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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May 05. 2024

9. 강시가 나타나다. -2


 불현듯 뭔가가 지원의 눈에 비치었다. 마침 구름 사이로 달빛이 살짝 내비쳤고, 창대 옆으로 그 희끄무레한 빛을 받으며 달려오는 커다란 덩어리가 보였다. 상판사의 마두인 득룡이었다. 그의 손에는 무슨 뭉치 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그것을 잘 받으라며 그가 휙 던졌다. 지원은 집중하여 손을 높이 내밀었다. 목숨이 오가는 긴급한 상황에서 조그만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을 터, 꽤 멀리서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한 번에 그것을 탁 낚아챘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감독이 보았으면 놀라 거품을 물었을 그런 실력이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건 야구공이 아니었다. 바로 부적 뭉치였다.


“그것을 이마에 딱 붙이시라요!”


 지원이 한 장을 뽑아 자신의 이마 위에 붙이려 하였다. 그러자 득룡이 두 발을 동동 구르며 입에 거품을 문 채 손가락 끝으로 창대를 마구 내리꽂았다.


“아니, 저것에요!”


 가까이 다가온 창대의 손가락 끝이 그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지원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피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손을 내밀어 그것의 이마에 부적 한 장을 딱 찍어댔다. 그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번개처럼 민첩한 동작이었다. 그러자 마치 전원스위치가 꺼진 로봇처럼 창대의 움직임이 바로 멈추었다. 여전히 의심스럽고 겁이 든 지원은 몇 초 후에 창대의 손가락 끝을 살짝 건드려 보았다. 굳어버린 돌 마냥 딱딱할 뿐 전혀 꿈틀거리지 않았다. 그의 어깨를 건드려 보고, 허리를 찔러보았으나 움직임은 없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지원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득룡이 굳은 얼굴을 조금씩 피며 다가와 창대의 모습을 요리조리 관찰하였다. 지원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아직 긴장이 다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참으로 고맙네. 부적이 아니었음 나도 당했을 거야.”


“아니 이게 웬 날벼락이랍니까? 어르신은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시죠?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요. 아직도 제 이 살이 다 떨립니다요. 창대 야는 어찌하여 이리 변했을까요? 벌써 군관과 하인이 당했어요. 어르신 하인 장복이도 좀 다쳤습니다요. 어르신의 마두와 하인 둘 다 이 꼴이 되었으니 참으로 심란하시겠습니다요. 그래도 정사와 부사 어르신께 해가 없었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


 지원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곰곰이 생각에 젖어들었다. 호랑이 소리에 혼이 나가 도망치던 마두 창대의 모습을 가까스로 떠올린 후 동작을 멈춘 저 괴물과 비교하여 무언가 놓친 점은 없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도대체 그에게 그 이틀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호랑이에게 물렸기로서니 죽었으면 죽었지 저리 흉측하게 변하지는 않을 텐데.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일인데 말이야.’


 지원이 혼자 고심하는 동안 아까 도망치며 사라졌던 사람들이 하나 둘 그의 곁으로 몰려왔다. 어느새 그들은 창대 주위를 둘러싸며 쑥덕대거나 비명을 지르고 욕과 저주를 퍼붓는 등 아주 소란스러워졌다. 염주를 들고 불경을 외는 자도 있었다. 간간이 장난으로 그것을 쿡쿡 찌르자 득룡이 눈을 부라리며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부적이라도 떨어지면 우린 바로 큰일이여. 냉큼 떨어지라요!”


 물려 죽은 군관과 하인의 시체가 문 근처로 옮겨지고 다친 장복은 치료를 받았다. 정사와 부사, 서장관은 여전히 공포가 가시지 않는지 백지장처럼 허옇게 질린 얼굴로 지원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붙잡고 질문을 쏟아냈으나 그는 정신이 딴 데 팔려있어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수진은 여전히 대문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지금껏 브라잇 동맹에서 죽을 뻔 한 고비를 여러 번 넘긴 그녀였기에 이 정도 일은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도 있으련만, 지금 그녀의 심장은 자꾸만 뛰어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분명 아까 그것은 뱀파이어였다. 그런데 자신이 여태 겪어보았던, 비록 피는 빨지언정 우아함과 품위를 갖춘 그런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저건 콩콩 뛰는 괴물이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하고 흉측하게 피에 굶주린 한 마리의 짐승. 


 심호흡을 하여 진정하려는 그녀의 눈이 문득 옆 바닥으로 향하였다. 바닥에 똑바로 누워있는 죽은 군관의 입이 들어왔다. 마침 달빛이 위에서 그것을 비추고 있었다. 벌려진 입술 아래로 하얗고 기다란 뭔가가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순간 그녀의 등에 소름이 쫙 끼치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두 개의 송곳니였던 것이다. 다른 이빨들보다 유난히 자라나서 매우 길었다. 

 또다시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어대며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끼약~”


 그런데 이런, 그것이 무슨 신호탄이라도 되었나 보다. 죽은 군관의 두 눈이 번쩍 떠진 것이다. 그리고 누가 그의 어깨를 앞으로 끌어당긴 것처럼 뻣뻣하게 굳은 몸이 그대로 일자로 띠옹 하고 일어났다. 군관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들이 수진을 향하여 실실 쪼개며 이상야릇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비명소리와 죽은 줄 알았던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자 마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전보다 더 크게 소란을 피우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우왕좌왕하여 방으로, 뒷간으로, 부엌으로, 담을 넘으러 마구 도망치는 것이었다. 정사와 부사, 그리고 지원은 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잠시 멍해진 듯 제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득룡이 욕을 지껄이며 지원의 손에 든 부적뭉치를 빼앗아 그녀에게로 던졌다. 그러나 문 위턱에 막혀 부딪쳐 털썩 떨어졌다. 게다가 군관이 큰 덩치로 대문을 가로막고 있어 그 뒤에 서 있는 그녀에게 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수진은 공포에 사로잡혀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겨우 정신을 차려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목살이 흉측하게 뜯겨 나간 채 피를 줄줄 흘리는 군관이 두 팔을 앞으로 쭉 내밀어 그녀를 향해 콩콩 점프해 따라왔다. 깊은 밤이라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울먹이며 뛰던 그녀가 뭔가에 부딪쳐 옆으로 넘어졌다. 그녀는 앞을 바라보았다. 

