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1NE DAY 2019 세 번째 날 9/28
제로원데이의 세 번째 날은 화창한 토요일이었다. 나는 곧장 메인무대로 직행했다. 이번 콘퍼런스의 정점이라 칭할 수 있는 한양대학교 한재권 교수님의 로봇 강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사광선이 청중석으로 쏟아 들어오기에 난 또다시 의자를 질질 끌어 왼쪽 그늘에 가 앉아야만 했다. 제발 다음 해에는 햇빛가리개 좀 부탁드립니다.
한재권 교수님은 길고 구불거리는 헤어스타일에 예술가처럼 자유와 에너지가 넘치시는 분이었다. 설명도 어찌나 열정적으로 하시든지, 듣는 내내 나의 얼굴에서 잔잔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한재권 교수님은 미국에서 로봇 찰리 (Charli)를 개발하는 팀에 소속돼있었단다. 사진 속의 저 휴머노이드 로봇이 바로 찰리이다. 지금은 박물관에 고이 모셔두었다는데 당시 로봇 치고 너무 아름답고 고급스러워 유명세를 탔다. 지금 봐도 심플한 디자인이 아름답다. 찰리 옆에 서 계신 아름다운 여성분이 디자인했다는데 교수님의 부인이시란다.^^
그리고 그때 모신 스승님이 요즘 월드스타로 등극하신 데니스 홍(Dennis Hong) 교수님이다. 현재 RoMeLa에서 열심히 로봇을 개발 중이시다.
한재권 교수님이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로봇은 물리적인 힘 이다.
로봇을 어떻게 팔까?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 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즉 로봇을 가지고 어떤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로봇은 자신이 얼마든지 싸게 공급해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ROBOTICS 분야에는 의외로 공학도 뿐 아니라 미대생이나 예술하는 사람들도 꽤 있단다. 위의 찰리 로봇을 디자인한 부인님도 사실 미대 출신이라고 밝혀 나를 포함한 청중을 놀라게 하셨다. 처음 찰리가 개발되었을 당시 너무 못생겼기에 부인님이 미적으로 예쁘게 다듬어주었단다. 이렇게 미대생도 로봇분야에서 할 일이 있단다.
요즘 '문과여서 죄송합니다.' 문구는 말도 안 된다고 교수님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팔을 마구 휘저으며 강조하셨다.
'공학 + 예술' 만남은 참으로 잘 맞는 짝꿍이다.
전공자가 아닌 나를 포함한 일반인의 로봇에 대한 인식은 거의 할리우드 SF영화들에서 따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트랜스포머나 터미네이터 같이 엄청나고 으리으리한 이미지 말이다. 그래서 로봇에 대한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꽤 존재하는데 이 자리에서 그런 오해를 풀고 싶다고 하셨다.
먼저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은 로봇은 인간과 완전 다르다는 것이다.
로봇은 인간이 못하는 것만 잘한다. 그런데 로봇은 그 사실을 모른다.
반대로 인간은 로봇이 못하는 걸 잘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로봇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며 그것과 대등하게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앞으로 로봇을 인간과 상호보완적, 협업의 존재로 보자.
인간은 '유추'를 상당히 잘한다. 그래서 파란 깃발을 보여주고 "이게 깃발이야." 한 다음에 빨간 걸 보여주면 인간은 단번에 그게 '깃발'인 걸 알아차린다.
하지만 로봇은 사물인식을 엄청 못한다. 하나만 보여주고 깃발이라고 해도 모양과 색깔이 달라지면 그게 '깃발'인지 인식 못한다. 그래서 구글의 AI알파고 기술 이용하여 '깃발'에 대한 데이터를 마구마구 넣어주어 DeepLearning 시킨다.
사람은 한 번만 알려주면 끝인데 로봇은 계속 지도해주며 "이게 깃발이야."를 수백 번, 수천번, 수만 번 인식시켜야 하는 것이다. 어쩔 땐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단다.
교수님과 한양대팀이 스키로봇 DIANA를 개발했다. 위의 사진에서 다이아나에게 빨간 깃발을 인식시키려고 자신의 조교가 며칠동안 깃발만 저렇게 파랗게 표시했단다. 박사학위를 따러 들어온 조교가 연구실에 틀어박혀 깃발만 네모치다 보니 진짜 속된 말로 '내가 공부 죽도록 한 게 네모치러 들어왔나,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때려쳐야지.' 생각이 수십 번 들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결국 조교는 네모를 다 치고 제출하는 마법을 부린단다. 그래서 교수님은 조교는 위대하다고 칭찬하셨다.
그렇게 '깃발'이란 데이터를 AI에 무작위로 부어 넣어주면 이제 로봇이 깃발을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이런 지루하고 고루한 과정을 '지도학습'이라 부른다.
아직 인간이 이 지루한 지도학습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AI 발전양상에 따라 '비지도학습'으로 AI가 스스로 알아서 학습할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집어넣었는가를 토대로 한 알고리즘이 여전히 앞서는 상황이다.
암튼 그분의 DIANA는 무사히 깃발들을 통과하며 스키를 타게 되었다는 결론.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방사능 피폭 위험으로 사람을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로봇이 대신 먼저 출동하였다. 그런데 로봇이 후쿠시마 원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그만 배터리가 방전되고 또 다른 것은 높은 방사능 수치에 피복되어 그대로 작동이 멈춰버렸다.
결국 인간이 방화복을 입고 투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DARPA Robotics Challenge 가 2015년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열렸다.
후쿠시마 원전의 일을 반성삼아 세상에 쓸모 있는 로봇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재난로봇 올림픽'이라 불리는 이 챌린지가 참가팀에게 주는 미션들은 대부분 불가능한 것들이다.
