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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Aug 26. 2021

12. 지하무덤과 레이디 포터리 - 2


 레이디 포터리는 우아하고 세련되게 티타임 대화를 이끌어갔다. 처음 보았을 때의 소녀 이미지는 사라지고 그녀에게서 세련된 영국 귀부인 느낌이 물씬 풍겨 나왔다. 손님들은 기분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졌다. 마왕이 말한 마지막 시험은 아직 오지 않았거나 만약 이것이라면 저렇게 우아하고 귀여운 도자기 인형이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더 끔찍할 것 같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자신들에게 호감을 보이는 그녀가 기꺼이 도와줄 거라는 확신이 들자 수진은 긍정적인 목소리로 발랄하게 물어보았다.


“레이디 포터리, 혹시 디아 왕비를 아세요?”


“물론 알지요. 그녀와 이안 1세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모르는 분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덜 세련되고 덜 유식한 분이지 않을까 싶네요.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절절한 이야기를 모르시니까요. 만약 그런 분이 계신다면 제가 그 앞에서 대신 울어드리고 싶네요.”


 순간 레빌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는 정말로 그 유명한 이야기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덜 세련되고 덜 유식하다고 밝힐 수 없어 그냥 잠자코 있었다. 이안은 예전 자신이 왕자였을 시절, 일룸니아 궁전에 모인 자들이 자주 쓰던 ‘체 하는’ 말투를 그녀에게서 듣게 되자 당시의 반발심이 조금씩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성으로 들어올 때 우리는 대문 위에 적힌 그녀의 무덤 비문을 읽었어요. 게다가 그녀의 무덤도 있었고요. 아마 당신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요.”

 

“무슨 그런 무례한 말씀을, 이곳은 그녀의 무덤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에요. 그러니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확신해요. 이곳은 일룸니아 왕국이 아니에요. 물론 전 그녀를 존경하지만 그녀의 무덤을 끌어안고 있을 정도로 숭배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드리고 싶군요.”


 무례하다는 핀잔을 듣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공손히 사과하는 예를 차렸다. 레이디는 고개를 두 번 끄덕임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표시를 했다.


“그럼 우리가 본 건 무엇일까요?”


 수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레이디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천장을 바라보더니 난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주인님이 장난을 치셨나 보군요.” 


“마왕 블랙수트.. 말인가요?”


 이안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으며 그녀의 입을 주시하였다. 그녀의 다음 대답에 그가 확실시하고 싶은 중요한 사실이 걸려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천장에서 벽면을 따라 내려오다 허공에서 잠시 멈추었고 늘 유지하는 무표정한 얼굴의 조그만 입을 열었다.  


“저도 사실 주인님에 대해 잘 몰라요. 그저 저에게 이 은신처를 마련해주시고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는 것밖에는 말이에요. 그리고 외로운 저를 위해 한 번씩 선물을 놓고 가시는 친절한 신사라는 것도요.”


 실망하여 이안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그녀는 이어 자신이 받은 아름다운 보석알들과 의상, 금발 가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파이어 반지, 색색의 진주 귀걸이 세트들, 쇠망치 등 주인의 선물들에 대해 들뜬 목소리로 자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 하던 수진도 점차 그녀의 자랑에 감탄하며 부러워졌다. 그래서 그녀는 아주 공손한 어조로 어렵게 요청해보았다.


“그 아름다운 것들을 제가 한번 구경할 수 있을 런지요, 레이디 포터리.”


“죄송하지만 그 요청은 들어드릴 수가 없네요, 수진 양.”


“왜요?”


“꺼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한번 들어가면 말이에요.”


 인형의 목소리가 별안간 차갑고 쌀쌀맞은 것처럼 들렸다. 수진은 불현듯 기분이 이상해졌다. 여태까지 보여주던 그녀의 공손함과 우아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생떼 쓰는 어린아이 같은 어조의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수진은 그녀의 얼굴과 눈빛을 살폈지만 도자기여서 그런지 어떠한 표정 변화도 감지할 수 없었다. 다른 일행들 역시 그녀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전보다 더 커진 눈망울로 레이디를 주시하였다.


