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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Jun 30. 2024

10. 연경 구경 - 2


 수진은 이렇게 똑똑하신 아저씨가 시험에 낙방할 정도이니 예전의 과거시험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시험’이란 단어를 듣자 불현듯 그 악몽 같은 자신의 성적표가 머리에 떠오르기까지 했다. 그것이 주는 불쾌감은 도대체 언제나 끝날는지. 

 그녀는 그것을 머릿속에서 몰아내기 위해 고개를 힘차게 내저었다. 그러자 지원은 그녀가 자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보충 설명을 이어갔다.

 

“넌 잘 모르겠지만 과거시험을 보려면 글공부뿐 아니라 ‘저승에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란 마음가짐까지도 단단히 해야만 한단다. 시험장으로 들어가는데 수만 명이 한꺼번에 몰리니 매번 압사로 인한 사망사고가 속출하거든. 하마터면 나도 어떤 덩치한테 밟혀 저세상으로 갈 뻔했었지. 그렇게 힘들게 1차 시험을 합격한 후 2차 시험을 보는데 난 그냥 빨리 나왔단다. 이름만 쓴 백지 답안지를 냈거든. 그것을 받아 든 시험관이 날 쳐다보는데 얼마나 황당한 표정을 짓던지. 하하, 지금 와서 생각해도 참으로 통쾌하구나.”


“문제가 엄청 어려웠나 보죠? 하긴 저도 시험 볼 때마다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해요. 그래도 주관식은 상관없는 답이라도 꼭 적어보죠. 혹시 모르잖아요? 그 안에 정답이 포함되어 있을지. 혹시 아나요? 선생님이 보시고 저의 정성에 감탄해서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주실지. 암튼 시험은 정말 싫어요, 싫어. 다행히 여기서는 그 고통을 당분간 겪지 않겠네요. 헤헤.”


 그녀는 눈썹을 치켜든 채 투덜거렸다. 혀를 삐죽 내밀어 피식 웃은 후 지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인상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뭔가 말실수를 했나 싶어 좀 전에 한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근데 실수 한 건 없는 것 같았다. 지원이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슬슬 걱정이 들었다.


“사실 난 문제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었단다. 아주 쉬운 문제였거든. 만약 그것을 적었으면 분명 장원급제했을 거야.”


 옆에서 그의 말을 잠잠히 듣던 그녀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이마가 찌푸릴 정도로 그녀는 화가 났다. 장원급제라면 1등이란 건데 지금 누굴 바보로 아시나? 그녀는 쏘아붙였다.


“그런데 왜 그러셨어요? 지금 저를 놀리시는 거예요?”


 그는 무거운 침묵을 지키며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나아갔다. 그녀는 할 수 없이 뒤따라갔다. 그는 붓을 파는 문방구 가게를 발견하고 잠시 멈추어 섰다. 뒷짐을 진 채 그 앞으로 다가가더니 펼쳐놓은 진귀한 문방구 용품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는 손으로 만져보고 살피는 척하며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내 앞에 앉은 놈이 몰래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어. 보아하니 지체 높은 양반 자제 같던데 비단 도포 자락 밑에서 긴 종이 조각을 꺼내놓고 신나게 베껴 쓰더군. 근데 감독하는 자가 분명히 그걸 봤는데 그냥 지나치는 거야. 몇 번 더 그러더니 아예 이리로 오지도 않더라고. 주위를 둘러보았지. 많이들 베끼느라 바쁘더군. 그 순간에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시험은 봐서 뭐 하나, 관직을 받아도 저런 사기꾼 같은 놈들과 같이 부대낄 게 뻔한데. 그래서 바로 짐을 싸서 뛰어나왔지. 백지 답안을 제출하고 말이야.” 


“어떻게 감독관이 그럴 수 있지요? 우리 학교에선 커닝하면 바로 부모님 호출하고 정학당해요.”


“뇌물을 먹인 게지. 아마 감독관들은 다 먹었을 거다. 꽤나 맛이 달콤했겠지.”


