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은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게이트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거울 뒤를 살펴본 후 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탁자, 서랍 안도 보고 성복들도 이리저리 들춰보고 벽을 손으로 밀어보거나 혹 안이 비었는지 발로 땅땅 때려보았다. 그러나 게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실망한 그녀는 우선 지원이라도 데려 와야겠다 싶어 방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텔레파시라도 통했는지 지원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까 이야기를 나눈 그 신부도 같이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그녀를 발견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한 채 놀란 어조로 물었다.
“아니, 넌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한참 찾았지 않느냐? 네가 숙소로 간 줄 알았지.”
지원이 캐묻자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 그냥 문이 열려 들어왔다고 말하면 될 걸 마치 도둑질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지원이 시선을 거두어 옆으로 고개를 내빼더니 거울이 있는 쪽으로 향하였다. 그의 얼굴에 단박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황금잎블루베리를 가리키며 호들갑스레 외쳤다.
“신부님, 이렇게 예쁜 나무는 난생 처음이군요. 마치 금박으로 잎을 만든 것 같소이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아저씨, 아저씨 눈에 저게 보이세요? 황금잎블루베리가 보이시냐고요?”
“그럼 보이지. 내가 장님이더냐?”
신부는 그녀를 신기한 눈초리로 응시하였다. 그사이 지원은 화분으로 성큼 다가가 잎을 하나 따서 이빨로 깨물어보았다. 진짜 금이란 걸 알고는 비명에 가까운 감탄사를 내뱉었다. 급히 몇 잎 따서 상투 속에 쑤셔 넣고는 갓을 당겨 단단히 고정시켰다. 생전 처음 보는 블루베리도 손바닥에 얹어 자세히 관찰하였다.
신부는 어느새 수진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녀에게 조용히 묻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지요? 혹시 ‘브라잇 동맹’을 아시나요?”
“‘딥언더니아 왕국’에 가봤어요. 근데 게이트는 여기에 없는 것 같아요. 지원아저씨, 그렇게 따실 필요 없어요. 조금 있으면 다 증발해 버릴 거니까요.”
그녀의 언급에 지원이 잎을 따려던 손동작을 딱 멈추었다. 그리고 바싹 타들어가는 눈초리로 그녀를 흘겨보더니 갓을 들어 아까 상투 속에 넣었던 잎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다 증발해 버린 후였다. 그는 흥분하여 바로 전에 따서 깊숙이 넣어두었던 도포 자락을 급히 흔들어 댔다. 몇 잎이 떨어지다가 그대로 증발해 사라졌다. 그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로 굳어졌다. 이걸로 그동안 집안 먹여 살리느라 고생하신 형수님께 밀린 은혜도 갚고 남은 여생을 좀 편히 지내보려 했는데. 그는 그만 맥이 탁 풀려 속이 쓰라리고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깊은 통탄에 빠지었다.
“황금잎블루베리가 있으면 게이트도 분명 있는 법이지요. 한 군데를 빠뜨렸나 보군요. 자, 잘 보십시오.”
신부가 말하면서 거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수진에게 똑똑히 보라는 듯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콕콕 가리켰다. 거울 속에 비친 문손잡이였다. 그는 거울에 비친 문에 세 번 노크를 했다.
“똑똑똑.”
그리고 조용하게 10초를 소리내어 세었다. 그리고 문손잡이를, 거울에 비친 그것을 옆으로 돌렸다. 세상에나, 놀랍게도 그것이 그의 손에 잡히더니 삑삑거리며 돌아갔다. 수진이 재빨리 몸을 돌려 실제 문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의 손잡이는 가만히 있는 상태였다. 다시 거울로 시선을 돌리었다.
신부는 거울 속의 문을 안으로 열었다. 그러자 문 사이로 붉은 노을이 비춰 들어와 방안에 내뿜어졌다.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리고 꽃향기도 맡아졌다. 그나마 수진은 괜찮았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지원은 거의 기절하기 일보 직전으로 커다란 충격에 빠진 듯 입을 뻥끗했다. 신부는 멍 때리고 있는 그의 팔을 잡아당기어 함께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수진도 따라 들어갔다. 곧 거울 속에 비친 문이 스르륵 닫히었다.
