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청나라)
“연암선생. 여기 좀 보시오. 허허 참.”
때는 바야흐로 1780년 7월 26일, 청나라 영평부 지역의 시끌벅적한 시장이었다.
정 진사가 박지원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혀를 차자, 그는 몸을 돌려 진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싸리 바구니 옆으로 수정합 다섯 개가 놓였는데 그 안에 색색의 뱀이 한 마리씩 틀어 앉았다. 초록 뱀 두 마리, 검은 뱀, 흰 뱀, 빨간 뱀으로 꽈리를 튼 채 가운데에 머리를 얹고 있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여 지원이 뱀주인에게 물어보았으나 영 대답이 없다.
그때였다. 연암 박지원과 상방비장 정 진사는 갑자기 터져 나오는 왁자지껄한 소란에 화들짝 놀라며 소리의 진앙지인 뒤쪽을 돌아보았다. 골목 앞으로 한바탕 인파가 몰려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뱀은 놔두고 그들은 그리로 다가갔다.
다람쥐, 토끼, 곰이 재주를 피우고 있었다. 개만한 크기의 곰이 칼춤과 창춤을 추며 사람처럼 걷다가 절을 하며 꿇어앉기도 하고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건 토끼와 다람쥐가 그것보다 더 민첩하게 행동하며 주인의 말귀를 제법 알아듣는 눈치였다. 곰이 바구니를 든 채 주위를 돌자 동전들이 그 안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지원도 웃으며 동전을 던져주었다.
갈 길이 바쁜 지원과 정 진사는 아쉽지만 이만 구경을 마쳐야 했다. 인파를 헤치며 나오는데 웬 허름한 도사가 지원의 팔에 자신의 왼팔을 쓱 걸더니 자신 쪽으로 냅다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그의 바로 눈앞으로 영저를 갖다 대며 흔들거렸다. 지원의 눈동자가 그것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의 정신이 혼미해지고 몽롱해졌다. 그 사이 도사의 동료인 듯 보이는 어린 동자의 두 손이 지원의 허리를 쓱 쓰다듬더니 만지작하며 급히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돈을 찾는 듯했다.
‘이것들이 누구를 바보로 아나?’
순간 정신을 차린 지원. 힘차게 몸을 흔들며 손으로 그들을 강하게 뿌리쳤다. 그리곤 잽싸게 도망쳐 나와 조선사행단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타국에서 별 해괴한 일인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야지 잘못하단 큰일나겠군.’
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몸가짐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와 사행단은 다시 먼 길에 나섰다.
1780년 5월 정조임금의 명을 받들어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생일) 축하사절로서 한양을 출발한 조선사행단은 지금 목적지인 연경(황성, 북경)을 향하고 있었다. 비록 그럴듯한 직함은 없었지만 정사인 삼종형 박명원의 자제군관(개인비서) 자격으로 길을 나서게 된 박지원은 여행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로 지내왔는가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었다. 이미 지나 온 청나라의 성경(심양)이나 산해관은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번영하였고 조선과는 비교도 안 되게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요롭고 부유하였다. 그러니 친구 박제가와 홍대용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수도 연경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맞이할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말 위에 앉아 그는 저도 모르게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홀연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이 눈앞에 떠오른 것이다.
조선은 그동안 시대의 변화에 얼마나 소극적이었는가?
폐쇄적인 변방에 자리 잡은 작고 힘없는 나라 주제에 그저 명나라를 그리워한다는 실속 없는 명분에 사로잡혀 청나라 오랑캐를 무찔러야 한다는, 여기 와서 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북벌’이나 떠들어대는 사대부들과 양반들은 또한 얼마나 무지하고 무능했던가?
그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들을 잡아다가 이곳의 실상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청나라 황제들의 뛰어난 통치로 이룩한 번영과 풍요로움을 백성들이 온몸으로 누리고 있는 이 생생한 현장을 말이다.
지금이라도 조선의 임금과 신하는 한마음이 되어 청나라를 통해 서구의 발전된 문명을 받아들이고 상공업과 경제를 발전시켜 백성들의 의식주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북학’의 가치는 연경을 향해가는 그의 마음속에서 더욱더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그것이 비록 오랑캐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꽉 물고 수용해 배워야 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우리는 변화해야만 한다. 그것이 조선의 유일한 살길이다.
그러나 조선의 현실은, 당쟁으로 얼룩진 정치판은, 과연 그럴 준비가 되었는가? 그럴 의지가 충분히 있는가?
아니다.
지원은 체념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또다시 한숨을 몰아쉬었다. 옆의 정 진사가 그의 안색을 살피며 어디 아프냐고 물어왔다. 그는 괜찮다며 고개를 가로저은 후 다시 사색에 잠기었다. 그는 다짐하였다.
‘여기서 보고 느낀 점을 하나도 덜거나 더하지 않고 그대로 일기에 쓰리라. 그래서 조선에 충격을 안겨 주리라. 변화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져 국제사회에서 도태될 거라고 분명히 경고해야 할 것이야.’
