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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Dec 06. 2020

10. 루시 (Lucy)가 두발로 뛰다. - 2


 어찌했든 그녀가 두발로 걷는 연습을 계속 시켰으나 루시는 점차 힘들어하고 자꾸 주저앉으려 했다. 그러다 갑자기 수진의 팔을 확 제치더니 어두운 아래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버렸다. 잠시 후 쾌쾌한 똥냄새가 먼저 올라오고, 그녀가 엉거주춤 기어와 자기 둥지에 벌러덩 누워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쾌쾌한 냄새 때문에 아이들은 잠시 동굴 입구로 피해야만 했다. 어느 정도 환기가 되었겠다 싶게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들어가려는데 순간 이안의 눈에 번쩍 전기가 흘렀다. 그리고 다짜고짜 수진의 어깨를 잡고서 마구 흔들어댔다.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라고.”


 그가 흥분하여 소리치자 그녀는 어깨에서 그의 손을 떨어뜨리며 성난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한밤중에 지금 뭐라는 거야?”


“바로 그거라고, 수진. 바로 그거야.”


“도대체 무슨 소리야? 지금 잠꼬대 해?”


“그게 아니고, 드디어 방법이 떠올랐다고!”


“그게 뭔데?”


 카할이 눈을 반짝이며 되묻자 그는 아주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똥이야.”


“뭐, 똥?”


 수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비웃어주었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덧붙여 설명했다. 


“모든 동물은 자신의 똥을 가장 더럽게 생각해. 지금 저 동물도, 아니 루시도 일을 본 후 바로 그 자리를 피했잖아. 티라노사우루스도 똑같아. 자신의 똥이 더럽다고 생각할 거고 극도로 싫어하겠지. 그 점을 이용하는 거야.”


 수진의 얼굴에 문득 공룡을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두려운 표정이 떠올랐다. 시퍼렇게 질려서는 그녀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되물었다.


“그러니까 너의 말은, 문에 접근하기 위해선 그것의 똥을... 발라야 된다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어제의 레빌처럼 그 자리에서 곧바로 기절할 것만 같았다. 여태까지 별의별 일을 다 당했지만 이젠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하여 그것의 똥까지. 아, 이건 생각만 해도 너무 심했다. 특히 자신과 같은 숙녀에게는 정말로 못할 짓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이안과 카할은 이제 다 해결되었다고 서로를 쳐다보며 키득거렸다.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치며 사이좋게 안으로 들어가면서 공룡의 똥구덩이에서 채취할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울분을 참으며 따라 걸음을 옮기려던 그녀가 주춤하더니 제자리에 딱 멈춰 섰다. 그녀는 오만 인상을 쓰며 그들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난 절대로 못해. 그건 절대 안 할 거야!”


 앞서 가던 그들이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녀의 화난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 콧물을 보고야 말았다. 그들은 순간 당황하여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무리 방법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것의 똥까지 발라야 해? 어떻게 그래, 응?”


 그녀의 하소연에 이안이 홱 냉정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살얼음처럼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시선은 레이저라도 발사될 것 같이 날카로웠다.


“그럼 다른 방도라도 있는 거야? 만약 그것밖에 없다면 어떡할 건데?”


“그래도 못해. 너무 더러워. 차라리 죽고 말지.”


“그럼 죽던가.”


 그의 냉소적인 대답에 그녀뿐 아니라 카할까지 깜짝 놀라 잠시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안은 한눈에도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녀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저도 자존심이 있는지라 꾹 버티며 그를 똑바로 응시하였다. 카할이 “야, 너 왜 그래?” 하며 그의 손목을 잡아 달래려고 하자 그가 잽싸게 손을 뿌리쳤다. 그는 그녀를 째려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래서 ‘학과의 결투’ 전까지 내가 뭐라 그랬어? 위험하다고, 만만치 않으니 따라오지 말라고 얼마나 말했었어? 그런데 넌 들은 척도 하지 않았잖아. 그저 고집만 세어서는 무슨 소풍이라도 가는 마냥 졸졸 따라와 놓고는 이제 와서. 그래, 좋아. 여기서 저 침팬지랑 천년만년 살아! 나도 신경 끌 거야. 죽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말을 마친 그가 홱 돌아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홍수에 둑이 무너지듯 감정이 훅 치밀어 오르더니 눈물이 장맛비처럼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그의 등을 향해 야수처럼 울부짖었다.