“그럼 다른 건 다 빼고 쇠망치 하나만 보여주면 안 될까요, 레이디 포터리?”  


 여태껏 조용히 차를 마시던 카할이 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 요청도 들어드릴 수가 없네요. 자꾸 저의 소유물에 흥미를 보이시는데 그건 숙녀에게 큰 실례라는 걸 모르시나요?”


 표독스럽게까지 들리는 그녀의 앙칼진 어조에 카할이 이안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이안도 눈치를 채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가 언급한 쇠망치가 토르의 망치일 가능성이 있었다. 레이디는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한 채 찻잔을 받침에 받쳐 신경질적으로 입술에 가져갔다. 그리고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티타임 분위기가 어색해지며 싸해져 갔다. 수진은 핸드백 끈이 얹어진 가슴이 답답한 것 같아 끈을 내리고 등 뒤로 넘어가 있는 핸드백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레이디의 검은 물감 눈들이 그것을 쓱 내려다보더니 집중하는 시선으로 훑으며 물었다.


“아주 예쁘군요. 제가 한번 해봐도 될까요?”


 또다시 정중한 어조로 바뀐 그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수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지었다.


“저도 그렇고 싶은데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해 주세요. 이 안에 잡다한 게 많이 들어서 보여 드리기가 부끄러워요.”


 만약 수진이 선물들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승낙을 했고 계속 친절하게 응대해주었다면 그녀가 안을 들여다보든지 말든지 그것을 건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전혀 그렇고 싶지 않았다. 


“만약 핸드백을 들어보게 해 준다면 당신도 우리에게 망치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


 이안이 수진에게 찡긋 눈짓을 하며 레이디에게 정중히 여쭈었다. 눈치를 챈 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전혀 변화가 없는, 이제는 왠지 소름이 끼치는 똑같은 표정으로 그들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곧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그녀의 조그만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제 것은 안 된다고 이미 말했잖아요? 빨리 그거나 해보게 이리 주세요.”


 레이디는 주인의 허락조차 필요 없다는 듯 벌써 손가락이 핸드백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수진은 핸드백을 얼른 어깨에 둘러메고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테이블에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두 손이 핸드백 끈을 꼭 쥐고 있었다.

 

 레이디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양옆으로 기우뚱거렸다. 동시에 치맛자락이 대리석 바닥을 쿵쿵 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도자기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검은 연기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불안한 낌새를 눈치챈 이안과 카할, 레빌도 의자에서 내려와 수진 옆에 나란히 섰다. 레이디의 기우뚱하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수진을 향해 힘껏 내던지며 분노의 외마디를 질렀다.


“악, 그건 내 거야! 어서 내놔, 이것아!”


 수진은 다행히 잘 피했고 그것은 바닥으로 떨어져 쨍그랑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자 레이디 포터리는 ‘뭉크의 비명’에 나온 주인공처럼 양손을 두 뺨에 갖다 댄 채 아이처럼 떼쓰며 꽥꽥 비명을 질렀다. 


“으악으아악, 그건 내 거야, 내 거라고! 너희는 절대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 왜? 여긴 내 성이니까. 으허허허.”


 비명과 비웃음이 뒤섞인 듯 귀신이 내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레이디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서 달라고 보채는 듯 두 손을 앞으로 쑥 내밀어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공포에 찬 그들은 황급히 뒤돌아 대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달려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는 것이었다. 계속 홀의 황금 카펫 위를 쳇바퀴 돌 듯 뛰고 있었다. 어느새 인형은 성큼 다가와 가까이 있던 레빌의 팔을 확 잡아당겼다. 깜짝 놀란 그가 그녀에게 안기기를 거부하며 두 발로 그녀의 치마를 힘껏 밀었다. 가소로운 웃음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 놈한테선 뭐를 받을까? 근데 암만 봐도 아름다운 데가 없으니. 에잇, 너의 귀 두 짝을 받아야겠다. 나중 귀걸이 선물이 들어오면 받침대로 써야지.”


 그는 자신의 귀로 다가오는 그녀의 손목을 남은 손으로 죽자살자 막으며 분통을 터트렸다.