“그래도 아저씨처럼 나라를 생각하시는 분은 관직에 나가 일하셔야 해요. 집으로 돌아가시면 다시 과거를 보실 생각은 전혀 없으세요?”


 그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더니 모든 걸 초탈한 듯한 표정으로 바뀔 뿐이었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로운 곳을 다니며 탐구하기를 즐기고 어디에 갇히기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영혼, 그것이 바로 그였다. 


 그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쪽으로 늘어선 문방구 가게 구경을 마친 그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꽤 걸은 것 같은데 아직도 유리창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수레가 있는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도 따라 돌았다. 저 멀리 수레 위에 걸터앉은 시대가 조그맣게 보이자 그는 반가운 기색을 얼굴에 띠며 입을 열었다.


“현재 조선의 조정은 매일 당쟁이다, 더 좋은 관직을 얻겠다며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쟁탈전이 한창이야. 쯧쯧, 그들은 자신의 권력에만 관심 있지 조선의 흥망에는 전혀 관심이 없거든. 아아, 조선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되는구나. 여기 나와 보니 더 걱정이야. 우리 조선도 어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기술 교류를 중시하는 실학을 통하여 하루빨리 부강해져야 할 텐데. 


 이봐라, 도대체 우리와 비교도 되지 않지 않니? 어쩜 상점들이 이리 끝도 없이 줄을 선 것이냐? 사람들은 또한 얼마나 잘들 사는지. 우리 조선의 백성들은 헐벗고 가난하기 이를 때 없는데 말이야.”

 

 주위를 둘러보며 그의 이마가 찌푸려지고 두 눈이 촉촉해지자 수진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나라를 위해 뭔가를 하셔야지요? 그냥 푸념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여기서 보고 배우신 것을 조선으로 되돌아가서 가르쳐주시면 되잖아요? 왕한테도 가르치고 관리들에게도 가르치고 말이에요.”


“훗훗,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한 해봐야지. 하지만 벼슬을 보아 관직을 얻는 것만이 꼭 나라를 위하는 길은 아닌 것 같구나. 난 말이지, 이렇게 여행하고 자유로이 거닐면서 많은 걸 보고 배우고 채워 넣고, 또 그렇게 쌓은 지식을 제자들에게 전수고, 홍대용, 이덕무 같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밤새워 토론하는 것을 인생의 참기쁨이라 여긴단다. 남들이 보기엔 어디 정착하지 않고 그저 정처 없이 떠도는 한량 같겠지만 그래도 난 지금이 좋아. 남들이 추켜세우는 지위와 격식을 따라가는 것만이 인생의 올바른 길이라고 절대 생각지 않거든. 그건 허울이고 위선이다. 진짜 내가 아니지. 그러니 나라를 위하는 나만의 방식을 찾아 실행하는 것이 진짜 의미 있고 값진 삶이 아닐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니?”


“하지만 저희 할머니는 나쁜 성적으로만 저를 평가하시는걸요? 학교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도요. 그래서 정말 속상해요. 전 공부에 별 취미가 없거든요. 하지만 새로운 모험은 언제나 환영해요.” 


“하하, 공부에 취미가 없다면 할 수 없는 게지. 그게 전부는 절대 아니니까. 보아하니 넌 적응력이 있고 눈치 하나는 빠른 것 같은데 모험을 하는데 아주 큰 자산이라 할 수 있겠지. 


 자, 눈을 크게 뜨고 어디 한번 둘러보아라!


 이 얼마나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며 또한 구경거리는 왜 이리 많은 것이냐? 설령 그 속에 너의 자리, 나의 자리 하나 없겠느냐?”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는 그와 함께 넉넉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짜 다양한 국적의 별별 사람이 많고 길거리는 시원스레 앞뒤로 쭉쭉 뻗었으며 여기도 시끌 저기도 시끌거렸다. 그녀는 돌연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이 벌판처럼 뻥 뚫린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시대가 다가오는 그들을 알아보고 수레 위에서 손을 흔들자 지원이 따라 손을 흔들며 힘차게 말했다.     


