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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Jun 06. 2021

12. 지하무덤과 레이디 포터리 - 1

12. 지하무덤과 레이디 포터리


 습하고 퀴퀴한 찬 공기가 아래에서 흘러나왔다. 한눈에도 무척이나 낡고 먼지와 곰팡이로 뒤범벅된 나무계단이 가파르게 아래로 향하였다. 혹시나 부식되었을 가능성 때문에 이안이 먼저 내려가 보기로 했다. 불쌍한 이안, 이쯤 되면 다들 눈치챘겠지만 뭐든 위험하고 미리 시험해 볼 필요가 있는 것에는 잘 죽지 않는 뱀파이어가 선두로 나서야 하는 것이었다. 인간과 함께 다니는 뱀파이어의 슬픈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그는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마다하지 않았다.


 다행히 삐걱거리는 소리만 요란할 뿐 나무가 깨지거나 부서지지는 않았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그는 마법지팡이 끝에 흰빛을 매달아 주위를 휙 둘러보았다. 그리고 몇 발자국 나아가더니 위를 향해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여기 무덤이 있어. 정말로 지하에 무덤이 있다고.”


 그들이 부리나케 지하 석실로 내려왔다. 그곳의 정 중앙 바닥에는 무덤으로 보이는 직사각형 돌이 깔려있고 그 앞으로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비석의 군데군데 피어있는 푸른곰팡이와 회색 먼지를 수진이 손으로 대충 걷어내니 우아한 검은색의 화강암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에는 마치 동화의 나라에나 나올법한 아름답고 뾰족한 궁전의 정면 모습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의 대문 위로 룬문자로 쓰인 비문이 적혀 있었다. 이안이 눈썹을 찌푸리자 카할이 대신 그것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고 보호하던 나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부인, 일룸니아의 왕비이자 오나시아의 공주였던 디아(Dia)가 여기 영원히 잠들어있노라.]


“‘디아’가 누구더라?”


 수진이 귓속말로 이안에게 묻자 그는 그새 까먹었냐고 놀리는 듯한 어조로 그녀의 귀에다 대답했다.


“실크롱 시간 때 네가 직접 읽은 적도 있잖아? 마왕이 납치하려던 일룸니아 왕국의 위대한 왕 ‘이안 1세’의 부인인 ‘디아’ 왕비.”


 그는 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카할과 레빌에게도 들리도록 크게 덧붙여 말했다.


“근데 이건 불가능해. 내가 알기로 그녀의 무덤은 일룸니아 근처의 ‘왕과 왕비의 계곡’에 묻혀있단 말이야. 여기가 아니야. 분명 누군가가 장난으로 이곳에 가짜 비석을 만들어 놓은 걸 거야.”


“혹시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그 계곡 밑이 아닐까나?”


 레빌은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주위를 여러 번 둘러보았으나 그냥 텅 빈 석실의 내부뿐이었다. 이안이 전보다 더 힘차게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거긴 요툰하임에서 얼마 떨어진 곳이 아니에요. 일룸니아 왕국은 여기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요. ‘파란총알’을 타고 가더라도 꼬박 며칠은 걸릴걸요? 브라잇동맹사에 손을 얹고 맹세하건대, 여기는 그 계곡이 절대 아니에요.”


“그럼 우리 눈앞에 있는 이것은 대체 뭐란 말이냐?”


 레빌은 잠시나마 품었던 희망, 혹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일룸니아에 도착한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산산이 깨져버렸다. 그는 마구 신경질을 내며 똑 쏘아붙였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기분이 상하거나 신경쓰이지 않았다. 수진은 비석과 그 아래 깔린 돌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렸다.


“토르의 망치와 방울이 무덤에 있다고 했으니 이 아래에 있다는 건가?”


 그녀는 무덤 돌을 살짝 밟아보고 그녀의 키만 한 비석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거기에 새겨진 비문 아래 위치한 궁전의 대문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탐스럽게 핀 포도송이 모양을 한 문손잡이가 바깥으로 약간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는 호기심에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만져보았다. 살짝만 닿았는데도 그것이 안으로 푹 들어갔다. 움직임이 멈추자 포도송이 끝에서 향수가 함유된 바람이 푸우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이안과 카할이 신기한 듯 코를 킁킁대었고, 레빌은 달콤한 향기에 취해 실실거렸다.