“쟤 핸드백만 받으면 되지, 왜 내 귀를 원하는 거야?”


“내가 준 차와 과자를 이미 먹었잖아?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먹었으면 대가를 지불해야지. 걱정하지 마. 차 마신 놈들한테 다 받아낼 테니까.” 


 카할이 치마 밑에 몰래 숨겨두었던 단도를 꺼내어 힘껏 그녀의 손목을 내리찍었다. 도자기에 금이 가더니 레빌을 잡은 손이 툭 떨어졌다. 레빌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카펫 위를 후다닥 달리더니 계단을 오르고 관을 지나쳐 잽싸게 위층으로 도망쳐 버렸다. 


“후웃, 바보 같으니라고. 이 위에 뭐가 있는 줄 알고.”

 

 그런데 말을 마친 그녀의 잘린 손목에서 금세 하얀 도자기 손이 다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완벽한 손으로 재생되는데 단 몇 초 만이 걸릴 뿐이었다. 

 

 그녀는 바로 수진에게 달려들었다. 수진은 핸드백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황금 카펫 위에서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그녀는 그제야 뼈저리게 이해가 되었다. 왜 마왕이 저것을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더 끔찍하다고 했는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든 비참히 살해하고도 남을 잔인한 본성을 지닌 인형. 동정이나 가련함, 사랑이나 이타심 같은, 인간이라면 대부분 지녔을 감정의 조그만 단편조차 지니지 않은 차갑고 냉정한, 한마디로 완벽한 살인 도구였던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어린아이 같은 강렬하고도 이기적인 소유욕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수진이 이리저리 피하는 동안 카할과 이안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인형의 앞길을 막아서곤 했다. 카할은 단도로 그녀의 치마를 마구 찔러댔지만 깨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재생되어 도무지 한방을 먹일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무표정을 유지한 도자기 인형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하얗고 투명하게 빛나는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계속 떼를 썼다. 그녀의 벌어진 입에서 검은 연기가 더욱 많이 내뿜어졌다.


“빨간 핸드백은 내 거야! 어서 내놔, 이년아!”


 그런데 그때였다. 계단 위에서 “쿵” 하는 소음이 크게 나더니 진동과 함께 천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샹들리에가 빙빙 흔들리고 돌 부스러기 같은 것이 그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더불어 레빌의 비명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레빌 살려! 레빌 살려!”


 곧 레빌이 계단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모습은 엉망진창이었다. 웨딩드레스는 진흙이 잔뜩 묻어 얼룩덜룩했고 그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새빨갰다. 그는 좀 전에 올라갔을 때보다 세 배나 빠른 속도로 계단을 우당탕 뛰어 내려왔다. 그런데 그 뒤로 진흙 같은 것이 계단 위층 바닥을 가득 메우며 우르르 덮쳐오는 것이 아닌가? 마치 산사태라도 난 듯 아래로 물결치며 달려 내려왔다. 자세히 보니 진흙을 온몸에 바른 징그러운 두꺼비떼였다. 레이디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성가신 투로 중얼거렸다.


“에잇, 귀찮게시리 저것들을 깨어나게 했어.”


 레빌은 헐레벌떡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와 그들 뒤로 몸을 숨겼다.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계속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두꺼비들은 이미 계단으로 몰려들어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이안이 명령조로 외쳤다.


“어서 의자 위로 올라가!”


 그들은 인형이 주춤한 사이, 아까 도망쳤던 테이블 의자를 향해 나 살려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을 잘못 딛는 바람에 무리보다 빠르게 점프해온 두꺼비들을 그만 밟고 말았다.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팍팍 터질 때면 그들의 입에서는 소름끼치는 증오와 분노가 새어 나왔다. 


 피와 진흙이 그들 옷에 튀는 가운데 가까스로 의자 모서리를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달려오던 수진이 별안간 뒤로 홱 잡아당겨졌다. 어느새 따라잡은 인형이 그녀의 등 뒤로 넘어갔던 핸드백을 낚아채어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던 것이다.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에 가까스로 의자 위에 올라온 일행들이 고개를 들었다. 하나같이 얼굴에 공포와 경악이 떠올랐다. 


