁금해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였다. 


 문이 퍽 열리면서 둘이 함께 짜잔 하고 나타났다. 이안은 늘 보는 푸른색 스웨터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카할은 노란 베로 짠 원피스 잠옷 차림이었다. 그녀와 우란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한번 끄덕일 뿐 구석으로 가서 앉더니 둘이서 나지막이 소곤거렸다. 수진이 그들을 적나라하게 쳐다보며 일어섰다. 그러자 그녀의 눈치를 힐끔 살피던 이안이 황급히 대화를 마치는 듯 카할의 소맷자락을 잡아끌며 주춤 일으켜 세웠다. 그들은 그녀가 있는 쪽으로 어슬렁 다가왔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 했어?”  


 궁금한 어조로 그녀가 묻자 이안은 고개를 절래 지으며 평소보다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아무 일도 아니야.”


 만족한 대답을 듣지 못한 그녀는 카할에게로 몸을 돌리었다. 그리고 방금 무슨 이야기를 했냐는 노골적인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였다. 하지만 그 역시 별일 아니라는 듯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였다. 뭔가 자신에게 숨기는 게 있다는 걸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순간 뜨거운 불덩이가 목으로 치밀어 올랐지만 그녀는 겨우 꿀꺽 삼키었다.

 파티장에서의 예의도 있고, 끝나고 차차 알아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지 그녀는 그들을 열심히 주시하였다.   


 이안의 옷차림을 훑어보던 우란이 멀리서 놀리듯이 큰소리로 물었다.


“넌 잠잘 때 그렇게 입고 자니?”


“응.”


“거짓말. 이럴 때 남들처럼 좀 편하게 입고 오면 안 되니? 촌스럽게.”


 수진이 입술을 비쭉 내밀어 불편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핀잔을 주었다.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 티앤이 노란 음료와 초록 음료가 부어진 두 잔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서 그들 앞에 불현듯 나타났다. 정말 귀신처럼 조용히 와 있었다.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그들 앞으로 내밀었다.


“와줘서 고마워. 노란 것은 이안 거고, 뱀파이어도 마실 수 있는 음료야. 이 초록색은 카할 거야. 마음껏 마시고 즐기라고. 계속 만들어 줄 테니.”


 냉큼 잔을 받아 든 카할이 고맙다며 한 입에 꿀꺽 삼키었다. 그리고 정말 맛있었는지 몸을 돌려 잔들이 놓인 테이블로 성큼 가더니 이것저것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안은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로 잔을 내려다볼 뿐 입에 갖다 대지 않는 것이었다. 수진이 옆에서 어서 마시라고 재촉하자 그는 마지못해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셔보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표정을 짓더니 마저 남은 걸 다 마셨다. 


 그가 입맛을 다시자 티앤은 어느새 새로 가지고 온 잔을 그의 앞으로 내밀며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이걸로 서로 언짢았던 거 훌훌 털자. 난 정말 너랑 친해지고 싶거든.”


 이안은 그가 건네 준 잔을 받은 후 잠시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는 진심인 것 같았다. 하긴, 그러고 보니 그동안 괜히 그에게 예민하게 군것 같기도 했다. 아마 티앤은 수진 뿐 아니라 자신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었는데 타이밍이 어긋나고 표현에 서툴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 캠프도 며칠 안 남은 상황에서 이안은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티앤을 향해 잔을 들어 올린 후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정말 마실만한데. 고마워.”

 

      

 파자마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어느새 깨어난 안젤라는 이안 옆으로 다가와 자신이 졸았던 의자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티앤에게서 노란 액체가 든 잔들을 다시 받아와 오붓하게 마셔댔다. 그러나 그녀가 기대한 바와 달리 둘 사이에 그리 대화가 있지는 않았다.


 수진은 카할을 옆에 끼고 앉았다. 그리고 아까 이안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 캐기 위해 이런 말 저런 말 횡설수설, 열심히 머리를 짜내어 그를 추궁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한 마디도 넘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화딱지가 나서 초콜릿 케이크를 한 접시 더 먹기로 결정했다. 스트레스에는 역시 단 것이 최고이지 않은가? 


 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테이블로 쿵쿵 다가갔다. 세상에나, 허준은 그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한 채 계속 머물러 있었나 보다. 그의 삼겹살이 그새 오겹으로 늘어나 있었다. 가파른 디저트산도 완만하게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케이크를 먹던 그녀의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과식을 했나 보다. 그녀는 배를 부여잡은 채 살며시 빠져나와 자신의 방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배 신호가 점점 강렬해왔다. 방문을 닫지 않은 채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래도 화장실 문은 닫고서 일을 보고 있었다.


“끼이익~”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려왔다. 


'사방이 막힌 지하 별궁에서 문이 저절로 닫힐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진 않을 텐데, 누가 들어왔나?'