교수님도 처음 열린 해에 참석했을 때 세계의 내로라하는 유명한 로봇학자들이 다 모여있었단다. 그들은 미션들을 보자마자 하나같이 "불가능해. 못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지었단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몇 개의 미션을 통과해야 하는데 '옛날 차 잡아타고 운전', '냉각수 밸브 잠그기' 등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로 한 것들이다.
2015년 우리나라 카이스트팀이 제작한 로봇 'HUBO'가 이 어려운 미션들을 모두 통과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아래 관련 20배속 영상을 첨부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v6-heLIg85o
전 세계에 로봇강국은 역시 미국이 일등, 일본도 상당히 잘하는데 인구수와 연구비 대비하여 우리나라도 상당한 수준급이란다.
DARPA의 진정한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카이스트팀이 챌린지에서 모든 미션을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로봇의 힘을 제어시키는 '힘 제어'개념을 도입시켰기 때문이다.
즉 로봇이 힘을 느끼게 되자 그것은 전보다 안전해졌다.
예전에는 로봇이 손으로 만지만 다 부셔버렸던 것과 달리 살짝만 들거나 살짝만 긋거나 살짝만 밀거나 등의 힘 조절이 아주 중요하단 걸 알게 되었다. 위의 영상에서 로봇이 판지에 구멍을 뚫는 미션이 있는데 그것은 적당한 힘으로 드릴을 들어 적당한 힘으로 원을 그어야 구멍이 뚫리지 만약 힘 조절이 안된다면 판지가 그냥 뿌개져버린다.
2) 용감하게 도전하라.
미션이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용감하게 도전하는 정신이 인류의 발전을 리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3) 실패하라, 또 실패하라!
카이스트팀처럼 매끈하게 성공하는 로봇도 있지만 대다수는 휘청휘청 넘어지거나 고꾸라지거나 미끄러지는 등 실패의 연속이다. 실패해도 좌절하지 말고 연구하고 또 연구해라. 그래서 다시 도전하라.
교수님은 우리가 성공한 케이스가 아닌 실패한 아래 장면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패 속에서 성공과 발전이 싹트는 거니까 말이다. 영상을 보면서 난 로봇들이 많이 아팠겠다 싶었다. 물론 그것들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g0TaYhjpOfo
이 챌린지에서 실패를 경험하여 자존심이 팍팍 상했다가 다시 재기에 성공한 한 로봇회사가 있다.
바로 테크 업계에서 그 유명하고 핫한 BOSTON Dynamics이다.
창업자가 누구인지, 연구자들은 몇 명인지 등 많은 것이 비밀로 붙어진 가장 비밀스러운 회사들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난 몇 년 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동영상의 가장 오른쪽에 선 황소처럼 생긴 로봇이 돌길을 달리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엉성한 것이 처음부터 걸음걸이가 불안했는데 시냇가 옆의 둥근돌에 그만 발이 미끄러져 훼까닥 뒤집혔고 마구 허공을 향해 발버둥 치던 걸 보고 깔깔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회사의 로봇들은 독보적으로 유명해져 가끔 뉴스에까지 등장한다. 예전에 구글에 팔렸다가 현재 손정희 소프트뱅크사 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이 회사의 변천사를 잘 보여주는 영상이 있기에 가져와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NR32ULxbjYc
얼마 전 신문에도 나왔는데 이 회사에서 만든 로봇개 영상이다. 다른 로봇을 위해 손수 문을 열어주는 로봇이다. 한 마리 키워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기게 만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wlkCQXHEgjA
이제 인간이 로봇과 협업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간이 못하는 것을 로봇에게 시키고 대신 우리는 우리가 잘하고 로봇이 잘 못하는 것, 예를 들자면 뒷마무리를 하거나 세밀하게 하는 걸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인간과 로봇의 분업의 시대가 다가온다. 인공지능 AI를 탑재한 로봇과 인간의 분업은 새로운 경쟁력으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조성할 것이다.
이미 글로벌 산업용 로봇회사들은 이런 변화에 동참하는 중이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고 등등의 일은 먼 미래에 속하니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직은 스키장의 깃발을 인식시키는 데도 너무 힘이 드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미대생이던 부인님이 로봇디자인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찾고서 "이건 내 영역이야! 유레카!" 외치며 깃발을 꽂은 것처럼
'자신이 먼저 깃발 꽂고 이건 내가 개척했다고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라'라고 조언하셨다.
산업의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근미래에는 그런 영역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기에.
교수님의 마지막 조언이 내 가슴을 후벼들었다.
난 브라잇 동맹이 그저 읽고 끝나는 판타지 문학이 아닌 살아 숨 쉬고 생동하는 문학으로 만들고 싶었다. 교수님의 조언을 들은 후 내가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란 의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만든 게 '실감문학' (Immersive literature) 장르.
요즘 5G 시대가 되면서 VR, AR, MR, XR 등을 이용한 실감콘텐츠가 대세이다.
브라잇 동맹은 영상이 아닌 활자로 된 판타지 이야기이지만 문학이라고 꼭 실감형이 없으리라는 법이 있나?
가령 '해리포터'를 보자. 거기서 파생하여 판매하는 다양한 상품들과 테마파크 등을 볼 때 넓은 의미로 '실감문학'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출판'이라는 개념도 꼭 종이책 출판이 아닌 책에 나온 상상력으로 만든 제품을 소량 판매해 보는 것도 넓은 의미의 출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아무튼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길이 생겨나는 것이다.
난 재미난 표정으로 어디 좀 빼내어 이용해볼까? 찬찬히 브라잇 동맹을 뜯어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