     

 남색의 청나라 관리 예복인 망포수보를 입고 목에는 조주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망사차양이 달린, 위가 둥글고 옆 주위로 테를 두른 모자를 쓴 남자 두 명이 달빛을 받으며 그녀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드디어 살았구나 생각에 그녀는 그들 중 한 명의 무릎에 매달려 제발 구해달라고 애원하였다. 뒤에선 군관이 여전히 콩콩 뛰어오고 있었다. 수진은 공포에 휩싸여 관복 자락을 더 세게 잡아당기며 마구 흔들어댔다. 


 그러자 그녀가 붙잡지 않은 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손에 든 오랏줄을 머리 위로 휘이휘이 돌리기 시작했다. 긴 줄 끝으로 순은(純銀)의 금속 올가미가 묶여있었다. 그가 그것을 앞으로 휘익 내던지자 올가미는 날아가며 달빛을 받아 표면이 차갑게 반짝이었다. 그것이 군관의 머리통에 정확히 들어가 목에 확 감기었다. 은색 끈이 목을 조이자 그는 괴로운 듯 몸부림을 쳤으나 곧 조용해졌다. 으르렁도 없이 얌전한 강아지가 된 것 같았다. 수진은 관리 옷자락을 놓으면서 놀라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관리들은 빠르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동작을 멈춘 군관을 지나쳐 조선 사행단이 머무는 서관의 대문으로 들어갔다. 희한하게도 그들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 스르륵 표면을 미끄러져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사람들 사이를 쓰윽 지나쳐갔다. 정신을 차린 수진이 잽싸게 뒤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때마침 대문간에 놓였던 하인의 시체가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또다시 비명을 지르자 그들 중 한 명이 다가와 똑같이 생긴 은색 올가미 줄을 그 목에다 감았다. 다른 한 자는 마당에 서 있는 단 두 사람, 지원과 득룡에게 다가갔다.


“혹시 더 물린 자는?”


“한 명 더 있는데요.”


 득룡이 조금 전 창대보다 앞의 그 자가 더 두렵다는 듯이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리로 데려와.”

 

관리들 중 한 명이 조선말을 했다. 그런데 외국인 억양이 꽤 섞이고 단단하고 명확한 목소리라기보다는 공기가 많이 섞인 희미한 쇳소리처럼 들려왔다. 지원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들의 얼굴 부분을 유심히 살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달을 등지고 있어 그늘이 진 데다가 차양으로 가려져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키가 큰 남자들이 한밤중에 어두운 색상의 긴 관복까지 두르니 마치 명계 (冥界)에서 올라온 저승사자가 따로 없는 듯 한층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들 중 한마디도 하지 않던 자가 창대에게 다가가 그의 목에 올가미를 감고 부적을 떼어버렸다. 그것을 떼어냄과 동시에 창대의 붉은 눈동자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찰나 움직였지만 몸은 마비된 듯 부동자세를 유지하였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박지원이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물었다.


왜 저리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까 분명 조선말을 한 것 같은데 혹시 말이 짧아 그런가 싶어 그는 통역을 시키려고 득룡을 찾았으나 주변에 없었다. 곧 득룡이 장복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그의 상처를 유심히 살피더니 서로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조용히 이야기하였다. 지원이 듣기에 분명 조선말은 아니었다. 

 잠시 후  후 그들은 다 되었는지 가보라며 손짓했다. 장복은 혹시 자신도 같이 잡아갈까 싶어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한 관리가 뭐라고 지껄이며 올가미의 줄을 잡아당기자 창대는 얌전히 그쪽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머리통이 옆으로 꺾인 채 달랑거리는 흉측한 모습으로. 


 마침 방에서 튀어나온 정사가 그들 앞을 몸으로 가로막으며 소리를 높였다.


“아니 이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오? 우린 조선인이오. 맡은 중요한 임무가 있어 여기 오래 머무를 수 없단 말이오.”


 창대와 하인 목을 감은 올가미줄을 당기며 한 관리는 쉬어버린 쇳소리와 공기가 반반 섞인 목소리로 희미하게 대답했다.


“이미 죽어 강시가 된 자들이다. 허나 아까 하나는 약하게 물려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빈 길거리엔 싸늘한 적막이 흐르고 창백한 달빛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새 밤이 깊어지며 더욱 컴컴해졌다. 두 관리는 마치 어둠의 전사라도 되는 양 당당히 거리로 나섰다. 어떤 괴물이나 흉악범이 앞을 가로막아도 바로 밟아 깔아뭉개며 지나갈 태세였다. 그들 뒤로 창대와 군관, 하인이 목에 줄을 매단 개처럼 끌리어 당겨졌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또 벌어졌다. 정사와 지원 일행은 바로 문밖까지 따라 나와서 그들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방에서 회색 구름 같은 짙은 안개가 몰려드는 것이었다. 안개는 그들의 뒷모습을 완전히 감싸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안개와 같이 그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기분 나쁜 명계의 어둠만이 빈 길가에 소름 끼치도록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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