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관 문을 넘자마자 지원이 정사의 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정사의 표정을 먼저 살피었다. 압록강을 건넌 후 비가 오는 밤이면 다음날 강을 건너지 못할까 봐 촛불과 마주하며 심히 걱정하던 그였다. 그 표정이 지금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떠올라 있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걸 지원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도 일단 물어보았다. 이미 답은 알 것 같았지만.
“그래 가신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창대와 군관은 어디로 데려갔답니까?”
정사의 눈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두 눈이 스르륵 감기었다. 일이 뭔가 심상치 않은가 보다 싶어 지원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정사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힘겹게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일세. 허허, 지금도 뭐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군 그래.”
“무슨 말씀이온지.”
“내 아침밥을 뜨자마자 수역 홍명복을 데리고 병부에 가지 않았겠나? 지난밤 사건을 전하면서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어보았는데. 아하, 전혀 못 알아듣는 걸세. 그러면서 자기네들끼리 귓속말로 속닥이더군. 내가 눈치를 주자 수역이 그들 사이에 끼어 다시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자기네는 그런 일을 처리하는 부서나 관리직원은 듣도 보도 못했다는 거야. 그러면서 바쁘니 빨리 나가라 성화를 부렸다네. 더 이상 무례를 끼칠 수 없어 그 길로 예부로 찾아갔지. 다시 똑같이 상황을 알렸는데 그들 역시 마찬가지로 당황하고 이상한 표정인 게야. 하지만 사행단 숙소에 생긴 문제이기에 우선 조사는 해 보겠다며 떨떠름하게 전하더군. 뭔가 나오면 오림포를 통해 기별을 주기로 했다네.”
“분명 청나라 관리 복장이었는데요?”
“그러게 말일세. 허허 참, 설령 우리가 모두 지난밤 같은 악몽을 꿨단 말인가? 세상에 이런 별일도 다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하필 외국에서 말일세.”
“정사, 만약 이 일이 빨리 처리가 안 되면 어떡하실 작정이십니까? 황제께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음, 우선 어떤 기별이라도 오길 기다려보세. 그다음에 방법을 강구해도 늦지 않을 걸세.”
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속이 심란하고 편치 않다는 걸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지원은 조용히 물러 나온 후 바로 홍명복을 찾았다. 그는 점심을 막 끝낸 뒤였다. 그 역시 화장실에서 뒷일을 시원하게 못 본 사람처럼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원이 그의 팔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정사에게 전해 들었던 말이 전부일뿐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떠오른 듯 그의 고개가 갸우뚱하며 말을 덧붙였다.
“근데 말입니다요. 병부에서 저희를 만나준 관리들이요. 자기네들끼리 구석에서 조용히 속삭이는데 ‘강시’란 단어를 여러 번 언급한 걸 얼핏 들었습니다. 언급할 때마다 한 명이 벌벌 떨며 주머니에서 염주 같은 걸 꺼내 손으로 만지작거리더이다. 저희에겐 모른다고 딱 잡아뗐지만 강시가 뭔지 분명 아는 눈치였습니다. 정사 계신 데서 뭐라 하기가 그래서 그냥 나오긴 했습니다만. 오히려 예부에선 정말로 모르는 눈치였습니다요.”
‘강시’라면 저번에 그 수상한 관리가 언급하였던 것을 지원은 바로 떠올렸다. 그렇다면 병부의 관리들도 뭔가를 안다는 것인데. 지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까지 별 기별이 없으면 나와 함께 다시 찾아가 보세. 내 비록 공식적인 직함은 없지만 내 마두가 걸려있으니 직접 물어봐야겠어. 물론 아주 공손하게 말일세.”
외출하려고 문으로 나서는 수역을 바라보는 지원의 표정이 미묘 복잡해졌다. 참으로 해괴하고 무서운 일이 아닌가? 정사의 언급처럼 단체로 귀신에게 홀린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이게 무슨 황당하고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그는 수진이 방으로 들여온 점심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후딱 먹어 치운 후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불현듯 두려운 느낌이 들면서 한기가 들었던 것이다. 이 한여름에 말이다. 수진을 불러 시대와 함께 외출준비를 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러나 시대는 상방과 함께 아침에 세 놓은 수레를 타고 이미 한잔하러 나간 후였다. 별수 없이 혼자 외출하려 하자 눈치 빠른 수진이 자신도 더 구경하고 싶다며 따라나섰다.