“근데 ‘길’이라는 건 그냥 찾아지지 않더구나. 끊임없이 묻고 보고 듣고 읽고 닦으며 준비를 해야만 해. 그래서 난 아직도 계속 찾는 중이지. 그러니 너도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고 너만의 길을 고심하며 한번 찾아보려무나. 덤으로 너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말이야.”

     



 시대가 수레에 어서 타라고 하자 지원은 ‘당낙우’의 집으로 가자고 명했다. 시대는 책방 ‘선월루(先月樓)’ 옆에 위치한 그 집을 잘 알고 있었다. 조선 선비들이 연경에 오면 으레 들르곤 했던 것이다. 곧 정갈하면서도 세련되어 보이는 큰 집 앞에 수레가 멈추어 섰다. 지원과 수진이 들어서자 하인 셋이 나와 그들을 맞이하였다. 


 마침 당낙우 어른은 출타 중이었다. 촌스럽게 생긴 서생이 나타나 지원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진은 꽃이 잔뜩 심어진 정원의 한가운데 놓인 나무의자에 앉아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향긋한 꽃향기와 탐스럽게 핀 양귀비 곁으로 벌과 나비들이 모여들었다. 자기 또래이거나 좀 어려 보이는 소년 둘이 그녀 앞을 지나쳐 정원을 가로질러 갔다. 모두 이목구비가 깨끗한 게 꽤나 똘똘해 보였다. 그녀가 쳐다보자 그중 큰 애가 손을 흔들었고 그녀도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방금 지원이 들어간 방으로 들어갔다.  

 곧 그 집 하인이 차와 다과를 담은 쟁반을 들고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수진에게도 한 쟁반이 대접되었는데 이런 더운 날씨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차 한 잔과 능금 하나였다. 

 

 그녀가 맛있게 먹고 있는데 뒤쪽 건물에서 문 여닫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안에서 한 무리의 여인네들이 나와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중 아주 화려하게 치장한 비단옷에 곱게 화장을 한 할머니가 하인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왔다. 수진은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먼저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가 그녀의 옷차림새를 샅샅이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국말로 뭐라고 속닥거리는데 그녀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 그저 바보처럼 배시시 웃기만 했다. 미소는 전 세계 만능 공통어가 아니던가? 


 아주머니가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옆으로 서게 했다가 뒤로 서게 했다가 다시 정면으로 돌려세웠다. 할머니는 그녀의 저고리 고름을 집어 살펴보기도 하고 퍼져있는 치마를 잡아당기거나 손으로 쓸기도 했다. 한복이 신기한 눈치였다. 그래서 수진은 스스로 이리 돌고 저리 돌고 치마를 펼쳐 보이는 등 패션쇼를 펼치었다. 꼬장꼬장한 할머니 얼굴에 팔자 주름이 쫙 그어지며 인자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가 거의 없어 쪼글쪼글해진 입으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수진에게 뭔가를 건네었는데 노랑나비가 한쪽 끝에 수놓아진 손수건이었다. 할머니가 선물로 가지라고 손짓으로 전했다. 수진이 꾸벅 절하며 기쁘게 외쳤다. 


“쉐쉐. 쉐쉐.” 


 성조는 잘 모르겠다. 암튼 중국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하던 말을 기억해 내어 비슷하게 발음했다. 

 

 그때 지원이 방에서 나와 그녀를 불렀다. 아까 들어간 소년들도 따라 나왔는데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띤 채 대문 앞에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지원과 수진은 수레에 올라 서관으로 향하였다. 아마 지금쯤 지난밤 일로 관청에 나갔던 정사가 돌아왔으리라. 그리고 마침 점심도 먹어야 했다. 

 가는 길에 잠시 회자관 (이슬람 사원)에 들러 구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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