문밖으로 나오자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꽃이 흐드러져 피어있는 초원이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녀가 꽃잎을 한 장 땄다. ‘화이트커런트댄서’였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반가운 존재였다. 이제야 점점 실감이 나는 그녀였다. 그들이 들어온 문짝은 초원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홀로 세워져 있었다.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의 한 장면 같았다. 그사이 멍 때리던 지원이 정신을 차리었다. 그는 수진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그녀의 팔을 붙잡고 목청을 높이었다.
“얘야, 내가 실성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니? 설령 너도 같이 실성한 건 아니겠지? 내 뺨 좀 때려 보거라.”
“저도 정상이고 아저씨도 지극히 정상이에요. 걱정 마세요. 여긴 ‘하하호호히히’라는 다른 세상이에요. 더 이상 천주당 안이 아닌 거죠. 제가 잘 아니까 이젠 저만 믿으세요.”
“금방 다시 돌아갈 수 있겠지? 우리가 없으면 정사가 무척 걱정하실 게야. 또 조선의 내 식솔들은 어쩌고.”
“걱정일랑 하지를 마시오, 박 선생. 두어 시간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어서 갑시다. 곧 노을이 지겠군요.”
신부가 그를 안심시키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초원이 끝날 때쯤 끝이 뾰족뾰족하고 얼음 장벽처럼 높이 솟은 새하얀 대리석 주상절리가 나타났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이곳은 마치 대리석을 자로 대어 썰어놓은 듯, 인공적으로 각진 모양의 수직 결정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어 올라갔다. 그 사이로 난 계곡을 지나가자 바닥에서 허연 대리석 먼지가 폴폴 일어났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밤의 장막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신부가 품에서 양초 두 자루를 꺼내 허공에 날리자 저절로 붕 뜨면서 불이 탁 켜졌다. 초가 그들을 쫓아오며 비추자 지원은 반은 신기하게 반은 두려움에 쌓인 눈길로 그것들을 올려다보느라 하마터면 허연 바위와 부딪쳐 정열적인 키스를 나눌 뻔하였다.
길이 꺾이는 출구 사이로 노란 불빛이 가느다랗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통과하자 황금잎블루베리가 가로수처럼 심겨있고 잎들의 금빛 후광을 전적으로 받고 있는 으리으리한 건축물이 나타났다. 지원과 수진은 걸음을 딱 멈추었다. 침을 꼴깍 삼키고 덜덜 떨리면서 경외에 찬 눈으로 그들은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얀 대리석산을 통째로 파서 지은 거대한 그리스식 신전이 그 찬란한 위용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마치 그리스 신들이 땅으로 내려와 직접 끌을 들고 파서 다듬은 듯 매우 웅장하고 신비로운, 위엄이 흘러넘치는 예술작품 그 자체였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정면을 바위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거대한 도리아식 기둥들은 그 하나하나가 마치 숨 쉬어 살아있는 거인인 양 그들을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신전의 뒷면은 산에 그대로 붙은 상태였다.
지원은 태어나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서양 고전을 대표하는, 이 아름답고 우아한, 고귀하고 경이로운 문명의 대발견에 그만 전율을 느끼어 눈앞이 아찔해졌다. 넋이 완전히 나가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마치 물고기라도 된 것처럼 입술을 몇 번 뻐끔거리더니 다행히 그는 정신줄을 차리었다. 조금씩 ‘하하호호히히’ 세계에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수진은 그 모습에서 지난날 자신도 역시 경험했었던, 연속적인 충격의 나날들을 회상하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신전 앞에 놓인 수십 개의 대리석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앞장선 신부가 자꾸 고개를 올려 하늘을 흘끔흘끔 훔쳐보는 것이었다. 뭔가 두려운 표정이 역력했다. 마침내 확신이 들었는지 그가 안도한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지원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던 바로 그때였다.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오더니 집채만 한 뭔가가 위에서 떨어지며 신부를 확 덮쳐왔다. 그가 옆으로 넘어져 몇 계단을 굴러 떨어졌다.