 그녀는 문 쪽으로 먼저 시선을 두며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앞에 뭔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순간 공포에 휩싸여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저리 가! 어떻게 들어온 거야!”


 방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머리통이 세 개에 뱀 꼬리를 가진 검은 개였다. 아니 개라기보다는 거의 망아지 크기였다. 새빨갛게 이글거리는 여섯 눈동자의 시선들이 마치 그녀의 몸을 관통할 것처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것의 세 개의 입이 동시에 쫙 찢어지자 날카로운 이빨들을 드러내며 그르렁거리는데 마치 청동 기구를 서로 문지를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녀의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쳐왔다. 근데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바로 뒤에 있는 화장실로 피하지도 못한 채 공포에 질린 눈으로 개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오후엔 학에게 잡혀갈 뻔했는데 이젠 개에게 물려 죽겠구나. 내가 살면서 무슨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이 무서운 와중에도 너무 어이가 없어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손가락을 꼼지락해보았다. 다행히 움직여지긴 했다. 마비가 된 것은 아닌가 보다. 그대로 화장실로 돌진해 문을 닫고 숨어버릴까? 그녀는 머릿속으로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자신이 등을 보이는 순간 저것이 확 덤벼드는 결말로 끝이 나곤 했다. 자신의 등짝으로 달려들어 물어뜯고 피가 사방에 튀는 것으로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비참하게 살이 찢겨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저절로 눈앞에 그려졌다.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패닉 상태가 되어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개의 커다란 입 세 개가 둥글게 찢어지더니 그녀를 향해 히죽히죽 웃어대는 게 아닌가? 그리고 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마치 그녀를 환영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녀는 믿을 수가 없어 소매로 눈을 비빈 후 다시 쳐다보았다. 여전히 자신의 눈에는 웃는 낯으로 보였다. 


 그러자 희한하게도 그녀는 얼마간 안심이 되었다. 머릿속으로 도망 계획이 다시금 떠올랐다. 희망이 새롭게 생긴 지금, 화장실로 무사히 피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돌연 그렇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놀라운 눈초리로 계속 그것을 주시할 뿐이었다. 


 개는 뱀 꼬리를 살살 흔들어대며 반갑다는 몸짓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그녀의 바로 앞까지 왔지만 물거나 공격을 할 의사는 전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이 그것의 가운데 정수리 하나에 거의 닿을 랑 말랑한 순간이었다.


“수진, 안에 있어?”


 이안이었다. 그는 세차게 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개는 몸을 돌려 문을 향해 소름 끼치도록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그가 바깥에서 도끼로 변한 마법지팡이로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흉측하게 생긴 것은 난생 처음이었던 것이다. 개의 머리통들이 그를 향해 갈기갈기 물어뜯을 듯 무섭게 짖어대었다. 그것은 부들부들 떨며 단번에 덮칠 태세로 몸을 낮게 수축시켰다. 


 개가 그를 향해 무섭게 돌진해갔다. 꼬리에 달린 뱀의 입이 위아래로 쫙쫙 찢어지며 독니들이 크고 흉물스럽게 드러났다. 뱀파이어의 날쌘 동작으로 그는 문 옆으로 가까스로 몸을 피하였다.


 그것은 더이상 그와 상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지나쳐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그 뒤를 쫓아갔다. 그들은 침묵을 지키는 복도로 향하였다. 복도를 달려가는 그들 옆으로 횃불들의 불빛이 누가 더 빨리 달리나 시합이라도 하듯 따라 달리었다. 개는 바람과 같은 속도로 복도 왼쪽에 열려있는 문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새빨간 눈들의 광채가 뒤돌아보는 가운데 문이 빠르게 닫히었다. 


 늦게 도착한 이안은 닫히는 문틈으로 그것의 붉은 눈들을 마지막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는 손으로 밀어 안으로 어떻게든 들어가 보려 했지만 그를 우습게 여기라도 하듯 문은 그대로 닫혀버렸다. 그가 아무리 밀거나 손잡이를 돌리고 지팡이로 때려 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이안은 마법지팡이를 분필로 바꾸어 문 겉에다가 세모 표시를 하였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작정이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수진에게 되돌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가 다급히 그녀 곁으로 다가와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어디 다치지 않았어?”


“괜찮아. 물려고 하진 않았어. 화장실을 나와 보니까 방에 있는 거야. 열린 문으로 들어온 거 같아. 그런데 나를 해칠 의도는 없어 보였어. 오히려... 웃어줬어.”


“웃었다고? 지금 제정신이야? 딱 봐도 그건 일반 개가 아니었잖아? 괴물이었어.”


“나도 이해가 안 돼. 하지만 나에게 웃어줬어.”


“미치겠네.”


 그는 방 안을 걸어 다니며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자 그는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마 티앤의 음료수 때문일 거야. 알코올이 들어갔는지 다들 점점 취하는 것 같더라고. 내가 도망친 문에다가 표시를 해놨어. 내일 위원장에게 말해볼게. 어서 쉬어.”