그들은 붉은 담장에 황색 유리기와를 덮은 자금성(紫禁城)을 빙 둘러보았다. 조선의 경복궁과는 전체적인 규모 면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고 으리으리하였다. 수진은 여기가 궁궐이 아닌 정말 이름 그대로 또 다른 ‘성城’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금방 지친 그들은 잠시 쉬려고 주변의 찻집을 찾아 들어갔다. 음료수를 마시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지원에게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역관 이혜적이었다.
그는 임시가이드를 자청하며 그들을 옹화궁(雍和宮)으로 데리고 갔다. 세 겹처마로 된 큰 전각이 있고 그 안에 어마어마하게 큰 금부처가 모셔있는데 아주 볼만하단다. 그것을 보기 위해 지원과 수진은 열두 개의 사닥다리를 올라야 했다. 그런데 그 안이 너무나 어두워서 마치 귀신소굴로 들어가는 동굴처럼 느껴졌다. 어둠을 싫어하는 수진은 이를 악문 채 오르고 있었다. 사닥다리가 끝날 때쯤 반갑게도 햇빛이 들어오는 난간이 나타났다. 그러나 겨우 금부처의 넓적다리에 다다랐을 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사닥다리를 타고 칠흑같이 어두운 통로를 한참이나 올랐다. 이렇게 컴컴한 곳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불현듯 예전 키릴장막아케이드 약국에서 팔던 <올빼미 안약>이 떠올랐다. 어두운 곳에서도 대낮처럼 눈을 밝혀주는 안약 말이다. 비록 3시간밖에 효과가 없지만.
‘다음에 보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리라.’
그녀는 숨을 헉헉거리며 굳게 다짐했다. 여덟 개의 창문 사이로 들어온 따사로운 햇볕이 그녀의 얼굴로 비춰 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금부처 등짝의 절반쯤 올라왔을 뿐이었다. 꼭대기에 다 도착한 지원이 위에서 그녀에게 힘내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다시 손과 발로 사닥다리를 더듬으며 힘겹게 올라갔다.
드디어 부처의 정수리에 나란히 놓인 난간에 손이 먼저 이르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하고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듯 바람이 쌩쌩 불어댔다. 그녀는 꼭대기 대사전에 올라 바깥으로 향해있는 난간으로 나가보았다. 곳곳에 솟아오른 누대들로 시야가 가리긴 했지만 연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기에 좋은 위치였다. 그러나 계속 있으려니 곧 현기증이 일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겁먹은 표정으로 그녀가 안에 들어가자 지원과 혜적도 금방 따라 들어왔다.
밑으로 내려오니 마침 금실로 짠 가사를 입은 라마교 승려들이 줄을 지어 전각 안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바둑판처럼 짧은 다리를 가진 의자 위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었다. 종이 울리자 그들이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다. 지원과 수진은 구석에서 잠시 관람하다가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이어 공작포로 향하였다. 우리 안에 푸른 공작 두 마리와 붉은 공작 한 마리가 있었다. 푸른 것이 몸을 휙 흔들자 붉은색으로 변하고 붉은 것은 휙 하며 푸른색으로 변하였다. 셋 다 꽁지를 동시에 쫙 펼쳤는데 그것에 꼼꼼히 붙어있는 금빛 동전들이 살며시 흔들리며 찬란하게 빛났다. 그녀는 방송이나 사진이 아닌 직접 공작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조선 사람인 지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신기한 눈초리로 10분간 말없이 그것들을 쳐다보았다. 지원이 안의 사육사를 향해 외쳤다.
“아이고, 상체는 미인처럼 어여쁜데 정강이와 발은 왜 저리 추할꼬? 꼭 비단옷에 짚신을 걸쳐놓은 꼴이로구나. 참으로 해괴망측하도다.”
수진과 혜적이 옆에서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지만 조선말을 모르는 사육사는 멍청한 표정을 짓다가 머쓱 웃어넘겼다. 우리 속 마당은 공작들이 먹고 버린 뱀 뼈와 흰 잔여물들로 더러웠다.