지원과 수진은 공포에 휩싸여 뒤로 물러섰다. 날개가 활짝 펼쳐진 커다랗고 괴상한 짐승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날개를 접더니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앉았다. 신부는 곧 신음을 내뱉으며 주춤주춤 일어났다. 다행히 별로 다치진 않았나 보다. 그는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며 짐승을 향해 툴툴거렸다.
“어찌 매번 착지가 이런 식이랍니까? 한두 해 하신 것도 아니면서. 다음엔 제발 신경 좀 써주세요. 네? 스핑크스 님.”
“난들 그렇게 하고 싶겠나? 다 이 옷이 문제인걸. 자넨 먼저 올라가 있게. 네 요 귀한 손님들에게 수수께끼를 물어봐야 하니까. 나도 장사를 해야 먹고살지.”
신부는 지원의 옆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한 후 스핑크스를 지나쳐 계단을 올라갔다. 수진에겐 그저 윙크만 남긴 채 말이다. 그녀는 몇 계단 내려가 멀찍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엄숙한 표정으로 지원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를 곰곰이 살펴보았다.
그것은 그리스 여인의 얼굴에 몸은 사자이고 등짝에 커다란 날개들이 달린 깃털로 만든 상의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여인의 두 뺨은 너무 홀쭉하여 궁핍함이 덕지덕지 풍겨 나오고 날개와 조끼의 깃털은 군데군데 빠지고 닳아서 무척이나 낡았다. 그녀에게 들리진 않았지만 지원의 입술이 재빨리 움직였다. 스핑크스는 가도 좋다는 허락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지원이 그 옆을 지나쳐 계단을 올라갔다.
스핑크스가 수진에게 다가오라고 오른쪽 다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조신한 걸음걸이로 올라갔다. 스핑크스는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다보며 고양이같이 새침한 표정으로 수수께끼를 냈다.
“수수께끼를 풀면 통과할 수 있고 만약 못 풀면 나에게 뭔가를 바쳐야 한다. 알아듣겠지? 자, 그럼 잘 들어라.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
“인간이요!”
그녀는 더 이상 들을 필요조차 없다는 듯 바로 답해버렸다. 이건 동화책에도 나오는 그 유명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아닌가?
그러자 그것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다리를 들어 올려 어서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점차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녀는 살짝 뒤돌아서 그것의 얼굴을 살피었다. 아,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다. 스핑크스가 두 눈이 새빨개진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등장했을 때 불러일으켰던 공포와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잔뜩 움츠러들고 나약한 존재로 전락해 있었다. 수진은 안쓰러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그것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스핑크스의 고개가 그녀에게 돌려지더니 씁쓸하고 우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젠 다들 내 수수께끼를 맞히기만 해. 너처럼 질문을 미처 다 듣지도 않고 바로 답해버리지. 그래서 너무 슬퍼. 오랫동안 아무것도 받지 못했거든. 이젠 너무 가난해져서 이 깃털옷 수선비조차 없어. 옷이 더 해어지면 곧 날 수도 없게 되겠지. 그냥 물에 콱 빠져 죽어 버릴까 봐.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기 싫어.”
완전 나락으로 떨어져 자살을 꿈꾸는 스핑크스의 모습에 그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영화에 나오는 그 으리으리한 괴물이 맞나 싶었다. 차라리 으르렁거리며 공포를 주는 모습이 보기에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녀는 힘을 내라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수수께끼를 한번 바꿔보는 게 어떨까요?”
“헤라 여신에게 들은 건 그게 다인걸. 다른 건 몰라.”
“여신에게 다른 것도 좀 알려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스핑크스 님”
“벌써 해봤지. 근데 다른 건 모르신 데.”
수진의 두 눈이 반짝였다. 좋은 묘안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뭐라고 속삭이자 스핑크스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 멈추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녀에게 꼭 그리 해달라고 온몸을 흔들어 대며 필사적으로 부탁했다. 그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로 서로를 포옹했다. 그녀가 계단을 다 오르는 것까지 지켜본 후 스핑크스는 힘겨운 날갯짓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녀가 말한 좋은 묘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