 그런데 그녀의 눈앞이 갑자기 아찔해졌다.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속이 울렁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급히 이안의 팔에 기대어 울먹거렸다.


“몸이 안 좋아. 몸이 안...”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그녀는 제자리에 쓰러졌다. 이안이 그녀를 부축하려는데 옆의 카할도 푹 쓰러지고, 레빌은 아예 바닥에 등을 댄 체 드러누워 버렸다. 이안의 눈꺼풀도 점점 내려왔다. 그는 결국 수진 옆으로 쓰러져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안과 친구들은 ‘학과의 결투’가 열리는 경기장을 벗어나 옥수수밭으로 다시 되돌아왔고,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땅을 울리는 악단 소리와 함께 황금 왕관을 쓴 스톰펌 왕과 파란 망토를 두른 샤를르 리가 그들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은 허리를 숙여 예를 차렸다. 왕이 먼저 손을 내밀어 그들의 손을 한꺼번에 마주 잡으며 말을 건넸다. 그의 어조가 무척이나 어둡고 슬프게 들려왔다.


“오늘 좋은 경기를 보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꼭 살아서 다시 보자꾸나.”


 뜨거운 악수를 나눈 후 왕과 샤를르 리는 악단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뒤따르던 샤를르가 돌연 멈추더니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이쪽으로 급하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그의 파란 장갑 낀 손을 이안의 왼쪽 어깨 위에 얹은 채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다. 이안은 별안간 몸을 움찔하며 망토 안의 그의 보라색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놀랍게도 그가 먼저 이안의 머릿속으로 찾아와 대화를 건넨 것이다. 뱀파이어끼리는 말소리를 내지 않고도 서로 머릿속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이 있는데 이안은 오늘 처음 경험한 것이었다. 그래서 옆의 다른 이들은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없었다.


‘드디어 오늘이군요, 이안. 꼭 성공해서 토르의 망치를 되찾아 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상심한 내 친구 스톰펌 왕이 다시 밝은 모습을 되찾는 걸 보게 해 주시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무슨 부탁이요?’


 이안이 눈에 힘을 잔뜩 주며 그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이거 어디 무서워서 부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그냥 편안히 생각해요.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랍니다.’


 그의 장갑이 이안의 어깨를 살짝 토닥거리며 이어 전했다.


‘요툰하임에서 거인들을 만나면 그들의 피를 얼마간 뽑아 가져다주세요. 다음에 만날 때 저에게 주면 돼요. 특히 가장 크고 무서운 거인의 피라면 더욱 좋아요. 용감한 그대에게는 별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거인의 피가 왜 필요한 거죠? 어디에 쓸 건데요? 왜 내가 당신을 위해 그 일을 해야 하죠?


‘그냥 부탁이라고 했잖아요. 의무로 엮어진 약속은 절대 아니에요. 만약 어려움에 처했다면 제 부탁을 들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이 충분하고 그대에게 별다른 위험이 도래하지 않는다면 그때 떠올려주세요.’


‘내가 왜 그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죠? 우리는 뱀파이어란 사실을 빼고는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제 부탁을 들어준다면 당연히 저도 보답을 할 겁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 중 하나를 선물로 드리죠.’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알죠?’


 샤를르 리가 미소를 짓자 매력적이고 자신만만한 표정이 그의 잘생긴 얼굴에 떠올랐다. 그는 달콤하면서도 유혹하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당신이 어떻게 뱀파이어가 되었는지에 대한 어두운 비밀.’


 그는 이안의 충격에 빠진 모습에 개의치 않는 듯 바로 손을 거두었고 자리를 떠났다.


“모두 행운을 빕니다!”


 그는 멀리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미소 짓는 얼굴로 그들에게 활기차게 외쳤다. 더불어 이안에게 마음속으로 전하였다.