 

“브라잇 동맹으로 따라오면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 가득할 줄 알았어.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고 맛있는 음식만 먹고.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잖아? 죽을 뻔 하기도 여러 번에 고생만 죽도록 하고, 물에 빠지거나 무서운 괴물과 대적하고. 이젠 티라노사우루스에, 그것의 똥까지 바르라고? 더이상 여기 있기 싫어. 나 롤리마을로 돌아갈래. 엄마와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그전처럼 편안하고 조용히 지내고 싶어. 너와 카할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근데 나 완전히 지쳤어, 너무 힘들다고!”


 그녀는 엉엉 울면서 그대로 밀림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카할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나무 둥지를 껴안은 그녀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눈물을 그치지 못한 채 한풀이를 마구 쏟아냈다. 카할은 옆에 같이 있어주며 그냥 들어주기만 했다. 그렇게 울고불고했더니 그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동굴로 돌아왔다. 어느새 하늘은 새벽빛이 막 감돌기 시작하여 청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지만 이안은 그곳에 없었다. 그들은 꺼진 모닥불 옆으로 눕자마자 지친 피로감에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얼굴을 쓰다듬고 귀찮게 비벼대는 루시 때문에 수진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뜬 정오였다. 전날 너무 울어서 그녀의 두 눈은 퉁퉁 부었고, 얼굴도 빵빵해져 못 알아볼 만큼 못난이로 변해 있었다.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데 아 글쎄,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자기만 놔두고 벌써 떠난 게 아닌가 싶어 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동굴 밖으로 미친 듯이 뛰어나갔다. 


 다행히 일행들은 밖에 앉아있었다. 그녀를 남겨두고 떠나지 않은 것이다. 안심을 넘어 어떤 감동까지 받은 그녀는 그들 곁으로 급히 다가갔다. 아침인사를 건네려던 레빌이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먼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부끄러워서 어디 조그만 구멍이라도 있으면 바로 숨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은 채 이안의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와 카할은 커다란 바나나 잎들로 뭔가를 열심히 짜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비비 꼬아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안에게 말했다.


“저기, 어제 내가 너무 심했지? 미안해. 제발 나도 꼭 데려가 줘.”


 이안은 그녀의 퉁퉁 부은 얼굴을 올려다보고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하지만 시치미를 뚝 뗀 채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은 엄숙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할이 엮고 있던 바나나 잎을 흔들어대며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수진, 아침에 이안이 가지고 온 거야. 네 망토를 만들어준다고. 덕분에 우리도 망토를 해 입기로 했어. 물론 겉에는 똥칠을 할 테지만 말이야. 그래도 이게 어디니?”


 망토란 말에 그녀의 얼굴에 구원의 미소가 지어지더니 덥석 이안의 목을 껴안았다. 그가 황급히 그녀의 손을 풀어버렸다. 좀 무안했지만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바나나 잎을 여러 겹 겹쳐 만든 망토 네 벌을 뿌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들은 각자의 것을 들고 밀림숲으로 향하였다. 중간쯤 왔을까? 쾌쾌한 냄새가 진하게 맡아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어두운 밤 공룡이 잠을 자느라 나오지 않을 때 이안이 몰래 퍼다 놓은 똥이 가득 쌓여 있었다. 어떻게 퍼서 옮겼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 맛있는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앞둔 독자 여러분을 위해 이 부분은 모른 척 그냥 덮어두기로 하겠다. 어찌했든 티라노사우루스의 똥이 마련되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니까.


 카할이 끝에 둥근 홈을 판 나무 막대기로 그것을 떠서 망토 위에 살살 바르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역겨웠지만 그들의 목숨을 살려줄 유일한 방도인 똥망토였다. 각자 조심스레 어깨에 두르고 목 앞으로 엇갈려 튀어나온 잎사귀 줄기들을 묶어 고정시켰다. 그리고 공룡이 있는 동굴로 서둘러 갔다. 