 레이디 포터리가 발버둥 치는 수진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기우뚱거리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그녀를 아래로 떨어뜨리더니 기우뚱할 때마다 바닥과 치마 사이에 생긴 틈으로 그녀를 꿀꺽 삼켜버렸다. 수진은 어두운 목구멍처럼 보이는 딱딱하고 풍성한 치마 속으로 그렇게 사라졌다.


“안돼, 수진, 안돼!”


 의자 위에서 카할과 레빌이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이안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았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레이디는 아이처럼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두꺼비들이 홀 전체로 퍼져 뛰어다녔지만 그녀에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천천히 이동하며 무거운 몸으로 그것들을 무자비하게 짓눌렀기에 하얀 도자기 치마 위로 진흙과 피가 튀겨 점점 겹이 두꺼워져 갔다. 


 레빌과 아이들은 두꺼비 때문에 바닥으로 내려갈 수도, 그렇다고 그대로 의자 위에 계속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아까 몸소 경험했듯이 아무리 달려도 황금 카펫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 뻔했다. 


 레이디는 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벌벌 떠는 레빌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절망하였다. 


“오, 맙소사. 이젠 정말 끝인 거니?”


 치마를 유심히 살피던 이안이 카할에게 손짓하며 다급히 말했다.


“나랑 아저씨가 저것을 기울일 테니 넌 아래 틈으로 들어가 수진을 구해와, 꼭 구해 와야 해.”


“이미 그녀는 저승으로 떠났어. 저 치마 속으로 들어가면 죽는다고.”


 레빌이 흐느끼며 대꾸했지만 카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단검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의자 뒤로 내려가 두꺼비를 밟은 채 대기하였다. 이안이 앞의 레빌을 향해 인형의 오른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는 제가 신호하면 저기에 매달리세요. 그럼 제가 저것을 그쪽으로 넘어뜨릴게요.”


“난 싫당. 저기에 어떻게 매달리니?”


“아저씨, 제발 어른처럼 좀 행동하세요.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요. 그냥 하라는 대로 좀 하세요. 훨씬 어린 카할은 더한 것도 하겠다고 하잖아요.”    


 이안의 핀잔에 그는 바로 발끈하여 씩씩거렸다. 그의 눈이 붉게 타오르고 얼굴은 일그러지고 벌벌 떨던 몸은 흥분으로 들썩거렸다. 자존심이 완전히 상한 그는 이젠 저 괴물을 냠냠 뜯어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믿기 어려운 놀라운 반전이었다. 


 인형이 의자 가까이로 다가왔다. 이안은 레빌이 점프해서 실수 없이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사정거리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그 순간이 도래하였다.     


“지금이에요!”


 이안의 신호와 함께 레빌이 두꺼비처럼 펄쩍 뛰어 레이디의 오른팔을 잡고 매달렸다. 동시에 이안의 두 발이 힘껏 그녀의 왼쪽 목을 겨냥해 뻥 찼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녀가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졌다. 그러자 바닥과 왼쪽 치마 사이로 틈이 꽤 벌어졌고 대기하고 있던 카할이 두꺼비를 밟으며 뛰어가 그 안으로 잽싸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하였다. 레이디가 넘어지지 않은 채, 오뚝이처럼 카할의 다리 쪽으로 급히 기울어졌던 것이다. 하마터면 그의 다리가 빈대떡으로 짝짝 펴질 뻔하였다. 그녀는 왼쪽 오른쪽으로 몇 바퀴를 돌더니 결국 균형을 되찾아 멈추어 섰다. 


 그 사이 이안은 레빌을 붙잡아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이젠 치마 속으로 들어간 그들이 신호를 보내오거나 나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 잘못 공격하면 안의 그들도 위험해질 수 있기에. 


 제발 그들이 무사하기를, 그리고 어서 탈출하기를. 


 만약 그들이 무사하지 못하다면 이안은 제 자신을 더더욱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버지에 이어 소중한 친구들까지 잃을 수는 없었기에, 자신을 위해서라도 꼭 살아 돌아와야 한다고 그는 이를 악물며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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