‘뱀파니아로 나를 찾아오세요.’




“뱀파니아로...”


 중얼거리는 이안이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납덩이처럼 무거워진 몸을 겨우 일으켜 앉는데 머리가 띵한 게 기분이 안 좋았다. 그는 주저하는 듯하다가 할 수 없이 품 안에 보관해둔 병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쓱 쳐다보더니 안에 든 미적지근한 붉은 액체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마시자마자 온몸에 온기가 싹 도는 게 거짓말처럼 몸이 가뿐해졌다.


‘거인의 피라서 그런가? 효과 만점이군.’


 그는 붉은 성에서 혼자 방으로 들어가 발로르의 피를 받아낸 병의 뚜껑을 닫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방금 꿈에서 다시 재생되었지만 이것은 그때 샤를르 리가 부탁한 물건이었다. 토르의 망치를 되찾은 후 바로 그를 찾아갈 예정이었는데 그만 여기서 한 모금 슬쩍 마시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펜카르의 피를 담은 병 하나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는 완전히 기운을 회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들과 레빌은 아직 꿈나라 중이었다. 


 그런데 앞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황하여 옆의 친구들을 마구 흔들어 깨웠다. 먼저 일어나 앉은 카할에게 그는 소리쳤다.


“큰일 났어!” 


 그가 고함을 지르자 레빌과 수진도 눈을 뜨더니 겨우 일어나 앉았다. 다들 연탄가스라도 마신 것처럼 머리가 무겁고 몸이 쑤시는 듯 찌뿌둥했다. 그녀는 앉은 채 잔뜩 찌푸린 눈으로 이안을 째려본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앞에 세워진 비석에서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나, 진짜 성이 되었잖아!”


 그랬다. 잠이 들기 전까지는 검은 비석에 새겨진 성의 정면이었는데 어느새 커다란 성으로 변해있었다. 검은 성의 창문들에서 푸근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굴뚝 위로 회색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곳의 대문에 맞도록 그들의 몸이 엄청 작아져버린 것이었다. 바닥의 무덤돌은 축구장만큼이나 넓어졌고 비석은 몇 층 높이로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비석의 측면 너비는 그대로 얇은 채였다.


 그들은 겨우 몸을 추스른 후 비문 아래 세워진 대문으로 다가갔다.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포도송이 문손잡이가 삐끗거리며 문이 스스로 안쪽으로 열리었다. 안에서 나오는 노란 불빛을 받으며 그들이 들어가자 문은 다시 삐끗거리며 무겁게 닫혔다.     



 그 안은 동화책에 나올법한 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진 화려한 홀이었다. 부드러운 황금 양털로 짠 카펫이 바닥에 깔려있고, 수십 개의 초가 꽂혀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홀 천장에 매달려있었다. 도자기로 만든 귀여운 아기천사상들이 벽면과 천장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장식되었고, 또 하얀 도자기로 구워서 만든, 여러 개의 옷장과 찬장, 서랍장, 책장 등 가구들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하얀 공단 커튼이 열 개는 족히 넘는 창문마다 가지런히 묶여 내려왔다. 홀 한쪽에는 역시나 하얀 도자기로 만든 원형 티테이블과 의자들이 깔끔히 배치되었다. 

 그 뒤로 황금 카펫이 깔린 하얀 계단들이 위층을 향해 올라갔다. 그 계단 끝에는 커다란 대리석관이 놓여 있었다. 관에는 둘레를 따라 탐스러운 장미들이 조각되었고, 관 뚜껑은 완전히 열리어 관 뒤에 비스듬히 세워진 채였다. 그들은 두려움을 안고서 천천히 계단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채 몇 발자국도 못 떼던 바로 그때였다.


“아아앙~”


 하품하는 숨소리가 관 속에서 들려왔다. 순간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그리고 관 위로 허연 막대기 두 개가 불쑥 올라오더니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경악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수진은 자신이 아직 잠이 덜 깨었나 싶어 손으로 뺨을 때려보았지만 불운하게도 꿈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윤기 나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두 팔이었다.  