 수진은 가는 도중에 혹시 밑으로 새지 않을까 조바심이 들어 여러 번 걸음을 멈추어 찬찬히 살피기까지 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모습이 보이지 않는 루시도 슬슬 걱정이 되었다.

 

“저기 루시도 같이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물었지만 앞서 가고 있는 이들 중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곳에 남겨두고 가다니 마음이 안쓰러웠지만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단념하고 그녀는 서둘러 그들 뒤를 쫓아갔다.



 드디어 숲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그들이 모습을 나타내자 티라노사우루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동굴 안에서 얼굴을 내밀어 크렁크렁 콧김을 내뿜었다. 곧 육중한 몸을 이끌고 햇살 안으로 한 발자국씩 걸어 나왔다. 그리고 온 땅이 쩌렁쩌렁 울리고 산산이 부서지도록 몸을 힘차게 흔들어대며 크게 포효했다. 다시 보아도 너무 끔찍하게 무섭고 오금이 다 저려왔다. 레빌뿐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선뜻 앞으로 걸음을 내딛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그것을 통과하여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전진해야만 한다. 다만 누군가가 먼저 나서 스타트만 끊어주면 될 텐데 말이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이안을 쳐다보았다. 아이디어를 낸 당사자가 먼저 시도하기를 바란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잘 죽지 않는 뱀파이어이지 않는가? 물론 한 입에 목이 물어 뜯긴다면 그 길로 끝이겠지만. 


 자신의 막중한 의무를 알아차린 그가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공룡의 두 눈에서 광채가 번쩍이더니 상체를 숙이고 그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온 지면이 쿵쾅쿵쾅 진동하는 가운데 이안은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지만 겨우 지탱하며 제자리에 섰다. 


“오, 안 돼, 이안! 이안!”


 레빌과 두 친구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크게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그는 계속 버티며 서 있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얼굴을 아래로 내밀어 그를 향해 입을 쫙 벌리자 무시무시한 이빨들이 햇살 아래 쇠창살처럼 번득거렸다. 침이 뚝뚝 떨어지는 입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공룡이 불현듯 코를 킁킁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그만 화들짝 놀라 눈이 커지고 몸을 뒤로 확 젖힌 채 두 앞발을 허공에다 허우적대었다. 그것이 급정거를 하려다가 그대로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엉덩방아 찧는 모습은 긴 꼬리로 인해 으리으리하면서도 우아했는데 핑그르르 돌며 옆으로 미끄러지다 나무들을 우지직 쓰러트리고 뒤로 푹 넘어졌다.


 그러자 기회는 이때다 싶어 이안이 재빨리 뒤돌아 그들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어서 달려! 빨리!”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빌과 수진, 카할이 전속력으로 동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육상선수들도 지금 그들과 같이 달린다면 아마 금메달을 놓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공룡이 일어나기 전에 도착하려는 그들의 눈물겨운 사투에 세계 신기록이 갈아 치워지고 선수들은 경기를 포기한 채 기립박수를 보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쥐라기 시대의 냉혹한 무법자는 고개를 흔들어 냉큼 정신을 차렸다. 그것은 일어나더니 달리는 그들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따라 달렸다. 그러나 얼굴을 내려 코를 킁킁거리면 자신의 똥냄새가 또다시 맡아져 온몸으로 진저리를 쳤고 그만큼 속도는 점차 느려졌다. 


 제일 먼저 동굴에 도착한 이안이 은색 문의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제발 열리기를. 그의 바람대로 손잡이가 돌아가며 열렸다. 


“어서 문으로, 어서!”


 그가 소리치자 따라오던 그들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었다. 공룡은 더럽다고 포기했는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은 채 중간에 서서 그들을 따라 시선만 옮길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움바움바움바~움바움바움바~”


 루시의 애타는 울부짖음이 그들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수진이 멈춰 뒤돌아보았다. 루시가 자신도 데려가라는 듯 잽싸게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간처럼 두발로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루시를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즉, 공룡을 있는 쪽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야, 너 미쳤어?”