다음엔 선무문 왼쪽 서성 북쪽 담장 아래에 위치한 코끼리 우리인 상방(象方)으로 향하였다. 수진이 꼭 가보고 싶다며 졸라댔기 때문이었다. 지원도 책에서나 읽었었던 그 신기한 동물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졌다. 80마리의 코끼리가 있는 아주 큰 우리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것을 접하자 다음과 같은 공식이 그의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 코끼리 =
소의 몸뚱이 + 나귀의 꼬리 + 낙타의 무릎 + 호랑이의 발 + 짧은 회색 털과 가죽 + 구름처럼 드리운 귀 + 초승달 닮은 눈 + 두 아름되는 두 개의 어금니 + 굽혔다 폈다 할 수 있는 자벌레나 굼벵이를 닮은 기다란 코
여담이지만 코끼리를 잘 알고 있는 여러분이 보기에도 참으로 재미있는 상상력이다. 이혜적은 상방을 둘러보며 자신의 유창한 지식을 뽐내기 시작했다.
“저 코끼리들은 큰 조회나 황제의 생일 등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 의장을 선답니다. 황제가 타는 가마와 의장행렬에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봉급도 받는답니다. 조회 때 백관이 오문으로 다 들어오면 코끼리가 코를 마주 엇대어 문을 지키지요. 만약 물건을 상하게 하거나 사람을 다치게 하는 등 죄를 범하면 칙명으로 매를 때립니다. 그럼 엎드려 매를 다 맞고는 사람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를 한다네요. 참으로 영특한 동물이지 않습니까?”
지원과 수진은 속으로 웃기시네 하며 그의 말을 무시했다. 참 농담도 잘하셔 표정으로 건성건성 들으면서 그들은 코끼리를 찬찬히 구경하였다.
“여기 부채와 환약 한 알을 주고 코끼리 재주 좀 보여 달라 해보게.”
지원이 그것들을 건네며 부탁하자 그는 근처 사육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사육사가 고개를 저으며 손바닥을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다. 혜적이 이쪽으로 몸을 돌려 부채 한 자루를 더 달란다고 전하자 지원은 빈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어깨를 으쓱했다. 서양이나 동양에서 공통으로 취하는 모션으로 ‘더 이상 없으니 나도 어쩔 수 없네.'란 뜻이다. 지원이 약간 성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그게 다야. 나중에 가져다줄 테니 먼저 재주 좀 보여 달라 해보게.”
전해 들은 사육사가 할 수 없다는 듯 코끼리를 살살 구슬려 보았다. 분홍색 리본을 왼쪽 귀에 매달아 장식한 코끼리였다. 눈이 꽤나 영리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코끼리가 코를 킁킁거리며 발끈하더니 지원과 수진을 사납게 흘겨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육사에게 눈웃음을 치며 하기 싫다고 고개를 도리도리 거절하는 게 아닌가? 마치 그들이 나눈 대화를 다 알아들은 눈치였다. 지원이 깜짝 놀라 역시나 멍하니 어이없어하는 수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할 수 없군. 지갑 좀 꺼내 보아라.”
그녀가 품속에 감추었던 지원의 지갑을 꺼내어 주자 그는 몇 푼을 내어주며 고갯짓을 했다. 그녀가 직접 사육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세상에나, 더더욱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코끼리가 흘기던 시선을 돌려 사육사에게 고정시킨 채 그가 돈을 다 세어 주머니 속에 넣는 걸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슬슬 몸을 움직이며 여러 재주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사육사는 말없이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할 뿐이었는데. 수진은 혀를 차며 참으로 돈을 좋아하는 동물이라 감탄하였다. 방송에서 보았었던, 밀림에서 하루 종일 나뭇잎과 과일을 따 먹고 똥을 바위처럼 무지하게 싸는, 그런 야생의 향기를 폴폴 풍기는 순수한 코끼리가 전혀 아니었다. 이미 속세에 완전히 찌들어 돈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러니 아까 혜적의 말처럼 일한 만큼 봉급을 달라 했겠지 싶었다. 옆에서 그녀의 말을 들은 지원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나 돈 몇 푼이 절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볼만은 했다. 코끼리가 머리를 조아리며 두 앞발을 끓더니 그들에게 차례로 절을 하고, 코를 자명종 추처럼 흔들어 나팔 소리를 내기도 하고, 둥둥 북소리를 내기도 했다. 귀엽게 춤도 추었다. 그렇게 더 보여줄 듯하다가 문득 눈을 흘기며 일어서더니 몸을 휙 돌리고 꼬리를 들어 올렸다. 쇼타임이 끝난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가 되어 감탄한 표정으로 상방을 나섰다. 아마도 혜적이 처음 들려준 설명이 진짜 모두 다 맞을 듯싶었다. 혜적은 약속이 있다며 그들에게 작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