“도대체 저것들이 뭐더냐?”


 레빌이 기절할 듯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지만 아무도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잠시 후 관 안에서 뭔가가 벌떡 일자로 일어났다. 그들은 너무나 놀라 움찔하며 머리카락과 몸의 털이 쭈뼛 섰다. 그것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얀 도자기 인형이었다. 구불구불한 곱슬머리와 오동통한 몸집, 가슴 부분에 리본 장식이 있고 레이스 소매를 달아 화려한 로코코풍 드레스를 입은 소녀 인형이었다. 인형의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몽롱하게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앙증맞게 튀어나온 코와 붉게 칠해진 얇은 입술, 핑크로 볼터치가 된 인형의 얼굴은 지금 이 상황에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였다. 그러자 긴장한 그들의 굳은 몸이 조금씩 풀어지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갔다. 

 

 살아난 인형은 폴짝 관을 뛰어넘은 후 카펫이 깔린 계단을 차분히 내려왔다. 그런데 희한한 광경이 또 하나 포착되었다. 인형의 꽉 조인 허리 아래로 풍성하게 펼쳐진 드레스 뒷자락이 끊임없이 연결되며 관에서 각티슈처럼 빠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인형은 그물 같이 펼쳐진 도자기 치마로 관과 연결되어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계단을 다 내려오자 계단 위로 딱딱한 치맛자락이 길게 늘어져 마치 관과 연결된 도자기 통로가 치마 내부에 세워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올려다볼 때는 잘 몰랐었는데 아래에서 보니 키가 상당히 컸다. 3미터가 훨씬 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얇은 허리가 이안의 키의 거의 두 배 정도에 위치해 있어, 비율적으로 유난히 긴 치마 길이를 지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두 눈은 물감으로 그려져 감을 수 없었고, 딱딱한 도자기 피부로 인해 얼굴에는 늘 무표정을 유지했다. 다만 입술을 조금씩 움직일 뿐이었다. 


 그녀는 한 명 한 명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밝게 환영인사를 건넸다.

 

“이 성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전 ‘레이디 포터리 (Lady Pottery)’에요. 여기 앉으세요. 어머머, 내 정신 좀 봐. 아직 준비도 안 해놓고 냉큼 초대부터 하다니. 저의 무례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세요.”


 그녀는 급히 찬장으로 미끄러져 다가가더니 찬장문을 열었다. 그리고 영국식 최고급 찻잔세트를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높은 의자에 겨우 올라와 앉은 그들 앞으로 꽃문양 손잡이가 달린 하얀 찻잔과 받침을 내려놓고 하얀 개인 접시와 도자기 티스푼 등을 그 옆에 배치했다. 다시 찬장 쪽으로 돌아온 그녀가 옆의 다른 찬장문을 열자 허연 김이 푹 새어 나오며 조그만 간이부엌이 나타났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하얀 티포트와 우유, 설탕을 들고 와서 각자의 찻잔에 붉은 홍차를 부어주고 기호에 맞게 우유와 설탕을 넣어주었다. 그들이 차를 마시는 동안 다시 부엌으로 간 그녀는 화이트 초코를 묻힌 비스킷과 체리파이가 든 도자기 접시를 들고 와 테이블 중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도자기와 도자기가 부딪치며 실로폰 비슷한 소리를 내자 레이디 포터리의 입술에 경련이 일고 몸이 살짝 떨렸다. 그 소리를 매우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테이블 옆으로 다가왔지만 딱딱한 허리를 접을 수 없어 그냥 수진 옆 빈 공간에 꼿꼿이 서 있었다. 테이블이 높아 그녀가 차를 마시기에 큰 불편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찻잔에 차를 붓고 우아하게 받침까지 같이 든 채 입술에 갖다 대었다. 여러 번 입술로 가져갔지만 수진이 슬쩍 곁눈질하니 그녀의 차는 줄어들 기미가 없어 보였다. 


‘마실 수가 없구나.’


수진은 내색하지 않은 채 비스킷을 우아하게 입으로 가져가 조용히 씹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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