그들은 어느새 이제묘를 떠나 막 야계타 가까이에 다다랐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인 데다 눅눅하게시리 바람 한 점이 없었다. 박지원은 노참봉, 정 진사, 주명신, 변계함 등과 함께 길을 가며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차가운 냉수 한 잔이 지원의 손등으로 툭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닌가?
‘앗 차가, 도대체 누가 물을 끼얹은 거야?’
지원이 째리는 눈초리로 주위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그럴만한 자가 없었다. 기이하게 여겨 무시해 버렸는데 또다시 한 사발의 물이 말고삐를 쥔 그의 주먹으로 펑 떨어지는 게 아닌가? 앞에서 그의 말을 끄는 마두 창대의 모자챙에도 툭 떨어져 내리고, 노참봉의 갓에도 떨어졌다.
그제야 일행들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드넓은 하늘에 구름이 뭉실뭉실 빠르게 뭉쳐지고 있었다. 별안간 맷돌 갈리는 소음이 하늘에서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온 대지에서 구름들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더니 이내 해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뭉쳐지고 다져지고 구겨진 구름들은 저녁 하늘처럼 검어지고 곧바로 달려들 것만 같은 거인의 형상으로, 도깨비의 형상으로 시시각각 모습을 변화시켰다. 그때였다. 저 앞 버드나무 위로 번개가 번득거렸다.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내리치는 천둥 우레가 마치 명주를 쭉쭉 찢는 듯 요란스럽다. 흔들리는 버들잎 사이로 번갯불이 번쩍거렸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발로 차든가 채찍을 때리든가 각자 낼 수 있는 한 최대속도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 말이 없는 하인들은 마치 저승사자라도 뒤따라오는 듯 무섭게 내달렸다. 천둥과 우레가 고막을 찢을 듯이 커지며 흡사 수만 대의 수레가 사방에서 뒤따라오는 듯 진동했다. 온 산과 땅이 흔들리고 천지가 뒤집힐 것처럼 요동을 쳤다. 곁의 나무들이 마치 분노가 폭발할 태세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마구 울부짖었다. 바람과 천둥 번개가 사방에서 몰아쳐대니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곧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말과 사람이 모두 벌벌 떠니 본능적으로 길 한가운데로 동그랗게 모여들었다. 지원은 얼굴이라도 비를 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말머리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미 견마잡이 창대가 말갈기 밑으로 얼굴을 파묻고 있어 자리가 없었다. 혹시 가마 밑으로 들어가 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때 그의 눈앞에서 무슨 영화장면처럼 부사가 있는 가마창이 훅 떨어져 나가더니 그 안으로 빗발이 마구 들이치는 게 아닌가? 부사는 온몸으로 창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부사 어른도 저리 비를 맞는데 하물며 내가.’란 생각이 든 지원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그 후에도 천둥 번개다 얼마 동안 요란하게 그들의 머리 위를 할퀴며 지나갔다. 번갯불이 번쩍일 때마다 번득번득 주변이 보였다. 특히 노참봉의 하얗게 질리어 벌벌 떠는 얼굴은 거의 혼이 나간 듯하고 두 눈을 감는데 곧 숨이 넘어갈 자처럼 헐떡이었다. 지원이 그에게 다가가 함께 비를 맞으며 옆에서 안심시켜 주었다.
한바탕 난리를 피며 휘몰고 간 후 비바람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지원이 고개를 둘러보니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중국 여행 간다고 부러워하던 고향 친구들과 지인들이 지금 이 꼴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순간 궁금해졌다. 고생도 이런 개고생이 없으리라.
비바람이 완전히 멎고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빼꼼히 비쳐 들기 시작하였다. 자연은 조금 전까지의 그 난리법석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딱 떼며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포근한 어머니와 같은 자연에게도 이런 얄밉도록 원망스러울 때가 있는 법이다.
다시 길을 떠나면서 가마의 망가진 창문 옆에 나란히 선 지원에게 홀딱 젖은 부사가 외치었다.
“술잔만 한 비가 떨어지는 걸 보니 역시 대국은 빗방울조차 두렵고 무섭소이다.”
그 말을 들은 지원은 뭔가 떠올랐는지 옆의 변계함에게 한마디 쓱 던지었다.
“이보게, 난 오늘부터 역사의 증언은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네.”
뒤따라오던 정 진사가 그 말을 듣고 호기심이 일었는지 채찍질하여 말을 앞으로 몰아 그의 곁으로 다가와 여쭈었다.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신 데요?”
“사기[史記]에 보면 적천후[赤泉候]의 병사들과 말이 항우[項羽]가 노여워 꾸짖자 모두 겁을 먹고 멀리 물러났다고 하던데, 아무리 항우가 화를 내며 꾸짖었다 한들 어찌 저 우레 소리만 하겠는가? 또 항우가 눈을 부릅뜨자 한나라 장수 여마동[呂馬童]이 말에서 떨어졌다고 전하는데 설령 그의 눈이 아까 본 번갯불만 같겠나? 이젠 난 하나도 믿지 못하겠네.”
일행들은 지원의 농담에 박장대소하여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서로 항우 흉내를 내며 장난치느라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정사가 초조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서 서두르라며 엄히 타일렀다. 그러자 다들 웃음을 털어버리곤 험악한 날씨로 늦춰진 길을 서둘러 재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