 거의 다 도착한 레빌과 카할 사이로 이안이 뛰어나가며 윽박질렀지만 그녀에겐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루시가 잽싸게 티라노사우루스의 앞을 지나 달려오는 그녀에게 안겼다. 그런데 너무 세게 안겼는지, 아님 그동안 죽자살자 뛰어 묶인 잎사귀 줄기가 헐거워졌는지 망토가 그녀의 어깨에서 스르륵 벗겨졌다. 깜짝 놀란 수진이 얼른 집으려 다가가는데 훅 불어오는 바람에 그것이 저 멀리 야자나무 위로 날아가 버렸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일부러 콧김을 세게 내쉰 것이었다.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수진과 루시. 으르렁거리는 공룡 바로 앞이어서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 주저앉더니 그들은 서로를 꼭 껴안았다. 수진이 알을 품은 어미닭처럼 루시의 몸을 가려주며 품 안에 안았다. 이안은 그들에게 달려오면서 마법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미처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공룡의 거대한 발이 살짝 들어 올려지더니 바로 그녀들의 위로 빠르게 내려왔다.


“안 돼!”


 이안과 레빌, 카할의 무서운 절규가 처참히 울리는 가운데 공룡의 발바닥이 수진의 등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공룡이 홀로그램처럼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졌다. 곧 향기롭고 선선한 바람이 밀림에서 불어 나왔다. 동시에 숲의 푸른 경계선이 황량한 이곳으로 빠르게 넘어왔다. 황폐하게 부러진 나무들이 세워지고 튀어나온 뿌리도 흙속에 다시 박히며 풀이 나고 꽃이 피는 등 푸르름을 되찾아갔다. 똥구덩이도 완전히 사라져 평평한 잔디밭으로 변하였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주저앉은 수진의 등에 이안이 손을 대자 그녀가 번쩍 눈을 떴다. 그녀는 주변의 변화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앗, 루시가 없어.”


 그녀가 일어나 루시를 부르며 찾았지만 그녀는 소리를 내지도, 달려오지도 않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살며시 흘러내렸다. 이안이 그녀의 어깨를 두들기며 달랬다.


“공룡과 함께 사라져 버렸나 봐. 어서 가자.”


 그녀는 주위를 다시 둘러보고 아쉬워하면서 그와 함께 문으로 갔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망토 위의 똥도 어느새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었다. 문 안으로 이미 들어갔던 레빌과 카할이 입을 벌린 채 다시 나와 자신들의 어깨에 걸쳐진 깨끗해진 망토를 벗어 신기한 듯 살펴보았다. 그들은 은색 문으로 들어갔다.




 약 320만 년 전, 지금의 에티오피아 북부 하다르 아와시 강은 늘 그래 온 것처럼 물결이 찰랑찰랑 부딪치며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노란 보름달이 강 위에 저와 똑같은 그림자를 밝히어 주변을 훤히 비추었다. 홀연 밤하늘 위로 더 눈부시게 하얀빛을 내뿜는 또 다른 타원형의 소용돌이가 불쑥 나타났다. 주변에서 야간 사냥을 하거나 물을 마시던 동물들이 두려움에 휩싸여 울부짖으며 뛰어 달아났다. 


 침팬지 비슷한 유인원들도 가까운 동굴로 도망쳤다. 곧 소용돌이 안에서 뭔가가 툭 튀어나오며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루시였다. 그녀를 알아본 유인원들이 우르르 네발로 기어 나와 죽은 듯이 누워있는 그녀의 몸을 찌르거나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그녀가 눈을 떴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너무 기쁜 나머지 벌떡 일어나서 달리고 춤을 추었다. 


 동족의 눈동자가 커지었다. 모두 해괴한 장면에 놀란 기색들이 역력했다. 그녀는 언제부터 이 땅을 내려다보았을지 모를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쳐든 채, 두 발로 빙빙 돌아다니며 그들에게 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들은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하나 둘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 두발로 걸어보았다. 그렇게 그들은 현생인류로 향하는 ‘직립보행’이라는 놀라운 진화의 길로 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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