 그는 아까 부순 문을 다시 마법으로 고쳐주고 나갔다. 밖에서 방문이 열리지 않는지 단단히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샌드펜을 이용하여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는 괴로운 밤을 또다시 보내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수진이 초췌한 모습으로 아침식사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녀뿐 아니라 다들 하나같이 보통 때 모습들 같지 않았다. 눈이 퀭하고 몸은 어딘가 괴로워 보이는 것이, 피부는 푸석한데다가 식사도 거의들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젤라는 배를 움켜쥔 채 피가 든 잔을 한 모금도 잘 넘기지 못하고 내려놓곤 했다. 입 앞으로 자주 손을 갖다 대는 것으로 보아 속이 몹시 안 좋은 모양이었다. 왕허준은 소화불량에 걸려 과자 하나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쩔쩔매더니 배가 또 아프다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이십 분 후에야 나왔다. 우란은 헛트림을 계속하면서 뜨거운 차만 들이켰고, 그나마 좀 나아 보이는 해마는 옥수수 수프를 겨우 입에 떠 넣고 있었다. 티앤 단까오가 그중 멀쩡해 보였는데 다른 이들의 상태에 죄책감이 들었는지 빵을 조금 뜯는 것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하룻밤 사이에 열 살은 더 먹은 듯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카할과 눈이 퀭해져 좀비 같은 모습의 이안이 구석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진이 다가오자 황급히 대화를 멈추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고 따질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냥 모른 척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앞에 놓인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식사시간이 끝나갈 무렵 도착한 버핏 위원장은 아이들의 상태가 확연히 안 좋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니, 갑자기 왜 다들 이런 겁니까?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하지만 아무도 파자마 파티에 대해 발설하지 않았다. 위원장은 가장 상태가 안 좋은 허준 옆으로 다가가더니 손으로 그의 눈꺼풀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혀를 내밀어 보라는 등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위원장은 곧 혀를 쯧쯧 차면서 홀을 나가버렸다. 


 잠시 후 그는 조그만 항아리를 들고 다시 나타났는데 아이들에게 한잔씩 따라주며 어서 마시라고 했다. 고동색의 걸쭉한 액체인데 약간 달달하나 꽤나 비릿했다. 그는 항아리를 옆에다 내려놓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캠프가 이틀밖에 남지 않은 관계로 이번에는 그냥 모른 척 넘어가겠습니다. 다들 숙취음료를 마셨으니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에 별 무리가 없을 겁니다. 폐회식이 있을 때까지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런 취한 모습으로 왕 앞에 서지 말란 말입니다. 저의 명예를 지켜주실 거라 굳게 믿습니다.”


 위원장이 항아리를 들고 홀을 나가려 하자 이안은 재빨리 뛰어나갔다. 그는 위원장을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이야기를 꺼내었다. 전해 들은 위원장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침묵을 지키는 복도로 향하였다. 이안도 따라갔다.


 곧 비실비실 하던 아이들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숙취음료의 놀랄만한 효과를 경험한 이들의 말소리로 금세 별궁은 평상시처럼 활기차고 시끄러워졌다. 또한 그들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음식도 어느 정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는 그 음료의 재료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수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예전 잠수시럽 일도 그렇고, 그냥 모르고 있는 편이 약일 때가 있는 법이다. 속이 아주 편하다 할 수 없는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이다.


 그러나 왕허준은 재료를 알고도 안 가르쳐주려는 카할에게 끈끈이처럼 붙어 재촉하더니 결국 구석에서 혼자 다 듣고 말았다.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었다. 그리고 몇 분 후 입을 오물오물하며 바닥으로 토를 쏟아내었다. 눈살을 찌푸린 수진은 거 보라는 듯, 자신의 현명한 처사에 흡족한 눈치로 저도 모르게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위원장과 이안은 다시 홀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이안의 표정이 무척이나 당황한 듯, 안 그래도 좀비 같은 창백한 얼굴이 완전 투명하게 질려있었다. 화가 많이 난 위원장은 식탁 곁을 쌀쌀맞게 지나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의 어조는 불만으로 가득했다.


"다들 왜 이러는지, 일을 알아서 만들어요, 만들어. 하다하다 이젠 낙서 청소까지 해야 해?"


 이안은 다가오다가 우뚝 멈춰 서서 그녀에게 혼자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다가가서 물었다.


“얼굴이 왜 그래? 어젯밤 이야기는 잘했어?”


“나 좀 따라와 봐.”


 그들은 종종걸음으로 침묵을 지키는 복도로 향하였다. 액상젤리 벽을 통과한 그녀가 앞을 바라본 순간 “앗!” 진저리를 쳤다. 


 복도 양쪽 벽면의 모든 문 위로 하얀 세모 표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지나가도 표시는 계속해서 나타났다. 이대로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느낌조차 들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결국 그들은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우두커니 앞을 향하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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